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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미 CEO SUITE 대표 

투자 철학은 ‘화끈하게, 확실하게’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첫 사무실 임대부터 부대지원 서비스까지 다 해준다면 해외출장이나 창업이 조금 수월하지 않을까. 기업 및 창업가들의 해외 진출이 확대되면서 CEO스위트(CEO SUITE)와 같이 틈새시장을 개척한 서비스드 오피스 기업은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서비스드 오피스 CEO SUITE는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오픈한 강남 파르나스 타워 지점은 CEO SUITE 19호점이다.
여느 관광지 전망대 못지않다. 서울에서 이런 전경을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강을 낀 강남 일대가 한눈에 펼쳐진다. 해가 저물어가는 가을 하늘은 낭만적이었다.

삼성동에 위치한 파르나스 타워 29층의 한 사무실. 호텔에 온 듯 각도까지 맞춰진 메모장과 노트, 고급 의자가 안락함을 준다. 지난해 가을 오픈한 이곳은 서비스드 오피스 기업인 CEO SUITE 19호점이자 한국 2번째 지점이다. 한 달 임대료만 2억원에 달하는 한 층을 통째로 빌려 60개 사무실을 만들었다. 인터뷰를 위한 작은 회의실 말고는 모두 만실이었다. 아시아 10개 도시에 20여 개 지점을 오픈한 CEO SUITE는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오피스 서비스로는 28년 경력의 업계 1세대이자 ‘대모(大母)’인 김은미(55) CEO SUITE 대표이사를 11월 8일 만났다. 그는 “사무실 임대업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며 운을 뗐다.

서비스드 오피스는 외국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비즈니스다. CEO SUITE는 기업 및 개인 고객에게 비즈니스를 위한 행정 서비스, 사무공간과 컨설팅을 제공하는 기업이다. 고객들에게 사무실 대여뿐 아니라 공항 픽업부터 호텔 예약, 법률 자문, 비서 업무, 상주 직원 자녀 학교 문제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한다. 특히 단기간 출장객들을 위해 대여 단위도 일·주·월뿐 아니라 유일하게 24시간 시간제 서비스도 제공한다. 1997년 자카르타에서 창업해 현재 아시아 국가에서 19개 프리미엄 비즈니스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김은미 대표는 “비즈니스센터 설립할 때 동양의 풍수지리적인 요소까지 따져본다”며 “교통·환경·편의시설 등을 갖춘 최고의 건물에만 들어온다”고 말했다. 한국 지점은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과 강남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타워다.

본사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다. 김 대표가 호주의 서비스드 오피스 기업 서브코프(Subcorp) 동남아시아 총괄을 지내다 인도네시아에서 결혼을 해서다. 사업 영역은 지금도 아시아로 한정하고 있다. 아시아에 진출하는 다국적 기업에 도우미 노릇을 하겠다는 기업 목표 때문이다.

CEO SUITE는 창업 후 꾸준히 성장했다. 첫 매출 15억원에서 올해 420억원에 이르는 동안 아무 투자도 받지 않고 이윤을 냈다. 그는 “남들은 여전히 바보 같은 소리라 한다”며 “사업하는 사람마다 지론은 다른데, 전 손을 안 벌려야 소신껏 하고 싶은 대로 속도만큼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고 아니면 안 한다


▎‘최고’로 서비스한다는 김은미 대표의 프리미엄 전략은 고객들의 마음을 샀다.
그의 철학은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기업이 되는 것”이다. 김은미 대표는 e북 리더기 킨들(kindle)에 1000권의 책을 넣고 다닌다. 이틀에 한 권, 1년에 200-300권을 읽는 책벌레다. 1년의 절반을 해외에 오가면서도 그는 시간 관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할 수 있는 거만 하고 할 수 없는 건 하지 않아요. 위임한 건 믿고 맡기면 돼요.”

해외의 센터 업무는 모두 현지인에게 위임했다. 시스템을 완벽히 구축해 운영엔 걱정이 없다. 이날 인터뷰가 있기 전 계약 하나가 성사됐다. 베트남 호찌민은 외국기업들 사이 경쟁이 치열한 곳으로 유명하다. 일주일 만에 계약을 완료했다. 전례 없는 속도다. 자금관리부터 인사, 계약 등 기존 매뉴얼이 준비돼 있었기에 가능했다.

“많은 사업가들이 가능하면 지인을 통해서 싼 것, 무료만 원한다. 하지만 비즈니스 하는 분들은 투자할 줄 알아야 한다.” 김은미 대표의 투자 철학은 ‘화끈하게, 확실하게’다. 남들이 아낄 때 비용을 더 냈다.

사업이 클수록 더 투자해야만 했다. CEO SUITE는 아시아 지역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성장했지만 오피스 서비스 분야의 인기가 많아지며 경쟁사들이 속출했다. 중국 시장은 무섭게 성장했다. 가격경쟁력에서는 이길 수 없었다.

CEO SUITE는 오히려 프리미엄 서비스로 승부를 내걸었다. 서비스 질을 최고로 높이고 시설관리뿐 아니라 공간 배치, 디자인까지도 챙겼다. 간혹 해외지사 고객들과 박물관을 가거나 인맥을 소개해주기도 한다. ‘사무실에 잠시 머물다가 가는 게 아니라 일원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차별화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기업인들은 그를 신뢰했다.

김 대표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아침마다 9개국 지사장들과 화상 회의를 한다. 비영어권 국가들의 액센트가 뒤섞인다. 김 대표는 웃으며 “아시아 영어는 주어+동사+목적어 3형식이 넘어가면 어려워진다”며 “경제가 아시아로 유입되는 시대에 이게 글로벌 잉글리시다. 발음보단 문화에 대한 태도와 교감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비교적 순탄한 사업에도 위기는 숱하게 찾아왔다. “원래 남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로 가져오는 일은 쉽지 않다”는 그는 “완성이 된 게 성공이라면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었다”며 회고했다. 나라 경제뿐 아니라 정책, 자연재해 등으로 계획이 틀어지기도 하고 사람마저 장벽이 되기도 한다.

‘배신’. 베이징에서 함께 일하던 현지 지점장은 갑자기 자궁암 진단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한 뒤 회사의 모든 전략을 들고 길 건너에 있는 경쟁사로 튀었다. 수술비를 대주고 환송을 해준 김 대표는 허탈감을 느꼈다. 그런데도 1년 만에 다시 돌아온 그를 받아줬다.

싱가포르 건물주가 계약을 어긴 일도 있었다. 임대계약 당시 다른 경쟁업체가 같은 건물에 입주하지 않는 특별 조건을 걸었는데, 당시 건물주는 ‘젠틀맨 어그리먼트(gentleman agreement)’를 제안했고 구두계약을 맺었다. 보기 좋게 당했다. 경쟁사가 떡 하니 같은 건물에 입주했고 가격까지 흥정하며 고객 영입에 열을 올렸다. 엘리베이터 입구에서부터 전단지까지 뿌릴 정도였다.

한국 센터 설립 때도 우여곡절은 이어졌다. CEO SUITE는 입찰 막바지 명단에서 갑자기 제외됐다. 중간 담당자가 고의적으로 경쟁사를 끼워놨던 것이다. 그는 “많은 경험으로 인내와 용서를 배웠고 다음 센터 설립의 교훈으로 삼았다”며 여유 있는 답을 내놨다.

사업은 멘탈 싸움

사업은 ‘멘탈 게임’이라고 표현한 김 대표는 “꼭 이래야만 한다는 원칙이 지나치게 강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오기와 정신력으로 버티던 그에게 7년 전 갑상샘암이 찾아오면서 달라진 변화다. 지금도 명상과 요가, 탱고를 열심히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탱고 얘기가 나오자 사진까지 보여주며 얼굴이 밝아진다. “3년 전 아르헨티나에서 접했는데 탱고의 치유력은 대단해요. 다들 외간 남자와 춤을 춘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만 남편과 집에 탱고 스튜디오도 만들었어요. 일상과 떨어져서 위안을 주고받는 행위죠.”

김 대표는 아시아 국가 중 가장 까다롭고 어려운 시장이 한국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중소기업이 살아남을 자리가 없다”며 “현금으로 1년치 선불을 낸다 해도 동남아시아에서 시작한 저에게 자리를 내주는데 소극적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진출이 늦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1호점 설립에 만 10년이 걸렸다.

20년을 달려온 CEO SUITE는 내년에도 변함없이 성장가도를 달릴 듯하다. 호찌민·상하이·베이징 등 5개 센터 오픈이 계획돼 있다. 5년 안엔 기업이 두 배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기도 했다. 그에게 목표를 묻자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목표를 딱히 정한 적이 없어요. 그냥 오늘보다 더 나아지는 것? 탱고를 조금 더 잘 추는 것?(웃음)”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201712호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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