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위원 정태희는…삼성리움미술관을 거쳐 2014년부터 서울옥션 미술품경매팀 근현대 미술 스페셜리스트·경매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성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이론과 예술전문사를 수료했다. 미술품 경매와 관련된 특강을 진행하고 있으며 까사리빙, 삼성카드 매거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미술주간] 등 다양한 매체에 미술시장 관련 글을 기고했다.
허수영 | 시간을 담은 회화
▎1. 숲 10, Forest10, oil on canvas, 248×436㎝, 2016 / 2. 숲 12, Forest12, Oil on canvas, 181.8×291㎝,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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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을 화면에 담는 허수영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동시대 미술의 현장에서 꾸준히 자신만의 평면 회화 작업을 지속하는 페인터로서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그의 작품은 겉보기에 무질서하거나 불규칙해 보이기도 하는데 오히려 이러한 풍경 표현 방식은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해 시선을 더욱 끌어당긴다.작가의 작품을 처음 경험한 사람들은 캔버스를 뒤덮은 물감의 흔적을 먼저 느낄 것이다. 마치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회화와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표현하려 했던 것이 추상적인 물감의 물성 자체는 아니다. 그의 작품에 다가가 감상해보면 반복적인 물감의 흔적 속에서 어떠한 풍경 모습이 점차 드러나고 곧 특정 대상이나 환경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허수영의 화면은 순간의 상황만 담아내는 것을 넘어,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담아낸 독창적인 작품으로 여겨진다. 작업 과정을 보면 작가의 앞에 놓인 풍경을 그리고 그 위에 같은 공간이지만 시간이 흐른 뒤의 풍경을 그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의 그림은 점차 시간의 층을 담아내는 축적된 회화가 된다. 다음 날 변화될 환경을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우연성에 따른 풍경은 시간의 흐름에 의해 대상이 중첩된 한 폭의 작품이 된다. 작가는 2010년 청주 창작스튜디오를 시작으로 여러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다양한 지역에서 생활했다. 자연스럽게 작업실 주변 풍경을 위와 같은 방법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표현한 숲의 모습을 보면 봄의 푸르름부터 여름의 화려함, 가을의 울긋불긋함, 겨울의 앙상한 수풀까지 흘러가는 시간의 변화를 화면에서 느낄 수 있다. 근경을 크고 또렷하게 그리고 원경을 작고 흐릿하게 그리는 원근법의 기본적인 양식과 달리, 작가는 풍경 속의 개별 개체가 그 자체로 느껴질 수 있게 또렷하게 그리며 캔버스 평면의 어느 곳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세부 묘사의 필법은 근작에서 극대화되어 물감 흔적이 더욱 섬세히 표현되는데 그 앞에 서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작가의 초기 작품은 식물이나 곤충 도감 속 이미지들을 캔버스에 옮겨 그리는 [한 권의 책, 한 점의 그림] 시리즈였다. 이때 작가가 그리는 이미지들은 실재하는 새나 곤충을 표현한 것이 아닌 사진으로 찍혀 책으로 인쇄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캔버스에 채워가는 방식으로 재현한 것이다. 사실처럼 그려진 대상을 보고 감상자는 실재와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실재를 그린 회화가 아니다.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며 나오는 이미지들을 작가의 의식을 개입하지 않고 그대로 옮겨 닮아내는 방식을 취하는 작품이다.허수영은 2017년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를 거쳐 올해는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에 입주하여 작품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펼쳐질 그의 새로운 작품이 더욱 기대된다.
※ 허수영(1984~)...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12 14회 신세계 미술제 대상, 2013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열린 인사미술공간 전시공모, 2016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됐다. 현재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자하미술관, 서울과학기술대학교미술관, OCI 미술관, 아르코미술관 포트폴리오 아카이브, 몽인아트스페이스, 신세계컬렉션, 을지병원, (주)시몬느, (주)코오롱, (주)유파인메드 등에 소장돼 있다.
이우성 | 지금 세대를 이야기하는 작가미술 작품은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 반듯한 프레임에 잘 들어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열린 이우성의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은 작업실에서 방금 가지고 온 것처럼 걸개 형태로 전시되어 이목을 끌었다. 1983년생 작가는 오늘날 88만원 세대들이 경험하는 현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작품에 옮겼다. 2017년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린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전시는 김승옥의 1965년 소설『서울 1964년 겨울』에서 출발하며 그때의 서울에서 오늘날의 서울의 모습이 보이는 경험을 배경으로 한다. 촛불집회가 한창일 무렵 종로를 거쳐 광화문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바라본 모습과 멀리서 거대한 빌딩 숲을 무덤덤하게 그려낸 그의 작품은 지금 사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리얼리즘 회화이자 과거 민중미술의 향기가 묻어나기도 한다. 걸개 속에 표현된 일상의 인물들은 현실의 고민을 떠안고 살아가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자 과거 70~80년대를 지나온 기성세대의 젊은 날이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작가는 2013년 OCI 영 크리에이티브 상을 수상하였고 2015년 아트스페이스 풀의 개인전, 2017년 학고재 갤러리 개인전을 펼쳤다.
※ 이우성(1983~)...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예종 조형예술과 평면전공 전문사를 졸업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2012 홍은예술창작센터와 서교예술실험센터 [우리가 쌓아올린 탑], 175 갤러리[불불불], 2013 OCI 미술관[돌아가다 들어가다 내려오다 잡아먹다], 2015 아트스페이스 풀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2017 아마도 예술공간[키사스키사스키사스], 학고재 갤러리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등이 있다. 2013년 OCI Young Creatives 수상을 했다.
임정수 | 사물 속의 섬세한 발견
▎1. 배경배경, 목재 천 스틸, 가변설치, 2017 Background background, Wood fabric steel Installation, 2017 / 2. 벽 ·땅·옆, 천 목재 철골구조, 가변설치, 2017 Wall Ground Atmosphere, fabric, wood, steel structure, Installation,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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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듯 없는 듯 익숙했던 사람도 어느 날 보이지 않으면 그 존재감이 문득 확연히 드러날 때가 있다. 임정수는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어 미술품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의심될 정도의 생활용품을 새롭게 구성하는 방법으로 작품세계를 선보인다. 반짝반짝 빛나는 포장재료나 어디선가 깨져 나온 시멘트 조각, 빨래 건조대, 담요까지도 작가의 손을 거치면 작품으로 완성된다. 익숙했던 작품 재료들은 전시되는 공간 속에서 개체 하나하나가 공간과 조화를 이뤄 조형적 아름다움을 뽐낸다. 임정수의 작품 앞에 서면 기성 제품(상품)들이 조각이 되기도 하고 평면 회화와 같은 작품이 되는 모습에 때론 낯설면서도 점차 빠져들게 된다. 작품의 매력을 꼽자면 소재의 물질적 특성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공간 속에 펼쳐낸다는 점이다.올해 1월 아트비앤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평면 작품이 더욱 눈에 띄었다. ‘뽁뽁이’포장재와 반짝이는 포장지를 포개어 만든 평면 작품에서 마치 회화와 같은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서로 다른 소재가 만나 창출해내는 미적 감성을 느끼게 했다. 2월부터는 체코를 거점으로 동유럽의 스튜디오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하니 귀국 이후 선보일 작품이 더욱 기대된다.
※ 임정수(1988~)... 2015 한예종 예술사를 졸업하고 2018 한예종 미술원 조형예술 전문사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2016 스페인 이룬에서 [너도 살고 나도 사는집], 2017 네덜란드 에스헤데에서 [Jeongsoolim/Concordia], 2017 서울 김종영미술관 [벽,땅,옆] 등이 있다. 김종영미술관의 2017년 창작지원작가에 선정되었다.
정다운 | 천으로 그리는 회화
▎1. FabricDrawing 2017, fabric.frame, 160×160㎝, 2017 / 2. FabricDrawing Play Ground. installation.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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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브릭의 다양한 색과 패턴의 조화로 완성된 정다운 작가의 작품을 보면 소재를 활용하여 표현하는 기법에 놀라게 된다. 사각의 프레임 안에서 패브릭은 겹겹이 교차되고 덧씌워져 있다. 화려하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각기 다른 개성의 문양과 색들은 사각의 공간 속에서 작가 특유의 조형적 감각으로 풀이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개인전 타이틀은 줄 곧 [FABRIC DRAWING]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작가가 선택한 패프릭 조각은 프레임에 팽팽하게 매이고 겹쳐지며 긴장감 도는 탄성을 만들어낸다. 섬유로 만들어진 옷과 매일 덮는 이불은 이러한 패브릭 소재에 항상 감싸여 있다. 촉각적으로 익숙했던 소재가 프레임의 공간 속에 겹쳐지고 팽팽하게 묶이는데, 다양한 색감과 패턴의 패브릭은 작가 앞에 놓인 평면의 공간을 장식적인 3차원의 공간으로 변화시킨다.소재의 특성과 디자인적인 작품 패턴 덕분에 인테리어 공간을 활용해 설치하기에도 좋은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신진 작가임에도 각종 매체에 심심치 않게 소개되고 있다. 작가는 2015년을 기점으로 펼치던 개인전을 당분간 멈추고 올해는 작업과 학업에 더욱 몰두한다고 한다. 고민의 시간을 거쳐 새롭게 채워질 그녀의 프레임이 더욱 기대된다.
※ 정다운(1987~)... 2013년 동덕여대 예술대 회화과 서양화전공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를 수료했다. 개인전으로는 동덕아트갤러리, l’espace 71, 스페이스선, Mods Gallery 등이 있다. 2016 KIMI OR YOU 선정작가다. 키미아트갤러리, 서울 갤러리탐 19기 선정 작가이자 아티커버리 TOP 1 작가로도 선정됐다.
조혜진 | 사물의 대한 연구
▎1. [구조들_도시루 아카이브] 종이에 에폭시 코팅, 실용신안 문서 및 리서치 자료 설치, 가변크기, KF갤러리 설치전경, 2017 / 2. [한국식 열대] 열대식물에 관한 기사 및 식물 설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디지털아카이브 설치전경,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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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미술현장에서 조혜진은 사물에 대한 탐구를 시작으로 ‘사물 형태-제조 과정-사회·문화적 의미’를 조사하는 과정으로 파고 들어간다. 예컨대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화환이나 관상용으로 사용하는 도시루(플라스틱 형태의 종려나무 잎)을 조사하며, 식물이라는 자연적 태생의 특성과 달리 사회 내에서 이용되고 인식되는 과정과 의미를 보여준다. 미술가라기보다 정보를 찾고 데이터화하는 학자적 태도로 작업을 진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의 형태나 공간에 놓이는 작품의 조형성은 여전히 미술의 범주에서 해석될 수 있다. 아마도 그녀의 전공이 조소이기에 단순한 일상의 사물조차도 그것이 갖고 있는 미적인 조형성을 보여주는 데 뛰어나지 않나 생각된다.작가의 관찰에서 출발한 작품은 설치미술이나 사물 조각의 형태로 완성됐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며 익숙했던 것에 숨은 의미를 찾게 만든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식물도감: 시적증거와 플로라], 2017년 아트스페이스 휴 [새로 만들기; 문서들] 개인전 등에서 그녀의 작품이 더욱 주목을 받았다.
※ 조혜진(1986~)... 2011년 이화여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서울 2017 [새로 만들기; 문서들], 아트스페이스 휴 외 4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7 [정글의 소금] 외 27회의 그룹전시전에 참가했다. [아르코], [더 스크랩], [PACK]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12년 서울문화재단의 NArT(유망예술육성 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