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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ing - 소설이 돌아왔다 

 

정수정 포브스코리아 기자
최근 몇 년간 베스트셀러는 자기계발·힐링 서적 등이었다. 하지만 올 여름부터 소설이 강세다. 무라카미 하루키, 정유정 등이 바람을 일으키고 조정래·정이현·김영하 등이 가세했다.

▎7월 1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긴 줄이 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먼저 손에 넣기 위해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등장했다. 이 책은 출간 후 보름만에 14만 부를 찍었다(지난해 4월 200만부를 돌파했다). 같은 시기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김려령의 『완득이』,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 팀 볼러의 『리버보이』가 출간돼 인기를 끌었다.

다시 소설이 돌아왔다. 한국출판인회의가 발표한 8월 둘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이하 색채가 없는)』가 1위를 달리고 조정래의 『정글만리』 1권이 그 뒤를 바짝 뒤쫓는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 『28』 『인페르노』 1·2권, 『살인자의 기억법』도 10위 안에 들었다.

10위 안에 든 도서 중 소설이 7권이다. 각 출판사들은 여름에 맞춰 공들인 상품을 시장에 내놓는다. 휴가와 방학이 겹치면서 책 읽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국출판인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일부러 ‘큰 작가의 소설을 내놓자’고 출판사끼리 이야기한 건 아니지만 각 출판사가 (유명 작가의 소설을) 저마다 준비하다보니 시기가 맞물린 것 같다. 오랫동안 소설에 대한 갈증이 있던 차에 큰 작품들이 대거 나왔다”고 말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경기가 어려울수록 상상력에 대한 갈증이 커지면서 소설이 인기를 얻는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초 소득세 개편에 따른 ‘세금폭탄’ 우려와 개성공단 폐쇄 등 경기 불안감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그전까지 주로 팔리던 책은 소설이 아니었다. 올해 초까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등 힐링 서적, 『습관의 힘』 등 자기계발서가 많았다. 소설은 『레미제라블』 『위대한 개츠비』 등 영화의 후광을 입은 일부 ‘스크린 셀러’ 정도다.

소설 돌풍의 시작은 6월 27일에 출간된 정유정의 소설 『28』이었다. 인수공통전염병이 발생한 가상의 도시 ‘화양’에서 벌어진 28일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소설은 출간 열흘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두 달 만에 10만 부를 찍었다. 인기 소설로 꼽히는 그의 전작 『7년의 밤』이 출간 1년 만에 10만 부를 찍은 것도 대단하지만 그 이상의 대박이었다. 이 책을 낸 은행나무의 오가진 대리는 “정 작가의 소설은 고정 팬이 많아져 신간의 초기 반응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불을 댕긴 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이다. 하루키가 3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국내에 7월 1일 출간됐다. 일본에 7일만에 100만 부가 팔린 이 책은 한국판 계약부터 주목을 받았다. 출판업계에서 선인세(책을 출간하기 전 지불하는 인세, 일종의 계약금)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하지만 선인세로 16억원을 제시하고 탈락한 출판사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국내에서 출간 전 선주문만 18만 부가 들어왔다. 출간일에는 평일 대낮인데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사람들이 줄 서서 살 정도였다. 이 책은 8월 둘째 주 기준으로 6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후 두 소설과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이 시장을 이끌었다. 이 책은 올해 초 KBS ‘달빛 프린스’에서 배우 이보영이 추천한 후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9년 전에 국내에 출간된 이 책의 저자 프랑수아 를로르라는 정신과 의사다.

더 큰 불을 지핀 것이 조정래의 『정글만리』. 중국 시장을 무대로 한국·중국·일본·미국·프랑스 5개국 비즈니스맨이 벌이는 총성 없는 전쟁을 그렸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3월 25일부터 7월 10일까지 조정래가 연재한 동명의 소설을 세 권의 책에 담았다.

그 동안 역사와 관련된 대하소설을 주로 집필해온 조정래 작가로서는 이례적인 작품이다. 출간 후 1권이 7월 셋째 주 9위에 진입해 8월 둘째 주 기준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정글만리』를 출간한 해냄의 편집자 박은영씨는 “인터넷에 연재하면서 출간 준비도 동시에 이뤄졌다”며 “전 세대 독자를 아우를 수 있는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시기에 댄 브라운이 4년 만에 낸 『인페르노』와 정이현의 『안녕 내 모든 것』이 소설 시장을 달구는 데 동참했다. 7월 말 출간한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역시 3주 만에 5만부를 찍었다. 주 대표는 “소설끼리 경쟁하면서 시장의 크기를 키웠다”며 “장르소설을 중심으로 소설 시장이 꾸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309호 (201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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