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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함께’ 제작자 원동연 리얼라이즈 픽처스 대표 

예술가와 사업가의 두 얼굴 가진 ‘아수라백작’ 

유주현 기자
영화 ‘신과 함께2-인과 연’이 누적관객 1200만 명을 넘어서며 ‘국내 최초 1·2편 쌍천만 달성’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신과 함께’ 시리즈는 흥행 기록 외에도 다각도에서 영화사를 새로 쓰고 있다. 웹툰 원작의 첫 블록버스터 영화, 400여억원의 거대 자본을 투여한 한국형 판타지 영화의 시작, 최초로 1·2편을 동시 제작한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의 시작, 정교한 CG 기술에 기반한 VFX 산업의 개척, 대만·홍콩 등 아시아 지역 K무비 열풍 등이다. 이 모든 키워드의 중심에 원동연 리얼라이즈 픽처스 대표가 있다.

감독도, 배우도 아니다. 하지만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 신화 창조의 주역이 원동연 프로듀서다. ‘한국 영화산업의 아시아 지역 외연 확대’라는 빅 픽처 아래 최고의 인기 웹툰 판권을 획득했고, 국내 최고 CG 기술을 보유한 덱스터의 김용화 감독을 선임했다. 하정우·주지훈 등 최고 배우 캐스팅과 블록버스터급 투자 유치, 패밀리 무비로 마케팅 전략 수립까지 진두지휘한 ‘제작자’가 바로 그다. 1200만 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를 포함하면 국내 최초의 ‘삼천만 영화’ 제작자다.

‘충무로에서 가장 웃긴 사나이’라고 소문난 그는 “나는 아무 계획 없이 사는 남자”라며 “영화 망하면 편의점이나 꽃가게를 차리려 했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신과 함께’의 성공은 요행이 아니다. 단순히 재미있는 오락영화 차원을 넘어 한국 영화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모멘텀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리얼라이즈’라는 회사명이 의미심장한데요, ‘판타지 영화로 대박 실현’이라는 의지의 표현인가요?

피카소가 ‘예술은 가짜를 진짜로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잖아요. 영화도 가짜를 진짜로 보이게 하는 일이니까 꼭 판타지 영화를 계획하고 붙인 이름은 아니에요. 나는 인생을 계획하고 살지는 않거든요.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해 내 인생은 모든 게 즉흥적이에요.

웹툰 완결도 안 된 7년 전에 이미 판권을 샀는데요.

웹툰 보고 울었거든요. 저는 거대한 메시지를 던지려는 게 아니라 관객을 위로하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어요. 내가 죽었는데 누가 나를 대변해주고 내 잘못의 이면을 들여다봐준다는 이야기에 위로받았죠. 내가 이렇게 위로받을진대 관객은 얼마나 위로받겠나 싶었어요. 이렇게 힘들고 돈도 많이 들고 오래 걸릴지는 몰랐죠. 한국에서 거의 시도하지 않은 판타지 장르에 대형 프로젝트 2편을 찍으려니 준비 기간만 4년 걸렸어요.

1, 2편 동시 제작이란 리스크가 컸을텐데요.

‘반지의 제왕’도 1편이 크게 성공해 2, 3편을 동시에 찍었죠. 인물과 세트가 같은데 1편 찍고 세트 부쉈다가 새로 지으려면 비용이 엄청나죠. B.P 포인트를 낮추려는 경제적인 이유였어요. 투자자 입장에선 1편 성공이라는 담보 없이 2편을 찍는 건 재앙일 수 있는데 나는 확신이 있었어요. 네이버 역대 1위 웹툰이라는 검증받은 원작이니까. 『손자병법』에도 나오지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크게 이기는 거잖아요. 원작의 인지도와 선호도가 워낙 높았어요.

주인공 진기한을 없애는 등 원작에 손을 많이 댔잖아요.

영화 주인공은 굉장히 절박해야 해요. 운명적이고 절실해야 하죠. 진기한 변호사는 재판에서 지면 그뿐, 별로 잃을 게 없어요. 1, 2편을 동시에 찍는데 어떻게 운명적이지 않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쓰겠어요. 우리가 절박하지 않은 사람의 삶을 들여다봐서 뭐하나요. 드라마틱하지 않잖아요.

그동안 한국에 판타지가 왜 안 나왔을까요?

한국인들이 리얼리티를 좋아하죠. 판타지 장르는 기본적으로 돈이 많이 들고 땅에 발을 댄 이야기가 아니라서 관객이 설정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요. 판타지는 시각효과도 필요한데 안 하다 보니 두렵기도 하고 노하우도 없는 거죠.

‘한국형 판타지’를 개척하면서 서구형 판타지와 차별화를 꾀했다면?

환생, 윤회, 차사 같은 개념이 불교나 유교적 세계관이라서 아시아지역 필름메이커들은 쉽게 받아들이더군요. 예산이 커서 한국 시장만 겨냥해서 만들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어요. 범아시아에서 통하는 콘텐트이니 굉장히 동양적인 세계관에 따라 미술, 복식, 세트를 설정했어요. 나는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이란 말을 안 믿어요. ‘광해’나 ‘명량’ 같은 영화는 해외에서 배경지식이 없으니 실적이 안 좋죠. 우린 ‘효’, ‘착하게 살자’라는 범용성이 넓은 이야기니 아시아프로젝트가 가능했던 것이고요.

“한국 영화 시장 외연 넓히는 게 내 소명”


▎원동연 대표는 ‘신과 함께’ 34편과 드라마 제작도 추진 중이다.
그는 ‘신과 함께’의 성공 요인을 “보편적인 이야기를 굉장히 화려한 시각효과에 실었다는 것”이라고 꼽았다. 누구나 좋아하는 착한 이야기를 새로운 비주얼에 담았기에 남녀노소 함께 즐길 만한 패밀리 무비가 됐다는 것이다. “생경한 판타지 장르인데 이야기까지 어렵고 꼬았다면 힘들었겠죠. 이야기는 쉽게 가져가면서 굉장히 새로운 시각효과에 실어나르니 사람들이 신선한 섬싱뉴로 받아들였고, 그러니 이 영화가 이벤트가 돼버렸어요. 2017년 크리스마스에 가족이 저녁 먹고 영화를 봤다는 이벤트에 ‘신과 함께’가 얹히는 마케팅을 한 거죠. 꼭 ‘신과 함께’를 보라는 게 아니라 메인은 가족이고, 거기에 영화 보면서 가족 간에 더 끈끈한 결속력을 가지라는 마케팅이었어요.”

본격적인 ‘한국형 프랜차이즈 영화’ 개척이란 의미도 있어요.

작년 개봉 영화 흥행 20위 안에 든 할리우드 영화 9개가 전부 프랜차이즈거든요.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할리우드와 필름산업 전체를 먹여살리는 게 프랜차이즈인데, 한국도 기획해야 한다는 거죠. 내가 한국에서 제대로 된 마일스톤이 돼야 한다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검증받은 원작이 있어야 되는데 ‘신과 함께’를 만난 거죠. 1, 2편만 성공하면 나머지는 땅 짚고 헤엄치긴데, 이 좋은 블루오션에서 아무도 안 하니까 나는 쉬운 게임을 했어요.

그의 계산대로 ‘신과 함께’ 시리즈는 아시아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1편은 대만에서 역대 아시아 영화 흥행 1위, 홍콩에서 역대 한국 영화 2위 등으로 K무비의 위상을 높였고, 2편은 한국과 거의 동시 개봉될 정도였다. 이대로라면 아시아 지역에서 역대 한국 영화 기록 1, 2위를 ‘신과 함께’ 시리즈가 차지할 전망이다.

‘신과 함께’가 국내 VFX(CG 기반 시각효과) 산업 발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한국 영화 시장은 포화 상태잖아요. 이제 후배들의 외연을 넓히는 작업을 하는 게 내 소명이라 생각해요. 그러려면 최소한 아시아에 나가야 되는데, 저들에게 K테크놀로지의 진일보를 보여주고, 한국 내러티브 비즈니스가 K팝이나 드라마 못지않게 섹시하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죠. 지금 미국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에는 한국 콘텐트를 잡아야 된다는 명제가 생겼어요. 차범근·박찬호·박세리처럼 우리 같은 선도자가 계속 해외로 나가려는 시도를 해야지 우리끼리 놀면 뭐하나요. 그런 시도를 했다는 걸 유의미하게 바라봐 줬으면 해요.

‘국내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제작자’인 그는 사실 영화에 뜻을 품은 ‘할리우드 키즈’는 아니었다. 개그맨을 꿈꾸다 30살에 우연히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개그맨 시험은 예심에서 다 떨어졌어요. 코미디 작가라도 되려고 하다가 우연히 시나리오를 썼는데, 글 쓰는 게 고통이더군요. 대신 저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편이고 이야기를 픽업하는 능력이 있다 생각해서 전체를 조감하는 프로듀서가 되기로 했죠.”

첫 작품 ‘마지막 늑대’(2004)는 쫄딱 망했지만, 일본 만화 원작의 ‘미녀는 괴로워’(2006)가 600만을 넘기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만화 원작은 흥미로운 소재지만 자극적인 표현 수위 탓에 쉽게 영화화되지 못하는 상태였다. 잠재력 있는 원석을 발굴해 누구나 좋아하는 콘텐트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나는 심사숙고하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크리에이티브는 합의할수록 무뎌진다 생각하죠. 직관으로 섹시하다 싶으면 바로 저질러버려요. ‘신과 함께’도 읽은 그다음 날 주호민 작가에게 연락했죠. 크리에이티브는 능력 있는 독재자가 드라이브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과 함께’가 실패하면 영화를 떠나려 했다구요.

수백억을 썼는데도 성공하지 못하고 산업적으로 큰 누를 끼쳤다면 능력 없는 건데 다음 기회 받아서 뭐하겠어요. ‘광해’로 이미 1000만 찍었으니 더 도달하고 싶은 데도 없죠. 난 영화에 미친 놈이 아니라 영화를 직업으로 선택했을 뿐이에요. 영화에 목숨 걸었다는 사람에겐 목숨은 가족한테 걸어야 한다고 얘기하죠. 영화인들이 다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하는데, 내가 그들에게 해주는 말이 있어요. “자유로운 영혼 뒤에 울부짖는 처자식 있다.”

인생에 굴곡은 없었나요?

영화가 망한 적은 많죠. ‘신과 함께’ 전에 ‘대립군’도 망해서 우울증이 왔어요. 투자를 많이 해서 빚도 졌거든요. ‘신과 함께’도 망하면 어떡하나 싶어 더 우울했죠. 밥도 안 먹고 술만 먹었어요.

충무로에서 가장 웃긴 남자’가 우울증이라뇨.

평소 업돼 있기 때문에 다운되면 오래 가요. 굳이 스스로 이겨내려 하지 않고 우울증 약 먹고 치유하죠. 난 사실 샤이한 사람이에요. 일관성도 없죠. 예술가와 비즈니스맨의 양면을 갖고 있는 ‘아수라 백작’이죠. 크리에이티브 덕목도 있고 비즈니스 데이터를 중시한 전략적 접근도 하니 다재다능한 것 같아요.(웃음)

프로듀서는 관객이 원하는 걸 포착하는 사람이죠. 요즘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뭘까요?

그건 영원한 숙제예요. 사실 난 관객이 원하는 게 뭔지 연구하진 않아요. 순전히 내 직관으로 판단하죠. 다만 영화는 보는 사람에게 보상해야 한다 생각해요. 최소한 내 영화는 음악·비주얼 모두 총망라된 종합선물세트를 제공해야 된다는 서비스 정신이죠. 그런 데다 돈을 아끼지 않겠다는 거예요. 이번에 음악도 체코에 가서 풀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녹음해 왔죠. 한스 짐머도 10월 6일 국내 콘서트에서 ‘신과 함께’ 음악을 연주한다네요.

‘신과 함께’가 이룬 게 많아서 앞으로 아무 영화나 만들 수 없을 듯한데.

이젠 후배들과 땅따먹기 할 생각은 없어요. 한국 영화 시장의 외연을 넓히는 유의미한 일을 계속해야죠. 아시아 프로젝트로 애니메이션을 준비하고 있어요. 한국에는 본격 상업 애니메이션이 없는데, 아시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애니를 만들면 애니 산업에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웹툰, 웹소설 등 한국 콘텐트를 동반해서 가져가 아시아 시장에서 위상이 공고해질 수 있는 프로젝트를 고민 중입니다.

-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1810호 (2018.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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