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우주를 담은 섬나라, 아이슬란드 

얼음의 땅에 펄펄 끓는 청춘이 있었네 

글·사진 이진섭(브랜드매니저/팝 칼럼니스트 『살면서 꼭 한번 아이슬란드』 저자)
TV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인터스텔라> 등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청춘의 끓는점을 느끼고 싶다면, 아이슬란드행 비행기 표를 끊으면 된다.

▎엉겁의 세월을 버틴 얼음대지, 곳곳에 보이는 폭포 등 거대한 자연이 만들어낸 장관과 그 숭고함은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사진은 아이슬란드 관광명소 굴포스.
영화 한 편에 개인의 삶의 가치와 방향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30대 오르막 길에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만났다. 이 영화는 살면서 딱히 특별한 경험을 해 본 적 없는 소심한 주인공 월터가 사진작가 션 오코넬을 찾는 과정에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난다는 내용이다. 그 후 이 영화를 몇 번 더 보았는데, 그 때마다 월터가 아이슬란드 93번 도로를 스케이트보드로 활강하는 장면에서, 마음 속에서 무언가 꿈틀대면서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어느 날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는 마음먹었다.

‘아이슬란드로 가자’.

대략 7년 동안 브랜드 매니저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틈틈이 음악과 여행에 관한 글을 써 왔다. 나는 아이슬란드 여행에도 음악을 적극적인 동행으로 삼기로 했다. 사실 아이슬란드로 이끈 것은 월터가 달리는 장면만이 아니라, 배경으로 깔린 두 노래,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와 호세 곤잘레스의 ‘Stay Alive’ 때문이기도 했다. 풍경과 음악이 절묘하게 부딪쳐 매우 생소하기만 했던 나라 아이슬란드로 날 밀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 충동질은 다름아니라 질문이었다. ‘너는 살아있는가.’

얼음과 화산이 요동치는 나라


▎여행자들은 청백색의 유황온천 휴양지 블루라군에 들러 여독을 풀기도 한다.
아이슬란드, 인구 34만명의 작은 섬나라. 국토중 70% 가량이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불모지이고, 12% 가량은 빙하로 덮여 있으며, 약 150여 개의 활화산이 시시 때때로 요동친다. 그곳에 나는 지난 3년 동안 3번의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와 연애가 시작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처음에는 호기심, 두 번째는 이끌림, 그리고 세 번째는 매료됨. 아이슬란드에 다녀올 때마다 나는 무언가에 완전히 사로잡힌 것처럼 또 다시 그곳에 가겠노라고 마음으로 다짐했다.

아이슬란드인들은 874년 노르웨이인(바이킹)들을 뿌리로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두 나라의 국기는 색깔만 다를 뿐 십자가 디자인이 똑같다. 빨간색 바탕에 파란색 십자가가 노르웨이 국기, 파란색 바탕에 빨간색 십자가가 아이슬란드 국기다. 북유럽에 길게 늘어선 노르웨이의 서쪽, 북위 64도에 아이슬란드가 위치한다. 조상들로부터 이어받은 DNA 때문인지 몰라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든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곧 떠날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처음 그곳을 여행할 때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시크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아이슬란드로 향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빛의 섬광 오로라, 이글거리는 마그마와 요동치는 화산지대, 엉겁의 세월을 버틴 얼음 대지, 곳곳에 보이는 폭포 등 거대한 자연이 만들어낸 장관과 그 숭고함은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하지만, 이게 아이슬란드의 전부는 아니다.

아이슬란드 영토를 반지처럼 감은 1번 도로, 예술의 기운이 감도는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ik), 검은 모래 사장이 펼쳐진 해안 마을 비크(Vik), 도로 상태와 천운이 따라야 갈 수 있는 서부 피오르드(Vestfirðir), 여름에만 진입할 수 있는 화산지대 사막 하이랜드(Halendið), 빙하의 다이아몬드 광채를 경험할 수 있는 외퀼사우를론(요쿨살론, Jokulsarlon), 겨울 여행자의 특권인 얼음 동굴 바트나외퀴들(바트나요쿨, Vatnajokull) 은 떠올리기만 하면 새삼 설렌다. 여행과 회상은 마음의 지형을 조금씩 바꿔 삶을 다르게 살게도 한다. 이런 경험을 누군가 함께 나누면 그 만남을 더 풍부하게 하지 않겠나.

예술적인, 너무나 예술적인 레이캬비크


▎수도 레이캬비크는 교회까지도 예술적이다. 사진은 레이캬비크의 할그림스키르캬.
수도 레이캬비크, 연기의 항구라는 뜻의 이 도시에는 12만명의 사람들이 모여산다. 아이슬란드의 총 인구가 약 33만명 정도니, 전체 국민의 1/3 이상이 수도에 몰린 셈이다. 도시에는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보라 제각각의 색을 낸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니, 무지개 같다. 화산, 지진, 거센 바람이 있는 매서운 자연의 놀이터가 사람들의 삶을 심미적 태도로 변화시킨 건지 모르겠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는 예술적이다. 집, 교회, 가게, 사람들의 걷는 모양, 심지어 공기까지도.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대개 차를 빌려 1번 도로, 링 로드를 따라 여행한다. 링 로드의 총 거리는 1,332㎞.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세 배 정도다. 2차선에서 1차선을 오가며 점점 긴장감을 조여오는 도로, 불쑥불쑥 시야를 치고 들어오는 바위산, 만년설과 구름의 경계가 없는 하늘, 지열을 견디지 못하고 둥둥 떠올라 바다로 흘러가는 빙하들, 들쭉날쭉 펼쳐진 해안선, 뱀이 기어가듯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는 수많은 구릉들, 뽀글뽀글 끓어오르는 마그마 지대… 이 모든 것들이 링 로드 위에 펼쳐진다.

링 로드를 따라 아이슬란드 남부 해안을 달리면 고원, 녹지대, 주상절리, 폭포, 빙하가 한데 공존하는 스카프타페들 국립공원과 마주하게 된다. 얼음 덩어리들과 불속에는 무슨 예술혼이라도 있는 건지, 차가운 빙하와 뜨거운 지열의 공동 창작물은 인간이 상상치 못했던 세계로 인도한다. 이곳에서는 넓게 펼쳐진 빙하 위를 걷는 트래킹을 즐길 수 있다. 화산재와 검은 퇴적물이 훑고 간 빙하를 걸으면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여행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배경이기도 한 이 얼음 대지는 검정이 빛이 될 수 있다는 형용 모순, 불가능의 상태를 선사했다.

얼음 궁전, 얼음 동굴… 겨울 왕국


▎화산지대 흐베리르. 유황 냄새 가득한 황토 벌판으로, 곳곳에 검은 진흙이 부글부글 끓는 웅덩이가 있다.
스카프타페들 국립공원에서 내륙으로 더 들어가면 아이슬란드 최대 빙하지대인 바트나외퀴들 국립공원과 만난다. 이곳의 빙하는 빙원(지표의 전면이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는 극지방의 벌판) 면적만 해도 8,099㎢로, 아이슬란드 국토의 약 8%를 차지한다. 얼음의 두께가 최대 1㎞ 정도 된다. 이 빙하는 아이슬란드 남부와 북부에 유입되어 또 다른 비경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늘과 맞닿은 만년설의 평온함과 빙하 권곡(카르, Kar)의 웅장함은 한 인간이 대면하기에 버거울 정도다. 여기에 빙하와 열수구로 설계된 얼음 궁전, 바트나외퀴들 얼음 동굴까지 겨울 왕국이 따로 없다. 군청색, 담청색 순간순간 변하는 반투명한 얼음색은 태어나서 처음 본 오묘한 빛깔이다.

이 외에도 뜨거운 용암이 대지를 누렇게 달궈놓은 흐베리르, 북쪽의 거대 호수지대 미바튼, 유럽에서 가장 힘찬 폭포라고 하는 데티포스 등 여행자의 모든 감정을 흔들어 놓는 시공간이 아이슬란드 곳곳에 존재한다. 아이슬란드 여행자들은 이렇게 곳곳을 누비다, 청백색 유황온천 휴양지, 블루라군에 들러 여독을 풀기도 한다. 아이슬란드는 전역이 오로라 관측 가능 지역이다.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시기는 9월 말~ 4월 초로 달의 생성기 및 소멸기(보름달일 때는 오로라 관측이 힘들다)에 가능하다. 맑고 구름이 적은 날씨에 인공광이 적은 탁 트인 지대가 관측에 최적이다.

아이슬란드 곳곳을 누비는 동안, 나는 음악과 함께 했다. 아이슬란드의 소리를 느끼고, 흠뻑 젖어 시간을 보내다 결국 그곳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을 감상한 것을 책 『살면서 꼭 한번 아이슬란드』로 담아낼 수 있었다. 얼음의 땅 아이슬란드에서 펄펄 끓는 청춘을 즐기며, 청춘의 언어인 음악으로 그곳을 감상했다. 그리고, 또 다른 아이슬란드 여행을 꿈꾼다.

- 글·사진 이진섭(브랜드매니저/팝 칼럼니스트 『살면서 꼭 한번 아이슬란드』 저자)

여행메모


▎음악과 함께한 아이슬란드 여행기 『살면서 꼭 한번 아이슬란드』 (중앙북스)
가는 길: 한국에서 아이슬란드까지 직항편은 없다. 암스테르담, 런던, 헬싱키, 코펜하겐 등 유럽 거점 도시를 거쳐 아이슬란드로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입국비자는 필요 없고, 렌터카 여행을 위해 국제면허증을 챙겨야 한다.

숙소: 아이슬란드의 도시와 마을에는 대개 레지던스 호텔 정도의 숙소가 마련되어있다. 수도 레이캬비크에는 힐튼, 아이슬란드 라이트 호텔 등 고급호텔도 있는 편이다. 에어비앤비나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숙소에 들러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다.

여행팁: 마음을 활짝 열고, 아이슬란드 탐험을 즐기면 된다. 단, 짓궂은 아이슬란드 날씨를 대비해 매일 여행 전 아이슬란드 기상청에 접속해 도로와 날씨를 확인하고 즐기면 더 좋다. 렌터카 여행자들은 과속하지 말고, 방어운전하면서 자연에 서서히 물들면 된다.

201609호 (201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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