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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통화인가 일시적 거품인가 

 

IT 영역에 머물던 비트코인이 빠른 속도로 일상에 자리 잡고 있지만 보안 문제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왼쪽부터)비트코인 거래가 가능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식당, 서울 청담동의 미용실



온라인 가상화폐 ‘비트코인’ 열풍을 둘러싼 논란이 식을 줄 모른다. 2010년 0.05달러 안팎이던 1비트코인의 가치가 지난해 초 10달러까지 급등했을 때도 많은 사람이 ‘투기수요에 의한 일시적 유행’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지난해 4월 국내 최초의 비트코인거래소 ‘코빗(Korbit)’이 문을 연데 이어 빵집과 미용실, 커피전문점 등 비트코인으로 거래할 수 있는 매장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IT 영역에 머물던 비트코인이 어느새 일상 속으로 자리 잡아 간다. 1월 19일 기준 국내 비트코인 가격은 88만6000원이다.

비트코인은 온라인에서 이용되는 암호화된 가상화폐다. 특정 업체가 발행하고 특정사이트에서 특정 물품이나 서비스만 전자적으로 결제하는 사이버 머니 등도 가상화폐다. 하지만 누구나 발행할 수 있고, 운영 실태를 실시간 감시할 수 있으며, 은행을 거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른 가상화폐다.

지난해 4월 키프러스 금융위기 사태 때 비트코인은 대안화폐로 주목 받았다. 당시 키프러스는 중앙은행이 기능을 중단할 정도로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자, 러시아 자본이 대거 비트코인으로 전환됐고 당시 하룻만에 1비트코인은 50달러에서 266달러로 급등했다.

서구 선진국에 비하면 국내 비트코인 시장은 걸음마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비트코인 가맹점은 500곳이 넘으며 그 수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5만 곳이 넘는 소매점에서 쓸 수 있는 선불카드를 비트코인으로 구매 할 수 있어 사실상 미국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캐나다 밴쿠버의 한 카페에는 세계 최초의 비트코인 현금입출금기(ATM)가 설치됐다. 거래액이 운영 한 달 만에 100만 캐나다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비트코인 ATM은 입출금이 가능하며 현금으로도 바꿔준다. 키프러스의 니코시아대는 등록금은 물론 부설기관의 각종 수수료를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다고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미국의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시크릿은 비트코인으로 기프트카드를 구매할 수 있는 앱 ‘기프트’와 협약을 맺어 간접적으로 비트코인을 받고 있다. 또 미국의 온라인 상거래 웹사이트 오버스톡은 올해 2분기부터 비트코인을 받겠다고 발표했다. 경매사이트 이베이도 온라인결제서비스 전문 자회사인 페이팔을 통해 비트코인 결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비트코인 거래를 시작한 파리바게뜨인천시청역점, USB형 비트코인 채굴기.
버냉키 ‘효율적 지불수단’ 평가로 관심 증폭

화폐라고 하지만 각국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기존 화폐와 달리 비트코인은 암호화된 수학문제를 풀어 코인을 획득하는 방식의 ‘채굴(mining)’을 통해 발행된다.

채굴은 컴퓨터에서 순차적으로 문자를 대입해 보는, 단순 반복적인 연산 작업을 통해 얻을 수 있도록 개발자가 프로그램화시켰다. 비트코인은 처음 4년간은 10분마다 새로운 블록이 생성된다. 새로운 블록 1개당 50비트코인이 생성되다가, 현재는 1블럭당 25비트코인이 발행 된다. 연산 작업의 난이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진다는 뜻이다.

코빗의 공동설립자 유영석 대표는 포브스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채굴은 일종의 정산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비트코인은 프로그램이라기보다 규칙(프로토콜)에 가깝습니다. 채굴은 규칙에 따라 시스템에 오류가 있는지 확인하고 정리해 공유하는 작업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국내에서도 개인이 인터넷에 공개된 비트코인 채굴 프로그램을 개인용컴퓨터에 깔아 비트코인을 캔다. 개인용 컴퓨터의 연산 능력이 부족하면 보조장치인 채굴기를 부착하기도 한다. 중국, 미국 등에서 생산한 채굴기를 주로 사용한다. 가격은 몇만원대에서 몇백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채굴기가 있어도 혼자 힘으로는 채굴이 어려워 공동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개인적으로 비트코인을 채굴하면 전기료가 더 나와 경제성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2009년부터 ‘채굴’이 시작돼 현재까지 약 1200만 비트코인이 발행됐다. 정확히 2100만 개만 생성되도록 프로그램화됐지만 채굴량이 4년마다 절반씩 줄도록 설정돼 2140년 한계치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트코인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발행 개수가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발행기관도 관리기관도 없으니 특정 주체가 나서서 통화량을 좌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중앙집권화된 발행과 관리의 주체가 없다는 점이 미래의 화폐로서 비트코인의 앞날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국가 정책에 따른 환율변동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비트코인이 주목 받으면서 미국 상원에서는 지난해 11월 청문회를 열어 국가안보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상원에 보낸 서한에서 ‘비트코인이 효율적인 지불수단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는 등 유력 인사들의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져 비트코인에 대한 인지도와 신뢰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하지만 이 같은 평가가 투기수요 유입을 부추겨 가치의 변동 폭이 크다는 점 때문에 우리나라와 중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의 금융당국은 규제의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로 미국 청문회가 있던 날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비트코인의 가치는 500달러에서 900달러를 돌파한 뒤 다시 500달러 수준으로 복귀하는 ‘롤러코스터 변동’을 연출했다.

이와 관련해 독일의 중앙은행 분데스방크의 칼 루트비히 틸레 이사는 최근 독일 일간지 한델스블라트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변동이 심하며 투기성이 높은데다 보증하는 국가가 없어 투자자가 돈을 전부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통화당국인 인민은행은 “비트코인은 통화가 아니어서 법적인 보장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영국도 국세청이 감독하는 가상화폐 거래소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2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비트코인이 법정화폐가 될 것인지는 논의 대상도 안 된다”면서 “수용성, 가치 변동성 등으로 봤을 때 발전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해킹 등 보안 관련 문제도 산적해 있다. 지난해 11월 호주 비트코인 거래사이트에서 100만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이 도난당했다. 미국 거래업체인 비트플로어도 지난해 10월 25만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해킹당했다.

비트코인 요구하는 해커 공격도 늘어

영국 경제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12월 8일(현지 시간) “최근 해커들이 컴퓨터 내부의 데이터를 인질로 잡은 후 ‘몸값’으로 비트코인을 요구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커가 컴퓨터 내부에 침입해 파일과 개인정보 등의 데이터를 암호화해 열지 못하게 한 후 금전을 요구하는 ‘랜섬웨어’ 공격이 지난 2년 반 동안 10배 이상 증가했다.

피해자가 데이터를 되찾으려면 해커에게 돈을 줄 수밖에 없다. 특이한 점은 최근 해커들이 몸값으로 비트코인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비트코인은 온라인 거래로 신용카드보다 추적이 어렵고 비트코인 가치가 크게 올라 해커들이 비트코인을 선호한다.

코빗의 공동설립자인 김진화 이사는 비트코인 관련 서비스를 선택할 때 믿을만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업체인지 확인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앞으로 규제가 보완되면서 투기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의 몫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결재의 편리성 등 기술적인 부분을 통해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혜택을 누리게 될 겁니다.”

적지 않은 문제점에도 비트코인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편리성이다. 국내 비트코인 결제 1호 업소인 파리바게뜨인천시청점의 이종수 점주는 “비트코인이 신용카드보다 결제대금 회수가 빨라 사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물건 값을 비트코인 환산 시스템에 입력한 뒤 태블릿 PC에 나오는 QR 코드를 스캔하면 단 10초만에 결제가 이뤄진다고 했다. “신용카드는 결제대금이 들어오는데 1주일 걸리지만 비트코인은 받자마자 바로 현금화할 수 있습니다. 지불 받은 비트코인은 꾸준히 모아둘 생각입니다.”

위·변조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도 비트코인 인기의 한 요인이다(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비트코인 과세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전 세계 단일통화인 만큼 비트코인을 받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대안화폐로서의 장단점이 극명한 만큼 전문가들도 비트코인의 미래에 엇갈리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의 김형우 연구원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비트코인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멀어질수록 변동성이 축소돼 비트코인 가치가 일부 안정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향후 비트코인 가치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동시에 변동성이 감소한다면 결제수단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LG경제연구원의 김건우 선임연구원은 “비트코인이 일부 지역에서 대안 화폐로 자리잡을 수 있겠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중앙권력이나 양적완화를 일삼는 중앙은행에 대한 반발심리 등이 어우러져 나타난 한 순간의 유행으로 끝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201402호 (201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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