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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ITZ ASSET MANAGEMENT - “매월 수입의 10% 주식에 투자하라” 

 

사진 전민규 기자
20년 넘게 펀드매니저로 살아온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스스로를 주식 투자 전도사라고 부른다. 빨라진 은퇴와 길어진 수명을 준비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식만한 게 없다는 얘기다. 단 여기에는 ‘좋은 주식’과 ‘장기’라는 조건이 붙는다.



“왜 꼭 여의도여야 하죠?” 한국 금융의 메카인 여의도를 떠나 종로구 북촌으로 본사를 옮긴 이유를 묻자 존 리(한국명 이정복, 56)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대답 대신 반문했다. 으레 금융사의 본사는 여의도에 있어야 한다는 기자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 대표는 공식 취임하기 5개월 전부터 이 일을 추진했다. 그의 이 같은 틀을 벗어나는 행보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대학(연세대 경제학과) 2학년 때 문득 “학점을 잘 받아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하는 길이 최선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뉴욕대(NYU)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7년 동안 회계사로 일하던 중 펀드매니저라는 직업에 호기심이 생겼다. 1991년 어느 날 점심을 먹고 같은 건물에 있던 미국 투자회사 스커더인베스트먼트(Scudder Investments, 이하 스커더)에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코리아펀드’ 설립자인 니콜라스 브랫과의 첫 만남이었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스커더를 찾아간 것”이라고 돌이켰다. “경험과 스펙이 없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면접 볼 때 펀드매니저로서의 경험이 없는 게 오히려 장점이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스커더에서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말이죠. 그리고 한국 사람인만큼 ‘코리아펀드’를 누구보다 잘 운용할 수 있다고 강하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브랫이 좋아하더라고요.”

이 대표는 6명의 팀원과 함께 ‘코리아펀드’ 운용을 맡았다. 코리아펀드는 한국에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1984년 7월 만들어진 이 상품은 최초로 한국 투자를 시작한 해외펀드이자 최초의 한국 투자 뮤추얼펀드다. 당시만 해도 신흥시장인 한국에 투자하는 일은 매우 획기적이었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1위 경제규모인 캐나다에도 투자가 활발하지 않을 때다.

이 대표는 스커더의 자유로운 기업문화에 흠뻑 빠져들었다. 같이 일했던 펀드매니저 중에는 축구선수 출신도 있었다. 그는 이 같은 문화를 한국에서 뿌리내리고 싶었다. 바로 지난해 말 지휘봉을 잡은 메리츠자산운용에서다. 펀드수익률이 저조하고 자금 운용 규모도 크지 않았지만 기업 문화를 바꾸면 가능성이 커 보였다. “바닥을 치면 올라온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꼴찌를 해봐야 변할 수 있습니다.”

임기가 없는 것도 이 대표가 메리츠자산운용을 선택한 이유다. 국내 금융사를 비롯한 기업의 전문경영인은 대부분 2~3년의 임기를 채운다. 임기가 정해져 있으면 기업 문화를 만들기 어렵다. 그는 미국 자산운용사가 고유 문화를 가질 수 있는 건 전문경영인의 임기를 따로 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대표가 회사를 북촌으로 옮긴 것도 독자적인 기업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금융사가 즐비한 곳에서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기 어렵다”고 그는 말했다. 회사를 옮긴 직후 문화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메리츠자산운용은 지난해 7월 북촌으로 본사를 옮겼다.
팀장·본부장이라는 직급을 없애고, 대표에게 바로 보고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대표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방도 다른 방과 크기를 똑같이 맞췄다. 그래서 그의 방에는 그 흔한 소파하나 없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차도 타지 않는다. 퇴근 후에는 종로구 사직동 집까지 30분 정도 걸어 다닌다. 회식도 없앴다. “직원들이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이 대표는 말했다. “회사와 직원들이 변하기를 바란다면 나부터 변해야 합니다. 대표로서의 권위를 없앤다고 해놓고 회사차를 타고 다니면 그건 모순입니다.”

책상에 컴퓨터 없는 펀드매니저

이 대표는 메리츠자산운용에서 스커더와 같은 자유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 자신감에는 20년 간 함께 일한 동료들에 대한 믿음도 있다. 스커더에서 코리아펀드를 운용했던 팀원 6명이 메리츠자산운용으로 옮겨왔다. 20년 넘게 호흡 맞췄던 동료들이다. 이들은 스커더 코리아펀드의 성과를 재현하고자 ‘메리츠코리아펀드’를 만들었다. 이 펀드는 지난 4월 25일 기준 연초 이후 3.53%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이는 같은 기간 국내주식형펀드의 평균 수익률인 -0.84%보다 3배가량 높다. 메리츠자산운용의 운용실적 역시 회복되고 있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주식형펀드 운용사의 올해 평균 연초 이후 수익률은 에셋플러스(3.59%)에 이어 메리츠자산운용이 2.67%로 2위를 기록했다. 이 대표가 경영을 맡은 지 5개월만의 성과다.

이 대표의 또 다른 목표는 한국 투자시장에 장기투자 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 기간이 짧다. 금융투자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평균 주식보유 기간은 1~3개월 미만 32.6%로 가장 많은 반면 일본은 1~5년이 40.8%다. 이렇게 장기투자문화가 정착하지 못하는 데는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고 이 대표는 지적했다. “증권 전문가가 나와 오늘의 투자전략을 알려주며 사고팔 종목을 추천하는 증권방송부터 펀드매니저가 자주 바뀌는 현상까지 문제가 많습니다.”

코리아펀드 하나를 15년간 운용해온 이 대표로서는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의 잦은 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가 2005년 라자드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코리아펀드의 운용 수익률은 1600%에 달한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의 수익률은 3분의 1수준인 500%다.

“코리아펀드가 시장대비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던 건 같은 펀드매니저가 장기투자전략으로 운용한 덕분”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국내에 설정된 일반 주식형펀드의 경우 연간 회전율이 높습니다. 100%는 물론 200~300%가 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코리아펀드의 회전율은 20% 안팎이었습니다.”

회전율은 주식 거래 지표로, 높을수록 매매가 빈번하게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 대표가 코리아펀드를 운용하는 동안 투자종목의 평균 보유기간은 7~8년이었다. 투자한 종목의 보유기간이 길다보니 매일 주식 차트를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스커더에서 일할 때 제 방을 찾아온 기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펀드매니저인데 책상에 컴퓨터가 없었거든요. 저는 주가도 신문으로 확인했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매일 주식시장을 들여다볼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라도 더 많은 기업을 찾아가서 살펴봐야지.” 이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자사 펀드매니저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컴퓨터 모니터만 들여다보지 말고 직접 발로 뛰라고.

요즘 이 대표는 ‘주식투자 전도사’를 자처한다. 은퇴는 빨라지고 평균 수명은 길어진 만큼 반드시 주식투자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연 등을 통해서 전파한다. “교회에 십일조(十一租) 하듯이 매월 수입의 10%를 주식에 투자해야 합니다. 주식투자의 묘미는 적은 돈으로 시작해 회사의 일부분을 살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여윳돈이 생길때마다 특정 회사의 주식을 산다면 그만큼 나의 지분은 올라가게 됩니다. 또한 1년 365일 내내 그 회사의 임직원들이 내가 자는 동안에도 내 재산을 불리기 위해 밤낮으로 일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뿌듯합니까.”

그리고 장기투자는 필수다.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거나 고수익의 직업을 갖고 있지 않은 보통의 월급쟁이가 부자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장기적으로 투자한다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주식 투자론이다. 단 주식에 투자한다는 개념보다는 그 기업의 동업자가 된다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메리츠자산운용은 이 같은 투자 문화 정착에 앞장설 계획이다. “서두르지 않을 겁니다. 우선 메리츠자산운용을 한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로 만들 겁니다. 그러면 고객이 믿고 찾아올거라고 확신합니다.”

201406호 (201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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