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정주 NXC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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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 NXC 회장·바람의 나라 등의 게임을 개발한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서울대 산업공학과),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연세대 컴퓨터과학과), 곰플레이어로 유명한 그래텍 창업자 배인식 전 대표(국민대 금속공학과)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86학번’이라는 것. 국내 IT(Information Technology) 업계를 선도하는 이들을 보면 ‘1986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1980년대 중반부터 대학가에 PC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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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한국 IT 업계는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 소식에 숨죽였다.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큰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NHN이라는 공룡과의 경쟁에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86학번이 다시 IT 흐름을 바꿔놓는 쇼킹 뉴스를 만든 것이다. 86학번은 어떻게 IT 리더가 됐을까.“1980년대 후반은 PC가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였고, PC는 우리들의 무기였다.” 얼마 전 그래텍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야인이 된 배인식 전 대표의 설명이다. 그 당시 각 대학에는 PC가 마련된 전산실이 신설되기 시작했다. 서울대에는 전산원이 생기고, 학부 별로 컴퓨터실이 설치됐다. 하지만 기업과 학교 등 대다수 기관은 여전히 윈도우즈가 아닌 유닉스 운영체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이창건 교수(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7학번)는 “PC에 별 관심이 없었던 때였다”며 “80년대 후반 PC 사양이 좋아지면서 유닉스와 경쟁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기업과 기관에서 PC를 ‘장난감’이라며 무시한 탓에 PC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거의 없었다. 결국 PC에 미친 괴짜들이 직접 나섰다. 대학가에 컴퓨터 동아리가 속속 생기고 유니코사(UNICOSA, 전국대학컴퓨터서클연합)에 컴퓨터 고수가 모여들었다. 변변한 책자 하나 없던 시절, 선배는 후배를 직접 가르쳤다. 학생들이 직접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도깨비 카드라는 하드웨어(용량이 큰 소프트웨어를 담을 수 있는 하드디스크)를 만들어 PC에 꽂아 쓰는 이도 나타났다. 용산전자상가는 학생들이 만든 프로그램과 하드웨어를 복제해 팔았다. 한양대 학생들은 바른글이라는 워드프로세서를, 서울대 컴퓨터동아리는 아래아한글1.0을 내놓았다. 이처럼 80년대 중후반 학번 학생들은 PC시대를 선도했다.정부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1987년 당시 오명 체신부 차관은 유니코사에 가입한 대학 동아리에 PC통신을 할 수 있는 XT급 컴퓨터와 모뎀, 프린터를 설치해줬다. 이듬해 유니코사 회장을 맡았던 배 전 대표는 “그때 정부에서 유니코사에 지원해준 컴퓨터 비용이 각 학교마다 700만원 정도였다”고 했다. “정부는 88서울올림픽 전산망 운영에 유니코사 회원 300여 명을 투입시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차관에서 장관에 오른 오명 체신부 장관은 ‘적은 투자로 큰 성공을 거뒀다’고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86학번에게 PC는 경쟁력이었고 무기였다. 이해진 의장, 김범수 의장, 김정주 회장 등은 선배들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공부 대신 취업을 선택한 것. 85학번까지는 대부분 석사를 마치고 유학길에 올랐다. ‘석사장교’ 제도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84년부터 1992년까지 운영됐던 단기 장교 복무제도다. 석사소지자 중 시험으로 선발해 6개월간 군사훈련을 마친 후 소위 임관과 동시에 전역한다.당시 일반병의 복무기간은 3년으로 석사장교 제도는 유학을 꿈꾸는 이들에게 최고의 혜택이었다. 하지만 이 제도는 1990년 4월 1일 ‘대학원 졸업생 등의 병역특례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폐지되면서 끝났다. 1989년 이전에 대학원에 입학해 재학 중인 학생까지는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1990년에 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는 86학번은 석사장교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이창건 교수는 “86학번 선배들은 박사 과정 대신 창업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86학번은 석사를 마치고 유학길에 오르는 대신 병역특례자로 취직했다. 1990년대 초 이해진 의장과 김범수 의장은 삼성SDS, 김정주 회장은 대덕전자에 병역특례자로 입사했다. 배인식 전 대표는 군대를 다녀온 후 1993년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사업팀에 들어갔다. 삼성은 다른 대기업보다 일찍 컴퓨터 고수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1년부터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소프트웨어멤버십 제도다. 내노라하는 컴퓨터 괴짜들이 이 제도를 통해 삼성에 입사했다.
벤처 인프라 갖춰진 상황에서 창업했던 세대삼성에 입사한 86학번은 PC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인재들이었다. 직장 선배나 부서장들도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컴퓨터 관련 프로젝트를 일임할 정도였다. 배 전 대표는 “소프트웨어 기획부터 개발, 홍보까지 혼자 다 알아서 했다”고 돌이켰다. “용산에 가서 직접 물건을 팔기도 했다. 김범수 의장이나 이해진 의장도 인터넷 시대를 대비한 일을 스스로 찾아서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중요하지 않은 부서에 있었지만,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창업의 밑거름이었다.” 이해진 의장은 삼성SDS 재직 당시 네이버의 기초가 되는 검색프로그램을 연구했다.이들이 창업에 관심을 가질 때 한국사회에서는 벤처창업 붐이 일었다. 코스닥 시장이 열렸고, 창업투자사도 등장했다. 비운의 벤처1세대로 불리는 메디슨 이민화 전 회장(현 카이스트 교수)은 저서 『한국벤처산업발전사』에서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1996년부터 벤처기업협회를 중심으로 제기된 벤처기업 육성책을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벤처 인프라가 갖춰지기 시작했다.특히 코스닥 시장 활성화와 1997년 제정된 벤처기업 특별법에 담긴 제도 등이 주요 인프라다. 여기에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창업전선에 뛰어든 군단이 (벤처)3세대를 형성했다.’ 1994년 김정주 회장이 넥슨, 1998년 김범수 의장이 한게임, 1999년에 이해진 의장과 배인식 전 대표가 각각 네이버와 그래텍을 설립했다. 이민화 전 회장은 이들을 “20세기 마지막 창업열차에 오른 신예그룹”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IT 분야에 큰 흔적을 남기고 있는 86학번의 또 다른 공통점은 누구보다 앞서 인터넷의 가능성을 점친 것.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권태경 교수(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9학번)는 “선배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1990년대 중반에 인터넷 시대가 열렸지만, 인터넷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예측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그런 눈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벤처 붐이라는 시대적 상황까지 맞아떨어졌다. 86학번은 운도 좋았다.” 86학번이 IT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PC와 인터넷 그리고 운이라는 3박자가 어우러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