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로 만드는 쿠로의 진에는 핀란드 이소쿠로 지역에서 자라는 16가지
종류의 야생 식물이 들어간다. 조우니 리톨라는 “핀란드 밤의 서늘함과
태양을 머금은 호밀의 따뜻함을 술에 담았다”고 말했다.
북위 66도 33분부터 극지라고 부른다. 인구 5000명의 핀란드 도시 이소쿠로는 북위 63도에 있다. 북극 지역 바로 아래인 셈이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북쪽 300㎞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호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북방 한계점이기도 하다. 이소쿠로엔 세계에서 가장 북극에 가까운 양조장도 있다. 핀란드의 스타일리시 진과 위스키를 제조하는 ‘쿠로’의 양조장이다. 쿠로 설립자 조우니 리톨라는 지역을 “한밤에 해가 뜨는 고장(The Land of The Midnight Sun)” 이라고 소개한다. 여름엔 48시간이나 해가 떠있다. 해가 긴 덕에 호밀이 다른 지역보다 빨리 자란다. 짧은 여름이지만 곡식을 심고 재배할 수 있다. 백야 덕에 핀란드인들은 긴 겨울을 버틸 수 있었다. 쿠로는 북방 호밀을 사용해서 술을 만드는 기업이다.회사는 술을 사랑하는 핀란드 청년 5명이 모여 만들었다. 핀란드에선 사우나가 일상이다. 2012년 어느 저녁, 사우나에서 몸을 녹이던 리톨라와 친구들은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술 마시며 사우나를 하다보니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맛있는 술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독한 보드카만 열심히 마셨습니다. 제대로 된 위스키가 필요했어요. 맛있는 진을 마시고 싶었습니다. 순식간에 의기투합했습니다. ‘그래, 우리가 만들자. 맛있는 술을 원한다!’라고요.”
북방 호밀을 사용해 술을 만들다
▎쿠로는 이소쿠로에서 가장 오래된 치즈공장을 양조장으로 개조했다. / 사진 : 쿠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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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한 재료가 핀란드산 호밀이다. 이소쿠로는 핀란드에서 유서 깊은 지역이다. 사연도 많다. 고고학자들은 인근 레바우타 우물에서 고대 해골을 발견했다. 그 옛날 농부가 바이킹에 쫓겨 떨어졌는지, 신세 한탄으로 자살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1000년도 더 예전부터 농사 짓고 사람이 살던 곳이었다. 15세기엔 스웨덴 왕의 폭정에 대항하는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몇 세기 후엔 러시아가 침략한다. 나퓨에 전쟁이다. 용감히 싸웠지만 핀란드 남성의 절반이 사망했다. 전쟁터가 이소쿠로다. 리톨라는 쿠로에서 만든 진의 이름을 나퓨에로 지었다. 아름다움엔 슬픔이 깃들여 있어서다.2013년, 이소쿠로에서 가장 오랜 된 치즈 공장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들은 양조장 프로젝트를 실천에 옮겼다. 치즈 공장을 개조해서 양조장을 설립한다. 그리고 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리톨라는 “핀란드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술을 만드는데에 집중했다”며 “술 종류로는 진이 가장 이상적이었다”고 설명했다.진은 맛있는 술이다. 네델란드 국민음료로 꼽히는데 현지에선 게네베르라고 부른다. 영국에서도 사랑받는 술이다. ‘거지도 진을 마시면 왕이 된다’는 속담이 나올 정도다. 40도의 독주지만 맛이 깔끔하고 저렴한 덕에 지갑이 얇은 서민이 애용하는 술이었다. 독주이다 보니 칵테일로도 많이 마신다. 진 토닉이 가장 유명하지만, 영화 007에서 제임스 본드가 ‘흔들지 말라’며 주문하는 드라이 마티니도 인기다. 영국 스타일의 런던 진은 드라이하다. 향이 적고 뒷맛이 깔끔하다. 리톨라는 다른 스타일의 진을 원했다. 향이 풍부해 칵테일뿐 아니라 그냥 마셔도 맛있어야 했다.쿠로는 핀란드산 호밀로 만든 진 베이스에 다양한 약초를 넣었다. 이소쿠로 지역에서 자라는 16가지 종류의 야생 식물이 들어간다. 메도우 스윗트, 자작나무, 크랜베리, 산자나무의 비율이 높은데, 지역에서 직접 재배해서 수확한다. 리톨라는 “핀란드 밤의 서늘함과 태양을 머금은 호밀의 따뜻함을 담았다”며 “핀란드의 자연을 그대로 쿠로 진을 통해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첫 번째 제품이 나오기까지 2년이 걸렸다. 반응은 뜨거웠다. 쿠로 양조장의 술들은 세계 주요 주류 박람회를 휩쓸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주류 행사인 IWSC에선 2015년과 2016년 연속 수상했다. 샌프란시스코 주류 경연대회에서도 2016년과 2017년 금메달을 획득한다. 2016 파리 패션위크에서도 대표 진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이 목표로 한 핀란드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리톨라는 “불과 2년 만에 핀란드 국민 대부분이 알고 있는 브랜드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쿠로진은 옆 나라인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거쳐 독일 젊은이들이 즐기는 술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색다른 맛에 젊은 취향을 겨냥한 것이 주효했다.
한국의 고급 술 문화 확산에 기여
▎쿠로의 창업자들. 미코 데닐라(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 밀카 리팔넨, 조우니 리톨라, 칼레 발코넨, 믹코 코스켄. / 사진 : 쿠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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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톨라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0년 전 연세대 경영대학원에 교환학생으로 1년간 신촌에서 생활했다. 졸업 후엔 중국 상하이로 갔다. 아시아 관련 비즈니스를 다루다 핀란드로 돌아갔다. “업무에 치이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쳤습니다. 모두 잊고 고향에 돌아가 친구들과 술 마시며 사우나를 즐기고 싶었습니다.”사우나를 즐기던 리톨라의 힐링 라이프는 사우나에서 변곡점을 맞는다. 술 사업에 뛰어들기로 한 것이다. 그는 다시 아시아를 누비고 다닌다. 일본을 거쳐 6월7일 서울을 방문했고, 8일은 상하이에서 보냈다. 핀란드로 돌아가기 전엔 홍콩에서 주요 바텐더들을 만났다.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지만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 그는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며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술을 소개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쿠로는 독특한 마케팅 방식을 사용한다. 일본에 진출할 당시 도쿄에서 가장 유명한 바텐더 20명을 만났다. 이들은 도쿄 최고의 바를 책임지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만 쿠로를 소개했다. 바텐더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독특한 향과 맛을 높게 평가했다. 홍콩에서도 최고의 바에만 제품을 공급한다. 이번 한국 방문도 같은 방식이었다. 신라호텔·하얏트·워커힐·메리어트 등 서울 최고의 바 20곳의 책임자를 만났다. 모임은 6월7일 오후 동대문 메리어트호텔 11층 ‘더 그리핀’에서 진행했다. 그는 “술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선택한다”며 “한국에서 고급 술 문화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그 역시 한국 술 문화를 잘 알고 있다. 신촌에서 생활할 당시 ‘소맥’과 ‘위스키 폭탄주’는 삶의 일부였다. 하지만 모두 다 같은 방식으로 술을 마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원하는 방식으로 마실 줄 알아야 술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란 지론이 있다.“좋은 것들은 정직하고 열광적인 사람들에서부터 온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술을 만든 이유입니다. 한국 분들이 북극에서 온 우리 술을 즐기시길 원합니다.”-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사진 장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