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도림역 구로 일대가 불과 몇 년 만에 확 바뀌었다. 이곳에 들어선 디큐브시티 덕분이다. 사업을
총괄했던 김경원 대성합동지주회사 사장을 만나 복합몰 경영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김경원 대성합동지주 사장은 디큐브시티가 지역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변화를 주도한 주역이다. |
|
“저기 메조가 음이 불안하지? 저번에 왔던 애는 이태리 어디를 나왔다는데, 이번에 온 애는 테너가 조금 그런데. 역시 맨해탄하고 줄리아드가 더 난 것 같구먼그래.” “여보 너무 그러지 마시오. 메조가 귀한 거 알잖아. 그래도 저번에 ‘황산에 살어리랏다’를 한 번 더 듣고 싶구먼.”디큐브시티 내 노천극장인 디큐브파크(공원)에서 열린 공연을 보러 온 60대 노부부의 대화다. 신도림역과 디큐브시티를 굽어보는 바로 앞터, 광장으로 조성한 이곳은 무료 공연이 자주 열린다. 덕분에 신도림역 주변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까지 디큐브시티를 총괄했던 김경원 대성합동지주 사장(전 디큐브시티 대표)도 공연 때마다 이곳을 찾았다. “디큐브시티 개장보다 한 달 늦게 열었다. 공원하고 공연장이 마련된 디큐브파크 조성에만 300억원이나 썼다. 다양한 공연을 마련하고 많은 사람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돈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며 김 사장은 웃었다.
공간의 변화를 주도한 디큐브시티디큐브시티는 디큐브 백화점·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디큐브 오피스·디큐브 아트센터 등을 갖춘 복합쇼핑문화공간이다. 2011년 8월 신도림역 역세권에 오픈했다. 연면적 35만247㎡(약 10만 평) 규모로 투자비만 무려 1조4000억원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였다. 2012년 말부터 디큐브시티는 성장 가도를 달린다. 김 사장은 “디큐브백화점은 지난해 매출이 20% 이상 늘어났고, 하루평균 고객 수도 6만여명 이상에 달하는 등 서울 서남권의 대표 몰로 자리매김했다”고 강조했다. 서울 서남권은 2009년 영등포 타임스퀘어, 2011년 신도림 디큐브시티, 2012년 여의도 IFC 몰이 생겨나면서 서울에서도 가장 치열한 복합몰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다.치열한 경쟁은 자금력의 싸움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대성산업이 지난해 자금난에 처하게 되면서 1조6000억원대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발표했고, 디큐브시티 백화점은 올해 5월부터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로 간판을 바꿔 달게 된다. 이에 따라 현대백화점은 대성산업으로부터 디큐브시티 백화점을 인수한 JR자산운용 펀드와 장기 임대차 계약을 맺고 지난 5월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임대차 계약 기간은 20년이다.현재도 대성산업이 백화점을 제외한 호텔, 오피스의 관리·운영을 맡고 있다. 실내 공연장인 디큐브아트센터의 경우 지분의 100%를 가지고 있다. 디큐브백화점 매각 작업을 완수한 김 사장은 2015년 6월 대성합동지주로 자리를 옮긴다. 그가 대성에 합류해 처음 맡은 과제는 오픈 1년째를 맞이한 ‘디큐브시티’를 활성화해달라는 주문이었다고 한다. 어떤 복안이 있었을까? 김 사장은 부임 첫날, 디큐브시티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1층에 싸구려 물건만 잔뜩 쌓여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수준 높은 고객이 몰릴 리 만무했다.”김 사장은 ‘복합몰’의 해외 사례부터 찾아보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교외에 있는 몰에서 한 가족이 장을 보면서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복합 매장들이 많았다. 김 사장 눈에 띈 것은 신도림역 주변 환경이었다. 역을 중심으로 구로 지역은 대규모 아파트를 비롯한 주거용 건물 비율이 50%가 넘는다는 데 주목했다. “미국 몰처럼 한 가족이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도심지에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기 위해서는 몰 주변 공간을 한층 넓게 보이게 하고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디큐브시티를 지역문화공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주민들에게 문화공연과 다양한 이벤트를 디큐브파크 등에서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다. 클래식·가곡·판소리 등 수준 높은 공연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했고, 자녀들과 같이 볼 수 있는 마술쇼 등도 열어 가족이 참여할 기회도 제공했다. 다음으로 그가 중요하게 본 것은 주민들의 소비문화였다. 그는 몰 사업이 활성화된 일본 국민의 소비성향에 주목했다. “일본인 대부분은 집에 TV·세탁기·냉장고 등 없는 물품이 없을 정도로 다 갖추고 산지 오래다. 특별히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백화점을 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백화점은 소비하고 누리는 곳이다. 그래서 일본 백화점 1층에는 주로 음식점이 올라와 있다”고 했다.김 사장은 곧바로 고객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나섰다. 그의 머릿속에 고객을 모은다는 ‘집객’이란 단어가 전광석화처럼 스쳐 간 것. 그는 휴식 공간 마련부터 인심을 후하게 썼다. 고객 동선을 따라 쉴 수 있는 좌석을 무려 400여 석이나 만들었다. 백화점 내 자투리 공간에는 스터디 장소인 ‘공부&쉼터’, 지하 1층에는 ‘햇빛광장’ 등 여럿이 편하고 조용하게 모일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마련했다. “‘놀러 오세요.’, ‘편히 쉬세요.’가 기본 콘셉트였다. 물건을 안 사도 그만이었다. 단순한 호객행위로 집객하는 시대가 끝났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주변에 신축·소형 아파트가 많은 신도림 지역은 특히 30대 젊은 부부들이 많았다. 그래서 4층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로 가득한 ‘뽀로로파크’를 만들었다. “2013년 처음 선보인 유모차 콘서트는 엄마 고객에게 큰 호응을 끌어냈다. 로비에 200여 개에 달하는 자리를 설치하고 클래식 공연을 열었다. 유아휴게실, 유모차전용 엘리베이터도 마련했다.”변화에 앞장선 김 사장이 노력으로 디큐브시티가 살아나면서 디큐브백화점 매각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백화점 매각으로 마련한 자금은 대성산업의 부채를 줄이는 데 쓰였다. 김 사장은 “디큐브시티가 지역 주민들에게 더 나은 생활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보람이 크다”고 했다. 현재 대성합동지주에서 구조조정 업무를 총괄하는 김 사장은 현대백화점과는 협력의 문을 아직 열어놓고 있다. “문제가 생긴다면 얼마든지 협조할 용의가 있다. 비단 백화점 운영 뿐만은 아니다. 디큐브시티가 지역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김영대 대성 회장의 뜻이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코노미스트이자 분석전략가 출신인 그에게 서남권 유통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부탁했다. 김경원 대성합동지주회사 사장이 ‘짧지만 굵게’ 답했다. “사람들이 몰 안에 오랫동안 머물게 하라. 머물게 할 수만 있다면 반은 성공한 것이다.”- 글 김영문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