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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서 불어오는 기회의 바람 

 

쿠웨이트=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이라크와 국경을 맞댄 쿠웨이트는 항구와 국제 금융, 자금력, 중동에서의 정치력을 가진 나라다. 이라크 재건 사업과 중동 금융의 허브를 노리는 쿠웨이트의 계획이 어우러지며 제2 중동 붐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쿠웨이트시티 전경. 곳곳에 고층 건물이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 사진:조용탁 기자· SONY RX10 IV, 연합뉴스
#. 2월 13일 쿠웨이트시티 크라운 프라자 호텔. 이라크 재건 컨퍼런스 둘째 날이다. 행사엔 76개국에서 모인 1950개의 기업이 참가했다. 기업인들을 반기며 이라크 투자를 권유한 인물이 있었다. 이라크에서 157개 재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이라크 NIC(National Investment Commission)의 사미 알 아라지 의장이다. 그는 “바로 지금이 바그다드에 투자할 최고의 시점”이라며 “리스크도 있지만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투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2월 15일 쿠웨이트시티 북부 슈웨이크 자유무역지대. 길이 36㎞에 달하는 대교 ‘자베르 코즈웨이’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2012년 11월 시작한 공사는 올해 11월 완공 예정이다. 자베르 대교는 쿠웨이트만을 가로질러 수비야로 향한다. 쿠웨이트 정부는 수비야 일대에 두바이에 버금가는 금융 도시와 대형 항만, 공항을 건설할 계획이다. 그 첫걸음인 자베르 코즈웨이를 지금 현대건설이 만들고 있다.

중동 특수 조짐이 보인다. 10년간 883억 달러가 들어가는 이라크 재건 사업 청사진이 나왔다. 3년에 걸친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 세력과의 전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 들자, ISIL 세력이 사라진 도시에서 재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파괴된 도시 인프라와 산업 시설 건설이 주요 정부 과제로 떠올랐다. 이라크 정부가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했고, 유엔과 월드뱅크, 유럽연합, 걸프연합 등 주요 기관과 단체들이 응답했다. 2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쿠웨이트시티에서 ‘이라크 재건을 위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라크 재건을 주제로 열린 첫 번째 국제회의다.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는 “첫 걸음이 항상 중요하다”며 “이라크 재건에 동의하며 지원해준 국제사회에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회의에는 이라크 주요 장관들도 대거 참석했다. 이라크 재건을 위한 157개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정부뿐 아니라 민간 기업의 투자를 유치했다. 민간에서도 1950개 기업이 참가했고 한국 기업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30여 개 기업이 참석했고 16개 기업이 투자를 논의했다. 회의에 참석한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이라크 재건의 성공을 위해서는 인프라와 인적 투자가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라크 재건을 위해 민간 부문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이라크가 보유한 인적자원을 활용해 투자 유치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쿠웨이트에서 이라크 재건 회의 열린 이유는


▎이라크 재건 회의 마지막 날 성과를 발표하는 의장단. 사진 왼쪽부터 김용 세계은행 총재,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 셰이크 사바 알 아흐마드 알 사바 쿠웨이트 국왕,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 대표.
전문가들은 이라크 재건 사업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쿠웨이트 정부의 움직임을 살피라고 조언한다. 기자가 쿠웨이트로 향하면서 든 궁금증은 ‘이라크 재건 회의가 왜 쿠웨이트에서 열리나’였다. 여기엔 중동 주요국 사이의 이해관계와 지리적 위치, 중동 금융의 허브를 노리는 쿠웨이트의 계획이 어우러져 있었다.

먼저 지정학적 이유를 보자. 이라크로 들어가는 관문이 쿠웨이트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가 만나는 접점에 쿠웨이트가 있다. 페르시아만이 끝나는 지점에 있어 오랫동안 인도-중동 무역로의 관문 역할도 해왔다. 이라크로 향하는 바닷길은 쿠웨이트를 지나야만 한다. 이라크 남부 바스라 지역에 좁은 바닷길이 있지만 수심이 얕아 대형 화물선이 지날 수 없다. 이라크로 향하는 주요 화물이 쿠웨이트를 거치는 이유다.

중동 각국의 이해관계도 중요한 요인이다. 쿠웨이트 국민 70%가 수니파다. 30%가 이란과 같은 시아파에 속한다. 그럼에도 쿠웨이트 왕실 자금을 시아파에서 관리하는 점이 흥미롭다. 미국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무역 창구 두 곳이 있다. 두바이와 쿠웨이트다. 비록 소국이지만 이란이 쿠웨이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이유다. 쿠웨이트와 사우디와의 인연도 깊다. 1991년 사담 후세인이 침공했을 때, 쿠웨이트 왕족들은 사우디로 피신했다. 사우디 왕실은 이들을 형제처럼 돌보고 지원했다. 쿠웨이트는 걸프 연합 회원국으로서 사우디를 수장으로 인정하고 지지해왔다. 정치·외교·종교적으로는 사우디와 가깝고 경제적으로는 이란과 친한 셈이다. 이렇게 쿠웨이트는 두 강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에 성공한다.

이라크 재건 방법과 자금 조달을 논의하는 첫 번째 국제회의가 쿠웨이트에서 열린 또 다른 이유는 이곳이 양 측의 이해 관계를 공정하게 조율할 수 있는 장소라서다. 회의는 순조로웠다. 사우디와 UAE, 이란과 카타르가 한 테이블에 앉았고, ‘이라크의 형제들을 돕자’는 공동 선언문을 낭독했다. 쿠웨이트가 있기에 가능했던 모습이다.

이라크 재건 기금 300억 달러 확보


▎현대건설이 11월 완공 예정인 자베르 코즈웨이 공사 현장.
이라크 재건 회의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3일간 300억 달러의 기금 조성에 성공했다. 터키가 최대 금액인 50억 달러의 차관과 투자 지원을 약속했고, 영국은 10년간 매년 10억 달러의 수출금융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 UAE, 쿠웨이트, 카타르 등 걸프 연합은 차관과 투자 70억 달러를 제공했다. 이란은 지원금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전력 판매, 액화천연가스(LNG) 수송관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라크 재건을 위해서는 10년간 883억 달러가 필요하다. 조성된 기금은 목표에 못 미친다. 쿠웨이트 관계자는 “첫 번째 투자가 성공한다면 투자 금액과 참여 기업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 정부는 재건 참여 기업에 50년간 사용 후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부동산 대여권, 10~15년 면세, 정부 인프라 지원을 약속했다. 한국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임성남 외교부 차관은 “대형 공사들이 진행 될 전망인데, 한국 기업들은 이미 현지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어 좋은 성과를 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한국 기업들은 쿠웨이트에서 굵직한 공사를 성공적으로 건설 중이다. 현대건설이 진행 중인 ‘자베르 코즈웨이’ 대교, LH공사가 추진 중인 스마트 시티 ‘압둘라 신도시’,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 공동 진행 중인 알주르 LNG 수입터미널은 쿠웨이트 최대 건설 공사이자, 쿠웨이트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 중인 개발 계획의 핵심 사업들이다. 쿠웨이트의 목표는 두바이를 능가하는 무역 금융 거점 설립이다. 2012년 시작한 1차 계획의 핵심 사업이 자베르 코즈웨이였다. 11월 다리가 완공되면 쿠웨이트 북부 수비야에 ‘실크시티’를 건설하는 2차 계획을 진행한다. 두바이 ‘부르즈 칼리파(828m)’보다 더 높은 ‘무바라크 타워(1001m)’를 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자유무역지대를 지정한다. 신도시에는 국제공항과 무역항, 두바이를 능가하는 해안도시가 들어선다. 쿠웨이트의 자유무역항은 이라크와 이란에 모두 도움이 된다. 이라크엔 드디어 페르시아만으로 나가는 바닷길이 열리는 셈이고 이란은 더 넓은 무역 창고를 이용할 수 있다. 이라크 재건을 위한 사업에도 도움이 된다. 유연철 주쿠웨이트 한국 대사도 이번 중동 붐의 시작이 쿠웨이트라고 말한다. 그는 “쿠웨이트는 지정학적으로 중동 최고의 입지인 데다 자금력도 충분한 나라”라며 “쿠웨이트에서 생기는 기회를 우리 기업들이 살릴 수 있도록 우리 정부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스기사] 유연철 주쿠웨이트 한국대사 - “40년간 쌓아온 신뢰 활용해야”


▎유연철 주쿠웨이트 한국 대사는 “한국 기업들이 쿠웨이트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조용탁 기자
쿠웨이트에게 한국은 가까운 나라다. 쿠웨이트 수출 1위국이 한국이다. 매일 40만 배럴의 원유를 한국에 공급한다. 건설사 입지도 강하다. 1975년 처음 진출한 이후 꾸준히 우호적인 관계를 다져왔다. 누계액 기준 세 번째로 큰 한국의 해외건설 시장이다. 2014년 이후엔 한국 최대 수주국으로 자리 잡았다. 유연철 대사는 “70년대 진출 이후 지금까지 성실히 일하며 신뢰를 쌓아온 결과”라며 “이를 바탕으로 협력의 폭과 깊이를 넓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의 쿠웨이트 진출을 어떻게 보는가.

쿠웨이트는 기회다. 우리 기업들은 치열히 경쟁해왔고 지금 더 많은 기회가 오고 있다.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현지 상황을 서울 본사가 잘 모른다. 수익 잘 안 난다고 사업을 축소 하거나 다른 곳에 보내면 안 된다. 지금은 아니다. 기업이 전략을 세워서 들어가야 한다.

쿠웨이트가 두바이 같은 도시를 준비한다고 들었다.

중동의 전략 거점은 두바이가 아니라 쿠웨이트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준비해야 하는 지역이다. 이라크 재건뿐 아니라, 사우디와 이란이 대화를 나누는 통로가 쿠웨이트다. 여기에 자리해야 중동 어디든 빠르고 효과적으로 진출할 수 있다.

쿠웨이트와 한국 간 관계가 좋아 보인다. 혹시 원전 이야기는 없나.

쿠웨이트는 클린 에너지 개발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원전은 아니다. 이들은 원전을 거쳐가는 에너지라 한다. 석유 다음에 궁극적인 대체 에너지가 나오기까지 사용하는 중간 단계라는 것이다. 한국 기업도 이 점을 파악하고 쿠웨이트와 차세대 클린 에너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성과가 있을 것이라 본다.

현지에서 느끼는 한국 기업의 강점은 무엇인가

높은 기술 수준과 성실성이다. 쿠웨이트 정부는 기업들을 까다롭게 관리한다. 선진국 기업들은 공사하다 안맞으면 도중에 철수하지만 한국 기업은 손해를 보더라도 끝까지 달라 붙어 완성시킨다. 그리고 더 잘할 테니 공사를 또 달라고 한다. 이렇게 40년을 일했다. 쿠웨이트 정부가 핵심 프로젝트에서 한국 기업을 찾는 이유다.

- 쿠웨이트=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201803호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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