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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대동여지도(3) 광주 

애니메이션 허브 꿈꾸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광주광역시는 부산·대구와 비교하면 독특한 스타트업 생태계를 보여준다. ‘문화 콘텐트’를 중심으로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 중심은 애니메이션이다.

▎광주CGI센터에 자리를 잡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중앙애니메이션’. 중앙애니메이션이 광주에 터를 잡은 이유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필요한 각종 기기와 지원, 투자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광주광역시를 흔히 ‘빛고을’(光州)로 부른다. 요즘 들어 더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이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5월18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 조성계획 보고회’를 시작으로 2023년까지 국책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정치·경제·문화의 수도권 집중을 막는 국가균형발전사업의 일환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국책 사업을 서두에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다. 이 사업 덕분에 광주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문화 콘텐트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애니메이션은 광주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대표주자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광주만큼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이 좋은 곳도 드물다”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광주CGI센터 중심으로 애니메이션 스타트업 지원

광주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필요한 시설과 공간 그리고 제작을 위한 투자 환경을 잘 갖추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관련 재정이 문화 콘텐트 분야에 지원되면서 이런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초, 광주시 남구 송암로에 있는 광주 CGI센터를 방문했다. ‘원스톱 영상 기지’를 목표로 할 정도로 종합촬영스튜디오부터 편집 시스템까지 각종 제작 시설과 기기가 잘 갖춰져 있다. 심사를 거쳐 합격한 스튜디오에 한해 입주도 가능하다.

서울에서 활동하다 2015년 7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중앙애니메이션’을 창업한 한태식 대표와 제작진들도 CGI센터에 입주해 있다. 중앙애니메이션은 광주아시아문화펀드의 투자를 받아서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갤럭시 키즈’를 제작할 수 있었다. CGI센터의 도움을 받아 인도와 말레이시아 등 해외진출에도 성공했다. 한 대표는 “광주로 내려온 이유가 뭔가?”라는 질문에 “제작 환경이 좋고,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광주가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의 관심을 받게 된 계기는 ‘우당탕탕 아이쿠’로 대박을 친 마로스튜디오 덕분이다. 2007년 직원 3명이 창업한 마로스튜디오는 광주시의 지원으로 어린이 안전교육 애니메이션을 제작했고, EBS에서 방영되면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2012년 하반기에는 프랑스 등 해외 53개국에 수출되면서 뮤지컬, 출판, 캐릭터 등으로 사업영역도 확장했다. 문화 콘텐트 스타트업에 대한 꾸준한 지원이 빛을 보기 시작한 것. 이에 자극받은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이 광주로 내려와 스튜디오를 창업하기 시작했다.

‘우당탕탕 아이쿠’ 성공이 ‘파이어 로보’로 이어져


▎지난해 11월 광주광역시가 동구에 개관한 도심형 창업센터 ‘I-Plex 광주’의 내부 모습.
그 뒤를 이어받아 성공스토리를 쓰고 있는 이가 스튜디오 버튼을 창업한 김호락 대표다. 충남 한서대학교 애니메이션과를 졸업한 후 서울에서 일하면서 광주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지원을 잘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13년 5월 CGI센터 공모전 개최에 대해 알게 됐고, 기획안을 제출해 선정된 것. 바로 광주로 내려와 스튜디오 버튼을 창업했다. 사무실 지원과 함께 1억2000만원의 지원금까지 받았다. 그는 세계 최초의 강철 슈트를 입은 소방대 이야기를 다룬 ‘파이어 로보’의 파일럿을 만들 수 있었다.

이 파일럿으로 EBS와 영실업, CJ 등으로부터 20억원 가까운 투자를 받았고, ‘강철 소방대 파이어 로보’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지난해 8월부터 지난 2월까지 EBS에서 방영이 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김 대표는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광주가 문화 콘텐트 제작 기업에 대한 지원이 좋다는 평가가 많다”면서 “애니메이션을 포함해 문화 콘텐트 창작자들은 광주에서 창업하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스튜디오 버튼은 대교 위풍당당콘텐츠코리아조합으로부터 20억원을 투자받아 새로운 TV시리즈 애니메이션 제작을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2018년 8월부터 KBS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스튜디오 버튼의 김호락 대표나 중앙애니메이션의 한태식 대표 등 문화 콘텐트 창작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광주에 대해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CGI센터를 운영하는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이정현 원장도 “대다수의 지역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는 것이 어려워 힘들어한다”면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국책사업 덕분에 광주는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음악 등의 문화 콘텐트 창작자들이 활동하기 좋은 도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CGI센터 외에도 광주콘텐츠코리아랩, 스마트벤처창업학교 등의 기관이 문화 콘텐트 창업가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광주 스타트업 생태계는 문화콘텐트 창작 스타트업 덕분에 활기를 얻고 있다.

이에 반해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ICT 기반의 스타트업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제조업 기반의 스타트업이 대부분이었다. 핀테크, O2O, AI 같은 분야의 스타트업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를 취재하려면 미래부의 창조경제혁신센터나 중소기업청의 창업보육센터나 창업선도대학 등의 기관을 찾게 된다. 이후 지역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을 찾거나 창업가와 VC 등을 만나면서 생태계의 분위기를 취재한다. 광주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취재를 해야 할 장소가 동구, 남구, 북구 등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조선대학교 창업보육센터는 동구에,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는 북구에, 스마트벤처창업학교는 동구에 있는 식이다. 광주·전남지방중소기업청 창업성장지원과 이청일 과장은 “취업 공간부터 지원, 그리고 투자가 한꺼번에 일어나는 클러스터가 없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제조업 중심의 스타트업 탈피가 과제


또 하나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제조업 중심의 스타트업이 대다수라는 점이다. 서울·경기나 부산, 대구 지역이 경우 ICT 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O2O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광주에서는 O2O 스타트업은 물론 핀테크 같은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골프공과 골프용품을 제작하는 스타트업 엑스페론의 김영준 대표는 “광주는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제조 중소기업이 있는데, 이런 지역적 특성 때문인지 제조업 관련 스타트업이 많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광주시, 현대자동차그룹이 1775억원을 투자해 만든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도 자동차 관련 스타트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광주창조경제 혁신센터 관계자는 “광주가 자동차 부품 기업이 많다 보니 자동차와 관련된 스타트업 지원을 많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력을 얻기 위해서 활발한 투자 시장이 반드시 열려야만 한다. 광주에는 벤처 캐피털 간판을 내건 곳이 몇 곳이 있지만,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 상황이다. 심지어 지역의 성공한 기업가가 후배들에게 투자를 하는 문화도 많지 않다. 투자 생태계가 활력이 없다는 것이다. 민간투자 시장이 없다는 게 광주 스타트업 생태계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광주·전남지방중소기업청 이청일 과장은 “창업가들은 원스톱 서비스를 원하지만, 광주에서는 아직까지 어려운 일”이라며 “지자체와 기관 등이 노력하고 있으니 나아질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201705호 (2017.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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