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스타트업 ‘킹메이커’로 나선 영국 왕자 

 

PARMY OLSON 포브스 기자
요크 공작 앤드류 왕자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주소록 중 하나가 스타트업을 향해 활짝 열렸다.
“그래서 자네 회사는 뭔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날카롭게 물었다. 여왕의 앞에는 35세의 소프트웨어 ‘덕후’ 마이클 롤프(Michael Rolph)가 있다. 롤프를 비롯한 창업자들이 한 줄로 나란히 선 이곳은 세인트 제임스 궁의 접견실 중 하나다. 둘의 대화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여왕의 둘째 아들 ‘요크 공작’ 앤드류 왕자가 바로 옆에서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롤프는 긴장한 목소리로 모바일 앱 ‘요요 월렛(Yoyo Wallet)’을 경영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여왕은 요요와 다른 스타트업을 궁으로 초대해 영국 최고의 기업가 및 투자자 앞에서 발표 기회를 주는 요크 공작의 프로젝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롤프는 “2년 전 프로그램에 참여해 영국 최고의 커피 체인 중 하나를 소개받았고, 그 결과 지난 12월에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대답했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나?” 여왕이 농담조로 말을 건넸다. 롤프는 자기도 모르게 싱긋 미소를 지었다. “2년간 사업 기반을 구축해야 했거든요.” 여왕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음 사람을 향해 움직였다.

왕궁에서 스타트업 설명회 주선

이번에 7회를 맞은 ‘피치@팰리스(Pitch@Palace: 궁전에서의 피칭)’모습이다. 3년 전 요크 공작이 시작한 이 행사는 1년에 두 번 스타트업 네트워킹을 위해 개최된다. 대회가 시작되면 결선 진출자로 선발된 12개 스타트업이 약 400명의 업계 실세 앞에서 자신의 사업 계획을 발표하는 ‘피칭’ 시간을 갖는다. 발표가 이루어지는 장소는 500년 전 헨리 8세가 버킹엄 궁전 바로 옆에 세운 세인트 제임스 궁전의 진홍빛 접견실이다. 흐릿한 무늬의 벽지 위로 17세기 회화 작품이 곳곳에 걸린 고색창연한 이곳에서 창업가들은 자신들만의 독점 기술로 개발한 각종 알고리즘과 모바일 플랫폼, 기계학습에 관해 혼신의 힘을 다해 설명한다. 흡사 실리콘밸리 엑셀러레이터 와이 콤비네이터(Y Combinator)가 <다운튼 애비(Downton Abbey: 영국 귀족 가문의 삶을 그린 시대극 드라마)>를 만난 모습이다. 새로운 미래를 좀 더 빨리 끌어오기 위해 유구한 전통과 창조적 파괴가 서툴게나마 서로를 끌어안았다고 보면 된다.

이 자리에는 영국 최대 기업 CEO와 펀드매니저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공녀 베아트리스와 전처가 된 요크 공작부인 사라 퍼거슨이 함께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여왕이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12월 열린 7차 대회가 처음이다. 사이버 보안업체와 에스토니아 목재관리 소프트웨어 기업이 피칭을 하는 동안 여왕은 맨 앞에 놓인 황금 왕좌에 앉았다. 어두운 톤의 정장 속에서 둥글게 부풀린 여왕의 흰 머리가 눈에 띄었다.

내로라하는 시장이나 주지사, 총리라면 누구나 기업가 정신을 열렬히 설파하고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와 엑셀러레이터, 피칭 대회를 너나 할 것 없이 지원하는 게 요즘 세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왕가가 가만히 눈과 귀를 닫고 가만히 있는다는 것도 이상하다. 왕가라면 자연스레 누리는 이점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왕궁의 초대를 거절할 사람이 있을까요?” 대회가 끝나고 테이블 위에 나온 로스트 비프 카나페와 샴페인을 즐기며 한 참가자가 말했다. 제2의 구글을 발굴하겠다는 환상은 없어 보이지만, 요크 공작의 네트워크는 그를 나름대로 유용한 실세로 만들었다. 피치@팰리스를 통해 247개 스타트업이 사업을 확장했고, 이중 3분의 2 이상은 자본금을 모집해 더 많은 직원을 고용했다. 동영상 압축 기술을 내세운 영국의 스타트업 ‘매직 포니(Magic Pony)’는 초기 대회에서 알게 된 사람들의 소개로 6월 1억5000만 달러에 트위터가 인수해 갔다.

2월의 어느 오후, 왕위 서열 6번째로 귀족 특유의 괴짜 느낌을 풍기는 요크 공작을 버킹엄 궁전에 있는 그의 서재에서 만났다. 육중한 오크 테이블에 기댄 그는 기술적 용어를 쏙 뺀 예상치 못한 비유를 들어 피치@팰리스를 설명했다. 바로 과일 케이크였다. 창업자를 직접 만나 참가 여부를 결정하는 예선은 건포도와 견과류가 듬뿍 들어간 케이크 빵에, 왕궁에 와서 멋지게 발표를 하는 대회는 “마지팬(marzipan)으로 케이크 위에 달콤하게 장식을 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설명을 끝낸 그는 비서진을 돌아보며 “동의하나?”라고 물었다. 그중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바로 그거군요. 화룡점정의 단계.”

피치@팰리스로 기업가정신 고양

57세의 요크 공작은 평생을 부관과 하인들에 둘러싸여 지냈다. 테이블 위에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는 쿠키 접시 또한 붉은 색의 시종 복장을 한 하인이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호화로운 궁전 생활 속에서 공직의 의무는 갈수록 무거워져 가고 있다. 때문에 요크 공작과 그의 형 찰스 왕세자는 역사상 가장 열심히 활동하는 왕족이 됐다. 찰스 왕세자는 기후변화와 군대에 집중하고 있고, 요크 공작은 기업가 정신을 지원하는 활동을 한다. 둘 사이에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지갑의 크기다. “매년 2600만 달러의 신탁자금을 받는 찰스는 마음껏 돈을 쓸 수 있다”고 <미래의 왕가(The Future Royal Family)>를 저술한 영국 왕실 전기작가 로버트 잡슨(Robert Jobson)은 말했다. 이에 비해 연간 25만 파운드(약 30만 달러)를 배당받는 공작은 ‘빈민’과 다를 바 없다(최근 공개된 2010년 자료 기준).

피치@팰리스는 앤드류 왕자의 명예를 회복할 기회가 될 지 모른다. 2011년 그는 10년간 정부의 임명을 받아 수행하던 무역투자 특사 임기를 논란 속에 마무리 했다. 특사를 수행하는 동안, 성범죄로 유죄 판정을 받은 미국의 악덕 금융가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처럼 평판이 좋지 않은 인물과 어울리던 그는 꾸준히 언론의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번 역할은 그에게 잘 맞는다. 2월 중순 이스트 런던에 위치한 트램퍼리(Trampery) 엑셀러레이터에서 ‘힙스터’ 창업가 6명과 만남을 가지는 동안, 그는 후보자에게 집중하며 질문을 퍼부었다. “그래서 게임 쪽에는 어떤 경험도 없는 건가?” 철제 의자를 놓고 둥글게 둘러 앉은 후보들 중 게임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대답한 모바일 개발자에게 요크 공작이 질문을 던졌다. “영화 쪽에서 일했습니다.” 질문을 받은 개발자가 조심스레 말했다. 공작의 눈이 가늘어졌다. “흠….”

이후 서재로 들어온 공작은 후보들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들 각자를 누구와 연결해줄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들의 성공을 돕는 게 바로 왕가가 할 일이죠.” 공작이 말하는 동안 두 개의 시계 초침이 빠르게 약강의 박자를 내며 돌아갔다. 그의 뒤에 놓인 책상 독서등 위에는 영국 국기가 걸려 있었다.

유명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피치@팰리스 또한 그 기원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2012년 공작이 무역특사 사임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벤처 투자업계가 덩치 크고 리스크 낮은 기업에만 손을 내미는 시장에서 영세한 기술 스타트업이 자금을 찾지 못해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혼자 기금을 조성하려 했지만, 개인 투자자로 나서면 영향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2013년 말, 업계 사람들만 참석하는 기술회의에 비서진을 이끌고 참석한 그는 네트워킹 그룹 이데오(IDEO)의 영국 이사 톰 흄(Tom Hulme)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흄은 공작에게 런던이 성장을 배양하는 시험대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아마도 공작님이 이 과정을 빠르게 앞당길 촉매제가 될 수 있겠군요.” 공작의 눈이 번쩍 뜨였다. 왕가에서 직접 업계 전문가를 소개해 스타트업이 규모를 키우도록 돕는다면 스타트업의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왕가의 역할

공작의 비서진은 1년에 두 번 영국 전역에서 3개의 지역 별 스타트업 예선을 주최한다. 예선을 통과한 42개 팀은 ‘부트 캠프’ 훈련 과정을 거쳐 세인트 제임스 왕궁에서 발표를 할 12개 팀으로 압축된다. 요요 월렛의 롤프는 2014년 4월 궁전에서 열린 첫 대회에 참석했다. 뭐가 어떻게 될 지 짐작조차 못한 채 궁에 들어선 롤프는 각종 무기가 전시된 방을 지나 영국 왕실의 전통 즉위식이 이루어지던 공간에 들어섰다. 그는 재빨리 셀카를 찍어 부모님께 보냈다. “세상에, 이런 경험은 두 번 다시 못할 거야.” 당시 흥분됐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발표를 하던 중 롤프는 영국에서 매장 수 기준 3번째로 규모가 큰 카페 네로(Caffe Nero) 창업자 게리 포드에게 자신의 회사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수 분 뒤, 게리 포드의 전화는 갑자기 쏟아진 10여 통의 이메일을 알리느라 분주히 울어댔고, 롤프는 2년 뒤 여왕을 만나 카페 네로와 독점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보고했다.

피치@팰리스의 이사진과 심사위원을 구성하는 바클레이즈, 아스트라제네카, 인마새트(Inmarsat) 등 후원 기업의 임원 20여 명은 적어도 1년에 두 번 버킹엄 궁전에 모여 ‘엘리자베스 레지나’의 이니셜 ER이 새겨진 고블릿 잔에 따른 물을 홀짝이며 스타트업의 정보를 담은 보고서를 정독한다.

프로그램은 성공적이라고 구글 벤처스 런던 지부 파트너로 자리를 옮긴 흄이 말했다. 올해 피치@팰리스는 중동과 중국, 호주에서의 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올해에는 색다른 방법을 시도하고 결과를 살펴볼까 한다”고 공작은 말했다. 색다른 방법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호콘 노르웨이 왕자와 콘스탄테인 네덜란드 왕자를 비롯한 다른 왕자들 또한 요크 공작의 프로그램을 모방해 자체적으로 스타트업 지원을 모색하고 있다고 흄은 말했다. 다우닝 스트리트 총리 관저에서 진행하는 ‘테크 시티의 아침(Tech City breakfasts)’ 등 정부 이니셔티브는 담당 공무원이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되며 불씨를 잃고 꺼져버리는 반면, 왕가가 이끄는 프로그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유의미해질 수 있다”고 흄은 말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피치@팰리스를 이끌 예정이냐고 묻자 공작이 짐짓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필요한 만큼”이라고 말한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역사를 이어온 왕가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제 역할을 다하기로 작정한 모습이었다.

- PARMY OLSON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포브스 코리아 온라인 서비스는 포브스 본사와의 저작권 계약상 해외 기사의 전문보기가 제공되지 않습니다.

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박스기사] How To Play It

개미 투자자를 위한 벤처캐피탈이라고? GSV 캐피탈이 외쳤던 약속이다. 상장되기 전 ‘제2의 페이스북’에 투자할 기회를 주겠다고 주장했지만, 6년 전 15달러에 판매된 주식이 4달러 51센트(배당금으로 2달러 80센트 지급)로 하락해 오히려 그 반대로 보인다. 실리콘밸리 위에 올라타고픈 투자자가 있다면, T. 로우 프라이스 글로벌 테크놀로지(수수료율 0.9%)가 좀 더 나은 선택안으로 보인다. 세일즈포스와 알리바바, 브로드컴의 주식을 보유한 개방형 펀드다. 투기 등급에 해당하지만, 폐쇄형 GSV 펀드와 달리 언제든 평가금액에 투자금을 인출할 수 있다.

201706호 (2017.05.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