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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규 에넥스 대표이사 

‘메기 이론’ 증명한 토종 CEO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경영학에 ‘메기 이론’이라는 게 있다. 미꾸라지가 들어있는 어항에 천적인 메기 한 마리를 넣으면 미꾸라지들이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도망 다니면서 더욱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기업경영에 접목시킨 것이다. 가구회사 에넥스는 메기이론을 증명한 생생한 사례다.

▎박진규 대표는 사용하는 사람이 편한 인간중심의 가구, 가족의 행복을 실현하게 해주는 편안한 가구로 삶의 행복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스웨덴산 ‘메기’ 이케아의 공습에도 기업의 체력을 더 튼튼히 키운 회사가 바로 에넥스(ENEX)다. 에넥스는 지난해 3083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다. 주방가구 ‘오리표 싱크’로 출발해 종합가구회사로 성장하고 있는 에넥스의 박진규(55) 대표이사 부회장은 “2014년 12월 한국에 진출한 이케아가 국내 가구 시장을 브랜드 중심으로 바꾼 ‘촉매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케아는 국내 가구업계에 도전이자 기회”였다고 덧붙였다. “가장 큰 위기가 이케아의 한국 상륙이었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것이 가구업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케아가 시장 파이를 키웠기 때문에 우리가 강점을 갖는 디자인과 품질이 빛을 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에넥스는 1971년 설립된 부엌가구 전문 기업이다. 창업주인 박유재(82) 회장이 76년 선보인 ‘오리표 싱크’로 한국 최초 입식 부엌문화 시대를 열었다. 2010년부터 에넥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박 부회장은 박유재 회장의 장남이다. 1986년 오리표 싱크로 입사해 충북 황간 공장에서부터 일을 배웠고 본사와 매장, 중국 법인장을 거쳐 대표이사에 올랐다. 올해 입사 30주년을 맞은 박 부회장을 서울 서초동 에넥스 본사에서 만났다.

사업구조 대폭 개편하고 현장경영 나서


창업주가 주방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있나.

아궁이에 불을 때고 항상 허리를 숙이고 일해야 했던 재래식 주방 때문에 굽은 어머니의 허리에 마음이 아파 시작했다고 들었다. 워낙 어려웠고 불편했던 시절이라서 유독 그 분(박유재 회장)의 눈엔 주방이란 공간이 더 아프게 다가왔던 것 같다. (창업주가) 부엌가구를 하기 전에 집과 연관이 있는 위생 도기 사업을 한 것도 주방 가구 사업을 하는데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오리표 싱크는 1970~80년대 국내 주방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 1992년 오리표를 첨단 부엌가구업체로서 전문적이고 글로벌한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사명을 에넥스로 변경했다. 이후 싱크대는 물론 주방가구와 붙박이장, 현관장 등 주로 시스템 가구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가구 전문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인테리어 제품까지 영역을 확대하면서 종합 인테리어 가구업체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오리표라는 친숙한 이름을 버렸다.

회사가 성장하는 상황에서 이미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엔 부족하다는 얘기가 내부적으로 나왔고,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브랜드로 거듭나야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이름을 바꿨다.

올해가 설립 45주년이다. 긴 시간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최초와 최고, 혁신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에넥스는 국내 최초로 싱크대를 선보였다.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국가품질경영대상 금탑산업훈장과 우수 산업디자인 대통령상, 국가품질경영대회 대통령상 등 업계 최초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컬러 도장제품 최초 생산, 자동화 생산 시스템 구축, 친환경 기술 워터본 개발 등 업계를 선도하는 기술력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꾸준한 제품 개발과 경영 혁신이 에넥스의 성공 비결 아닐까.

하지만 2008년 찾아온 금융위기를 에넥스도 피해가지 못 했다. 당시 에넥스는 금융감독원이 실시한 기업신용등급 평가에서 C등급을 받았다. C등급은 워크아웃 신청대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시장이 극심한 침체에 빠지면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새 아파트에 들어가는 가구 물량이 줄면서, 건설사 위주로 주방가구를 판매했던 시장까지 작아지자 위기가 시작됐다.

회사가 가장 어려울 때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절박했다. 당시 건설경기 침체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쳤다. 아파트 분양 때 공급하는 건설사 관련 매출 비중이 너무 커 직격탄을 맞았다. 건설 부문 사업 비중을 줄여나갔다. 인테리어 가구사업을 확대했고 자산을 매각했다. 대주주의 사재 출연으로 차입금을 상환하고 유동성 자금을 확보하면서 위기 탈출을 모색했다.

박 부회장은 취임 후 대대적인 사업구조 개편에 나섰다. 주방 가구 비중을 전체 매출의 70% 정도로 낮추는 대신, 인테리어 가구와 소파 등 일반가구와 사무용 가구 비중을 올렸다. 판매 채널 다양화에도 나섰다. 3분의 2 정도였던 특판 비중을 절반으로 끌어내렸다. 박유재 회장은 서울 동숭동 건물 등 11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회사에 증여했다. 노조와 협의를 통해 구조조정도 일부 단행했다. 박 부회장은 “금융권 채무 기사가 나왔을 때 ‘이제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삐끗하면 절벽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과거 위기는 왜 시작됐나.

에넥스는 과거에도 위기가 있었고 극복해왔다. 하지만, 그 다음 사람들이 그 위기를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위기에 대한 극복 능력이 계승 발전하지 않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직원들도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항상 강조하는 것이 과거를 잊지 말고 잘되는 순간에 자만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나태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위기 탈출의 원동력은?

결국 사람과 현장에 답이 있더라. 취임 후 전국 150개 대리점을 매일 돌았다. 주요 협력업체와 거래처도 직접 발로 뛰며 만났다. 구조조정 등으로 서로 신뢰가 무너져 있었기 때문이다. 청주에 있는 대리점을 갔더니 사장이 ‘본사는 대리점의 적입니다’라고 하더라. 얼마나 본사가 못 했으면 이런 얘기를 할까 싶었다. 진정성 있는 자세와 소통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수차례 찾아가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소통했더니 조금씩 변화가 감지됐다.

대표이사가 직접 현장을 챙기는 모습에 사람들이 놀랐겠다.

에넥스의 기본 정신은 상호 간의 끈끈한 정과 애사심이었다. 어느 순간 가치가 훼손되고 무너졌다. 그러다 보니까 안 좋은 모습들을 자주 보였다. 에넥스 본연의 가치를 회복시키고 싶었다. 일회성으로 한두 번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좋게 봐줬다고 생각한다. 요즘도 대리점, 직원들, 협력 업체와의 모임을 꾸준히 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신입사원 면접도 직접 한다고 들었다.

그 사람이 말하는 태도와 자세를 중요하게 본다. 어차피 질문이야 누가 하든 하니까. 말하는 데 있어서 소신이나 긍정적인 자세, 자신감을 주로 보려고 한다.

선호하는 인재상이 있나.

열정과 긍지를 가진 창의적인 전문인이다. 그 바탕에는 사랑이라는 중요한 가치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 일에 대한 사랑, 동료 사랑, 회사 사랑, 고객 사랑의 애정과 긍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0년 1조원 매출이 목표


▎박진규 대표는 주방가구에서 인테리어 제품까지 영역을 확대하면서 에넥스를 종합 인테리어 가구업체로 입지를 넓혔다.
2008년부터 5년간 적자를 기록하던 에넥스는 2013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엔 3083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다. 박 부회장은 지난해 초 ‘에넥스 비전 2020’이란 목표를 세웠다. 그는 “2020년 매출 1조원 달성이 목표”라고 했다.

5년 만에 매출 1조원이 가능한가.

사실 1조원 얘기를 했을 때 다들 의아해 했다. 그러다 지난해 3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직원들도 조금씩 ‘할 수 있다’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온라인·인테리어·사무가구와 같은 독립 사업부를 구축해 신규 아이템을 개발하고 있다. 올해부턴 리모델링 시장에 대한 공략을 가속화할 것이다. 리모델링 때 가장 중요하면서 까다로운 주방·욕실·마루·조명을 패키지 형태로 한 데 모아 판매하는 것이다. 욕실은 전문업체인 대림바스와 제휴해 전문성을 강화했다. 또 국내 브랜드 최초로 반려동물전용가구도 선보였다. 제품군을 전문화·다양화해나가고 있다.

에넥스는 지난 5월 초 부산 동구에 홈리모델링 체험공간인 ‘홈인테리어 직매장’을 열었다. 기존의 가구전시 형태에서 벗어나 현관·거실·주방·욕실·침실 등 전 매장을 모델하우스처럼 꾸며 소비자가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다.

왜 부산인가.

아파트 신규 물량 성장세가 점점 둔화하면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재개발·재건축·리모델링 시장이 성장할 것이다. 부산은 대도시인데 노후 아파트가 많다. 리모델링 시장 확대에 따른 공략을 가속화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대림바스와 제휴사업을 시작했고 올해는 인테리어 패키지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주방가구를 넘어 이케아까지 뛰어넘는 인테리어 매장이 될 것이다.

홈센터는 이케아를 겨냥한 것인가.

이케아라기보다는 매출 1조원 달성을 주방가구 하나로만 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인테리어, 사무용, 온라인 쪽 매출도 그렇다. 홈센터는 1조원 달성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이케아의 한국 진출은 어떤 의미인가.

이케아는 우리에게 도전이자 기회다. 가장 큰 위기도 이케아였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것이 우리에게 기회가 됐다. 결국은 극복하고자 노력한 과정에서 경쟁력도 높아졌다. 이케아가 가구 시장 브랜드 전체 파이를 키웠다. 시장 파이를 키워줬기 때문에 우리가 강점을 가지는 디자인, 품질에 대한 노력을 계속 한다면 더 큰 기회가 올 것이다.

에넥스의 강점은.

제품이다. 다양화된 제품 디자인과 레이아웃이다. 특히 도장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제품에 대해서만큼은 최고라고 자부한다.

변화에 유연하면서도 따뜻한 기업 꿈꿔

박 부회장은 86년 오리표 시절 회사에 입사해 공장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제조업의 특성상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기술이 필요한 지 기본부터 알아야 제대로 된 경영을 할 수 있다는 창업주 박유재 회장의 의도 때문이다. 박 부회장은 “공정 과정과 라인에 투입되는 원자재, 인력, 소요시간 등 책상에 앉아 문서로만 업무를 접하기보다는 실제 제품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회사에 더 애착을 갖게 됐다”면서 “공장에서의 경험 때문에 가업 계승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공장에서의 첫 근무가 쉽지 않았겠다.

공장에서 4년을 근무했다. (박 회장이) 올라오란 얘기를 안 하시더라. (웃음) 공장은 생산 본거지기도 했고 도시가 아닌 시골 지역의 여유가 있어서 좋았다. 직원들과 친숙함이 있다 보니 시간은 금방 갔다. 모든 것은 현장에 답이 있더라. 실제로 지금까지 경험해보니 현장 확인을 해야 하고 현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2세 경영인이라는 부담은 없나.

입사 당시에야 철이 없어서 멋모르고 들어왔다. 지금은 경영을 하는 모든 2세들이 느끼는 부담감을 느낀다. 창업주가 해놓은 것을 잘하기는커녕 망가뜨리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해야 본전이란 생각은 누구나 있다. 대표이사가 될 때 특히 부담이 컸다. 안 좋을 때 회사를 경영해도 다른 사람에게 핑계를 댈 수 없고 모두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어떻게 컸나.

엄하게 컸다. (회장님께서) 자수성가를 하셨으니까. 어렸을 땐 일주일에 한 번 아버지를 뵙기도 힘들었다. 4남매가 다 똑같이 아버지라는 존재를 어려워했다.

3세 경영도 생각하나.

아이들이 회사에 당연히 들어오겠다고 했는데 내가 아니라고 교육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 했다. 능력이 있다면 사업가의 DNA를 가진 사람이 맡는 게 좋을 것 같다고는 생각한다. 알게 모르게 배우고 자란 게 있어서 조금 더 유리하지 않나 싶다. 기업가 정신과 노력하는 자세만 있다면 2세, 3세가 경영을 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믿는다.

어떤 가구를 만들고 싶나.

저렴한 가격, 세련된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용하는 사람이 편한 인간중심의 가구다. 가족의 행복을 실현하게 해주는 편안한 가구로 삶의 행복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다.

국내 가구 산업의 미래는.

인테리어 소품·건자재·소형가전과 같은 아이템으로 점점 확대될 것이다. 사물인터넷(IoT)을 결합한 가구도 개발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 가구에 접목해 좀 더 편리한 가구를 만들지는 업계의 숙제다. 온라인 가구 구입 비중이 커지면서 유통시장이 확대돼 가구산업 전반에 걸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산업군이 탄생할 것으로 본다.

어떤 회사를 꿈꾸나.

꼭 필요한 기업, 존경받는 기업이다. 개인적으로는 위기를 많이 겪어 강한 기업이 되고 싶다. 위기에 굴하지 않는, 자기만의 장점을 길러 변화에 유연하면서도 따뜻한 기업을 꿈꾼다.

-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201608호 (201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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