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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규 ABB 코리아 대표 - 발전소부터 가정집 콘센트까지 세계 1등 노린다 

 

글 김영문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지미연 기자
세계 3대 엔지니어링 기업 ABB의 한국 법인을 책임지고 있는 최민규 대표를 만났다. 작년 말부터 ABB 코리아 대표를 맡은 그는 새롭게 변화하는 에 너지 패러다임에 주목하며 발 빠른 변화에 나섰다.




▎최민규 ABB 코리아 대표는 엔지니어 출신이자 전력과 자동화 업계 전문가다. 1989년에 ABB 코리아에 입사해 드라이브와 계장, 공정자동화, 산업용 로봇 등 다양한 사업 성장을 이끌어 왔다.
“대형 발전소에서부터 가정집 콘센트에 이르기까지 다 우리 몫입니다.” ABB 코리아가 무엇을 만드느냐는 우문에 최민규(57) ABB 코리아 대표가 한참동안을 설명하다 내놓은 답이었다. 그는 “기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구동하는 모터도 우리 회사 제품일 수 있다”며 “ABB는 우리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된 모든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ABB 그룹은 미국의 GE, 독일의 지멘스와 함께 세계 3대 엔지니어링 회사로 꼽힌다. 13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이 회사는 스위스 취리히에 본사를 두고 있다. 주로 전력 및 자동화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사업 분야는 에너지산업·유틸리티·운송·인프라 등 수십 가지나 된다.

1992년 국내에 설립된 ABB 코리아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6·25 전쟁 직후라고 한다. 전후 정부가 벌인 각종 복구사업에 참여하면서 많은 한국기업과 협력활동을 이어왔다. 현재 800여 명의 임직원이 일하는 ABB 코리아는 서울에 본사를 두고 천안에 생산공장이 있다. 인천·울산·거제도에도 사무소가 있다. ABB 코리아는 외국계 기업의 성공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매출 성장도 꾸준해 2003년 이후 국내 1000대 기업 순위에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그는 어떻게 세계 3대 엔지니어링 회사의 한국대표가 될 수 있었을까? 인터뷰는 지난 2월 1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최 대표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ABB 코리아가 매출 5000억원 달하는 중견기업이 됐다.

그렇다. 과거에는 본사 ABB 제품을 한국에 가져다 파는 영업지사 성격이 강했지만 요즘은 현지법인으로서 위상이 강화됐다. 본사도 한국 시장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한국은 EPC(플랜트 설계에서 자재 조달·구매·건설·시공의 전 과정을 일괄수주)만 놓고보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시장이다. 본사에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수출기업이 많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조선을 포함한 중공업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산업용 로봇 시장으로는 중국·미국·일본 다음으로 큰 시장이 한국이다. ABB 코리아는 변압기와 판넬 등은 직접 생산도 하고, 산업용 로봇은 자체 기술진을 보유하고 있어 우리 독자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 소프트웨어에 관련된 고도의 기술을 한꺼번에 제공하는 ‘시스템인테그레이션(System Integration)’ 서비스를 당장 한국 기업에 제공할 수도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매출 구성이 어떻게 되나?

변압기·판넬 등 수출과 수입 비중이 ‘70대30’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납품 제품을 장착한 상품을 해외로 다시 수출하는 경우가 많아 수출 비율이 90%에 달한다. 중동에서 수주한 한국 굴지 기업들이 ABB 코리아와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 진출이 활발한 한국 기업들과도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한국 기업들과는 경쟁한다기보다 협력관계다. 특히 한국 기업의 EPC와 조선 해양 관련 기업들과는 동반자나 다름 없다. 한국 기업의 중동 진출은 지금도 활발한 편이다. 중동에서 프로젝트 건을 수주해도 핵심 부품과 관련해서는 발주 회사와 많은 논의를 거친다. 많은 중동 국가가 중국이나 인도산 핵심 부품보다는 유럽산을 선호하는데 ABB 코리아 제품은 본사는 유럽회사, 생산은 한국에서 하니 인기가 좋다. 중동에서 한국 기업이 우리 제품을 쓴다고 하면 수주에 도움이 되더라는 말도 들어봤다.(웃음) 또 본사 신기술이 개발되면 우리가 정리해 한국 기업이 생산 효율화를 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중공업 분야 침체 이겨낼 수 있어

세계적으로 중전기를 비롯한 중공업과 제조업 분야 침체가 계속되고 있는데…

중전기 분야부터 보자. 세계적으로 설비과잉 상태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중국과 한국에 있는 비교적 용량이 큰 300~500kV 변압기를 풀로 가동하면 전 세계 수요의 70%를 소화해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중국에 수많은 조선소가 일감을 찾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중공업 분야는 시장 양상이 바뀌고 있다. 중국이 성장했기 때문에 한국이 중동 사업을 싹쓸이하던 70~80년대 호시절은 다 지났다. 중동에서 EPC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한국기업 현장을 가보면 관리자급을 제외하고는 파키스탄·인도인 근로자가 대부분이다. 인건비를 줄여서 이윤을 남기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그래서 저는 항상 기술고도화를 강조해왔다. 정유업계만 봐도 자체적으로 보유한 공정화 기술이 생산을 효율화하고 상품의 품질을 높이는데 밑거름이 된다. 기술을 가진 한국전력이 필리핀의 일리한 발전소를 건설해 차관을 모두 상환하고 배당 이익을 거둔 사례 등도 참고해야 한다.

1996년 한국전력은 필리핀 전력공사로부터 일리한 발전소 건설 사업을 수주했다. 필리핀 일리한 가스복합발전소는 60MW급 2기로 구성된 발전소로 지난 2002년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해 현재 필리핀 전체 소비전력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5억4000만 달러 규모의 차관도 지난해 4월에 전액 상환해 2022년까지 수익금 전액을 받은 사례다. 최 대표가 필리핀 현지 사례에 밝은 것은 전기 산업에 오랜 기간 종사한 것도 있지만 2013년 1월 ABB필리핀 사장으로 부임해 지난해 11월에 ABB 코리아 대표가 되기 직전까지 근무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비영어권 국가 출신이면서 다른 나라 법인장을 지낸 첫 주자다. 필리핀 대표로 부임해서도 전년 대비 수주 45% 성장을 기록해 스위스 본사의 무한한 신뢰를 얻었다고 했다. 그가 경험한 필리핀 생활은 짧지만 인상적이었다.

필리핀에서 거둔 성과가 대단하다고 들었다.

ABB 필리핀 대표를 맡게 돼 가보니 회사 130명 직원 중 외국인이라고는 저 혼자였다. 출근해보니 아무도 사장실을 찾지 않더라. 필리핀 현지 직원들이 저와 같은 임원을 매우 어려워했다. 일단 밥 먹자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웃음) 성과를 낸 비결이 있다면 ‘원칙’과 ‘인화’였다. 대표를 맡고나서 회사 원칙과 체계부터 바꿨다. 각자 소임의 원칙만 잘 지키면 회사는 잘 굴러가는 법이다. 이 원칙에 따라 우선순위를 달리했다. 그것은 ‘영업 최우선’이다. 영업하는 사람들은 영업을, 관리하는 이들은 영업 뛰는 직원을 최대한 돕도록 했다. 업무 절차도 간소화했다. 직원들을 모아놓고 ‘월요일 아침부터 보고할 필요 없다. 그 시간에 고객을 만나러 다녀라’며 내보냈다. 제가 직접 현장 영업에 나서기도 했다. 가격 협상이 어렵다고 하면 제가 본사와도 직접 담판에 나섰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더라. 그래서 한국인 특유의 친화력으로 ‘인화’를 내세워 직원에게 다가갔다. 워크숍에 같이 가서 직원들과 소맥도 즐기고 노래도 불렀다. 직원들이 나와 같은 동료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얼마 후 사람들이 생각이 바뀌니 회사에 변화가 일어나더라. ABB 코리아에도 이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제품만 팔기보다 활용 체계가 더 중요

조직문화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취임식에서 에너지 패러다임의 변화를 거론했던데, 그 내용이 궁금하다.

전기 분야는 신재생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 물론 단기간에 생산원가가 내려가지는 않겠지만 신재생 에너지를 선호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커다란 발전소에서 각 수요처로 송전하는 구조였다. 우리나라 발전소가 안보 문제로 대부분 남쪽에 위치한 탓이다. 만약 북쪽에 발전 설비가 많다면 송전설비는 불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소형발전소를 서로 엮어 배치하는 분산형 모델이 뜨게 된다. 여러 지역에 설치된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양을 정확히 측정해 남는 곳과 부족한 곳을 이어주고, 잉여전력은 저장해 두는 것이 기존 전력망에 IT를 접목한 ‘스마트 그리드’다.

ABB 코리아가 이런 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전력 생산의 ‘잉여’와 ‘부족’을 파악해 이어줄 기술은 전기 요금 정산 문제와 전체 전력량을 파악하는 문제와도 결부된다. 우리는 스마트 그리드 핵심 기술인 에너지 시스템 운영(Energy System Operation)과 ESS(Energy Storage System·에너지저장장치)에 주목하고 있다. 본사 ABB는 미국 알래스카에 46MW(2만5000가구 공급 규모)를 저장할 수 있는 큰 설비를 설치했다. ABB 코리아도 언제든지 ESS 사업 기회가 주어진다면 설비 설치와 운영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

단, 이 사업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표준화 문제가 시급하게 해결돼야 한다. 예전에는 전기를 생산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생산한 전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진 셈이다.

대표로서 올해 목표는?

매출 20%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 정비도 하고 직원을 위한 근무환경 개선과 복지도 한층 더 개선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ABB 코리아가 본사에도 손색없이 내놓을 독자적인 기술이나 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우수한 기술 인력이 많고 세계적인 굴지 중공업 계열 회사가 많다. 실제 산업용 로봇 분야는 독자적인 기술팀을 보유하고 있어 브라질·멕시코 등 해외로 기술 자문을 나가고 있고, 러시아 상트페테르 부르크에 있는 현대차 러시아공장 프레스 자동화 분야에도 관여하고 있다. 이런 이점을 최대한 살려 한국 기업과 협력을 지속하고, 연구개발을 강화해 세계시장에 ABB 코리아만의 ‘MADE IN KOREA’ 제품을 내놓고 싶다. 충분히 가능하다. ABB라는 세계적인 브랜드에 한국의 기술이 더해진다면 세계 1등도 바라볼 수 있다.

최 대표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전력과 자동화 업계에서 30년 이상 몸담은 베테랑이다.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거쳐 1989년부터 지금까지 ABB 코리아와 함께하고 있다. 공정 자동화, 산업용 로봇 등 다양한 사업부에서 일하며 ABB 코리아의 발전을 주도해왔다. 최 대표는 지금의 기술 수준이 예전과 얼마나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과거에 자신이 한국중공업에서 일할 때 겪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82년 한국중공업에 입사했을 때 발전소 쪽 일을 맡았다. 당시는 팩스도 워드프로세서도 없었다. 입찰담당팀에 배치받았는데 해외 입찰공고라도 있으면 검토해야 하는 입찰 안내서가 보통 10권은 됐다. 한 권의 두께가 사전과 비슷했다. 그 안내서를 최대한 빠르게 검토하고 입찰서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니 3개월간을 밤이슬만 맞고 다녔다.(웃음) 당시는 입찰 준비 때 외국계 엔지니어링 회사와 단기 계약을 했기 때문에 절차나 내용을 잘 몰랐다. 그래서 외국 회사가 잘 보여주지 않는 도면이나 기술 서류도 미국 사무실에서 몰래 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때가 엊그제 같다. 그러니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더 발전을 하겠나! ” 그의 당찬 말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도전 정신이 묻어났다.

- 글 김영문 포브스코리아 기자 / 사진 지미연 기자

201503호 (201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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