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Home>포브스>Management

김동호의 경영의 정석(9) 일류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 

획기적인 진전은 대형 실패를 겪으면서 나온다 

김동호 중앙일보 논설위원 dongho@joongang.co.kr
정보기술(IT)의 결정체인 스마트폰 중에서도 최상의 제품으로 꼽혔던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의 단종 사태는 모든 기업이 지켜봐야 할 세기적 사건이다. 어느 기업이라도 한 번 발을 헛딛으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서다.

▎갤럭시 노트7의 단종 사태는 어느 기업이라도 한 번 발을 헛딛으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업은 언제나 위기에 직면한다. 라이벌 기업이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해 시장을 휩쓸거나, 경기 침체로 판매 실적이 나빠지면 생존 기반이 흔들린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제품에 문제가 생길 때다. 소비자가 하루 아침에 등을 돌리고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져 재기 불능의 상태로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이 위기에 빠지는 것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위기에 빠지는 것 자체가 아니라 위기에 직면했을 때의 관리능력이다. 얼마나 빨리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느냐에 따라 한 단계 더 도약할 수도 있고, 완전히 도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노트7 사태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살아 있는 기업 위기관리 능력의 교본이 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위기에 빠져 왔는데 어떤 기업은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해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기업은 회복 불능의 상태로 추락하는 사태를 피할 수 없었다.

노트7 사태와 관련해 앞으로 지켜볼 부분은 삼성전자의 회복력(resilience)이다. 기업이나 사람이나 누구든 실수하고 위기에 직면한다. 더구나 선두에 서 있으면 그런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더 크다. 추종자들은 학습효과에 의해 빠르게 선두주자를 모방하면서 따라오기 때문에 추격을 뿌리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변신을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위기에 빠질 일도 없다. 그래서 기업도 퍼스트 펭귄만이 늘 앞서갈 수밖에 없다.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거나 상어 먹이로 희생될 수 있지만, 가장 빠르게 먹이를 발견하려면 먼저 바다에 뛰어들어야 경쟁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

회복력은 조직의 저력과 역량의 총화이기도 하다. 어느 기업은 위기를 극복하고 다른 기업은 회복 불능의 사태로 빠지는 것도 회복력의 차이다. 삼성전자가 노트7 사태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유명한 사건들로는 바비 인형과 타이레놀, 도요타와 소니 사태를 꼽을 수 있다. 이들 사례는 삼성전자는 물론이고 모든 기업에 반면 교사가 될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모범 사례로 기억되고 있지만 다른 일부는 대처가 미흡했던 사례로 남았다. 바비 인형과 타이레놀은 대처를 잘해 전화위복이 됐지만, 도요타와 소니는 초기 대응에 실패해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다만 도요타는 뒤늦게 제대로 된 대응에 나서 위기를 관리할 수 있었지만, 소니는 끝내 미숙한 대응으로 일관하다 심각한 손상을 입고 글로벌 순위 경쟁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회복력은 조직의 저력과 역량의 총화다


▎타이레놀을 제조하는 존슨앤존슨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시장에 공급된 타이레놀을 깡그리 회수했다. 문제 해결 과정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후속 보상 대책도 빠르게 제시해 소비자의 신뢰를 지켜냈다.
바비 인형을 만드는 마텔의 리콜 사례부터 살펴보자. 마텔은 2008년 납 성분이 검출되는 등 제품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한 달에 무려 세 차례 리콜을 실시했다. 아이들 둔 30~40대 젋은 부모를 중심으로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자 ‘장난감 왕국’이 곧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분위기 반전은 최고 경영자 로버트 에커트가 직접 방송뉴스에 출연해 리콜 요령을 소개하고 언론에 사과문을 게재하면서 극적으로 회복했다. 에커트는 사과문에서 납 성분이 장난감에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든 3단계 조치를 명료하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모들 마음을 헤아려 바로 행동에 나섰다. 자세한 안내를 담은 리콜 설명서를 만들고 회사가 부담하는 리콜 우편 양식도 내려받을 수 있게 했다.

타이레놀 사태는 더욱 극적으로 전개됐다. 1982년 9월 당시 12살 소녀인 메리 켈러만이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사망하면서 사태가 시작됐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타이레놀을 복용한 사람이 연쇄적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레놀의 잘못이 아니라 누군가의 악의적인 테러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타이레놀을 제조하는 존슨앤존슨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시장에 공급된 타이레놀 3100만 병을 깡그리 회수했다. 언론에 적극적으로 처리 과정을 소개하면서 문제 해결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후속 보상 대책도 빠르게 제시해 소비자의 신뢰를 지켜냈다.

도요타의 경우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태의 전개 과정이 삼성전자의 상황과 닮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리콜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 기술력과 시장점유율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삼성전자 역시 스마트폰의 원조 애플을 제치고 기술력과 시장 점유율이 절정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애플을 확실히 제치고자 노트7의 출시 시기를 다소 앞당긴 이유이기도 하다.

도요타 사태를 다시 회상해보자. 도요타는 2008년 자동차 기술의 총아라고 자부하던 프리우스의 급제동 논란이 불거지자 이를 무시하고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고객의 불만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블랙컨슈머의 불평쯤으로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인리히 법칙을 피해가지 못했다. 하인리히 법칙은 하나의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300개의 작은 징후가 나타나고 10여 건의 굵직한 예비적 조짐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고객의 인내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 드디어 도요타를 궁지로 몰아넣은 사고가 터졌다.

2009년 가을이었다. 도요타의 간판 프리미엄 세단인 렉서스 ES350 차량의 급발진으로 캘리포니아주에서 일가족 4명이 숨진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이 차량에 타고 있던 운전자는 다급한 목소리로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는 음성통화를 남겼다. 첫 사고가 알려진 뒤 도요타의 대응은 최악이었다. “바닥 매트 때문에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무책임한 해명뿐이었다. 그러던 도요타는 “원인을 숨기는데 급급하다”는 비난 여론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도요타에 분노한 고객이 문제가 불거진 프리우스는 물론 고급 기종인 렉서스에 대해서도 불신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하자 품질 문제는 도요타가 생산하는 차량 전체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확산되고 리콜 명령이 잇따르자 도요타는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수습에 나섰다. 사태가 처음 불거진 지 6개월만인 2010년 2월 24일, 미국 하원 청문회에 출석한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 사장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 숙였다.

하지만 렉서스ㆍ프리우스ㆍ캠리를 포함해 1000만 대 이상의 차량을 리콜하기에 이르렀다. 2009년 세계 1위에 올랐던 자동차 판매량은 2011년 4위로 추락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결과였다. 도요타 리콜 사태는 삼성전자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시나리오였다. 다행스럽게 삼성전자는 도요타처럼 문제를 은폐하거나 축소시키지 않았다. 현재의 상황도 일단은 다르게 흘러가는 분위기다. 빠른 리콜과 사과에 이어 강도 높은 후속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소니의 사례다. 2006년 미국 델 컴퓨터에 포함된 소니의 리튬이온 배터리 팩이 과열로 발화하는 사례가 수 차례 발생하면서 대규모 리콜 사태를 맞았다. 당시 리콜 대상 배터리 팩은 960만 개에 이르렀고 소니는 이를 통해 삼성SDIㆍLG화학ㆍ파나소닉 등 경쟁업체에 밀려나는 빌미를 제공했다. 당시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에서 최강의 자리를 지키던 소니였지만 대규모 리콜은 순식간에 소니의 경쟁력에 결정타를 날렸다. 품질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면서다. 정글이나 다름없는 글로벌 시장에서 품질 논란은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소니는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올해 7월 리튬이온 배터리 사업부를 무라타제작소에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1975년 전지사업을 시작해 1991년 리튬이온전지를 세계 최초로 상품화했던 소니가 스스로 사업을 포기한 것은 글로벌 기업 경쟁에서 한 번의 실수가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도요타와 소니의 실패 사례에서 얻는 교훈


▎도요타가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면서다. 부품의 결함을 인정하고 환골탈태를 선언했다. 사진은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 사장이 2010년 2월 9일 일본 도쿄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렉서스 급발진 사고로 촉발된 대량 리콜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있는 장면.
소니는 배터리 발화 사건 이후 최근까지 10년간 글로벌 시장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식 경영을 도입해 보기도 했고, 신제품을 내놓아 보기도 했지만 소비자의 신뢰가 예전만 못하다. 한 번 무너진 신뢰를 되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잘 나가고 자신감이 충만했던 때 한 번 삐끗한 일을 계기로 오랫동안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니의 실패는 삼성전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다시 도요타의 회복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요타는 미국 정부의 리콜 명령과 미국 언론의 배싱(때리기)이 쇄도하자 처음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도요타는 렉서스와 프리우스를 앞세워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휩쓸고 있었을 때였으니 갑자기 난처한 상황에 대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마치 사막의 신기루가 사라지는 듯 한 번의 방심으로 신뢰가 무너지자 수습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도요타의 품질 위기는 세계 1등을 목표로 급격히 덩치를 키우는 과정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삼성전자와 공통점이다. 해외생산을 급격히 확대하면서 해외에서 생산하는 부품이 늘어나자 품질관리에 구멍이 뚫렸던 것이다. 당시 도요타는 주력 차종에 대해 “도요타가 가진 기술력을 모두 집대성한 작품”이라는 자부감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해외생산이 늘어나면서 품질 관리에는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렉서스 급발진 사고가 발생한 뒤에도 한동안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전자제어(ETC)시스템의 결함을 급발진의 원인으로 의심했지만 도요타는 매트가 브레이크에 걸려 사고가 났을 것이란 안이한 대응에 나섰다.

도요타가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면서다. 부품의 결함을 인정하고 환골탈태를 선언했다. 이를 위해 글로벌 품질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근본적인 품질 정비에 나섰다. 도요타 사장은 “신뢰 회복을 위해 일치단결해 협력해 나가는 것이 내게 주어진 역할”이라며 직원들의 동요를 가라앉히고 단합심을 이끌어냈다. 이 결과 2011년 자동차 판매량 세계 4위로 추락했던 도요타는 2012년 자동차 판매량 세계 1위를 탈환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는 이제 기로에 섰다. 마텔과 타이레놀 쪽으로 사태를 반전시킬지, 소니처럼 계속 미궁으로 빠져들지는 노트7 처리가 시금석이 될 수 있어서다. 사태 수습의 실마리는 노트7에 대한 신화에서 벗어나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애플과의 극한 경쟁에서 승부수를 걸기 위해 홍채 인식과 방수기능을 들고 나왔다. 이는 마치 소니가 기술력을 과시하며 첨단 사양의 제품을 내놓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소니는 뒤를 추격하는 삼성전자를 따돌리기 위해 당시 재래식 휴대전화였던 피쳐폰의 기능을 최첨단으로 끌어올렸다. 기능이 너무 많아 소비자가 복잡해 오히려 불편하다는 불평까지 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본으로 돌아가 집요하게 실패 원인 규명해야


▎조기에 단종된 갤럭시 노트7. 하지만 스마트폰 제조사도 아직 가보지 못한 첨단 기능의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빚어진 발화 사건인만큼 삼성전자가 원인만 찾아내면 획기적인 도약을 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소니의 실패를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노트 7 발화의 원인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지만 다양한 첨단 기능을 한꺼번에 넣으면서 과부하가 걸린 결과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일반인들 사이에선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방수 기능을 사용할 일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는 점에도 귀를 기울이라는 얘기다. 방수기능은 전문가용으로 별도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기술력이 앞서갈수록 소비자 반응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소비자가 꼭 필요하지도 않을 기능까지 포함하는 것은 기술력을 과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과부하를 주고 가격을 높이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노트7은 배터리 분리형이 아니라 노트 모델에선 처음으로 파우치형으로 제작됐다. 방수기능을 위해 뚜껑을 완전히 닫는 파우치형 채택이 불가피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기술을 처음 적용하는데서 비롯됐을 수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열을 내고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방수가 될 정도로 완전히 밀폐돼 있으니 예기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 노트7 발화 사건을 보는 시각이다.

중요한 것은 회복력인데, 그 첫 단추는 발화 원인 규명이다. 어느 스마트폰 제조사도 아직 가보지 못한 첨단 기능의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빚어진 발화 사건인만큼 삼성전자가 원인만 찾아내면 획기적인 도약을 할 수 있다. 모든 기술은 실패를 딛고 한 단계 더 나갈 때 크게 진보한다. 획기적인 진전(breakthroughㆍ브레이크 쓰루)은 대형 실패를 겪으면서 나온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나카무라 슈지의 청색 발광 다이오드(LED)가 그런 경우다. 다이오드 분야 연구자들은 어느 누구도 청색 LED 개발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카무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디가 잘못됐는지 끊임없이 매달렸다. 결국 그의 성공은 수많은 실패가 발판이 된 셈이다.

삼성전자의 노트7 실패는 결코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극한의 기술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실패라는 점에서다. 중요한 것은 집요하게 실패의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비자 신뢰 회복이 어렵고 기술도 더 진전시키기 어렵다. 그 길을 찾는 것은 스마트폰 사업 이후 최대의 위기에 빠진 삼성전자의 몫이다.

기업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그 길에는 위기가 도사린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계기라는 얘기다.

김동호 - 중앙일보 논설위원. 경제와 산업에 관한 칼럼과 사설을 쓰고 매주 목요일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하고 있다. 쓴 책으로 『소니가 삼성에 따라잡힌 이유는』, 『대통령 경제사』 등이 있다.

201612호 (2016.11.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