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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의 art TALK(11)] 테이트 모던의 특별전 

PICASSO 1932’ LOVE, FAME, TRAGEDY 

이지윤 미술사가 ‘숨’프로젝트 대표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이 수년에 걸쳐 준비한 매우 의미 있는 멋진 전시가 테이트 모던에서 오픈했다. 바로 피카소가 1932년에 제작한 작품으로만 기획된 [LOVE, FAME, TRAGEDY]라는 특별 기획전이다.

▎Installation view of The EY Exhibition:Picasso 1932-Love, Fame, Tragedy ⓒSuccession Picasso/DACS 2018
어떤 한 해에 만든 작품으로만 테이트 모던급의 대형 전시장에서 특별전을 초청한다면 그저 그 공간을 채울 만큼의 작품이 있는 작가는 흔치 않을 것 같다. 다작이 천재 작가들의 기본적인 특징 중 하나이듯, 피카소도 살아생전 2만5000점을 만들어 다작 작가로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에게 특히 1932년은 더욱 그러했다. 그가 1932년에 그린 작품 ‘Nude, Green Leaves and Bust’는 지난 2016년 경매에서 1300억원에 거래돼 당시 세상에서 가장 비싼 페인팅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1932년은 소위 ‘신기한 해(Years of Wonders)’로 불리곤 한다.

새로운 실마리 마련한 1932년


▎Picasso, 1933, Photograph by Sir Cecil Beaton ⓒThe Cecil Beaton Studio Archive at Sotheby’s
1932년은 피카소가 50살이 된 해다. 그에겐 작가로서 새로운 실마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1901년 파리로 넘어와서 당당히 새로운 미술을 구축해나갔고, 파리 초창기 블루시대, 주홍빛시대, 큐비즘 시기 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미술 언어를 만들어가며 바로 파리 미술계의 스타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 비평가들은 그의 예술세계가 이제 거의 소진되지 않았을까 의문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한 시점에 그의 첫 번째 뮤즈였고 처음으로 결혼한 러시아계의 발레리나인 올가와 소원해졌다. 그는 45세에 우연히 만난, 당시 17살이었던 마리아 테레스 워터(Marie-Thérèse Water)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많은 사람이 예술가들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사생활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다 그렇지는 않다. 평생을 혼자 살다 간 사람도 많고,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하지만 알려진 바와 같이, 피카소는 살아생전 매우 큰 명성을 누리고 성공한 작가였을 뿐 아니라, 두 번의 결혼 외에도 많은 뮤즈를 두었다. 특히 그는 1930년 파리에서도 이동이 편한 프랑스 남부 노르망디 지방에 있는 18세기 성인 부아젤루(Boisgeloup)를 구입했다. 그는 이곳에서 주로 조각 작업을 하며 당시 자신의 비밀 애인이었던 마리 테레스 워터를 영감으로 멋진 시리즈를 만들어냈다. 이 스튜디오는 피카소의 예술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다. 물론 올가에게는 그녀의 소중한 장소가 또 다른 여인에게 넘어가는 아픈 경험을 해야 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사진가 브라사이(Brassäi)가 멋지게 남긴 그의 작업실 사진이 보여주듯, 매우 큰 조각과 페인팅을 할 수 있던, 피카소만의 동굴이었다.

특별히 1932년은 그가 파리에서 가장 중요한 조르주 프티(Georges Petit) 갤러리에서 회고전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긴장되고 어려운 시간이기도 했다. 사실 당시엔 작가들이 살아 있으면서 회고전을 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1931년에 마티스가 같은 화랑에서 개인전을 한 터라 다소 경쟁적인 맥락에서 전시 초청을 수락했다. 사실 이 전시는 그가 베니스 비엔날레, 뉴욕의 모던아트 미술관의 전시까지 취소하며 매우 중요하게 준비한 전시이기도 하다.

한편 갤러리 입장에서는, 당시 미술시장이 겪고 있는 극심한 대공항 상황을 이 성공한 작가의 회고전으로 화랑의 운영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시대적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 중요한 갤러리도 1933년 문을 닫게 되었지만, 피카소에게는 가장 중요한 전시라고 말할 수 있다.

6월 16일 GALERIE GEORGES PETIT


▎Pablo Picasso, The Dream, 1932, Private Collection ⓒSuccession Picasso/DACS, London 2018
“The work that one does is a way of keeping a diary”

피카소는 “예술은 일기와 같은 것이다. 매일매일을 기록해가는 것이 나의 예술이며, 그런 일기장을 보여주는 것이 전시다”라고 말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그가 직접 ‘큐레이팅’한 중요한 회고전이 바로 이 전시다. 이 전시의 오프닝에는 2000명에 달하는 파리 사람이 방문했고, 그저 당시에 왠만한 지성인이라면 꼭 봐야만 하는 전시이기도 했다. 여기서 피카소는 다른 작가들의 회고전과 매우 다른, 완연히 다른 디스플레이 실험을 했다. 작품들은 초기 작품에서 현재까지 시대별로 구성하지 않고 여러 시대와 스타일로 만들어진 작품들을 모두 섞어서 설치했다. 예를 들면, 1906년에 브랑쿠지와 함께 시작한 큐비즘적인 여인의 누드와, 1차대전 직후 유행하던 매우 사실적인 이미지로 그린 올가의 초상 등 1918년부터 1924년까지의 작품을 함께 디스플레이했다. 그리고 지난 6개월간 부아젤루에서 새로 작업한 마리 테레스의 초상과 누드 작품은 전시장 여기저기를 가득 채웠다. 피카소의 새로운 뮤즈가 누구인지 바로 소개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수많은 관객이 있었지만, 피카소는 참석하지 않고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간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뒷얘기도 있다. 이 전시로 올가도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되었고, 드디어 마리아 테레스가 1935년에 임신을 하자 올가는 떠났다.

남들이 들으면 심한 여성 편력의 사람으로 간주될 이 1932년은 피카소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그린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새로움에 대한 탐구를 그치지 않았다.

이번 특별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내용도 이 전시의 한 부분을 재현한 것이다. 당시의 전시 자료 및 초청장, 신문 스크랩, 설치 장면, 심지어 당시 마신 샴페인의 종류까지 기록된 아카이브도 보여준다. 피카소가 대단한 점은 이 회고전을 준비하면서 그의 가장 정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예술성을 발휘하는 챕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주 마치 어린 학생처럼 하루하루 일기를 쓰듯 매일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렇기에 부아젤루 스튜디오에서의 생활을 통해 이번 테이트 모던 특별전도 1월부터 12월까지로 전시장을 기획할 수 있었고 일련의 작업들을 순서대로 소개하는 전시를 만들 수 있었다. 특히 그에게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젊은 뮤즈인 마리 테레스와의 사랑 덕분에 그는 고전에서 다루었던 여인의 초상, 누드, 신화 등 매우 원초적인 회화의 기본을 다시 다루기 시작했다. 그녀와의 열정적인 사랑이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녀가 자고, 몸을 구부리고, 움직이고, 꿈꾸는 모든 모습이 그의 작업에 소재가 되었다. 특히 그녀의 프로필은 고대 로마 여인과 매우 흡사한 특징을 지녔고, 그러한 모습은 다소 성기와 같은 모습의 두상으로 표현된 그의 유명한 조각들이 시작된 계기이기도 하다.

사실 피카소는 언제나 전통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자 시도했다. 그 어떤 시기보다 가장 고전적인 여인의 누드나 초상화 같은 기본적인 구도에 집중한 듯하다. 당시를 생각하면, 피카소는 프랑스의 사회주의적·공산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사상 대립에서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매우 중립적인 정치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의도적으로 다른 상징적 의미를 담는 작업들을 피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더욱 예술의 고전과 기본에 집중하며 지극히 제한적인 정치성을 보여주는 작업을 했다. 특히 1933년이 히틀러가 유럽을 제패하고, 유럽에서 나치의 관할이 가장 넓어지는 시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담은 것은 그의 고향인 스페인의 바스크 타운이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에게 폭격을 당한 후 1937년에 그린 게르니카이다. 한국전쟁을 주제로 1949년에 그린 작품도 그러한 예일 것일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피카소의 전시를 한다고 하면 아무리 긴 줄이어도 마다치 않고 기꺼이 몇 시간을 서서 전시를 보고자 하는 열망이, 이번 전시에서도 필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특히 예술가로서 무르익은 50세의 피카소가 여전히 가지고 있는 여인에 대한 사랑과 열정 또한 놀랍다. 시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중요한 이 해에 그는 3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Pablo Picasso, Nude, Green Leaves and Bust, 1932, Private Collection ⓒSuccession Picasso/DACS 2018



▎Pablo Picasso, Portrait of Olga in an Armchair, 1918, Mus e National Picasso ⓒSuccession Picasso/DACS 2017



▎Pablo Picasso, The Rescue, 1932, Foundation Beyeler, Riehen/Basel, Sammulung Beyeler ⓒSuccession Picasso/DACS 2017 마치 일본의 우키오에 작가인 호쿠사이의 춘화에 나오는 문어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Pablo Picasso, Bust of a Woman, 1931, Mus e National Picasso ⓒSuccession Picasso/DACS 2017



▎Pablo Picasso, The Mirror, 1932, Private Collection, ⓒSuccession Picasso/DACS 2018



▎Pablo Picasso, Nude Woman ni a Red Armchair, 1932, Tate ⓒSuccession Picasso/ DACS 2018 마리의 23살 생일 때 그려준 작품.



▎Pablo Picasso, The Rescue, 1932 © Succession Picasso/DACS London, 2018 오염된 물에서 수영을 하고 매우 심하게 아픈 마리를 구하고 있는 이미지.
※ 이지윤은…20년간 런던에서 거주하며 미술사학 박사/미술경영학 석사를 취득하고, 국제 현대미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큐레이터다. 2014년 귀국하여 DDP 개관전 [자하 하디드 360도]를 기획했고, 3년간 경복궁 옆에 새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첫 운영부장(Managing Director)을 역임했다. 현재 2003년 런던에서 설립한 현대미술기획사무소 숨 프로젝트 대표로서, 기업 컬렉션 자문 및 아트 엔젤 커미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809호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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