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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기업에서 배운다] 레이니어 반 러셀 랑세스(Lanxess) 부회장 인터뷰 

글로벌 특수화학 시장의 다크호스 

박지현 기자
13년,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지닌 이 화학 기업은 업계의 새 얼굴에 가깝다. 그렇지만 모기업은 155년 된 제약회사 바이엘(Bayer)이다. 바이엘의 고부가 특수화학 분야를 분리시켜 설립한 회사 랑세스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권에 들었다. 지난 7월 레이니어 반 러셀 랑세스 부회장이 한국을 찾았다.

▎레이니어 반 러셀 랑세스 부회장은 “고부가가치 제품 중 독보적인 시장 우위의 비즈니스를 공략했다”고 말했다. / 사진:랑세스
#1. 2017년 5월,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독일의 한 화학 기업에 투자했다. 구체적인 투자 배경은 밝히지 않았지만, 전 세계 특수화학 분야를 주름잡는 이 기업의 행보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가 주식 약 3%를 매입한 날, 주가는 7%나 뛰었다. “독과점에 투자하라”는 버핏의 투자원칙이 시장에 먹힌 셈이다.

#2. 프랑스 에펠탑에 녹이 스는 걸 막는 것도 이 기업 몫이다. 프랑스 당국은 에펠탑 보존을 위해 7년마다 페인트 코팅 처리를 한다. 지금까지 19차례나 단행했고, 에펠탑은 녹빛이 아닌 밝은 철 색상을 유지하고 있다. 바로 이 회사가 개발한 무기안료 ‘베이페록스’를 사용한 덕분이다. 품질이 좀 떨어져도 자국산을 우선시하던 프랑스도 자존심을 구겨가며 독일의 이 회사 제품을 쓸 수밖에 없다.

독일 특수화학 기업 랑세스 얘기다. 랑세스는 1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독일 유명 제약사 바이엘의 ‘화학·폴리머’ 사업 부문이 분사해 2005년 쾰른에 설립됐다. 지금은 화학, 반도체, 자동차, 전기·전자, 건설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소재, 산업용 중간체, 첨가제 등 특수화학 제품을 공급한다. 전 세계 25개국에서 생산기지 74곳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은 랑세스가 주력하는 협력 비즈니스 지역으로 떠올랐다. 한국에는 자동차 시장을 비롯해 LED와 반도체, 태양광, 전기차, 배터리 분야 등 랑세스의 주요 고객사가 대거 포진해 있다. 특히 현대·기아자동차는 2002년부터 랑세스의 고성능 플라스틱을 프런트엔드(전면부) 등에 사용해 제품 경량화를 이뤘다. 또 랑세스 제품 중 옥손은 북미 등 세계에서 수영장 세정제, 의치 세정제와 조류독감, 메르스 등 감염질병 방제용 살균소독제에 사용되지만 한국에서는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용 PCB(Printed Circuit Board)에 마이크로에칭제로 널리 쓰인다. 한국은 옥손 전체 매출 중 마이크로 에칭제 비중이 가장 높은 시장 중 하나다.

“우린 수익성이 높으면서 경기변동에 영향을 덜 받는 안정적인 화학 기업이 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했습니다. 고부가가치 제품 중에서도 독보적인 시장 우위를 가진 비즈니스에 집중했어요.”

지난 7월 방한한 레이니어 반 러셀 랑세스 부회장은 포브스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반 러셀 부회장은 바이엘 감사인으로 입사했고, 1993년 전략기획부에서 M&A 본부를 총괄하며 활약했다. 특히 바이엘의 위기극복 전략, 랑세스의 혁신전략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 랑세스 독일 본사 경영이사회 임원으로 노사관계(labor relation)를 책임지고 있다.

카카오, 파주 헤이리도 랑세스 재료 사용


반 러셀 부회장이 몸담은 랑세스의 경영 실적은 호조세다. 2017년 매출 97억 유로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고 올해 실적 전망도 상향 조정했다. 올해 1분기 매출은 25억6500만 유로로 전년 대비 7% 증가했다. 글로벌 화학산업 전문 조사기관 ICIS가 선정한 ‘2017 글로벌 100대 화학 기업’ 43위에 오르기도 했다.

경쟁자가 많은 화학업계에 뛰어든 13년 차 신입은 특수화학 분야에 집중했다. 바이엘에서 축적해온 기술 노하우와 고품질 전략으로 공략했다. 랑세스는 원래 세계 최대 무기안료 공급사다. 지난 90여 년간 빨강·노랑·검정·갈색·녹색 등 100여 종에 이르는 다양한 색을 일상생활에 끌어들였다. 랑세스는 고품질 프리미엄 무기안료 브랜드인 ‘베이페록스’와 ‘컬러덤’을 전 세계에 공급한다. 아부다비의 에미리트 팰리스 호텔뿐 아리나 한국 카카오(Kakao) 본사,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등에도 랑세스의 무기안료가 배합된 ‘컬러콘크리트’가 사용됐다.

랑세스는 고부가가치 비즈니스를 확대했다. 첨가제 제품만 1100개 이상, 100여 개국에서 고객사 2000개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첨가제는 사용량은 적지만 제품 성능 및 품질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자본집약도가 낮아 수익성이 높은 산업이다. 또 산업용 제조, 운송, 건설, 전기전자, 소비자 제품 에너지 등 적용 분야도 다양해 시장 변동성에 따른 영향이 적다.

화재 발생과 확산을 방지해주는 소재인 난연제 시장도 연 3~4%대 성장률이 전망되는 유망 분야다. 특히 수출용 전기·전자제품은 대상 국가 법규를 통과하기 위해 난연제 적용이 필수다. 스마트폰과 가전제품을 수출하는 한국 전기·전자 기업에서 수요가 늘 수밖에 없는 구조다. 랑세스의 난연제 비즈니스 중 한국 시장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또 랑세스의 고성능 플라스틱은 금속을 대체하는 경량화 소재로 많은 부품에 적용된다. 자동차의 엔진룸, 프런트엔드, 루프 구조물, 브레이크 페달, 오일 팬 등에 들어가 금속 대비 최대 50%가량 무게 절감을 실현했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아우디, BMW 등 세계 자동차 부품에 적용되고 있다. 플라스틱은 열전도성이 높고 내구성 가공도 용이해 스마트폰·노트북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독일 쾰른에 있는 랑세스 본사. / 사진:랑세스
반 러셀 부회장은 소재 경량화로 지속가능성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석 연료가 부족해지면서 기존 모빌리티 형태는 분명 한계에 봉착했다”며 “특히 전기 자동차는 무거운 내장 배터리 등으로 인해 주행거리를 늘리기가 쉽지 않은데 플라스틱 등 경량화 소재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랑세스는 그동안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환경 친화적인 기업 활동을 펼쳐왔다. 그 결과 다우존스 지속가능성지수(DJSI)에 7년 연속 이름을 올렸다.

이번엔 ‘지속가능성’을 실현한 기술력도 인정받았다. 랑세스는 가죽 부스러기를 재사용하는 기술로 올해 3월 독일연방 환경 ‘기후 및 환경 부문 독일 혁신상’을 수상했다. 가죽 폐기물을 친환경 리탄닝제(X-바이오머)로 활용하는 기술이다. 반 러셀 부회장은 “피혁 제조공장에서 하루 부산물로 발생하는 가죽 부스러기가 1~2톤 정도인데 리탄닝제 원료로 재사용해 폐기물과 탄소 배출이 발생하지 않게 했다”고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3년간 500만 유로가 투자됐다.

분사 초기, 시장은 랑세스를 유망주로 보지 않았다. 실제 2005년 프랑크푸르트 주식시장에 상장 당시 랑세스 주가는 15유로에 불과했다. 업계 관계자들도 비교적 부채가 많고 수익성이 낮다는 전망 탓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랑세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직부터 가다듬었다. 핵심 비즈니스만 남기고 마진 5% 이하 사업부 4개를 과감하게 정리했다. 인력 감축 대신 노동조합과 단체협약하에 경영이사진을 포함한 전 직원의 임금을 줄였다. 노사관계를 책임지고 있는 반 러셀 부회장에겐 큰 관심사였다. “노동조합에 회사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랑세스가 핵심 사업을 바탕으로 견실한 수익을 창출할 거라고 납득시켰습니다.”

체질 개선을 한 덕에 2013년 위기도 잘 넘길 수 있었다. 반 러셀 부회장은 당시를 떠올렸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 화학사들의 범용 제품 과잉공급, 자동차·타이어 산업의 성장 둔화와 맞물려 업계에 타격이 컸어요. 과잉공급, 원자재 가격 변동 등 불안정한 경기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랑세스는 오히려 선제적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외부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무난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전략적인 인수합병은 조직에 큰 변화를 줬다. 2016년 미국계 화학사 케무어스의 ‘살균소독제 사업 부문’ 인수로 안정적인 성장을 담보했다. 특히 조류독감, 구제역 등 동물 감염질병 방제를 위한 농축수산용 살균소독 및 위생 의료기기 등에 쓰여 밝은 전망을 예고했다. 전 세계 축산용 소독제 시장은 오는 202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약 6%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4월엔 미국계 화학 기업 ‘켐추라’를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약 24억 유로에 인수했다.

2018년엔 솔베이의 인계 화학제품 비즈니스를 잇따라 성공시켰다. 그 결과 랑세스의 비즈니스 분야도 첨가제와 합성고무 중심을 넘어 고부가가치 특수화학으로 확대됐다.

대대적인 조직개편으로 위기 극복


▎차량 전면부에 적용된 고성능 플라스틱(좌). 랑세스 안료 시설.
반 러셀 부회장은 본사의 인수합병 과정은 매우 엄격하다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독일 주식회사법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경영이사회와 감독위원회로 이뤄진 2단계 경영제도다. 경영이사회는 기업의 경영을, 감독위원회는 경영을 조언하고 감독하는 주체로 분리돼 있다. 인수합병과 같은 굵직한 이슈는 경영이사회가 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법이 존재한다. 반 러셀 부회장은 “엄격한 절차를 거친 만큼 인수합병의 결과는 사업 전반에 기여했다”고 전했다.

더불어 지역 다변화도 모색했다. 반 러셀 부회장은 “특정 지역 시장이 불안정해도 전체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었다”며 “아시아와 북미 시장으로 넓히고 전기전자, 에너지 산업 등 적용 분야를 확대해 타깃 시장도 다각화했다”고 말했다.

랑세스가 주요 협력체를 한국으로 고른 배경이기도 하다. 고부가 제품 사업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기 위한 구상에서다. 랑세스코리아는 2006년 11월 출범했다.

경기도 평택 공장은 랑세스 그룹 내 유일한 초고순도(99.9999%, 6N) 유기금속 제품 생산시설이다. LED, 반도체 부품 코팅제에 적용한다.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앞으로 아시아 시장을 위한 전략적인 생산 거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랑세스는 올해도 순항 중이다. 2021년 이후 감가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이 14~18% 사이로 안정된 실적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2016년 12.9%에서 2017년엔 13.3% 실적을 달성했다. 레이니어 반 러셀 랑세스 부회장은 자신있게 포부를 밝혔다.

“랑세스의 최근 실적은 견고하고 수익성 높은 성장 가도에 올라섰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균형 있고 안정적인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갖춰 견실한 회사로 변화해 나갈 것입니다.”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201810호 (201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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