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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야스아키 한국후지제록스 대표 

복사기 제조업체에서 컨설팅기업으로 혁신 

김영문 포브스 기자 사진 오상민 기자
한국에 진출한 지 41년째인 한국후지제록스는 세계 최대 복사기 업체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의 혁신에 성공했다. 혁신을 이끌어낸 우에노 야스아키 대표를 만났다.

▎우에노 야스아키 한국후지제록스 대표는 “ 앞으로도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고객과 사회의 과제 해결에 공헌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화되는 저성장 기조 속에 기업들마다 ‘생존’이 화두가 됐다. 기업들은 오래전부터 생존을 위해 ‘저비용, 고효율’ 구조에서 답을 찾아왔다. 기업들은 통상 ‘비용을 줄인다’라고 하면 인건비나 생산시설을 팔아넘기고, 신규 투자를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 더불어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데 골몰해왔다. 지난 5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경영 포럼 현장. 국내 주요 기업의 임원진이 모여 최근 경영 트렌드와 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주최자인 한국후지제록스가 내건 주제는 ‘일하는 방식의 혁신.’ 한국후지제록스의 업무 혁신 사례가 소개되자 기업 관계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도 그럴것이 구조조정이나 사업체 매각없이 복사기 제조업체에서 컨설팅기업으로의 변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 비결이 뭘까?

“10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풍경이었죠. IT 환경 등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한 탓입니다. 지금은 사무기기 자체보다 업무환경을 바꾸면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생산성 향상은 어떻게 나타나는지 등 한국 기업들이 갖는 관심사의 폭이 훨씬 깊어졌습니다.”

지난 7월 16일 서울 중구에 있는 후지제록스 한국본사를 찾은 포브스 기자에게 우에노 야스아키 한국후지제록스 대표(55)가 던진 말이다. 그가 변화를 직감한 것은 단지 최근의 IT환경의 변화 때문은 아니다. 그는 2000년대 이전 일본 후지제록스 상품개발본부 OEM 영업부장을 지내면서 변화를 겪는 후지제록스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세계적인 기업이었던 IBM의 PC 사업이 저물고 있던 때였다. 우리도 하드웨어 중심 기업으로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그때부터 내부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며 혁신의 상황에 처한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복사기 사업은 이미 졸업했다”


우에노 대표 말처럼 후지제록스는 IBM처럼 세계적인 하드웨어를 가진 기업이었다. 1959년대 세계 최초 자동 복사기 출시, 1973년에는 세계 최초의 컬러복사기를 세상에 내놓으며 업무 환경에 혁신을 가져왔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후지제록스(당시 코리아제록스)는 1974년 최초의 건식 보통용지 복사기를 출시했고, 1988년에는 국내 최초로 컬러복사기를 선보였다. 디지털화가 붐을 이룬 1996년에는 최초의 컬러 디지털 복합기도 내놓아 국내 업무 환경의 흐름을 주도했다.

2007년, 후지제록스는 급격한 기업환경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복사기 사업에서 졸업한다’는 기치를 올리고, 업무 환경의 혁신을 예고했다. 복합기 제작, 대여 회사에서 문서관리 아웃소싱 서비스 회사인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을 선언한 것이다. 한국후지제록스도 곧바로 이 변화 대열에 합류했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겪고 나니 기업들의 본질적인 경영환경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용절감과 생산성 향상이 주요 경영과제로 떠오르면서 이를 지원 사업으로 비즈니스 방향을 바꿨다”고 우에노 대표가 설명했다.

이같은 사업 전환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후지제록스에 대한 인식을 쉽게 바꾸지 않았다. 우에노 대표는 “복사기·복합기·프린터하면 후지제록스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기업 고객을 만나도 기계 가격과 성능만 보고 도입을 결정했다. 오히려 종이를 아껴주겠다고 하면 매출이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래서 우에노 대표는 전략을 수정한다. 단순히 문서관리 서비스를 통한 비용절감 효과보다 ‘무형의 효과’를 강조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한 가지 사례를 들며 설명했다. “사무실에서 복합기를 사용하면 유지보수 비용뿐만 아니라 소모품이 떨어지거나 고장나는 등의 부대 업무가 발생한다. 우리는 이런 복합기 유지보수 관련 정보를 원격으로 미리 파악해 즉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했다. 제록스 직원들이 이같은 부대 업무를 줄이고 다른 업무에 집중하면서 얻은 효과를 자료화한 보고서를 고객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후지제록스의 주력 사업이 된 ‘통합문서관리서비스(MPS; Managed Print Services, 이하 MPS)’다.

그의 노력은 차츰 빛을 보기 시작했다. 2013년 서울시가 한국후지제록스의 문서관리서비스의 고객이 됐다. 당시 서울시 부서마다 복합기가 있었다. 보고나 결재를 대부분 서면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한국후지제록스는 우선 사무기기 배치부터 신경을 썼다. “부서 사람들이 최단 거리로 접근할 수 있는 지점부터 찾았다. 사무기기를 재배치만 해도 그 수를 줄일 수 있었다. 누가 언제 프린트하고 복사했는지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또 문서별로 경로가 어떻게 되는지까지 분석해 전자 결재시스템을 활용해도 문제없는 문서를 분류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서울시청은 한국후지제록스의 MPS 도입으로 기존에 530여 대에 이르던 프린터, 복사기 등 각종 사무기기 수를 139대로 70% 넘게 줄여 종이 사용량을 크게 절감했다. 또 스마트 업무 지원을 위한 클라우드 프린트 솔루션, 전자팩스 솔루션, 문서보안 솔루션 등을 제공해 연간 182억원에 가까운 비용절감, 30% 이상의 종이사용 절감 효과를 거뒀다. 게다가 공간의 효율성과 편의성까지 높여 근로 만족도도 크게 개선됐다.

같은 해 말 동양생명도 한국후지제록스와 손을 잡았다. 국내 생명보험사 중 처음으로 사내에 통합문서센터인 ‘수호천사 DMS’를 구축한 것. 본사에 마련된 센터에서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안내장 제작, 문서 집중 출력, 인쇄물 제작 관리 등의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133종의 인쇄물에 대한 제작 운영 절차를 개선하고 개인 정보를 포함한 증권 및 주요 안내장 등 50종의 DM(Direct Mail)을 직접 제작하는 등 고객정보의 외부 유출을 차단할 수 있게 됐다.

성과가 나타나자 매출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이후 서비스 사업인 문서관리 아웃소싱 서비스와 디지털 인쇄 서비스 분야의 매출 비중이 총매출의 40%를 넘어섰다. 우에노 대표는 “지난해 한국후지제록스가 거둔 총 매출 4000억원 가운데 서비스 분야 매출이 1000억원대를 훌쩍 넘어섰다”고 말했다. 사업 영역도 점차 확대하고 있다. 직원 수 500명 이상의 대기업·관공서를 대상으로만 제공하던 문서관리 아웃소싱 서비스를 직원 수 200~500명 규모의 기업·기관으로 범위를 넓힌 것이다.

이런 한국 시장의 변화가 글로벌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아 보였다. 그는 “한국후지제록스는 이 분야에서 1위인 동시에 아시아·태평양 지역 통합 문서관리 서비스 시장에서 한국후지제록스 매출 비중이 45.7%에 달할 정도”라고 했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IDC가 발표한 자료(2013년 기준)에 따르면 MPS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은 2016년까지 전 세계적으로는 11%인데 반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17%로 전망한 바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가 2014년 실시한 ‘MPS 매직 쿼드런트’ 조사에서도 비전 및 실행력 면에서 한국후지제록스가 업계 리더로 평가받고 있었다. 우에노 대표는 “한국이 다른 아시아권 국가보다 IT 환경 발전 속도가 빠르고, MPS 도입 등 스마트 워크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아 본사를 비롯한 해외 지사에서 한국 시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문서 보안 솔루션 같은 경우 수출도 이뤄지고 있다. 바로 한국후지제록스의 문서 출력과 유출 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이미지 로그’ 솔루션이다. 이 솔루션은 출력 작업 기록은 물론 문서 원본 이미지도 저장할 수 있다. 개인정보가 담긴 문서의 경우 아예 출력할 수 없으며, 보안상 금지어로 설정된 단어도 출력이 제한된다. “싱가포르·홍콩·대만·중국 등 6개 나라에 수출 중”이라고 우에노 대표가 자랑삼아 말했다.

우에노 대표는 한층 더 개선된 MPS를 앞세워 시장을 공략할 채비도 갖췄다. 지난해부터 ‘차세대 MPS’서비스를 도입해 본격적인 시장 확대에 나선 것. 그동안 사용량과 패턴 분석에만 주력한 정량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다면, 차세대 MPS는 ‘1대1 인터뷰’와 ‘정보흐름지도’ 조사 등 정성적 분석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문서는 종이(paper)가 아니라 정보(information)를 의미한다”고했다. 종이가 점점 사라지는 스마트 시대에 맞게 ‘문서’를 다르게 정의한 것이다. “우리는 문서가 어떤 목적으로 출력되고 공유되며,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배포되는지를 파악한다. 기업 내 정보의 흐름을 조사하는 만큼 고객의 정보 보안을 위해 기밀유지협약(NDA)을 맺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우리가 고객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우에노 대표는 강조했다.

문서 보안 솔루션은 이미 수출까지


▎한국후지제록스는 지난 2013년 서울시 신청사의 문서환경 최적화에 나섰다. 그 결과 사무기기 대수는 4분의 1로 줄였고, 공간비용만 80억원이나 절감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우에노 대표 취임 이후 한국후지제록스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기자는 그가 생각하는 ‘진짜’ 성장 비결이 궁금했다. 우에노 대표는 우선 ‘소통’을 꼽았다. 그는 “후지제록스의 기업철학인 ‘보다 나은 커뮤니케이션(To Better Communication)’ 얘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며 입을 열었다. 사실 이 문구는 제록스의 창업자 조 윌슨의 말이기도 하다.


윌슨은 생전에 제록스의 사업 목표를 밝히는 자리에서 “우리의 사업 목적은 보다 나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라는 말을 즐겨했다. 우에노 대표는 “우리가 주력하는 컨설팅 서비스는 해당 기업의 사무환경을 분석하기 이전에 고객과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비즈니스의 큰 토대이자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후지제록스는 매달 각 나라에서 지사를 운영하는 경영자들이 모인다. 정기적으로 미팅을 열어 전 세계 지사의 성공 사례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소통을 강조하는 사례는 비단 고객과의 관계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었다. 우에노 사장은 “다른 기업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함과 동시에 우리 조직도 함께 만족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먼저 사내 업무환경 개선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아 실제 해보는 ‘언행일치’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언행일치’ 활동은 고객에게 제공한 솔루션이 사내에 도입될 경우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직접 도입해보는 제도다.

‘소통’과 ‘인재’를 중시하는 기업문화


우에노 대표는 성공의 또 한 가지 비결은 ‘인재’로 꼽았다. 그는 각종 행사 때 자주 꺼내놓는다는 1983년 ‘코리아 제록스’ 광고 얘기를 꺼냈다. ‘제록스 1대를 설치하면 7명의 코리아 제록스맨을 거느릴 수 있습니다.’ 제품 자체 설명이 우선이었던 당시로선 파격적인 광고 문구였다. 그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사람이 가장 잘한다.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우리가 성장한 것은 그 안에 직원들의 노력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올해 50년을 맞은 한일 경제협력의 방안을 묻는 질문에도 ‘인재’ 얘기를 꺼냈다. “한국 시장 진출을 고민하는 외국계 기업에게 ‘실행력’과 ‘스피드’가 강점인 한국의 인재를 고용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는 답변으로 대신했다.

그래서일까? 한국후지제록스에는 장기 근속자가 유독 많다. 인재를 중요시하는 문화 덕분이다. 전문성을 기르고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는 데 많은 신경을 쓴다고 한다. 우에노 대표의 설명이 뒤따랐다. “직원을 채용했다면 최적의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는 데 경영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직원의 만족도가 높아지면 고객에게 당연히 긍정적인 영향이 미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통’과 ‘인재’로 무장한 우에노 대표는 올해도 높은 성장률을 자신했다. “2017년까지 문서관리 아웃소싱 서비스 및 솔루션 사업의 비중을 50%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며 “매출 증가율을 두 자릿수대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대기업 중심의 고객사를 중소기업으로 확대해 고객층을 두텁게 늘리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마침 저성장 기조 속에서 비용절감과 효율화를 고민하는 한국 기업들이 늘고 있어 우리에게 더 큰 기회가 되고 있다”고 했다. “목표달성을 위해 고객에게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후지제록스가 우선 생산성 높은 회사가 되어야죠. 한국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노동생산성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해 많은 회사가 벤치마킹하고 싶은 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

‘솔선수범.’ 우에노 야스아키 한국후지제록스 대표가 내건 또 하나의 목표였다.

- 글 김영문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201508호 (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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