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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조용하지만 단호한 승부사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세계의 100대 파워 우먼’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기업인으로서는 처음이다.

2004년부터 포브스가 선정하고 있는 ‘세계의 100대 파워 우먼(The World’s 100 Most Powerful Women)’에 한국 기업인이 포함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포브스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에 대해 “한국 여성 중 최고 부자이며 ‘리틀 이건희’로 불린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 사장은 미국 미디어의 거물 오프라 윈프리, 호주 사업가 지나 라인하트, 중국 소호차이나 공동창업자 장신, 미국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즈, 미국 토리버치 창업자 토리 버치, 이탈리아 프라다 공동최고경영자 미우치아 프라다 등과 함께 억만장자(BILLIONAIRE)군으로 분류됐다. 포브스코리아가 지난 4월 집계한 그의 재산은 2조4909억원으로 국내 여성 1위, 전체 순위에선 13위다. 삼성SDS, 제일모직의 주식가치가 재산 대부분을 차지했다.

포브스는 또 “이부진 사장은 이건희 회장이 와병 중인 삼성그룹에서 더욱 큰 역할을 맡게 됐다”고 평가했다. 사장 취임 이후 꾸준히 상승하는 호텔신라의 매출과 최근 면세사업 확장 등 공격적인 경영에 주목한 것이다.

이부진 사장이 본격적으로 호텔신라 경영에 참여한 것은 2001년. 당시 4304억원이던 호텔신라의 매출은 지난해 2조9089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389억원으로, 전년 대비 40% 이상 급증했다. 올 1분기에도 매출 8285억원, 영업이익 336억원을 기록하며 순항중이다. 기업의 가치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주가 역시 2001년 8월말 6700원에서 올해 6월 10일 기준 10만 5500원으로 급상승했다.<표 참조>

경영 참여 15년 만에 매출 6.7배 증가

1995년 삼성복지재단 보육사업팀에 입사해 삼성 일본 본사, 삼성전자를 거친 이 사장은 2001년 8월 호텔신라 기획팀장으로 옮기며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이건희 삼성 회장은 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두 달 가까이 호텔신라에 머물렀다.

2001년 신라호텔은 업계 4위 수준이었다. 그는 가장 먼저 BOH(Back of the house) 부서를 찾았다. 고객과 직접 대면해 객실과 식음료 서비스를 판매하는 FOH(Front of the house)와 달리 BOH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호텔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돕는 후방 부서다. 이 사장은 음식물 잔반 처리장, 쓰레기 분리수거장 등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서비스의 출발점이 어디인지를 면밀히 공부한 이 사장은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 바꾸도록 독려했다. 각 부서마다 새로운 업무 매뉴얼 작성도 지시했다. 직원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었지만 솔선수범하는 이 사장의 리더십이 힘을 발휘했다. 그 결과 호텔신라는 2009년 매출 1조원을 넘기며 업계 1위로 올라섰다.

그는 매년 주주총회 의장으로 주총을 직접 주재하며 책임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 3월 14일 서울 장충동 호텔신라 주주총회장에도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주총의장직을 수행했다. 어지간한 CEO들은 회사 상근이사에게 주총의장을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사장은 직접 나섰다. 재계에선 “이 사장이 업무에 대한 열의와 책임감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는 사례”라고 말한다.

면세점·호텔사업에 공격적인 행보


신라호텔은 크게 면세점 사업과 호텔 사업으로 구분한다. 실적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면세점 사업은 특히 중국인관광객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크게 성장했다. 이부진 리더십은 면세점 사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CEO 취임 후 면세점 사업의 글로벌화를 고민한 그는 인천공항 면세점(2008년 오픈), 김포공항 면세점(2011년)에 이어 지난해 10월 마카오공항과 싱가포르 창이공항 면세 사업권을 따냈다. 올해 3월에는 세계 1위 기내면세점 사업자 디패스(DFASS) 지분 44%를 1억 500만 달러(약 1176억원)에 인수하면서 미주권 진출 교두보도 마련했다.

최근엔 시내면세점 사업과 관련해 ‘통 큰 강단’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바로 범현대 가(家) 정몽규 회장의 현대산업개발과 면세점 사업의 손을 잡은 것. 이 사장은 지난 1월 시내 면세점 사업 진출을 선언한 정 회장과 담판을 통해 서울 용산 현대아이파크몰을 기반으로 ‘관광 허브형 면세점’을 만들기로 했다. 재계에서는 이를 ‘신의 한 수’로 평가한다. 면세점 사업의 소프트웨어가 부족한 정 회장과 하드웨어(부지)가 필요한 이 사장이 서로 탁월한 사업 수완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증권가에선 HDC신라면세점을 강력한 1순위 후보로 꼽고 있다.

호텔신라의 공격적인 비즈니스호텔 출점도 이부진 사장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발현된 결과다. 이 사장은 건물을 짓지 않고 임대해 비즈니스호텔을 늘리고 있다. 2013년 11월 경기 화성에 신라스테이 동탄을 열면서 비즈니스호텔사업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서울 역삼, 제주, 서울 서대문점을 오픈했다. 9월엔 마포, 내년엔 광화문과 구로, 천안에 신라 스테이를 추가로 열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 사장 입장에선 큰 자본 투자 없이 호텔신라의 브랜드를 키우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확고히 다진 상황에서 이 사장의 독자적 경영능력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다. 재계 관계자는 “이 사장이 이번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에서 승리할 경우 삼성그룹 안에서 입지가 더욱 단단해질 것”이라며 “호텔과 면세점 사업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되면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해 재계 13위 그룹을 이룬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201507호 (201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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