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에 갖힌 여자·엄마이 옳은 말씀에 ‘딴지’부터 건다면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일 게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은 언제나 옳고 신성한 것 아닌가. 인생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맞아! 더 노력해야 해”라고 의지를 다지게 된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여성의 마음은 묘하게 씁쓸하다. 더 열심히 살겠노라고 다짐하지만 동시에 1톤짜리 돌이 명치에 얹힌 듯한 체기가 느껴진다.지당하신 말씀에 대해 아무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던 딴지를 공개적으로 날린 사람은 또 다른 여성 리더다. “직장과 가정 일, 둘 다 잘할 수 있다고요? 그렇지 않아요.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 ‘린 인’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그 개코같은 소리(that shit)는 현실에선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답니다.” 미셸 오바마가 얼마 전 자신의 저서 『비커밍(Becoming)』의 북투어 간담회에서 ‘린 인’에 날린 사이다 발언이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일이 잘 안 되는 건가?’ 라고 자신을 의심하던 여성들이 고마워했다. “속이 다 후련해요. 오랜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한때 우리나라 여성들의 롤 모델이었던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수년 전 전경련 포럼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여자들은 약점이나 한계가 있으면 다 눈물 찔찔 흘리고 도망가요. 아시죠? 잘못하면 남자 탓하고 도망가요. 그런 여자들에게 제가 어떻게 일을 시켜요. 여성들이 집에 앉아 있는 것이 문제예요. 왜 경제활동을 못 할까요? 물론 가부장적인 전통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자들 자신이 남성 탓, 전통 탓을 하고 집에 있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해요.”여성 비하 논란을 일으켰던 김성주 회장의 발언과 샌드버그의 세련된 조언은 사실 결이 같은 말이다. “여성 여러분, 당신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린 인’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물론 이들의 조언에는 명백한 순기능이 있다. 심지어 김성주 회장의 논란 발언에서도 건질 게 있다. 내가 환경을 탓하고 누군가 문제를 해결해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격려 연설이 여성들에게 희망과 위로보다 부담과 고통의 메시지로 접수되는 이유는 ‘잘 안 되면 네 탓’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개인의 의지를 강조하면 ‘노력’이라고 썼는데 ‘노오력’으로 읽힌다.김재윤을 비롯한 듀크대학교 심리학자 세 명은 연구 참가자 2000명을 대상으로 ‘린 인’ 메시지의 부작용을 확인했다. 직장에 성 불평등이 있더라도 ‘DIY(Do It Yourself), 혼자 알아서 잘하면 된다’는 주장을 담은 영상을 참가자들에게 보여주었다.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는데, 이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의 ‘린 인’에 대한 자신감이 상승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동시에 ‘여자들이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거야. 여자들 스스로 그 문제를 고쳐야지’라고 생각하게 됐다.샌드버그의 ‘린 인’ 행동 수칙을 지키면 좋은 엄마인 동시에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미셸 오바마의 말대로 ‘린 인’은 개코같은 소리일까? “여자는 부드럽고 따뜻해.” “남자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이지.” 이런 사회적 고정관념은 우리의 선한 의도와 상관없이 무의식적 과정을 거쳐 철수 과장을 영희 과장보다, 철수 교수를 영희 교수보다 더 유능한 일꾼으로 평가하게 만든다. 비즈니스, 학문, 소설,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적 평가를 확인한 연구는 수없이 많다.그런데 여자가 엄마가 되면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스탠퍼드대학의 사회학자 셸리 코렐은 18개월에 걸쳐서 직원 채용 공고를 낸 638개 회사에 이력서를 보냈다. 연구를 위해 만든 가상 인물의 동일한 이력서에 실험 조건에 따라 무작위로 남성 혹은 여성의 이름을 달았고, 자녀가 있는지를 알 수 있는 힌트를 심었다. 그 결과 아이가 있는 여성이 회사에서 연락을 받은 경우는 아이가 없는 여성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코렐은 이를 ‘마더후드 페널티(Motherhood Penalty)’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여성에게 엄마 꼬리표가 붙는 순간 역량 수준이 낮고 조직에 헌신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적 평가를 받은 것이다. 반면 아버지인 남성은 아이가 없는 남성에 비해 더 후한 대접을 받았다. 가장인 남성은 ‘파더후드 프리미엄(Fatherhood Premium)’을 누린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호의적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조직 리더의 역할 ‘엄마 꼬리표 지우기’
※ 조지선 전문연구원은…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타임워너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연세대에서 사회심리학, 인간행동과 사회적 뇌, 사회와 인간행동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