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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경영의 정석(10) 기업 M&A를 통한 혁신전략 

손 안에 없으면 밖에서 사들여라 

김동호 중앙일보 논설위원 dongho@joongang.co.kr
경영자원 가운데 내부에 없는 자원은 외부에서 수혈해야 한다. 인재를 외부에서 데려오고, 특허를 사와야 기업이 목표로 하는 비전을 달성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 자동차 전자장비 전문기업인 하만을 인수하기로 한 것은 전형적인 M&A 전략이다.

▎삼성전자가 미국 자동차 전자장비 전문기업인 하만을 인수하기로 한 것은 전형적인 M&A 전략으로 국내 기업들에게 강력한 자극제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 손영권 전략혁신센터 사장(왼쪽), 하만의 디네쉬 팔리월 CEO(가운데), 삼성전자 박종환 부사장이 협력을 다짐하고 있다. / 삼성전자 제공
과거 영웅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얻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다. 유비가 제갈량을 삼고초려한 일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유비가 제갈량을 얻지 못했으면 역사는 이뤄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업의 경영원리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경영자원 가운데 내부에 없는 자원은 외부에서 수혈해야 한다. 인재를 외부에서 데려오고, 특허를 사와야 기업이 목표로 하는 비전을 달성할 수 있다. 내부에 아무리 뛰어난 인재가 있고 이런 인재를 모아둔 연구소가 있어도 바깥 세상의 스피드를 따라가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성장 기업들이 인수·합병(M&A)이라는 방법을 쓴다. 내부에 없는 기술이나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키워서 조직 목표를 달성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박빙의 승부차로 흥망이 결정되는 기업의 세계에서는 이런 식으로 경영을 할 수없다. 주저하는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역전을 당하거나 기회 자체가 봉쇄되는 리스크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11월 삼성전자가 미국 자동차 전자장비 전문 기업인 하만(Harman)을 80억 달러(약 9조4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한 것은 전형적인 M&A 전략이다. 국정문란 사건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가운데 전격적으로 발표된 사안이라 신선한 충격을 던졌던 사안이다. 더구나 불확실성이 높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시대여서 현금 보유를 선호하고 리스크를 회피하는 시점에 나온 과감한 베팅이라 국내 기업들에게 강력한 자극제가 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경제는 굴러가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한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다. 발표 직후 주가도 상승세로 돌아서 시장의 평가도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9조원대 M&A는 국내 기업 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렇게 거액의 베팅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국내 기업은 주로 내부에서 사업을 키워가는 것이 일반적인 경영의 전통이었기 때문이다. 파격적인 하만 인수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M&A가 경쟁우위 확보의 지름길이란 점은 현대 경영학의 구루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의 ‘다이아몬드 모형’을 통해서도 뒷받침될 수 있다. 포터는 외부 경쟁자, 공급업자, 소비자, 기술의 변화에 따라 경영환경이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전통적인 3차 산업에서는 시장의 리더가 되고 있지만 4차 산업에서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는 의미다.

M&A는 경쟁 우위 확보 위한 지름길


▎오디오 업체 하먼이 홈페이지에 ‘커넥티드카 세계 1위’라는 문구와 함께 띄워놓은 차량 내부 사진. / 하만 제공
지금까지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휴대전화, 디스플레이에서 강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서 이런 분야는 서서히 전통적인 산업 분야로 넘어가고 있다. 사물인터넷(IoT)이나 인공지능(AI)으로 융복합하지 않으면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새로운 블루오션이 전자제품화하고 있는 미래형 자동차에 있다고 본 것이다.

자동차에 인터넷 모바일을 연결한 자율형 자동차의 최종 완성형은 커넥티드카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커넥티드카에는 텔레매틱스와 인포테인먼트가 함께 융합돼 운전자는 이동하는 동안 책을 보거나 뮤직비디오 또는 영화를 볼 수 있고, 쇼핑도 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텔레매틱스와 인터넷 모바일이 결합되면 자동차는 사람보다 먼저 언덕길 너머 장애물을 파악하고 인공위성을 정밀한 위치를 파악하며 주장하는 자율주행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자체 기술로는 이런 역량을 확보할 수 없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물론 일본의 닌텐도의 증강현실(AR) 기술처럼 4차 산업혁명에 근접한 내부 기술이 많지 않은 탓이다. 이를 단숨에 뛰어넘는 카드가 하만 인수라고 할 수 있다.

하만은 전세계 최고급 오디오 브랜드를 싹쓸이하다시피 한 오디오 공룡이다. 최근 10여 년 동안 자동차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투자에 전력을 기울여 왔다. 인포테인먼트는 길 안내 같은 정보와 음악이나 영상 같은 콘텐트 제공을 합친 전자기기 체제를 말한다. 최고급 오디오 시장의 최강자인 하만은 이 같은 기술력을 차량용 오디오 시스템에서도 독보적인 기술력을 구축하는 지렛대로 활용해 왔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운영체제(OS)는 물론이고 각종 네트워크와 차량 간 통신을 제어하는 전자제어장치(ECU)까지 영역을 넓혔다.

삼성전자가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베팅한 것은 바로 이런 분야의 기술 역량이다. 하만의 기술체계는 곧 미래의 자동차인 커넥티드카 기술과 직결되고 있어서다. 커넥티드카 기술이 완성되면 실시간으로 도로 상황, 교통 상태 등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거나 차량 간 위치 정보를 공유해 자율주행 기술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완성차 업체들은 궁극적인 미래형 자율주행차의 완성형이 커넥티드카일 것으로 예상하고 집중적으로 투자해왔다. 지금도 세계 완성차 업체의 80% 가량이 하만의 OS와 소프트웨어를 직간접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만의 기술을 품게 되면서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회사 이미지를 조금 벗겨내고 앞으로는 자동차 부품회사로 명함을 내밀게 된다. 삼성전자는 2015년 12월 전장 사업팀을 신설하면서 이 분야에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이 분야 문외한인 삼성전자가 하만 같은 프로급 회사는 물론이고 벤츠·BMW·도요타·현대차 같은 글로벌 완성차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삼성전자는 과감하게 외부수혈을 통한 퀀텀 점프를 구상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휴대전화를 만들어봐야 중국의 수많은 후발주자에게 꼬리를 밟히는 것은 사실상 시간문제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커넥티드카로 주력분야를 옮겨가는 것이 기업의 성장과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카드라고 판단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삼성전자 차원에서 보면 3차 산업에서 4차 산업으로의 본격적인 전환이고 기술 시너지 효과가 큰 것도 고려됐을 것이다.

삼성전자가 강점을 갖고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통신기술 분야와 하만이 경쟁력을 갖춘 텔레매틱스·인포테인먼트 기술이 융복합되면 스스로 알아서 굴러가는 스마트카의 최종 형태인 자율주행차 시대의 강자가 될 수 있다. 자동차가 지능화·네트워크화되고 자율주행 기능이 강화되면서 자동차는 갈수록 전자제품화하고 있어서다. 내연기관을 구동되는 전통적인 차량 대신 전기차의 상용화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앞으로 배터리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 전기차가 보편화하면서 내연기관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날이 머지않아 올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현재의 자동차시장은 완전히 재편될 수밖에 없다. 자동차에 내연기관이 필요 없게 된다면 완성차 업계가 아닌 일반 회사도 얼마든지 차량을 만들 수 있다. 미국의 테슬라와 중국의 비야디가 내놓고 있는 전기차는 이미 그 가능성을 현실 세계로 옮겨놓았다. 테슬라는 지난해 하반기 하남 스타필드에 매장을 내고 전기차를 판매하고 있다. 비야디는 중국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세계 최대의 전기차 기업으로 성장해왔다.

삼성전자의 전장부품 사업 진출은 기술 변화의 격세지감을 실감하게 하는 이벤트이기도 한다. 삼성그룹은 1930년대 창업자 이병철이 양조장과 정미소를 거쳐 삼성상회를 세워 생필품을 파는 데서 비롯됐다. 그러다 먹고사는 데 필요한 수입대체 산업이 본격화하면서 삼성은 제일제당, 제일모직, 석유화학 산업으로 진화했다. 1980년대 들어 생존을 위해 도전한 산업이 바로 반도체였다. 기업의 산업정책을 일일이 점검하고 허가를 내줬던 정부는 물론이고 삼성 내부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막대한 시설투자가 들어가야 하고 이는 곧 기업의 존망이 걸린 문제여서다. 결과는 알 수 없었다. 비관론이 팽배했지만 삼성은 투자한 지 20년이 넘어서야 결실을 거두기 시작했다. 1995년을 전후해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3차 산업혁명이 궤도에 오르면서 반도체 특수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기업을 따라잡고 미국의 첨단 반도체 기업들도 차례로 따라잡은 것이 오늘날의 삼성전자의 위력이다.

M&A로 외부 기술 들여오는 개방형 혁신전략


▎SK텔레콤과 BMW·에릭슨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5G(5세대 이동통신) 기반 커넥티드카 기술에 도전하고 나섰다. 홀로그램 형태로 등장한 최진성 SK 텔레콤 종합기술원장(오른쪽)이 설명하고 있다. / 사진 장진영
하만의 인수는 기존의 성장모델이 한계를 보이면서 나온 새로운 도전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언제든 필요하다면 M&A를 통해 외부의 기술을 들여오는 개방형 혁신전략이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전장부품사업 진출을 추진해왔지만 거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서 삼성전자에게 기회가 왔다. 자동차 부품이 곧 전자제품이 되는 시대가 열리면서다. 현재 국내에서는 이 분야의 절대강자가 없는 상황이다.

현대모비스가 부품을 만들고 있지만 3차 산업 수준에 머물고 있다. 현대차의 주력이 기존의 내연기관차인 만큼 모비스의 시야도 이 범위를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자동차와 IT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 자동차 회사와 IT회사가 무한경쟁을 벌이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테슬라와 비야디가 성장할수록 기존 자동차 회사는 입지가 좁아진다. 이에 대응한 합종연횡도 활발하다. SK텔레콤과 BMW·에릭슨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5G(5세대 이동통신) 기반 커넥티드카 기술에 도전하고 나섰다.

2016년 11월 15일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총거리 2.6Km의 드라이빙센터 코너를 따라 일렬로 달리던 차량 ‘T5’ 두 대 중 앞차 운전자는 전방에 고장난 차량을 발견하고 급정거했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차량에 설치된 모니터에 즉각 ‘전방 장애물 주의’라는 경고 메시지가 떴다. 인터넷에 연결될 자동차를 의미하는 커넥티드카의 본격적인 등장을 예감하는 현장이었다.

SK텔레콤은 이 실험을 통해 영상인식·차량 이탈 방지 등 5가지 커넥티드카 기술을 모두 성공했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이 시연한 5G 통신망은 2.5GB짜리 초고화질(UHD)급 영화 1편을 1초에 내려 받을 수 있는 기술 체계다. 현재 주로 사용하는 LTE(4세대 이동통신)보다 200배나 전송 속도가 빠르다. 통신망의 전송 속도가 빠를수록 운전자에게 교통 정보를 더 빨리 전달할 수 있고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향상된다. 이같이 스마트카의 최종목표인 자율주행차의 실질적인 모습이 커넥티드카로 예상되면서 자동차와 IT기술의 결합 속도는 갈수록 빨라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하만을 과감하게 사들인 이유다.

국내외 산업계에서는 커넥티드카가 스마트폰처럼 자동차와 IT시장의 담장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운 기술세계를 탄생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에 앞서 도요타자동차와 현대자동차·구글·테슬라·비야디 같은 글로벌 자동차·IT 기업이 경쟁적으로 커넥티드카 사업에 뛰어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대차의 걸음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2016년 11월 8일 중국 구이저우(貴州)성에서 시스코와 커넥티드카 개발을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을 맺었다. 해외 첫 빅데이터 센터도 함께 구축된다. 이에 앞서 LG전자는 폴크스바겐과 2016년 7월 커넥티드카 기술을 공동개발하기로 했고, 도요타 역시 2016년 11월 커넥티드 전략 설명회를 열고 2020년까지 일본과 미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에 통신 기능을 탑재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와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도 커넥티드카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과감한 베팅은 생존을 위한 경영전략이다


▎현대차의 커넥티드카 연구진이 ‘더미’로 음성인식 실험을 하고 있다. 음성인식·블루투스 기술을 연구하는 이 랩은 현대차 커넥티드카 개발의 한 축이다. / 현대차 제공
삼성전자의 모험을 건 거액 투자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한때 세계 피쳐폰 시장 최강자였던 노키아가 시장 점유율에 안주해 스마트폰 개발을 등한시하는 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최근 커넥티드카 개발 경쟁 기업들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비약적인 기술발전이 일어나는 시대에는 과감한 베팅 없이는 한순간 사라지는 사태를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바짝 긴장해야 한다.

경제에는 국경이 없어진 시대가 되면서 기업은 생존을 위해 경영전략을 짜야 한다. 커넥티드카는 국내시장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LG전자가 이종 격투기를 벌이는 양상으로 진행될 수 있다. 또는 합종연행으로 상생을 추구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과거에는 영역이 달라 만날 일이 없었던 기업이 한 링 위에 올라가 융복합 기술력의 최고강자를 가리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완벽한 커넥티드카를 누가 먼저 내놓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대차나 벤츠, BMW, 도요타가 아니라 IT기업에서 먼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는 세상이 되고 있다. 뒤처지는 기업은 2인자가 아니라 노키아처럼 아예 시장에서 도태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이는 비단 자동차와 IT 업종에만 국한된 시나리오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본격화하면 AI와 IoT가 본격화하면서 어느 분야에서나 기술이 도태하거나 사라질 수 있다. 삼성전자가 쏘아올린 M&A를 통한 빅딜이 그 신호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미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는 과감하게 현금을 투자해 외부에서 수혈하는 것도 시간을 벌고 열위를 우위로 바꾸는 전략이란 점도 삼성전자의 하먼 인수 교훈이다. 이 전략이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앉아서 죽느니 뭐라도 해보는 야성적 충동과 도전만이 기업이 영속하는 길이다.

김동호 - 중앙일보 논설위원. 경제와 산업에 관한 칼럼과 사설을 쓰고 매주 목요일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하고 있다. 쓴 책으로 『소니가 삼성에 따라잡힌 이유는』, 『대통령 경제사』등이 있다.

201701호 (2016.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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