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시장이 사상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차부터 중형세단, 대형 SUV까지 골고루 팔렸다. 독일차의 선전 속에서도 폴크스바겐의 질주가 돋보인다. 반면 도요타 등 일본차는 부진했다. 새해에도 브랜드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수입차 약진이 매섭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이하 수입차 협회)에 따르면 2013년 1~11월 국내 수입차 전체 판매량은 14만4092대. 전년 동기 12만195대에서 19.9% 늘었다. 2012년 전체 판매대수인 13만 대를 이미 넘어섰고, 11월 말 기준 국내 승용·RV 시장에서 점유율은 12.2%까지 올랐다. 주요 브랜드들도 당초 목표로 잡았던 판매대수를 웃도는 실적을 보였다.윤대성 수입차협회 전무는 “2013년 수입차 판매를 전년 대비 15% 성장한 14만3000대로 예상했는데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15만5000대를 넘어설 것”이라며 “각 브랜드의 다양한 신차 출시와 적극적인 마케팅, 특히 디젤 모델이 수입차 시장을 견인하면서 전년 대비 약 20% 성장세를 보였다”고 했다.특히 2013년 수입차 시장에는 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대형차 위주의 럭셔리 세단 외에도 야무지고 실용적인 차가 인기를 얻었다. 특히 배기량 3000cc 이하의 연비 좋은 디젤차가 내수시장에서 몸집을 불렸다. 고가의 럭셔리 브랜드 역시 높은 판매량으로 눈길을 끌었다. 수입차 시장도 배기량과 가격대·취향에 따라 세분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수입차는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라는 평가다.
디젤·폴크스바겐·15만대. 2013년 수입차 시장을 특징짓는 키워드다. 디젤 차량 전성시대, 폴크스바겐의 약진, 연간 판매량 15만대 돌파로 풀이된다. 2013년 수입차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 ‘톱7’(1~11월 누적분 기준)을 분석해 보면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난다. 베스트셀링 7개 차종 중 6개가 디젤 모델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E300만이 가솔린 모델이다.차종별로는 독일차가 판매 1~7위를 휩쓸었다.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전통의 강자 BMW 520d다. 준대형급 세단으로 디젤엔진 특유의 높은 복합연비(16.9㎞/ℓ)와 뛰어난 주행성능에 힘입어 3년 이상 장수모델로 살아남았다. 1월 980대를 판매해 단일 모델 월 최고 판매기록을 세우는 등 11월까지 7904대가 판매됐다. 시장점유율은 5.49%로, 전체 판매 순위 5위인 도요타(4.77%)보다 높다.BMW그룹코리아 박혜영 홍보총괄 매니저는 “520d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BMW의 대표 베스트셀링 모델”이라며 “역동적이며 우아한 디자인과 탁월한 효율성을 바탕으로 현재 국내 운전자의 수요를 가장 잘 충족하는 프리미엄 중형 디젤 세단”이라고 말했다.2013년 폴크스바겐의 질주는 눈부시다. 업계에서 ‘폴크스바겐의 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폴크스바겐은 11월까지 전년 동기보다 45.8%나 늘어난 2만4226대를 팔았다. 폴크스바겐의 질주는 골프·티구안·파사트가 이끌었다. 티구안2.0 TDI 블루모션은 5255대가 판매돼 베스트셀링 2위를 기록했다.파사트2.0 TDI가 3796대로 5위, 골프 2.0 TDI가 3092대로 7위에 올랐다. 세 모델로만 시장 점유율 8.5%를 차지했다. 티구안2.0 TDI는 독일 브랜드 SUV 중 가장 저렴한 가격과 전 차종에 기본 적용된 상시 4륜구동 시스템이 인기를 얻으며 월 400~500대의 꾸준한 판매량을 보였다. 소형 SUV 바람을 제대로 탄 것이다.한국 세단 시장 공략을 위해 폴크스바겐이 전략적으로 선보인 중형세단 파사트는 연초에 판매가 저조했으나 가을 들어 판매량이 급증했다. 특히 동급 최고 수준의 실내면적과 넉넉한 트렁크 공간은 패밀리 세단을 선택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선택 요소가 됐다. 수입 소형차 최고 베스트셀러인 골프는 여름에 출시된 7세대 신형 모델 인기가 더해지면서 매달 500대 가까운 판매를 기록했다.이뿐 아니다. 폴크스바겐은 폴로·제타·뉴CC 등 전 차종이 소비자의 관심을 끌며 단숨에 BMW의 뒤를 쫓는 추격자로 올라섰다. 현재 추세라면 2014년 연간 판매량 3만 대 돌파는 물론 BMW를 잡고 1위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BMW나 메르세데스 벤츠가 중대형 세단을 중심으로 판매하는데 비해 폴크스바겐은 중소형 차량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작으면서도 실용적인 차량을 선호하는 최근 트렌드로 볼 때 당분간 폴크스바겐의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폴크스바겐코리아 방실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부장은 “판매량 등 양적 성장보다 고무적인 것은 질적 성장을 이뤘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폴크스바겐은 20~40대까지 핵심 소비자가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가격대에서도 2000만원대부터 4000만원대 모델까지 판매 1위를 기록했다. 또 특정 모델이 판매를 이끄는 게 아니라 티구안·파사트·골프 등 다양한 모델이 성장을 이끄는 구조다. 이것이 폴크스바겐의 경쟁력이다.”2012년 BMW와 폴크스바겐에 밀려 고전했던 메르세데스 벤츠는 E300과 E220 CDI를 각각 4668대, 4127대 팔아 3, 4위에 올리며 명예를 회복했다. 특히 E300은 앞차와의 거리를 감지해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차선 이탈을 방지하는 주행 보조시스템 디스트로닉 플러스, 자동으로 안전 벨트를 몸에 맞게 조여 사고가 났을 때 충격을 완화하는 프리세이프 등을 장착해 관심을 모았다.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 박주혜 마케팅 상무는 “더 뉴 E클래스는 4년 만에 페이스 리프트(부분 변경)된 모델로 독보적인 기술, 독특한 디자인으로 고객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켰다”며 “특히 E220 CDI에 장착된 엔진은 성능과 연비를 개선해 디젤 엔진 특유의 떨림과 소음·매연을 대폭 줄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다.6위는 아우디의 A6 3.0 TDI 콰트로가 차지했다. 매달 300대 안팎의 판매량을 보이며 11월까지 3111대가 팔렸다. 아우디코리아의 매출을 2012년 46%, 2013년 30% 끌어올린 효자 모델이다. 아우디코리아 요그 디잇츨 마케팅 이사는 “출시 3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에서 ‘올해 최고의 럭셔리카’에 선정될 만큼 디자인·성능·첨단기술 등에서 비즈니스 세단의 기준을 제시하는 모델”이라며 “최근 준대형 세단의 트렌드인 승용사륜구동 시스템, 고성능 디젤에 있어 가장 앞선 기술을 적용했다”고 강조했다.수입차는 최근 몇 년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다. 2009년 6만993대였던 판매량은 이듬해 9만562대로 대폭 성장하더니 2011년에는 처음으로 10만대를 넘어섰다. 2012년에는 13만858대를 기록하며 국내 자동차 시장점유율 10%를 돌파했고, 2013년 사상 처음 15만대 돌파가 예상된다.이처럼 수입차시장이 새 역사를 쓰는 데는 활발한 물량 공세가 큰 역할을 했다. 수입업체는 2013년 내내 한 달 평균 14개 모델의 신차를 선보이며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혀왔다. 수입차협회에 따르면 2013년 11월까지 국내에 출시된 수입차 브랜드 신차는 총 150개 모델로 2011년 70개, 2012년 120개에 비해 크게 늘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자 인기 차종 역시 다양해졌다. 중형세단은 물론 실용성이 뛰어난 SUV와 연비가 좋고 비교적 저가의 소형 모델들도 베스트셀링 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각 업체별 주력 SUV 판매량은 대부분 전년보다 대폭 상승했다.개인 구매가 늘어난 것도 수입차의 대중화를 앞당겼다. 수입차협회에 따르면 2013년 개인구매 비율은 60%를 넘어섰다. 한때 70% 가까이 차지했던 법인의 구매 비중이 4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수입차 시장의 주요 고객은 법인이었다. 기업체 오너나 CEO·임원 등의 업무용 차량으로 주로 팔렸다. 달라진 수치는 최근 업무용 차량이 아닌 개인용 차량으로 수입차를 사는 사람이 늘었다는 뜻이다.그 결과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수입차인 폴크스바겐이 처음으로 개인 판매에서 부동의 1위 브랜드인 BMW를 제쳤다. 수입차 업계에서는 국내 수입차 시장이 성숙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과)는 “최근 들어 소비자 사이에서 수입차가 과시용이 아닌 이동수단이라는 개념이 더욱 확고해졌다”며 “당분간 실용성도 높고 연비가 좋은 차량이 인기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특히 독일차의 선전은 높은 품질과 유로화 선택에 따른 수혜로 분석된다. 차량 자체의 우수한 성능과 상품성도 성공 요인이지만 유럽 재정 위기 여파에 따른 유로화 가치 하락에 힘입은 바 크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독일은 상당한 흑자에도 불구하고 유로화 절하라는 엄청난 혜택을 입고 있다”며 “기술 경쟁력은 물론 환율 수혜로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한 것이 독일차의 선전 이유”라고 강조했다.수입차업체들이 서울 강남을 벗어나 강북과 수도권·지방 등으로 판매망을 넓힌 것도 수입차 판매 증가요인이다. 시승이나 드라이빙 스쿨 등 대면 접촉형·체험형 마케팅 활동이 빈번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입차협회와 각 업체자료에 따르면 2009년 246곳이던 전국 수입차 전시장은 2013년 상반기 321곳으로 30% 늘었다.눈에 띄는 점은 수도권, 부산·대구 등 5개 지방 광역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방도시에서 수입차가 더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방도시의 수입차 전시장은 2009년 38곳이었지만 지금은 65곳으로 70% 이상 증가했다. 최근 몇 년간 지방의 개발 호재가 잇따르면서 토지 보상비 등으로 돈을 번 사람이 늘었고 수입차업체들이 이를 겨냥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모델 늘리고 가격 낮춰 내수 시장 잠식 서비스센터도 대폭 늘었다. 판매 1~3위를 차지한 업체들은 서비스 센터가 전시장보다 많은 게 공통점이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전시장을 늘려 판매량을 높이는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기존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도 힘쓴다”면서 “전시장 한 곳보다 서비스센터 한 곳이 주는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얘기했다.수입차업계의 마케팅은 연말연시에도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매년 연말이면 연식 변경을 앞둔 차를 판매하기 위해 수입차업계는 각종 혜택을 늘리며 소비자를 유혹한다. 일종의 밀어내기 판매다. 하지만 2013년 연말은 상황이 좀 다르다. 가을 이후 브랜드를 대표하는 차종이 대거 출시돼 신차 판매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수입차협회는 2014년 수입차 판매를 2013년 보다 약 10% 성장한 17만4000대로 전망했다. 원화강세, 한·EU FTA에 따른 유럽산 모델의 무관세 등을 시장에 긍정적 요인으로 본다. 하지만 국내 가계부채 증가, 소비심리 위축 등이 수입차 성장 견제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윤대성 전무는 “2014년은 전기차까지 가세해 수입차 증가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2013년 대비 신규 모델이 적고, 일부 모델에서는 국산차와의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며 “신년 수입차업계는 딜러·AS인프라 보강과 확대 등 내실강화에 노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