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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훈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혁신 통해 창조경제의 터전으로 거듭난다 

유부혁 포브스 기자 ·사진 전민규 기자
한국산업단지공단이 기업, 학교, 연구기관 등과 협력해 단순한 산업단지에서 ‘창의적인 기업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대대적인 혁신을 꾀하고 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강남훈(54)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이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빌딩숲을 바라보며 말했다. 애정이 듬뿍 담긴 목소리였다. 구로디지털단지에 위치한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실에선 최근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형 공장 건물과 벤처타워들이 훤히 내다보인다. “오늘날 구로디지털단지는 세계적인 지식집약첨단단지가 됐습니다. 울산, 창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산업단지엔 주로 생산공장만 입주했죠. 지금은 단순한 산업단지에서 벗어나 제조생산기반 시설과 함께 연구, 혁신활동, 기업 참여가 일어날 수 있도록 혁신클러스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공단은 전국 1082개의 산업단지 중 65개의 국가산업단지를 관할하고 있어요. 제조생산시대의 단지를 창조경제의 터전, 거점지역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지금 우리 공단이 하고 있는 중요한 역할입니다.”

강 이사장이 강조한 이 대목은 사실은 지난 2014년 9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산업단지 50주년 기념행사에서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당시 “생산기능 중심의 역할에서 지식과 신기술을 창출해 내고 그것이 융복합하는 창의과학 집적지. 더 나아가 창조경제의 터전으로 가꾸어 나가자”고 말했고 정부는 이를 정책과제로 채택해 추진하고 있다.

강 이사장은 예의 상기된 목소리로 ‘클러스터(집적지)’의 중요성에 대해 발언을 이어갔다. “구 동독의 작센주는 독일 통일 후 성장률 1.3%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지역이었습니다. 1990년대 1인당 GDP가 1만 달러 수준이었지만 2012년에는 1인당 GDP가 6만 달러에 이를 만큼 고소득 지역으로 변모했습니다. 비결은 클러스터입니다. 작센주의 주도인 드레스덴은 통일 당시 북한에 비견될 만큼 낙후된 곳이었지만 지금은 유럽 최대, 세계 5위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됐습니다. 독일 최대의 기술대학인 드레스덴 공대를 비롯한 10개 대학, 기초 및 응용 연구 분야의 21개 연구소, 지멘스와 폴크스바겐 등 유수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각 혁신 주체 간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시너지와 기술혁신을 창출한 결과죠. 이제 우리도 생산 중심의 제조업 집적지를 넘어 아이디어와 정보, 지식이 선순환되는 혁신 창출공간으로 산업단지를 바꿔야 합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사실입니다. 모여야 삽니다. 다만 모여서 창의적 발상이 나오도록 돕는 것이 우리 역할이죠.”

산업단지 혁신에 집중하다


▎첫 국가산업단지인 구로단지의 과거와 현재 모습.
강 이사장은 “물론 우리 산업단지가 30년 이상 된 단지가 많다 보니 낡고 허술한 부분이 많아요. 단지 내 근로자들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시설을 보수하고 기숙사를 제공하는 등 단지 입주 기업을 위한 지원활동에도 주력하고 있지요”라고 덧붙였다.

강 이사장이 산업단지의 고령화, 낙후 등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유는 여전히 우리나라 경제에서 산업단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현대 제조업 총생산의 69%, 수출의 81%, 고용의 47%가 산업단지를 통해 일어 난다. 여전히 한국 산업화의 중심에 산업단지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역할이 과거의 단순한 조립공장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게 강 이사장의 생각이다. 강 이사장이 취임 이후 중점적으로 추진한 일이 ‘산업단지 혁신’인 것은 당연해보인다.

강 이사장은 산업단지 노후화를 해결하기 위해 취임 직후 정부 부처별로 산재한 관련 법률을 통합하고 정부, 국회 관계자를 두루 만났다. 그런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12월에 구조고도화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 올해 7월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산업단지공단은 이를 통해 4개의 시범단지에서 첨단산업집적시설 6개를 건립하고 지원시설, 주거확충사업, 기반시설 정비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민간대행사업도 발굴해 2658억원의 민간투자를 유치해 내기도 했다.

강 이사장은 앞선 물리적 재정비 외 소프트웨어적인 정비에도 나섰다. 단순한 생산, 조립기능 위주의 기존 공장에 ICT 첨단 기술을 접목, 공장 경쟁력 확충에 도움을 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스마트 공장’을 통해 최소 비용, 시간으로 고객 맞춤형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체계로 개편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일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설명하면서 기자에게 산업단지 혁신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제조업 강국 독일은 정부가 ‘인더스트리 4.0’을 발표하고 제조업 혁신을 위해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을 결합한 ‘4차 산업혁명’인 셈이죠. 이는 18세기 말 산업혁명, 1900년대 초 대량생산, 1970년 공장자동화 시스템에 이어서 말이죠. 독일 정부는 ‘인더스트리 4.0’을 적용하면 BMW 경우 제조원가가 25%나 절감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우리 제조기업들도 ‘스마트 공장’을 서둘러야 합니다.”

우문현답.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뜻이다. 강 이사장은 묵묵히 이 우문현답을 실천하고 있는 경영인이다. 취임 후 2년간 그가 탐방에 나선 기업만 250곳이다. 이동 거리만 11만㎞다. 지금도 일주일에 2~3일은 현장에 나간다고 했다. 그는 단지 내 기업을 둘러보며 얻은 인사이트를 소셜 미디어로 공유한다. “취임 직후부터 페이스북을 시작했어요. 현장과 그곳에 계신 분들, 그리고 전문가 등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시간이 부족한데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하고 또 얻는 것도 상당히 많더군요.”

강남훈 이사장이 파악한 기업들의 현안이 무엇인지 물었다. 크게 수출, 규제, 인력난이라고 했다. “새롭지 않죠. 많이 들어본 문제일겁니다. 어쩌면 우리 제조업이 직면한 어려움을 산업단지가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는 뜻이겠죠.”

한국산업단지공단은 5만여 입주기업과 청년층 인력 미스매칭 해소를 위해 꾸준히 중소제조업 인식개선사업, 청년인턴제, 맞춤형 채용박람회 등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올해 교육부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학교와 기업이 서로 소통해 채용을 전제로 실습 프로그램을 이수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을 하는 ‘산학일체형 특성화고’ 모델을 도입했다. 스위스 도제식 직업학교로 일과 학습을 병행해 핵심직무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다.

강 이사장이 취임 이후 특히 몰두한 테마가 규제 완화다. 그는 “불합리한 규제 철폐를 위해 계속해서 규제개혁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산업단지 입주기업 확대다. 강 이사장은 “넓게 보면 뿌리박힌 고정관념들도 규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금속을 다루는 기업들이라고 하면 환경 오염의 주범이라 생각해 공장 증설을 막는데, 정작 지금 그런 기업들은 환경 오염과는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이런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에도 공단이 앞장서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모여야 산다

산업단지공단의 51년은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단지’로 바뀐 것이 말해주듯 상전벽해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산업형태도 많이 바뀌어서 지금은 1인 창업시대다. 과거 닷컴 열풍이 불 때는 강남 테헤란로가 들썩였지만 지금은 구로, 판교가 1인 창업자들의 관심을 끄는 시대가 됐다. 강 이사장은 “제가 알기론 구로에 1인 창업인력만 1만 명 넘게 모여 있어요. 16만 명의 근로자가 이곳 구로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매년 2~3000개 기업이 퇴출되고 또 그만큼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같은 기업환경 생태계가 조성된 곳은 구로가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처럼 구로디지털단지만큼 다양한 기업이 존재하는 곳도 드물다. 산업단지공단이 쾌적한 공간을 만들고 인력들이 모여들도록 다양한 지원방안을 강화한 덕분이기도 하다. 구로에는 현재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첨단연구, 의료, 의류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 1만2000개가 모여있다.

인터뷰를 마친 강 이사장이 박수치듯 두 손을 모으며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계적으로 제조업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다른 산업과 융합해 성공하는 사례들이 속속 나오고 있어요. 저는 그 바탕은 산업단지라고 생각합니다. 클러스터가 창조경제의 터전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 그는 다시 단지 내 기업을 둘러보기 위해 집무실을 바삐 나섰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11월 3일부터 본사가 있는 대구에서 ‘제18차 세계클러스터경쟁력 총회’를 개최한다. 전세계 클러스터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로 한국에선 처음 열린다. 클러스터 이론의 창시자인 하버드대학 마이클포터 교수가 고문을 맡고 그 제자 케텔스 교수가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케텔스 교수는 한국의 클러스터 정책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강남훈 이사장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 글 유부혁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전민규 기자

[박스기사] 강남훈 이사장이 소개한 산업단지 내 ‘히든챔피언’

첫째, 경주마 전략의 히든 챔피언이다.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틈새시장을 개척한 경우이다. 세계 최초, 세계 유일의 ‘자동평형 원심 분리기’를 개발한 ‘한랩’이나 극세사 기술을 통해 극세 틀리너 분야의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웰크론’이 대표적이다. 둘째, 지구본 전략의 히든챔피언이다. 처음부터 세계 1위를 목표로 한 기업들이다. ‘와이지원사’는 절삭공구 분야의 글로벌 리더로 엔드밀 분야의 세계 1위 기업이 됐다. 국내 시장 점유율 50%, 세계 시장 점유율 14%이며 전체 매출의 80%가 수출에서 나온다. 주안 단지의 ‘동아알루미늄’은 첨단 특수알루미늄을 활용해 텐트용 폴대를 생산한다. 170개의 특허를 보유할 만큼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세계 텐트용 알루미늄 폴대의 90%를 이 회사가 만든다.

셋째는 상어 전략의 히든 챔피언이다. 부레가 없어 끊임없이 움직여야 가라앉지 않고 살 수 있는 상어처럼 산업 기술 변화에 끊임없이 대응하며 성장해 온 기업들이다. 1974년 히터용 심지 생산업체로 출발한 ‘파세코’는 심지식 난로 세계 시장의 35%를 점유하고 있다. 후세인이 은신처에서 미군에 체포될 때 그 옆에 파세코 석유스토브가 있는 장면이 CNN을 통해 방영되며 더욱 유명해졌다.

201511호 (201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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