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증강현실(AR) 

의료·교통·국방·교육까지 ‘팔방미인’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포켓몬고(Pokemon Go) 열풍이 증강현실(AR)에 대한 폭발적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AR 기술은 실제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의 혼합현실(MR) 전문 스타트업 매직리프가 개발 중인 MR 기술의 구현 장면. 농구장에 실제 고래 같은 거대한 디지털 콘텐트가 솟구쳐 오르는 MR 영상을 만드는 등 진짜 현실에 실감나는 디지털 콘텐트가 등장한다.
“포켓몬고 열풍으로 AR이 정말 대단한 기술이란 게 증명됐다. AR 시장은 앞으로 매우 크게 성장할 것이다. 애플도 AR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지난 7월 26일(현지시간) 팀 쿡 애플 최고 경영자(CEO)의 목소리는 들떠있었다. 애플의 올 4~6월 실적 발표가 끝난 뒤 그는 애플에 대한 얘기보다 최근 닌텐도가 북미·유럽·일본 등지에서 출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했다. AR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 다른 기술이다. VR은 진짜 현실이 아닌 가상의 영상을 제공하지만 AR은 포켓몬고에서 처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 눈앞에 보이는 진짜 현실을 배경으로 일부 가상의 존재를 등장시킨다. 세계 IT 업계를 이끄는 애플의 수장마저 놀라게 한 AR 기술은 실제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게임으로 먼저 유명해졌지만 의료·교통·국방·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활용되고 있거나, 본격적인 활용을 눈앞에 뒀다.

먼저 의료 분야에선 각종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쓰일 수 있다. 예컨대 근육을 다친 환자가 병원을 찾으면, 지금껏 의사는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등의 검사 사진을 보며 진단했다. AR 기술은 환부의 3차원(3D) 이미지를 모아 환자의 신체 위에 겹쳐 보여준다. 환자는 보다 쉽게 환부를 관찰하면서 의사와 증상·치료법을 논의할 수 있다.

3D 프린터로 미리 가상의 수술 가능


▎AR 기술은 관광·교통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울산 암각화박물관에서 관광객들이 반구대 암각화 모형을 활용한 AR 체험을 하고 있다.
광주 조선대병원은 미래창조과학부와 이같은 AR 기반의 미래형 의료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환자에게 센서를 부착하면 환자가 몸을 움직여도 3D 환부가 따라 움직인다. 3D 프린터로는 미리 가상의 수술도 해볼 수 있다. 여기서 기술이 더 발전하면 집에서 ‘특수 의자’에 앉아 실시간 건강검진을 받거나, 구급 상황 때 AR로 응급처치 처방을 받을 수 있다.

교통 분야에선 2000년대 들어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도입했고, 2012년 기아자동차도 ‘K9’에 처음 적용한 헤드업디스플레이(HUD)가 AR 기술의 하나다. 차량 운전석 앞에 계기판 형태 화면으로 나타나며, 운전자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도 주행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신차에 이 기술이 적용된다. AR 기술을 더한 내비게이션도 상용화됐다. 팅크웨어가 2014년 국내 첫 AR 기반 내비게이션인 ‘아이나비 X1’을 출시했고, 파인 디지털도 지난해 말 AR 기반의 ‘G1.0’을 선보였다. 눈앞의 실제 도로 영상 위에 지도와 주행 방향, 현재 속력, 남은 거리 같은 가상 그래픽이 나타난다. 박혜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미래 AR 기술은 모든 교통 상황을 인지, 사용자 시야에 맞게 주행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방 분야에서도 AR은 유용한 기술이다. 애초 AR의 기반 기술인 GPS는 미국 국방부가 개발해 군사용으로 쓰다가 1983년부터 민간에서 사용됐다. 2000년 민간 GPS 관련 규제가 추가로 완화되면서 한층 정밀한 GPS 활용이 가능해졌다. 전력 강화에 힘쓰는 세계 각국 군대가 훈련 중 AR 기술을 활용하면 주요 장소의 지형을 지금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비용 절감과 특수 작전의 반복 수행에도 효과적이다.

교육에선 AR 기술 도입이 한창 추진되고 있다. 교육부는 2018년 초등학교 3~4학년과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AR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키로 했다. 교과서 속 위인들의 가상 이미지가 교실에 구현되는 식이다. 교육부는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초·중등학교 디지털 교과서 국·검정 구분안’을 행정 예고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집중력이 약했던 학생들도 몰입해서 사회·과학·영어 등의 과목을 배우게 될 것”이라며 “콘텐트를 계속 보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건축·관광·쇼핑·제조 등 분야에서도 AR 기술은 점차 중요해질 전망이다.

AR과 VR 장점 겸비한 혼합현실(MR)도

AR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AR과 VR이 합쳐진 혼합현실(Mixed Reality)이란 기술도 있다. 미국 정부는 2000년대 중반 이 용어를 쓰면서 ‘10대 미래 핵심 전략 기술’의 하나로 지정했다. MR은 현실과의 상호 작용이 가능한 AR과 흡입력이 강한 VR 각각의 장점을 겸비했다. 지난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게임개발자회의(GDC) 2016’에서 캐나다의 AR 업체 슬론은 MR 헤드셋 ‘슬론Q’를 공개했다. 사용자가 방에서 특수 안경을 쓰고 동화책을 보면 책 속에서 콩이 튀어나와 바닥에 싹을 틔우고, 거인이 방에 들어와 말을 거는 식이다. 영화 속 특수 효과와 같은 화려한 디지털 콘텐트가 진짜 현실에서 상호 작용을 한다.

글로벌 IT 공룡들은 MR의 흥행 잠재력이 클 것으로 보고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MR 전문 스타트업 매직리프는 2014년 구글과 퀄컴 등으로부터 5억4200만 달러를 투자 받은 데 이어, 지난 2월 중국의 알리바바 등으로부터 IT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인 7억9350만 달러(약 9000억원)를 추가 유치했다. 이 회사는 농구장에 실제 고래 같은 거대한 디지털 콘텐트가 솟구쳐 오르는 MR 영상을 만드는 등, 별도의 VR 기기 없이도 AR과 VR의 장점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최신 기술로 업계의 관심을 모은다.

시장조사업체 디지캐피털은 세계 AR 시장이 올해 30억 달러에서 2020년 1200억 달러(약 136조원)로 40배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VR 시장을 합하면 1500억 달러, MR 시장을 더하면 이보다 큰 규모다. 미래부에 따르면 2014년 6770억원가량이던 국내 AR·VR 시장 규모는 2020년 약 6조원으로 연평균 40%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급성장하는 시장을 잡으려면 유념해야 할 보완점도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해외 기업들보다 기술이 크게 뒤처지진 않았지만, 가진 기술의 활용 범위가 좁다”며 “기술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특허청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출원된 AR 관련 특허는 교육 등 일부 분야에만 집중됐다. 스마트카·스마트홈 등 차세대 산업을 이끌 사물인터넷(IoT) 분야에선 특허 출원 사례가 미미했다. 게다가 포켓몬고가 유명세를 치르면서 향후 게임 쪽에만 AR 관련 투자가 집중될 거란 우려도 나온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201609호 (201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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