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세탁세제로 시작해 우주 항공분야의
기술력을 가진 기업으로 진화한 헨켈은 ‘김남주의 명품세제’와 가정용 살충제 홈키파,
홈매트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지난해 한국에 부임한 그렉 로시어 사장을 만나
헨켈과 헨켈코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Excellence is our Passion” 로시어 사장의 명함에는 헨켈이 성취하기 위한 포부가 적혀있다. ‘화학기술’의 핵심가치를 계승하며 끊임없이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는 ‘ 탁 월함’은 헨켈의 장수 비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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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이 넘어 처음 미국을 떠난 겁니다.” 7월 2일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만난 그렉 윌리엄 로시어(Gregg W. Rossier, 59) 헨켈코리아 사장은 20년 넘게 회사에 몸담은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냈다고 말했다. “한국 고객과 더 빨리 소통하기 위해” 서울로 온 지 1년 반 째라는 그는 큰 키와 말쑥한 정장이 돋보이는 열정적인 사업가였다.“헨켈의 역사는 세제에서 탄생했습니다. 물유리(이산화규소와 알칼리를 융해해서 얻은 규산나트륨의 진한 수용액)와 소다를 이용해 만든 표백소다가 독일 최초의 브랜드 세제였지요.” 로시어 사장은 장수기업 헨켈의 혁신 배경에는 처음부터 ‘맞춤형 솔루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탁을 더 쉽게 할 수 있는 파우더 세제의 출시는 고된 세탁 노동에 시달리던 주부들에게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공했다. 헨켈은 1907년, 세계 최초의 세탁 전용 세제인 ‘퍼실(Persil)’을 선보였다. 기존 염소계 세제와 달리 세탁물을 탁월하게 표백시켜 손으로 비비지 않아도 자동 세탁이 되는 혁명적인 세제였다. 빨래 시간이 대폭 줄면서 주부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더불어 헨켈도 글로벌 생활용품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헨켈은 올해 포브스가 선정한 글로벌 2000대 기업에서 314위를 차지했다. 사업군은 총 세 가지로 접착 기술, 세제&홈케어, 뷰티케어 부문이 있다.쌍둥이 칼로 유명한 헹켈(Henckel)과 이름이 비슷해 종종 오해를 사는 헨켈은, 한국에서는 ‘김남주의 명품세제’로 유명세를 타며 세제&홈케어 분야에서 잘 알려져 있다. 살충제 홈키파, 홈매트도 헨켈이 보유한 홈 케어 브랜드다. 하지만 무엇보다 헨켈의 기술력과 매출 대부분은 접착제, 표면처리제, 실런트 등 접착기술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로시어 사장은 “세계 1위 접착제 생산 회사로 헨켈에서 생산하는 10개 브랜드에서 나오는 매출이 전 세계 시장의 약 80%를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 고객 맞춤형 솔루션’으로 승부헨켈은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원자재 부족으로 제품 포장을 위한 접착제 수급에 문제가 생긴 전황을 신속히 파악해 발 빠르게 접착제 개발에 착수했다. 1922년에는 경영상의 자체 용도(용지, 판자, 포장용)를 위해 접착제를 생산했다. 이듬해인 1923년에는 인근 기업에 접착제 판매를 시작하며 접착제 전문 제조업체로서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우리 생활 속 접착분야의 쓰임새는 매우 광범위하다. 로시어 사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는 기술이 바로 접착기술”이라고 설명했다. 향긋한 커피를 만들어주는 커피 머신, 신기술의 집합체 아이패드 등 생활 속에 쓰이는 많은 제품에 헨켈의 기술이 녹아있다. 자동차, 금속 등 일반 산업부터 각종 소비재와 건축용, 라벨, 신사업과 통합 솔루션 등 각종 기기에 적합한 접착제 솔루션을 모두 확보한 유일한 기업이 바로 헨켈이다.게다가 첨단 접착제 수요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조명이 뜨거워져도 접착 기능을 유지하는 접착제, 모바일 기기에서도 에너지 소비량을 절감하고 배터리 수명을 증가하는 특수 접착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아진다. 접착제는 소비자에게 유용한 도구이지만, 많은 제조업체에서 필수 제품이다. 접착제가 대체할 수 있는 분야도 무궁무진하다. 볼트와 너트 연결, 각종 용접 등도 접착제로 대체하면 외형도 가벼운 제품을 만들 수 있다. 헨켈은 이를 위한 기술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R&D 분야에 전 세계적으로 4억1000만 유로(매출액의 2.5%)를 투자했고, 해당 분야에만 2650명을 고용했다.생활 속 작은 기술이 항공, 우주 산업분야까지 사업영역을 넓힐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고객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해왔기 때문이다. 헨켈은 우주항공분야 민간기업 스페이스엑스(SpaceX)와 파트너 협약을 맺고 고온과 고강도의 마찰을 견뎌야 하는 로켓과 우주선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필름, 페이스트 접착제도 제조한다. 스페이스엑스의 수석 화합물 엔지니어인 크레이그 마이어 헨리는 “우수한 기술력은 물론이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제품을 생산할 때 헨켈에 가장 먼저 연락하는 것이 기본”이라며 “질문을 하면 대부분 당일에 답이 온다”고 헨켈의 제품을 사용하는 이유를 밝혔다. 헨켈은 이처럼 우주선의 디자인에서부터 지구로의 귀환까지 우주 여행에서 나타날 수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솔루션 개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헨켈은 지난해 매출 164억2800만 유로(한화 약 20조), 영업이익 25억8800만 유로(한화 약 3조)를 기록했다. 2013년 대비 매출액은 8%, 영업이익은 2.9% 증가했다. 카스퍼 로스테드 헨켈 CEO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경쟁 심화 상황 속에서도 아시아 시장을 비롯한 신흥 시장에서의 매출이 크게 는 것이 이익증가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동유럽, 아프리카·중동, 라틴아메리카 등 신흥시장 매출은 72억 4900만 유로(한화 약 8조8112억원)로 집계됐는데, 이 중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의 매출이 26억7600만 유로(한화 약 3조3411억원)로 신흥국 매출의 36%를 차지했다. 헨켈이 아시아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신흥국 중에서도 한국은 많은 성장성을 보유한 나라”라고 로시어 사장이 말했다. 현재 700명의 임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헨켈코리아는 1989년 독일의 헨켈이 100% 투자해 설립된 한국 내의 현지 법인이다. 지난해 한국에서의 비즈니스 총괄을 맞은 로시어 사장은 2008년 헨켈 아태지역 접착 테크놀러지스 이사로 임명돼 중국 상하이에 부임하며 처음 아시아 지역에서 일했다. 이후 일본 요코하마에서 2년 동안 헨켈 오토모티브 비즈니스를 담당하고, 2013년 헨켈 오토모티브 글로벌 마케팅 부사장을 역임했다.
내년에 환갑, 방배동 미국인 아저씨
▎196cm의 장신인 로시어 사장(뒷줄 가운데)은 직원과의 농구게임을 즐긴다. 그는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선생님이나 코치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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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을 두루 거쳐 한국에 온 로시어 사장은 “제가 가장 우선시 하는 것, 그리고 본사에서 저를 한국에 보낸 가장 큰 이유는 ‘Korea Enablement Plan(KE-P)’를 실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K-E-P는 한국 고객들과 더 밀접한 기술 자원을 갖춰 더욱 빨리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한 본사 차원의 전략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지난해 금천구 가산동에 약 80억원을 투자해 헨켈코리아 기술연구소(Henkel Korea Technical Center)가 공식 출범했다. 2012년부터 기획됐다는 이 연구소에 대해 로시어 사장은 “한국의 경우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IT, 자동차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헨켈이 새로운 기술을 신속하게 적용해 제조사에 소개할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기술 역량과 능력을 키움으로써 고객과 더 밀접한 기술 자원을 갖추게 되면, 고객인 제조사들도 전반적인 개발 비용을 낮출 수 있다. 로시어 사장은 “여기에는 또 다른 계획도 있다. 2017~2018년에 센터를 확장해 한국에서의 기술 개발에 더욱 전념하겠다”고도 덧붙였다.2004년, 헨켈은 미국의 생활용품 회사인 다이얼사를 인수했다. 이를 통해 국내에서 홈매트, 홈키파 등으로 잘 알려진 크로락스코리아의 살충제 사업 분야를 확보해 헨켈코리아에서 만든 제품으로 전 세계에 수출도 한다. 로시어 사장은 “글로벌 기업에게는 상이한 문화적 배경과 경력을 가진 구성원과의 협력이 성공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며 “헨켈은 5만여 명이 넘는 글로벌 직원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육성함으로써 큰 진전을 이뤄내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국내 중소기업과 협업하기 위해 글로벌다중협력사업(GAPS: Global Alliance Project Series, 갭스)에도 참여하고 있다. 갭스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주관하는 사업으로 국내 시장에 진출해 있는 글로벌 기업과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강소기업을 연결해 다양한 협력사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퀄컴, GE, 노바티스, 존슨앤존스 등 다양한 기업들이 참여해 왔다. 로시어 사장은 “미래의 외부 파트너를 한국의 대학, 벤처 기업, 투자 회사, 기타 업체에서 발굴해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협력은 단순한 기술 협력일 수도 있고 확대된 오픈 이노베이션, 라이선싱 협약, 자본 투자, 합작 투자 기회, 심지어 M&A일 수도 있음”을 밝혔다.공식적으로는 헨켈에서 근무한 지 21년째지만, 이는 로시어 사장이 일하던 노바맥스 화학(Novamax Chemical)사가 헨켈에 인수되며 ‘재갱신’된 햇수라고 말했다. 그는 1984년 노바맥스 화학에 입사했고, 그 전에는 리테일과 식품 분야에서의 사업경력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많은 경험에서 배울 수 있었던 점은 한 가지로 집결됐는데, 그 답은 흥미롭게도 “어떻게 고객을 대할 것인가?”였다고 한다. 그가 한국을 찾은 이유도 고객이 원하는 솔루션을 찾아 더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전 직원들과 소통의 창구를 열어 놓고 있다.그는 내년에 만 60세 환갑이다. 서울 방배동에 살면서 주말에는 직원과 함께 하는 브런치 토크를 즐긴다는 그는 “지난 6년간 중국, 일본,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지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꼽았다.- 글 임채연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