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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우 다산네트웍스 회장 

창업보다 더 어려운 기업의 ‘변신’에 도전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
성공한 벤처 1세대 기업인으로 꼽히는 다산네트웍스 남민우 회장. 그의 독특한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 유무선 통신장비 시장을 이끌었던 B2B 사업에 집중해온 남 회장이 B2C 시장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 그 첫 번째 아이템은 1대에 200만원이 넘는 프리미엄 스마트폰 ‘알파원’이다.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회장을 6월14일 경기도 성남시 대왕판교로에 있는 다산타워 10층 사무실에서 만났다. 남 회장은 자사 계열사인 코라시아를 통해 토니노 람보르기니 브랜드를 단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론칭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궁금했다. 성공한 벤처 1세대 기업인의 롤 모델로 꼽히는 남민우(54) 다산네트웍스 회장이 스마트폰 시장에 도전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1990년 4명으로 시작했던 유무선 통신장비 제조 기업은 27년이 지난 후 12개의 계열사를 가지고 있는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계열사를 포함해 전체 임직원은 1800여 명이나 된다. 그룹 전체의 한 해 매출은 5000억원이 넘는다. 지난해에는 나스닥 상장사이자 글로벌 통신장비 기업인 존테크놀로지를 인수하는 깜짝 뉴스를 전하기도 했다. 한국 코스닥 상장기업이 처음으로 나스닥 상장 기업을 인수한 사례였다. 애널리스트들은 존테크놀로지 인수로 다산네트웍스의 미국 수출액이 약 3배 정도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B2B 시장에서 탄탄한 성과를 내는데도 남 회장은 지난해부터 “B2C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지난 5월 그 도전이 가시화됐다. 수퍼카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람보르기니 자동차 설립자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외아들 토니노 람보르기니가 1981년 설립한 브랜드 ‘토니노 람보르기니’와 손잡고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내놓은 것이다. ‘알파원(ALPHA-ONE)’이라는 이름의 스마트폰이다. 가격은 269만원이다. 중국의 스마트폰 생산자 개발방식(ODM) 제조사가 제작을 맡고 토니노 람보르기니와 다산네트웍스가 디자인과 마케팅을 맡는 방식으로 내놓았다. 5월16일 러시아를 시작으로 한국에도 소개됐다. 이후 영국을 거쳐 미국과 중국에도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예약판매만 받고 있는 상황. 남 회장은 “인터넷으로 예약만 받는데 성적이 좋다”면서 “구체적인 수치는 말하기 어렵지만, 우리의 목표는 채울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했다.

200만원대 람보르기니 프리미엄 스마트폰 출시


▎다산네트웍스 제공
기자에게 보여준 알파원은 첫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스마트폰 뒷면에 토니노 람보르기니 상징 문양인 투우가 눈에 띈다. 스마트폰 배경 화면도 투우 문양이 깔려 이다. 누구라도 람보르기니 브랜드가 적용됐음을 알 수 있다. 남 회장은 “알파원은 2개의 유심을 장착할 수 있다. 즉 2개의 번호를 번갈아가면서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라고 강조했다. 스마트폰의 OS는 안드로이드를 채택했다.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 삼성, 화웨이 같은 글로벌 기업이 버티는 시장이다. 후발 주자가 뛰어들어서 성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대다수의 회사 임직원과 지인들이 스마트폰 시장 진출에 반대한 이유다. 그럼에도 남 회장은 밀어붙였다. 일문일답 형식으로 그 이유를 들어본다.

B2C 시장에 도전하는 이유가 뭔가.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고 싶었다. 다산네트웍스는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유무선 통신장비 기업이다.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시대를 열었다고 자부한다. 이젠 초고속 인터넷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바뀌고 있다. 기업도 그 변화에 맞춰야 할 것 아닌가. 기업가는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는 것이다.

B2C 시장의 첫 도전이 프리미엄 스마트폰이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스몰 럭셔리 제품 시장에 도전했다. 보통 럭셔리 제품은 대중적인 제품 가격보다 10배 이상 비싸다. 이번에 내놓은 알파원은 일반 스마트폰에 비해 2~3배 비싼 스몰 럭셔리 스마트폰이다. 수억원짜리 제품은 사지 못해도 250만원 정도의 제품 정도는 구매할 수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틈새시장이다. 예를 들면 다이슨이 헤어드라이기를 만들어 성공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노키아가 베르투라는 럭셔리 브랜드를 만들고, 화웨이가 포르셰 스마트폰을 출시한 것과 같다.

화웨이나 노키아, 다이슨 등의 예를 들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제품 제조를 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산네트웍스는 스마트폰 제조 기술이 없다는 게 약점 아닌가.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융합의 시대다. 어떻게 발 빠르게 변신을 하느냐가 생존의 키워드다. 우리는 제품 개발이나 제조를 하는 게 아니다. 디자인과 마케팅에만 치중할 것이다. 그래야만 실패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만일 알파원이 실패를 해도 우리가 부담해야 할 최대 손해는 500만 달러(56억7000만원)에 불과하다. 서로 역할을 나눠서 한다는 것은 리스크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코라시아를 글로벌 마케팅 회사로 키울 것”


▎2004년 지멘스로부터 5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은 후 지멘스 임원과 함께한 사진.
코라시아(KORASIA)라는 기업을 통해 알파원을 소개했다. 이 기업에 대해 설명해달라.

코라시아는 토니노 람보르기니 브랜드를 활용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글로벌 마케팅·유통 기업이다. 아시아 지역에는 시계와 골프용품에 대한 유통 독점권을 가지고 있고, IT 제품에 대해서는 전세계 독점 사업권을 따냈다. 현재 하남 스타필드 신세계몰에서 토니노 람보르기니 플래그십 스토어를 직영하고 있다. 알파원을 시작으로 코라시아를 글로벌 마케팅 회사로 키우는 게 목표다.

판매 목표는 어느 정도인가.

5만 대를 판매하면 1200여 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5000대만 팔아도 손익분기점(BEP)을 넘어선다. BEP를 넘어서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주문 예약만 받고 있는데, 몇 대나 주문이 들어왔나.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기는 어렵다.(웃음) 인터넷으로만 주문을 받는데 많은 이들이 주문을 했다.

토니노 람보르기니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2년 전 아는 지인의 소개로 만나게 됐다. B2C 시장 진출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토니노 람보르기니를 만나면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람보르기니는 커피나 가구 등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를 만나서 우리가 IT 제품을 맡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쪽에서 OK 하면서 사업이 시작됐다.

알파원 이후에는 어떤 후속 제품이 나오나.

이탈리아의 유명한 보석 브랜드와 손을 잡고 또 다른 프리미엄 폰을 내놓을 계획이다. USB, 스마트 워치, 아날로그시계, 스마트폰 액세서리 등 다양한 소비재 제품을 내놓을 것이다.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곳은 많으니까, 우리는 아이디어와 디자인과 기획에 집중할 것이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물론이다. 내가 스마트폰 시장에 도전한다고 하니까 다들 반대했다. 비난의 시선도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오해나 비판, 미움을 받을 용기가 없었으면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지금 창업보다 더 어렵다는 기업의 변신에 도전하고 있다. 기업가는 항상 변화에 도전을 해야 한다.”

창업 후 유무선 통신장비 개발 기업으로 성공

남 회장은 자신에게 쏟아진 우려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도전해서 실패할 수도 있지만, 남들의 시선 때문에 도전을 멈추면 기업가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어떤 질문에도 에둘러 말하지 않는 남 회장은 회사 경영에도 정공법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도전해야 할 때, 포기해야 할 때, 변해야 할 때, 이런 시기를 그는 외면하지 않는다.

그를 설명할 때마다 나오는 4전 5기의 신화는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쓰러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가 현재의 그를 만들었다. 남 회장이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실패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도전에 나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 남들과 다른 나만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창업을 위한 남다른 DNA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북 익산 출신으로 공부를 잘하던 학생은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할 것 같아서 기계공학과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대우자동차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1991년 소프트웨어 수입 판매를 하는 코리아레디시스템을 창업했다. 이 회사는 1993년 다산네트웍스의 전신인 다산기연으로 이름을 바꿨다.

1997년 IMF를 겪으면서 기업가로서의 인생이 바뀐다. 당시 환율 급등으로 미국 거래처 대금 지급이 어려워졌던 것. 바로 실리콘밸리로 넘어가 업체와 협상을 하면서 지급 기일을 늦췄다. 미국에 머물면서 신기한 것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실리콘밸리의 호황이었고, 앞으로 다가올 인터넷 시대에 기회가 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남 회장은 유무선 통신장비 개발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도전했다. 그는 “나는 통신장비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을 해야 성공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도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한국 통신사에서 사용하는 장비는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했다.

예상대로 다산네트웍스의 제품이 빠르게 해외 수입품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2000년 세계 최초 리눅스 기반 라우터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했다. 일본을 시작으로 세계 각지에 통신장비를 수출하면서 급성장했다. 2017년 6월 현재 미국·일본·중국·베트남·인도·프랑스 등 7개 나라에 법인을 운영 중이다. 초고속 인터넷 장비 기업으로 다산네트웍스는 한국에서 부동의 1위다. 전 세계에서는 10위권에 드는 글로벌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에게는 항상 위기가 찾아왔다. 첫 시작은 2001년 벤처버블 붕괴다. 2004년에는 사업 지속성의 위기로 회사를 포기할 생각도 했다. 그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이 때맞춰 나타났다. 2004년 경영악화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한 다산네트웍스의 손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글로벌 기업인 지멘스였다. 남 회장은 “원래 합작회사 설립 제안을 받았지만, 그렇게 되면 사업의 지속성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5000만 달러의 투자 유치와 계열사 편입이라는 역제안을 해서 받아들여졌다”고 설명했다. 2007년 지멘스가 노키아 지멘스로 통합되면서 남 회장에게 경영권을 다시 가져가라는 제안을 해왔다. 수백억원의 자금이 필요했지만, 무리를 해서 경영권을 다시 찾아왔다. 위기는 또 찾아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산네트웍스가 다시 휘청거렸다.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남 회장은 다시 일어났다. 그 원동력에 대해 “특별한 비책은 없다. 정직을 최우선 정책으로 포기하지 않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서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고 답변했다.

이런 위기를 겪으면서 남 회장은 생존의 키워드를 ‘사업 다각화’로 결론지었다. “한국 사회에는 한 우물만 파면 성공한다는 신화가 있지만, 실제 경영활동에서 한 우물만 파면 실패하기 쉽다. 그동안 위기를 겪으면서 내린 결론은 사업의 다각화였다”고 그는 강조했다.

‘사업 다각화’가 지속 가능한 기업 만드는 키워드

2010년 금융위기 이후 네트워크 장비 시장이 호황을 맞이했다. 다산네트웍스는 그해 1939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영업이익만 240억원이었다. 이 실탄을 무기로 숨겨진 강소기업을 합병하기 시작했다. 2011년부터 핸디소프트를 시작으로 자동차 부품기업 디엠씨, 전자파 기능성 소재 국내 1위 기업 솔루에타, 플랜트용 열교환기 기업 디티에스 등을 인수 합병했다. 남 회장은 “기술력이나 고객기반은 좋으나 경영상의 문제 등으로 부침을 겪은 회사들을 인수 합병하면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6년 9월에는 나스닥 상장사인 존테크놀로지를 인수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남 회장은 “이 기업은 미국에 판매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다. 우리의 통신장비를 미국에 파는 데 큰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다산네트웍스는 크게 ‘네트워크 사업 부문’, ‘소프트웨어 & IoT 사업 부문’, ‘자동차 부품 및 전장사업 부문’, ‘기능성 소재 사업 부문’, ‘엔지니어링 사업 부문’, ‘소비자제품 사업 부문’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남 회장은 “다산네트웍스와 계열사가 신성장동력으로 추진하는 것은 커넥티드카 분야”라며 “우리의 강점인 통신기술을 자동차 산업과 연계해 새로운 차량 통신 시대를 선도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후발주자로서 약점을 이겨내기 위해 영국의 탄탈럼 등과 손을 잡으면서 빠른 속도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성공한 벤처 1세대 남민우 회장의 현재는 쉽게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는 현재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산을 오르고 있는 중”이라고 표현한다.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과 극복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데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벤처기업협회 회장,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초대 위원장,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 등 다양한 사회적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치에 관심이 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절대 아니다”며 웃었다. 그는 “선배 기업가로서 후배들에게 더 나은 창업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라고 담백하게 설명했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사진 신인섭 기자

남민우 회장은…

1984년: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1991년: Korea Ready System 창업
2004년~2006년: 한민족글로벌 벤처네트워크(INKE) 의장
2007년~2011년: 코스닥 상장위원회 위원
2012년~2015년: 벤처기업협회 회장
2013년~2014년: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초대 위원장
2015년~현: 제2대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
2016년~현: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201707호 (2017.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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