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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MH 최초의 한국인 임원 손소진 상무 

기죽지 말고 도전하라 

최영진 기자
세계 명품시장을 이끌어가는 LVMH의 성장과 혁신을 현장에서 지켜보는 유일한 한국인 임원이 있다.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직속의 전략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는 손소진 상무다. 그를 만나 LVMH와 아르노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8월 8일 서울 삼성동에 있는 LVMH 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손소진 상무는 “한국의 뷰티 분야에서 명품 브랜드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2002년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사했을 때부터 주목받았다. 2002년 당시 삼성그룹의 공채 인원은 5400여 명. 이 중 여성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가 경력을 쌓기 시작한 삼성전자 마케팅 부서 직원은 대부분 개발자 출신이었다. 영어를 잘하고 발표도 잘하는 경영학도 출신은 드물었던 때다. 입사 초년생 시절부터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각종 TF에서 일하며 다양한 경험도 쌓았다. 2007년 삼성전자가 선정한 ‘최초 현장 전문가’로 꼽혔다. ‘최연소 대리 현장 전문가’라는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2010년 말에는 프랑스 지역 전문가로 선정되어 파리로 떠나기 위해 준비를 했다. 당시 프랑스로 떠나는 기회가 흔치 않았기에 그에게 좋은 기회였지만, 의외의 선택을 했다. 파리로 떠나는 대신 MBA를 선택한 것. 전 세계 45개국에서 90명만 뽑는 스위스 IMD(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럭셔리 클럽을 만들고 관련 산업의 선배와 커뮤니케이션 등을 하면서 명품 산업에 대한 정보를 늘려갔다. 어쩌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선택이다. 글로벌 명품시장의 리더 기업인 LVMH(모엣헤네시 루이비통) 본사에서 전략기획팀 임원으로 일하는 손소진(39) 상무 이야기다.

그가 눈길을 끄는 것은 LVMH에서 ‘최초의 한국인 임원’이라는 점이다. 더군다나 그는 LVMH 왕국을 건설한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회장 직속의 전략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LVMH 평판 조회 중요하게 생각해


8월 초 한국에 잠깐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6월 말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LVMH가 인터뷰를 허락한 후에야 손 상무와 인터뷰 장소와 날짜를 정할 수 있었다. 8월 초 서울 삼성동에 있는 LVMH 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에 대해 궁금한 게 많겠지만 본사 정책상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면서 “무엇보다 내가 회장을 자주 만나지 못한다”며 웃었다.

LVMH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궁금했다. 삼성전자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던 마케터가 전혀 다른 명품 분야에 왜 뛰어들었을까. 그는 “삼성전자에서 마케터로 일하면서 브랜드의 글로벌화에 관심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명품 기업이 궁금했다”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두려움이 있었지만 LVMH의 제안을 받았을 때 도전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0년 넘게 삼성전자에서 마케팅 관련 일을 했다.

내가 입사할 때만 해도 삼성전자 마케팅 부서에는 개발자 출신이 많았다. 여성 마케터도 별로 없던 때다. 영어를 할 줄 알고 PT 작업을 잘한다는 점 덕분에 입사 초기부터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많았다. 운이 좋아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에서 어떤 일을 했나?

영상사업부에서 오래 일했다. 브라운관 TV부터 시작해 LED TV, 3D TV 등 TV를 론칭하는 마케터로 일했다. 영국과 독일 등지에서 삼성 TV 마케팅을 하기도 했다.

삼성에서 운영하는 지역 전문가로 선정됐다고 하던데.

2010년 후반 삼성전자에서 프랑스 지역 전문가로 나를 선정했다. 유럽에서 일한 경험을 인정받은 것 같다. 그때 지역 전문가 준비를 하다가 MBA로 방향을 틀었다. 오래전부터 MBA에 도전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따놓은 GMAT(경영대학원 입학시험) 점수 유효기간이 그해가 마지막이었다.(웃음) 딱 한 곳만 원서를 넣어 보자고 생각했다. 내가 택한 곳은 스위스 IMD였다. 매년 전 세계 45개국에서 90명만 선발하는 학교다. 삼성 미래전략그룹 사업부에서 일할 때 IMD 출신과 함께 일하면서 그 학교를 알게 됐다. 그들이 일을 잘하는 것을 보면서 IMD에 대한 이미지가 좋았고, 도전하게 됐다. 운이 좋게 합격해서 회사를 나오게 됐다.

IMD를 졸업하고 다시 삼성전자에 복귀했다.

IMD를 졸업할 즈음에 해외 여러 기업에서 오퍼를 받았다. 뷰티 분야 기업도 있었다. 그때 삼성에서 함께 일했던 임원 분이 CMO(최고마케팅책임자)로 승진했는데, 함께 삼성전자 브랜드 마케팅을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전사적인 프로젝트라고 들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컴백하기로 결심했다. 삼성전자에 돌아와서는 브랜드를 세계화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부서 간의 벽을 허물어야만 하는 일이라 상당히 어려웠지만, 2년 정도 하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게 됐다. 그러던 차에 2013년 가을 LVMH에서 오퍼가 왔다. 그때는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은 생각이 강해서 합류하게 됐다.

삼성전자에서 마케팅 일을 할 때 그가 항상 고민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삼성 TV를 사람들이 원하게 만들까’라는 것이었다. TV 브랜드의 명품화를 고민했던 것. IMD에서 명품 분야를 공부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IMD에서 만났던 동료 덕분에 LVMH도 알게 됐다고. 그는 “IMD에서 공부할 때 LVMH가 캠퍼스 리쿠르팅을 왔다”면서 “당시 사람을 바로 뽑는 것은 아니었고, 인력풀을 확보하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그때 내 이력서도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LVMH 제안을 받고 일본에서 첫 면접을 봤는데, 명품에 대해서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를 많이 살펴봤다”면서 “당시 임신 중이었는데, 기다린다고 해서 2014년 7월 합류하게 됐다”고 말했다.

LVMH의 인력 채용 방식이 궁금했다. 그는 “LVMH는 채용 사이트에서 수시 채용을 한다”면서 “지원동기서와 이력서 등을 제출해야 하는데 팩트 위주로 그동안 해왔던 일을 짧게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경력직의 경우에는 품평 조회가 상당히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그는 “서류 통과 이후 LVMH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네트워크 평가다. 내가 그동안 어떻게 일했는지를 꼼꼼하게 검증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한국인이 없던 기업이 왜 손 상무를 택했을까. 그는 “그동안 LVMH에서도 한국인을 채용하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마땅한 네트워크가 없었던 것 같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나를 발견했고 나에게 기회를 줬던 것 같다”며 웃었다.

공학도 아르노 회장, 1987년 LVMH 설립


▎손소진 상무는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직속의 전략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LVMH의 성장과 전략을 직접 경험해보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LVMH라는 명품 왕국을 건설한 이는 공학도인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다. 1987년 루이비통과 모엣헤니시를 합병해 설립했다. 아르노 회장은 에콜 폴리테크를 졸업한 후 아버지가 운영하는 건설회사에 입사해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78년 아버지가 운영하던 건설회사 회장을 맡았고, 1984년까지 운영했다.

그가 명품시장에 뛰어든 것은 1984년 경영난을 겪던 크리스찬 디올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이후 다양한 명품 브랜드의 M&A로 규모를 키웠다. 1987년 모엣헤네시와 루이비통을 합병하면서 LVMH의 역사를 쓰고 있다. ‘와인 & 증류(Wines & Spirits)’, ‘패션 & 가죽 제품(Fashion & Leather Goods)’, ‘향수 & 화장품(Perfumes & Cosmetics)’ 등 6개 분야에서 루이비통, 펜디, 크리스찬 디올, 돔페리뇽, 태그호이어 등 70개 명품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54조원에 이른다. 한국에는 루이비통·디오르·펜디·모엣샹동 등의 브랜드가 진출했다. 손 상무는 아르노 회장에 대해 “그는 6개월 동안의 매출액보다 10년 뒤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을 더 고민하는 사업가”라며 “그는 혁신과 창의성, 창업가 정신을 항상 강조한다”고 말했다.

아르노 회장이 LVMH를 글로벌 명품시장의 리더로 성장시킨 데는 대규모 M&A 덕분이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이에 대해 손 상무는 “과거 대규모 M&A가 있었지만 LVMH 성장의 핵심 요인이 아니다”면서 “회장의 가장 큰 고민은 LVMH의 우산 아래서 각 브랜드를 성장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장의 경영 철학은 각 브랜드에 독립성을 주고 본사는 지원을 하는 것”이라며 “본사가 브랜드를 ‘집’이라는 뜻의 ‘메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족 정신을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LVMH의 전략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아르노 회장의 직속 조직이다.

회장 직속의 전략기획팀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르노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웃음) 팀원이나 규모는 비밀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70개 메종이 혁신과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전략을 짜는 것이다. 신규 브랜드 개발과 비즈니스 론칭 등이 우리 팀의 역할이다.

손 상무가 론칭한 브랜드나 사업이 있나?

지난 4월에 ‘텔리오스(THELIOS)’라는 선글라스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내가 처음부터 기획해서 완성했다. 그동안 LVMH에는 선글라스 브랜드가 없었다. 각 메종이 다른 기업과 협업해서 선글라스를 내놓았다. 제품의 질을 컨트롤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선글라스에서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봤다. 공장은 이탈리아에 있다.

LVMH에서 일한 지 4년이 됐다. 어떤 점을 느꼈나?

명품을 만드는 것은 마치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는 것과 같다고 느낀다. 최고의 재료를 찾아내고, 이를 혁신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디자이너는 독창성을 발휘해 디자인하고, 장인은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제품을 만들어야만 명품 제품 하나가 탄생한다. 심지어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아르노 회장이 혁신과 창업가 정신을 강조한다고 했다. 역사와 전통으로 대변되는 명품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명품은 브랜드의 전통을 기본으로 하지만 새로운 독창성이 있어야만 지속할 수 있다. 역사가 오래된 브랜드가 현재까지 이어지려면 독창성과 혁신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LVMH가 IT 기업에 비해 일 속도가 늦을 수 있지만, 우리는 혁신을 위해 다양한 스타트업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지난 4월 LVMH는 매년 스타트업 50개를 육성한다고 발표했다. 파리에 있는 세계 규모의 스타트업 캠퍼스인 ‘Station F’에 LVMH 공간을 만들어 이곳에서 스타트업을 지원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나올 수 있을까?

분명히 가능하다. LVMH가 운영하는 백화점이 있는데, 전 세계의 멋진 제품만 선보인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뷰티 제품이 이 백화점에서 소개되고 있다. 명품이 성공하려면 시대의 트렌드도 빠르게 반영해야 하는데, 한국의 뷰티 산업은 워낙 민감하고 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 상무가 본지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 이유가 있다. LVMH 같은 글로벌 명품 기업에 많은 이가 도전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가 본지의 인터뷰 요청서를 받은 후 본사를 직접 설득해 나온 이유다. 그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프랑스어를 하지 못해 초반에 고생을 많이 했지만, 회사의 지원으로 프랑스어 과외를 받으면서 적응했다. 초반에 언어 문제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조직 문화였다. 한국 기업이 위계적이라면 이곳은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 중요한 문화다. 창업가 정신이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렵지만 적응한 후에는 LVMH가 어떻게 글로벌 명품시장을 이끌어가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무엇보다 LVMH처럼 한국인을 뽑고 싶은 유럽 기업이 많다. 겁먹지 말고 도전했으면 한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1809호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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