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공구 제품으로 더 잘 알려진 보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부품 시장을 이끌고 있다. 프랑크 셰퍼스 로버트보쉬코리아 대표를 만났다.
‘생활 속의 기술.’ 익숙한 이 캐치프레이즈는 보쉬(Bosch)의 광고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보쉬는 이미 전동공구로 소비자들에게 친숙하다. 뛰어난 성능에 이어 요즘엔 커넥티비티 기술, 스마트안전 기능까지 전문 작업자들에게 최적화된 제품으로 시장을 리드해왔다. ‘진동감소 장치’나 ‘집진기능’으로 공구를 사용할 때 먼지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 덕분에 작업장에서 명품 공구로 불렸다. 캐치프레이즈처럼 사용자 중심(user-centricity) 마케팅 전략으로 올해 소비자브랜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1886년 로버트 보쉬가 슈투트가르트에서 ‘정밀 기계 및 전기 공학 작업소’로 시작한 작은 작업장은 현재 전 세계에서 약 40만 명(2017년 기준)을 직원으로 고용하게 됐다. 보쉬그룹은 60여 개국에 440여 개 자회사 및 현지법인이 진출해 있다.하지만 보쉬그룹 매출의 2/3는 자동차 부품에서 나온다. 자동화에 속하는 자율주행 센서와 부품사업에서도 세계 1위다. 전통적인 보쉬 영역을 뛰어넘어 IoT 기술까지 섭렵했다. 보쉬는 스마트 홈, 스마트시티, 커넥티드 모빌리티 등으로 혁신적인 솔루션들을 제공하고 있다. 2017년 보쉬의 총매출은 780억 유로를 기록했다.“미래에는 어떤 방식으로 주행할 지 ‘변혁’을 연구한다.” 프랑크 셰퍼스(Frank Schaefers) 로버트보쉬코리아 대표는 포브스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기와 자율, 커넥티비티 주행 시장에서 배출가스·사고·스트레스를 ‘제로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기술 혁신을 펼치고 있습니다.” 보쉬그룹에서만 20년간 몸담은 셰퍼스 대표는 인터뷰 내내 ‘변혁’, ‘혁신’, ‘변화’를 재차 언급했다. 이 키워드의 중심엔 커넥티드 기술이 있다.셰퍼스 대표는 “보쉬가 상상하는 미래 공장의 모습에서는 바닥, 벽, 지붕을 제외한 모든 것이 이동 가능하며 연결돼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커넥티드 모빌리티는 보쉬가 상당한 사업 기회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는 시장이다. 이 시장의 규모는 2022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400억 유로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이면 전 세계 도로에서 약 4억5000만 대가 넘는 커넥티드 차량을 볼 수 있게 될 것입이다. 보쉬는 2019년 ADAS(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 부문 매출이 20억 유로(약 2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레이더 및 비디오 센서 매출은 40%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임러와 자율주행 기술 개발
▎보쉬 그룹은 자동화 주행을 대비해 기술력을 갖춰 나가고 있다. / 사진:보쉬 제공 |
|
모빌리티 솔루션 분야에서 보쉬는 100년 이상 쌓아온 기술력과 노하우를 자랑한다. 전통 부품부터 시스템 분야에 이르기까지 각 부품들이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지에 대한 전문 기술을 갖췄다.“엔지니어들에 대한 회사의 남다른 열정 덕분”이라고 셰퍼스 대표가 덧붙였다. 현재 전 세계 약 125개 사업장에 있는 연구개발 직원만 6만2500여 명에 이른다. 그는 “기술 중심의 창립이념으로 큰 로드맵을 이어가고 있다”며 “기술력을 추구하며 R&D에 아낌없이 투자한다”고 했다. 도전과 실패에 유연한 문화도 기술 진보를 이끌었다. 셰퍼스 대표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때 시장 기회가 있는지 신속히 판단해 투자를 했더라도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방향을 수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기술 기반의 문화는 자신감 있는 행보로 이어진다. 자율주행 기술은 자동차, 센싱, 컴퓨터 등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 회사가 완성하기 어렵다. 이 덕에 보쉬의 기술력은 다양한 모빌리티 기술에 활용되고 있다.보쉬는 많은 글로벌 기업과 손을 잡았다. 지난해부터 메르세데스-벤츠 모회사인 다임러 그룹과 협력을 맺고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나섰다. 다임러-보쉬는 ‘센싱-융합-주행’에 이르는 자체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내년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자동차공학회(SAE) 기준 레벨4 수준 자율주행 셔틀과 택시를 제공할 예정이다.올해 초부터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주차장에서 운전자 없이 스스로 주차 공간을 찾는 자동 발렛 주차기능을 선보였다. 이 기술은 보쉬가 제공하는 인텔리전트 주차장 인프라를 통해 가능하다. 다임러-보쉬가 개발한 ‘휴먼 비전 시스템’은 사물, 교통 표지판, 신호등, 도로 등을 파악한다. 사물 거리를 계산해 ‘빨간색-오렌지색-노란색-초록색’ 순서로 나타낸다. 두 회사가 공들이는 부분은 얼굴 방향을 인식해 보행자, 자전거 진행 방향까지 예측하는 기술이다. 골목길, 교차로 등 신호등이 없는 도로에서 보행자 사고를 예방할 수 있게 된다.중국 IT 기업 화웨이와도 제휴를 맺었다. 보쉬는 ‘IoT 스위트’라는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화웨이 클라우드 서버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자동차 관리 솔루션으로 차량의 예측 진단과 원격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등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동차 수명을 늘리는 게 목표다. 이미 중국 주요 자동차 회사 일부는 이 기술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솔루션은 향후 수년간 중국의 커넥티드카 수백만 대에 적용될 예정”이라는 게 보쉬의 설명이다.자율주행 차량은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해 도로 조건에 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핀란드 기상 서비스 제공업체인 포레카와 협력한 이유다. 포레카는 자사 장비를 이용해 도로 상태 데이터를 보완한다. 자율주행 차량의 도로 선택 의사결정이 개선되고 도로 기상 데이터를 예측할 수 있다. 이 기술은 2020년경 완성해 공개할 예정이다.기술력의 진화는 지속가능한 경영 철학이 뒷받침됐다. 로버트보쉬재단은 그 가치를 이어받았다.“장기적으로는 정직하고 공정하게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1921년 로버트 보쉬가 한 말은 기업 윤리를 이어나가는 데 발판을 마련해줬다. 로버트 보쉬 사후 20여 년이 지난 1964년 보쉬재단은 창업자의 정신과 가치를 실현하는 취지에서 설립됐다.재단의 나라(Land der Stiftungen)라 불리는 독일에서도 최고 수준의 재정 규모를 보유한 곳이 바로 보쉬재단이다. 지출 면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한다. 지난해만 1억 5천만 유로를 투자했다. 1964년 설립 이후 총 16억 유로를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재단은 기업 활동에 관여하지 않는다. 소유권과 처분권이 분리돼 상호 자율성을 유지한다. 재단의 기업가적 측면과 박애적 측면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재정의 원천은 보쉬그룹의 이윤이 기반이다. 보쉬재단은 보쉬그룹의 지본 약 92%를 소유하고 있다. 보쉬 가문은 7%만 사적으로 소유한다. 재단은 회사에 분배된 배당금의 일부를 받는다.보쉬재단의 활동은 단순히 자선사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로드맵을 그리자는 데 목적이 있다. 재단의 영역은 교육, 사회, 의료, 글로벌 관계, 과학 분야 등으로 나뉜다. 지난해 세계 150여 개국에서 펼쳐진 보쉬재단 프로젝트만 700여 개다. 이 중에서도 기술 진보를 위한 인재 교육과 과학에 대한 투자는 보쉬재단의 몫이다. 보쉬재단은 지속가능한 제품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기후, 자원, 에너지 분야의 연구자들을 육성하고 있다. 교육 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이다. 젊은 층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 미래에 대응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한다.사회적 책임을 이어가는 만큼 셰퍼스 대표는 “모든 플랜이 장기적으로 그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보쉬그룹은 어려운 경제 상황임에도 올해 추가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제적·지정학적 리스크를 반영, 2~3% 매출 성장을 예상한다. 올해 1분기 보쉬그룹의 매출은 전년 동기 상위 수준에 달해 환율 효과를 감안하면 5%가량 상승했다.세계 경제의 위축에 대해서도 셰퍼스 대표는 남다른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비즈니스가 둔화된다고 해서 인력을 감축하는 조치는 취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수출 중심의 산업에서 경제·정치적인 불확실성은 언제든 높아질 수 있습니다. 미래 기술의 방향을 주시하고 시장에서 충분히 대비해야 하죠. 보쉬는 이미 탄탄한 경험과 제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