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커스 켑카 휘슬러 글로벌 CEO는 한국 지사의 지속적인 성장에 주목했다. 휘슬러의 뛰어난 품질을 기반으로 예술을 활용한 브랜드 캠페인이 성공 비결로 꼽힌다. 새해에는 한국 식문화에 적합한 한국형 냄비를 선보일 계획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휘슬러 갤러리의 쿠킹 스튜디오에서 ‘요리하는 CEO’ 콘셉트로 촬영했다. 실제 요리를 즐기는 마커스 켑카 휘슬러 글로벌 CEO는 한국에 방문한 날 쿠킹클래스가 열리면 늘 참석한다. 한국의 조리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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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4일 오후 3시 붉은색 간판에 은색 냄비들이 장식된 서울 강남구 신사동 휘슬러 갤러리에 세련된 수트 차림의 외국 신사가 들어왔다. 짙은 갈색 머리에 검정색 수트를 입은 그는 빨간색 포켓스퀘어로 멋을 냈다. 특히 휘슬러 상징인 ‘솔라’ 무늬를 새긴 넥타이가 눈에 띈다.세계적인 명품 주방기구 휘슬러를 이끄는 마커스 켑카(Markus H. Kepka·52) 글로벌 CEO다. 휘슬러는 70여개국에 압력솥·냄비·프라이팬·나이프 등 500여 종의 주방용품을 판매한다. 그는 맥주회사 크롬바커와 식품기업 외트커 그룹에서 마케팅 경험을 쌓고, 가정용품회사 라이프하이트를 거쳐 2010년 휘슬러 경영을 맡았다.2시간가량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100% 완벽해야 한다”였다. 말 뿐이 아니었다. 무거운 냄비를 들고 사진 촬영을 할 때조차 힘든 내색 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휘슬러의 철학이 ‘언제나 완벽하라(Perfect every time)’입니다. 아주 사소한 부품을 만들더라도 100% 완벽하게 만들려고 해요. 소비자는 조리법만 잘 따르면 언제나 완벽한 요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이 단순한 원칙은 휘슬러의 장인 정신을 대변한다. 발명가 출신의 칼 필립 휘슬러가 184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3시간가량 떨어진 조그만 마을 이다 오버슈타인에서 휘슬러를 창업했다. 흥미롭게도 168년동안 한 번도 공장을 옮기지 않았다. 제품 기술이 새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주방용품에 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했고, 음식이 프라이팬에 눌러붙지 않도록 엠보싱 처리를 시작한 곳이 휘슬러다. 1953년에는 압력솥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특히 내부의 산소는 배출하고 외부 산소 유입을 막아 진공 상태를 유지하는 유로매틱 시스템을 선보였다. 비타민·미네랄 등 영양소 파괴를 막아 음식 고유의 맛을 지킨다.
▎켑카 대표(왼쪽)는 “한국 지사장(김정호 대표)과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이 경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2012년 ‘휘슬러코리아 비전 워크숍’에 참석한 두 사람이 와인으로 건배하는 모습(위). 휘슬러코리아의 나눔 활동인 ‘레드마마 캠페인’에 참여한 김정호 휘슬러코리아 대표(왼쪽)와 켑카 CE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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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본사도 놀란 한국의 판타지 마케팅휘슬러가 보유한 특허만 200개가 넘는다. 켑카 대표는 냄비의 바깥쪽 바닥을 보여주며 “휘슬러의 기술력이 응축돼 있다”고 자랑했다.“‘made in Germany’라고 새겨져 있지요.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주문자위탁생산방식(OEM)을 택하지만 우리는 항상 독일 현지에서 제작합니다. 바닥 면은 3중 구조에요. 내구성이 강한 스테인리스스틸 사이에 열전도율이 높은 알루미늄을 넣었습니다. 열을 빠르게 흡수하고 열 보존성 또한 뛰어납니다. 열 감지 카메라로 촬영을 하면 바닥면의 온도가 동일합니다.”최근 휘슬러는 ‘독일 럭셔리 브랜드 톱 50’에 선정됐다. 유명 컨설팅회사인 언스트앤영이 150개 기업을 대상으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50곳을 뽑았다. 휘슬러는 33위다. 이 중 주방기구 브랜드로는 휘슬러가 유일하다. 이밖에 라이카·몽블랑·포르셰·아우디 등이 순위에 올랐다.켑카 대표는 휘슬러가 선정된 데는 프리미엄 아트 마케팅이 한몫했다고 얘기했다. 마케팅 콘셉트는 여성의 판타지다.대표적인 사례가 독일 프랑크프루트의 갤러리아 백화점 전시다. 1층 전체를 휘슬러 제품을 활용한 예술 작품으로 꾸몄다. 전시장에는 휘슬러 냄비로 만든 커다란 나무와 꽃이 있다. 냄비를 이어 붙인 공작새의 날개는 조명을 받아 반짝인다. 주방에서나 볼 수 있었던 주방기기의 화려한 변신이다. 켑카 대표는 “휘슬러의 기술력과 혁신을 판타지로 표현했다”며 “제품이 여성의 판타지를 실현해줄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들려줬다.판타지를 접목한 아트 마케팅을 처음 시작한 곳은 한국이다. “한국 여성은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이에요. 휘슬러코리아는 2007년부터 주방을 다르게 해석한 브랜드 캠페인을 펼쳤어요. 주방이 요리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여성의 판타지가 실현되는 꿈의 공간임을 일깨워주는 ‘판타지’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선보였습니다. 반응이 좋았어요. 이제 휘슬러는 한국 여성에게 ‘사고 싶은 제품’이 아니라 ‘갖고 싶은 브랜드’가 됐습니다.”한국 지사의 브랜드 캠페인은 본사를 비롯해 전 세계 지사에 관심사가 됐다. 2013년 6월 선보인 ‘휘슬러 인 판타지’ 3탄 역시 눈길을 끌었다. 배우 전지현이 여성의 삶을 행위예술로 표현한 광고다. 영상 속에서 그는 현대 무용계의 거장 피나 바우쉬에게 영감을 받아 춤추는 모습이다.쉴 새 없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검은 드레스를 입은 전지현은 마치 영화 ‘블랙스완’의 한 마리 흑조같다. 이 영상이 공개된 날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엔 70만 건 이상의 페이지 뷰(이용자가 페이지를 열어본 횟수)를 기록했다.켑카 대표는 “한국 지사의 브랜드 캠페인은 누구나 즐기는 예술 작품이 됐고 소비자와 적극적인 피드백을 주고 받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마케팅 전문가 이장우브랜드마케팅그룹의 이장우 회장은 “휘슬러의 아트마케팅은 비자트(bizart, 비즈니스와 아트의 결합)의 성공사례”라고 들려줬다. “예술을 활용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인 겁니다. 꾸준히 마케팅 활동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만약 아트 마케팅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휘슬러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여성의 감성과 영감을 자극하는 브랜드 캠페인을 2007년 이후 꾸준히 해 온 것이 휘슬러 한국 지사의 성공 요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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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한국 전용 생산라인에서 제작한 ‘솔라’휘슬러 전 세계 매출에서 한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큰 편이다. 휘슬러 측은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시장점유율이 본국인 독일과 근소한 차이라고 밝혔다. 켑카 대표는 “한국 시장은 2013년 역시 두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휘슬러와 한국과의 인연은 1960년대 후반 독일로 떠난 한국 간호사와 광부로부터 시작됐다. 휘슬러의 대표 상품인 압력솥은 독일에서 돼지고기를 삶는 용도였다. 그들은 여기에 쌀밥을 지어 먹었다. 편리하고 밥맛이 좋자 앞다퉈 고국의 부모형제에게 압력솥을 보냈다.한국에서 반응은 뜨거웠다. 1년 묵은 정부미(政府米)가 압력솥을 거치자 햅쌀 맛이 났기 때문이다.휘슬러는 이 반응을 놓치지 않고 1972년 한국을 겨낭한 ‘솔라(Solar) 시리즈’를 내놨다. 독일 삼색기를 조합한 솔라 패턴의 제품은 무려 40년 넘게 한국 주부에게 인기를 끌었다.켑카 대표는 성공의 비결을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에서 찾았다. 글로컬라이제이션이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역화(localization)의 합성어다. 세계화를 추구하면서 진출 국가의 문화를 존중하고 수용하는 경영 방식이다. 한마디로 휘슬러는 한국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었다. 그는 솔라 압력솥을 보여주며 설명했다.“한국은 사골국처럼 오랜 시간 끓이는 요리가 많아요. 뚜껑을 덮어서 에너지 효율을 높였고, 뚜껑에 본체 안의 압력을 조절할 수 있도록 스팀 홀(Steam hole)을 만들었습니다. 스팀 홀 기능이 있는 제품은 솔라 제품이 유일합니다. 한국 주부는 여전히 전기 열원보다 가스렌지를 이용한 직화 열원을 선호하지요.한국형 제품은 센 불에 오래 끓일 수 있게 바닥을 두껍게 만듭니다. 대신 손잡이는 불꽃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다른 나라보다 1cm 더 높였고요. 특히 한국 여성은 유럽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목이 가늘고 힘이 약해요. 손잡이 크기를 조절해서 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신경썼습니다.”켑카 대표가 이토록 한국 조리 문화를 잘 아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요리에 관심이 많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한국 지사 직원들과 한식을 즐긴다. 휘슬러 갤러리에서 쿠킹클래스가 열리면 참석해서 요리를 하기도 한다. ‘이노베이션 워크숍(Innovation workshop)’도 빼놓을 수 없다.본사 연구개발(R&D)팀에서 한국을 방문해 진행한다. 고객 중 40여 명의 주부를 초청해 제품 사용 소감부터 개선점, 신제품 아이디어 등을 공유한다. 고객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제품 중 2010년 선보인 프리미엄 솔라 압력솥이 있다. 압력을 기존 3단계에서 4단계로 조절하는 새 기능이 추가됐다. 각종 잡곡밥은 기본이고 모든 종류의 찜 요리가 가능한 압력솥이다.이뿐이 아니다. 독일 공장에는 한국 전용 생산라인이 있다. 아시아 수출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 소비자는 품질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상당히 높아요. 한국 제품의 품질 테스트에는 더욱 공을 들입니다. 일반 생산 라인보다 생산량을 줄이고 표면 스크래치까지 꼼꼼하게 살펴봅니다. 100% 완벽한 제품만 한국에 들어오는 겁니다. 일본이나 중국 소비자도 솔라 제품을 사고 싶다면 한국에 와야 합니다.” (웃음)2014년 상반기께 한국형 신제품이 나온다. 2년여의 연구·개발 끝에 선보인 냄비다. 발렌시아(Valentia)와 코르디스(Cordis) 두 종류다. 특히 발렌시아는 새로운 뚜껑 설계 기술(New Lid Technology)을 적용했다. 휘슬러 냄비는 반압 효과를 이용해 저수분·저유분 조리가 가능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인다는 점에서 전 세계 주부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에 비해 한국은 사골국·미역국 등 점성이 높은 음식을 오랫동안 끓이는 조리 문화 때문에 이 장점을 100%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이 문제를 개선한 냄비가 발렌시아다.인터뷰에 앞서 켑카 대표는 오전 10시에 서울 시청 근방의 서울광장을 찾았다. 그곳에는 붉은 벽돌에 빨간색 문이 인상적인 ‘카페 레드마마’ 팝업 전시관이 있다. 2013년은 휘슬러코리아가 나눔 활동을 시작한 지 딱 10년이 되는 해다. 팝업 전시관 한곳에는 지난 10년의 역사를 담았다. 또 두리홈에서 생활하는 미혼모들이 시민에게 빨간 머핀과 수프를 무료로 제공하며 자선냄비 기부를 알렸다.두리홈은 국내 처음으로 설립된 미혼모 복지시설이다. 휘슬러코리아의 이번 나눔은 미혼모의 자립을 돕는 레드마마 캠페인이다. 두리홈에서 생활하는 미혼모를 대상으로 희망자에 한해 다양한 재능 발굴부터 점포 리모델링, 마케팅 등 멘토링을 해줄 계획이다. 2014년 상반기에 서울 역촌동에는 ‘카페 레드마마’가 문을 연다.켑카 대표는 휘슬러코리아의 나눔 활동을 응원하기 위해 방문했다. 이날은 김정호 휘슬러코리아 대표를 비롯해 이수근 자선냄비본부 사무총장, 추남숙 구세군 두리홈 원장 등이 참여해 서로를 격려했다. 켑카 대표는 “레드마마 캠페인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미혼모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국에서 미혼모는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양육이나 경제적 자립이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카페 레드마마는 미혼모가 일을 해서 자녀를 키우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미혼모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공간이 될 겁니다.”휘슬러코리아의 나눔은 2004년 구세군 자선냄비를 교체하면서 시작됐다. 전 직원이 약 6개월의 연구 끝에 지금의 자선 냄비를 만들었다. 실제 모금 활동에 무리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 동전을 넣고 빼고 반복한 게 수천 번에 이른다. 그해 12월 휘슬러 로고가 새겨진 300개의 자선냄비를 구세군에 전달했다. 이후 휘슬러 코리아는 다양한 형태와 의미를 지닌 자선냄비를 지원했다.2010년부터는 즐거운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했다. 겨울마다 서울 시청앞 광장에 ‘스노우볼 자선냄비 체험관’ ‘회전목마 자선냄비 체험관’ ‘관람차 자선냄비 체험관’을 차례로 기증했다. 2013년은 나눔에 변화가 생겼다. 직접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나선 것. 2010년 실직자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빨간마차 캠페인’의 경험을 살려 미혼모를 돕는다.켑카 대표는 “휘슬러는 다이아몬드 원석같은 기업”이라고 했다. “뚝심있게 전통을 지키는 동시에 기술 개발로 혁신을 추구합니다. 조그만 다듬으면 가치가 오랫동안 빛날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 15년 후에는 휘슬러 전체 매출이 2~3배 늘어날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