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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를 위한 창조적 삶 (5) 노태철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객원지휘자 

돈으로 채워지는 것은 행복이 아니더라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유럽에서 10년, 미국에서 3년, 그리고 지금은 러시아에서 13년째 살고 있다. 지금까지 지휘했던 세계 곳곳의 오케스트라만 130여 개에 달한다. 한국 출신으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클래식 음악 지휘자로 정명훈 말고 또 이런 인물이 있었던가.

▎노태철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객원지휘자. 베토벤, 모차르트, 라흐마니노프 등을 좋아한다.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오케스트라 수석 객원지휘자로 지난 6월 29일부터 열흘 간 한국 순회공연을 펼친 노태철(55)씨를 만났다. 그는 현재 러시아 울란우데 오페라발레극장 상임 지휘자이기도 하다. 9월부터는 야쿠티아 국립음악대학 부학장 겸 야쿠티아 오페라극장 지휘자로 취임할 예정이다. 푸쉬킨 국립 오페라극장 지휘자를 지내기도 했다. 러시아로 가기 전에는 유럽에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비엔나 왈츠 오케스트라, 프라하 모차르트 오케스트라 등의 지휘자를 역임한 바 있다.

26년째 해외에서 클래식 지휘로 살아왔음에도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러시아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지만 그는 더 유명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듯했다. 현재 정도의 유명세면 족하다고 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많은 듯했다. 음악이란 무엇이고, 음악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음악을 즐겨야 하고, 또 음악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등등. 클래식 선진국과 한국의 격차를 좁히는 문제를 진지하게 전해주고 싶어 했다.

해외 생활을 26년째 하고 있는데 행복한가.

요즘은 거의 매달 이곳저곳 여러 나라와 도시를 다니면서 사람들의 삶을 비교하고 있다.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일까? 행복은 보이는 것보다는 안 보이는 것에서 더 많이 경험하는 것 같다. 돈이나 재물 보다 따스한 말이나 진심으로 나를 배려하는 행동에서 더 감동하고 기뻤던 것 같다.

본인의 행복지수는 높은 편인가.

음악 할 때는 정말 행복하다. 러시아가 한국보다 경제적 조건이 열악한데 음악 할 수 있는 조건은 최고다. 극장 안에 지휘자 사택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오전 11시에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고, 그 이후엔 가수나 발레팀과 연습을 한다. 저녁엔 매일 공연이 있고, 그런 식으로 극장 안에서 생활이 다 된다.

한국은 어떤 것 같나.

한국은 세계인들이 놀라워하듯이 급성장했다. 그런데 보이는 행복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아쉽다. 매일 경쟁하고, 남 욕하고, 누구나 돈 이야기를 먼저 하고….

보이는 행복에 매달리는 한국, 아쉬워

물질적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클래식 음악도 들으며 행복지수를 높여갈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기본적 삶의 조건은 갖춰져야 하다. 한국이 그 정도는 넘어섰지 않은가. 행복은 돈과 얼마나 거리를 두고 사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다. 독일인 선생님이 낭만음악을 가르치시면서 ‘낭만은 돈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던 게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 한국의 방송이나 언론은 거의가 돈을 따라가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는 교육의 목표도, 자신의 개성은 무시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럽에서 10년을 어떻게 보냈나.

유학 가기 전에 여자중학교 음악 교사를 했다. 29살에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갔다. 오스트리아 린쯔 부르크너 음악원 지휘과를 졸업하고 96년부터 3년간 비엔나 국립음대에서 공부를 더 했다. 이미 대학원까지 졸업 했으니까 비엔나 국립음대에선 청강을 했는데 이때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다. 청강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교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두 교수님에게 배웠다. 비엔나 국립음대의 레오폴드 하거 교수에게 배웠다. 빈필도 지휘하고 세계적인 지휘자로 평가받는 분이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몇몇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했지만 수입이 제대로 없어서 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미국에 갔다. 누가 그러더라. 미국 가면 돈 많이 벌 수 있다고.(웃음) 뉴욕에 가서 오케스트라 매니저들을 다 만났다. 보름을 잡고 만났다. 뉴욕은 너무 벽이 두껍더라, 그래서 서부로 갔다. 로스엔젤레스의 엔젤레스 챔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했다. 오스트리아에 있을 때보다 몇 배 더 많이 벌었다. 그런데 그렇게 3년 하니까 허전하더라. 돈으로 채워지는 것은 행복이 아니더라. 그때 독일 선생님이 러시아를 추천했다.

기타 학원 운영해 돈 벌면서 대학 다녀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대학은 한국에서 나왔나.

지방에서 학교를 다녔다. 부산공고엘 다녔었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서 3년간 거의 태권도와 킥복싱 같은 운동에 매달린 것 같다. 태권도 선수였다. 당시 부산 공고에서 매년 서울대학을 13명이나 갔지만(동일계 특별전형) 나는 몇 년을 지방대학조차 떨어졌다. 당시에 건축 붐이 있어서 토목과를 지원했다가 떨어졌고, 고등학교 전공이 전기과라서 대학을 전기과로 바꿔 지망했는데 그래도 또 떨어졌다. 뚜렷한 목적 없이 대학을 지망했으니 당연히 여러 번 떨어졌다. 마지막에 갈 때가 없어 성적으로 동아대 음대를 갔다.

의외네요.

대학 떨어지고 82년에 기타 학원을 냈다. 딴따라였다. 키보드와 기타를 가르쳤다. 재즈 음악 경력으로 대학을 어렵게 들어갔다.

음악대학도 쉽지 않았을 텐데.

일반 학과를 준비하다 예술대로 갔으니 성적은 높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정신 차리고 열심히 해서 우리 반에서 3등을 했다.(웃음) 당시 부산공고가 부산에서는 좋은 학교였다.

고등학교까지 음악을 안 하다가 대학에 가서 음악을 하신 거군요.

대학 가기 전에는 재즈 음악을 한 거다. 대학 가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부터는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대학 다니면서 부산의 대형 교회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시립예술단 등의 편곡을 많이 했다. 나한테 섭외가 많이 왔다. KBS 방송국 어린이 동요대회 챔버악단 지휘도 했다.

82년에 기타 학원을 운영했으면 돈도 많이 벌었겠다.

기타, 피아노 학원 운영해 돈을 벌면서 대학을 다녔다. 밤에 직장인들이 많이 왔다. 편안히 먹고 살 정도는 벌었다. 음악 교사 할 때 월급이 68만원인데, 저녁에 아르바이트로 300만원 넘게 벌었다. 입시생 대상으로 작곡 개인레슨을 했다.

그렇게 돈도 잘 벌었는데 유학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음악 교사를 할 때 다른 선배 교사들을 보면서 나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결과적으로 그때 유학 가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유학 가서 공부할 때나 또 졸업 후 세계를 다니면서도 열심히 했다. 나는 외국을 다니면서 내가 동아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한 번도 불이익을 당한 적이 없다. 그런데 한국은 항상 나를 19살로 돌아가게 만든다. 한국에만 오면 꼭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로 판단의 기준을 삼는다. 머리가 늦게 깨일 수도 있고, 또 새롭게 공부를 많이 해서 달라질 수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고작 18년 동안의 삶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 아쉽다. 음악을 전공한 이후의 35년 동안의 공부와 경험은 무시하고 ….

최근 몇 년 새 한국의 클래식 연주자들이 세계 유명 콩쿠르에서 잇따라 수상을 하고 있다. 한국 클래식 음악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일부에서 세계적이라고들 하는데, 개인적인 테크닉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한국의 음악가들이 세계적인 콩쿨을 휩쓸고 있고, 한국에서만 공부한 음악가들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인 단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가 뭔가.

우선 한국의 교육환경에서 찾고 싶다. 친구를 밟고 일어서야하는 ‘비정한 교육’이다. 유럽 교육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행복을 지향한다. 토론을 할 때도 나의 목소리만을 고집하기보다는 남의 소리를 듣는 교육을 많이 시킨다. 이것이 유럽 오케스트라가 화합하고 합주를 잘하는 비결이 아닌가 생각한다.

음악 교육을 중심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러시아에서는 합창이나 타악기 등 음악의 기초적인 교육을 많이 시킨다. 합창 수업을 하면서 계속 옆 사람의 소리를 듣는 훈련을 시킨다. 또 악기를 시작하여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함께하는 앙상블교육을 많이 시킨다. 앙상블을 할 때는 나를 나타내기보다 옆 사람과 조화를 시키는 훈련을 시킨다. 러시아나 유럽은 솔로보다는 오케스트라나 합주교육을 많이 하는데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거의가 솔리스트 위주의 개인기량 향상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니 혼자는 잘 하는데, 같이 붙여놓으면 화음이 잘 되지 않는다.

앙상블의 비결은 테크닉이 아니라 시스템


▎지휘자의 중요한 조건은 단원들을 사랑하고 챙겨주는 것이다. 음악 안에서는 인종차별이 없고 말이 필요 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유럽과 한국의 차이군요.

서울시향이나 KBS 교향악단은 물론이고 민간오케스트라 조차도 단원들의 수준이 대단하다. 그런데 문제는 앙상블이다. 유럽 오케스트라에서 보이는 앙상블의 비결은 테크닉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경우, 악장을 제외한 모든 단원이 같은 류의 악기를 사용한다. 출근하는 순간 개인 악기는 두고, 빈 필이 제공하는 악기로 연주한다. 그러니까 음색과 느낌이 비슷하다. 단원을 뽑을 때도 테크닉이 좋다고 뽑지 않고, 빈 필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지를 많이 본다. 러시아나 유럽 오케스트라는 항상 전속 공연장에서 연습을 하다보니까 공연 때도 어색하지 않게 바로 적응할 수가 있다.

러시아의 클래식 음악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모스크바에는 정기연주를 하는 등록된 오케스트라만 40개 이상인데 그중에 월급을 받는 오케스트라만 20개 이상이며 10개 이상이 세계적 수준이다. 유럽의 도시의 문화 수준은 오케스트라 수준과 비례한다. 러시아 어느 도시를 가도 오페라 극장과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있다. 지금 세계 어느 나라를 가나 중요한 음악교수는 러시아 사람이다. 러시아 교수들 때문에 클래식 음악이 러시아화 되고 있다고들 걱정할 정도다. 그러나 러시아 클래식 음악의 뿌리는 고작 200년에 불과하다.

왜 200년밖에 안됐나.

러시아 사람들은 240년간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시대를 증오한다. 야생적인 유목문화를 클래식한 유럽처럼 바꾸고 싶어 했다. 1703년 러시아의 피터 대제가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장대한 도시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새로운 도시(상트 페테르부르그)를 짓게 되었다. 1713년 상트 페테르부르그로 수도를 옮기고 유럽 클래식 문화와 선진 문물을 하나씩 새롭게 받아들인다.

아시아의 클래식 음악 수준은 어떤가.

지금 세계의 중심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넘어오는 느낌을 받는다. 중국에서 일고 있는 클래식 음악의 붐은 대단하다. 그러나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몇몇 곳을 제외하면 한국의 80년대 수준이다. 한국에서 자리가 없어서 고민하는 유능한 후배들이 중국으로 진출해보길 권한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에서 아쉬운 것은.

국립과 민간 오페라단이 등록된 게 100개 이상 되는데, 시스템을 갖춘 국립이나 시립 오페라단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시스템을 갖춘 오페라단이란 어떤 것을 말하나.

시스템을 갖추었다는 것은 우선 상주하는 성악가 즉 오페라 가수가 있어야 한다. 보통 40~100명이 있다. 오페라 반주는 특이하다. 그래서 오페라와 발레 전속 오케스트라가 있어야 한다. 또 발레단이 있어야 하고, 전문 무대 제작팀, 전문 의상 제작팀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것을 갖추면 보통 300~700명의 상주 직원이 있어야 한다.

예술가란? 세상을 바꾸는 사람

가난한 사람이 클래식 음악 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예술은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어울린다. 태어나서부터 또 자라면서 엘리트 교육만 받은 사람들은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지 못한다. 남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아픔을 알고 위로할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다.

교육비가 비싸지 않나.

유럽은 거의 예술교육이 무료다. 러시아도 음악학교가 다 무료다. 최근에 유럽의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일부에서 돈을 받기도 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거의 무료다. 한국은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가니까 쉽지는 않지만, 이미 많이 바뀌고 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소도시는 물론이고 시골에까지도 거의 무료로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다. ‘꿈의 오케스트라’ 같은 것이다. 정부주도로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좋은 선생님을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외딴 곳에 가는 선생님에게는 강의료를 더 많이 지원해야한다.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는.

베토벤, 모차르트, 라흐마니노프 등을 좋아한다.

예술가란?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다. 예술가가 자기 밥벌이를 하기 위해 예술을 해선 안 된다. 정신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걸 통해서 행복을 느끼게 하고 정신적 치유를 하려고 해야지. 설령 세상이 돈만을 따라가더라도 예술가는 다른 행복이 있다는 것을 제시해 줘야지. 안 보이는 정신적 행복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지휘자의 중요한 조건은?

인품이다. 단원들을 사랑하고 챙겨주는 것이다. 또 단원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이다. 절대 동양인이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음악 안에서는 인종차별이 없고 말이 필요 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

배영대 - 2014~15년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문화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서강대에서 동양철학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608호 (201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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