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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선의 ‘셀럽 심리학’- 여성 vs 남성(2)] 마더후드 페널티(Motherhood Penalty) 

 

조지선 심리학 박사
‘고정관념 내용 모델’에 따르면 여성이 속하는 캐릭터 유형은 두 개 중 하나다. 따뜻하지만 역량 수준이 낮은 캐릭터거나 역량 수준은 높지만 정이 안 가는 캐릭터다. 능력을 강조하면 대가 센 여자로 찍히고 따뜻함을 강조하면 리더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주도적으로 행동할 수도, 행동하지 않을 수도 없는 답답한 현실이 여성이 직면한 ‘이중 구속’이다.

“여성들이 더 큰 야심을 가져야 해요. 자신감이 충분하지 않은 게 실패 원인이에요. 연봉 인상을 요구하세요.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안 챙겨줍니다. 회의할 때도 조용히 구석에 앉아 있지 마세요. 승진 기회가 있을 때는 손을 들고 나가야 해요.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참 소중하죠. 그래서 저는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과 몇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이 잠든 후에 이메일로 업무를 처리했어요.”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가 그의 저서 『린 인(Lean In)』에서 후배 여성들에게 전수한 성공 비법은 깔끔하게 책 제목으로 압축된다. 말 그대로 ‘뒤로 물러나지 말고 적극적으로 임하라’는 것이다. 노력하고 도전하면 ‘훌륭한 엄마’와 ‘존경받는 리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격려한다. 샌드버그는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 덕분에 여성들의 ‘롤 모델 언니’로 등극했다.

고정관념에 갖힌 여자·엄마

이 옳은 말씀에 ‘딴지’부터 건다면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일 게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은 언제나 옳고 신성한 것 아닌가. 인생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맞아! 더 노력해야 해”라고 의지를 다지게 된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여성의 마음은 묘하게 씁쓸하다. 더 열심히 살겠노라고 다짐하지만 동시에 1톤짜리 돌이 명치에 얹힌 듯한 체기가 느껴진다.

지당하신 말씀에 대해 아무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던 딴지를 공개적으로 날린 사람은 또 다른 여성 리더다. “직장과 가정 일, 둘 다 잘할 수 있다고요? 그렇지 않아요.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 ‘린 인’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그 개코같은 소리(that shit)는 현실에선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답니다.” 미셸 오바마가 얼마 전 자신의 저서 『비커밍(Becoming)』의 북투어 간담회에서 ‘린 인’에 날린 사이다 발언이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일이 잘 안 되는 건가?’ 라고 자신을 의심하던 여성들이 고마워했다. “속이 다 후련해요. 오랜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한때 우리나라 여성들의 롤 모델이었던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수년 전 전경련 포럼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여자들은 약점이나 한계가 있으면 다 눈물 찔찔 흘리고 도망가요. 아시죠? 잘못하면 남자 탓하고 도망가요. 그런 여자들에게 제가 어떻게 일을 시켜요. 여성들이 집에 앉아 있는 것이 문제예요. 왜 경제활동을 못 할까요? 물론 가부장적인 전통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자들 자신이 남성 탓, 전통 탓을 하고 집에 있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해요.”

여성 비하 논란을 일으켰던 김성주 회장의 발언과 샌드버그의 세련된 조언은 사실 결이 같은 말이다. “여성 여러분, 당신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린 인’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물론 이들의 조언에는 명백한 순기능이 있다. 심지어 김성주 회장의 논란 발언에서도 건질 게 있다. 내가 환경을 탓하고 누군가 문제를 해결해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격려 연설이 여성들에게 희망과 위로보다 부담과 고통의 메시지로 접수되는 이유는 ‘잘 안 되면 네 탓’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개인의 의지를 강조하면 ‘노력’이라고 썼는데 ‘노오력’으로 읽힌다.

김재윤을 비롯한 듀크대학교 심리학자 세 명은 연구 참가자 2000명을 대상으로 ‘린 인’ 메시지의 부작용을 확인했다. 직장에 성 불평등이 있더라도 ‘DIY(Do It Yourself), 혼자 알아서 잘하면 된다’는 주장을 담은 영상을 참가자들에게 보여주었다.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는데, 이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의 ‘린 인’에 대한 자신감이 상승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동시에 ‘여자들이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거야. 여자들 스스로 그 문제를 고쳐야지’라고 생각하게 됐다.

샌드버그의 ‘린 인’ 행동 수칙을 지키면 좋은 엄마인 동시에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미셸 오바마의 말대로 ‘린 인’은 개코같은 소리일까? “여자는 부드럽고 따뜻해.” “남자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이지.” 이런 사회적 고정관념은 우리의 선한 의도와 상관없이 무의식적 과정을 거쳐 철수 과장을 영희 과장보다, 철수 교수를 영희 교수보다 더 유능한 일꾼으로 평가하게 만든다. 비즈니스, 학문, 소설,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적 평가를 확인한 연구는 수없이 많다.

그런데 여자가 엄마가 되면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스탠퍼드대학의 사회학자 셸리 코렐은 18개월에 걸쳐서 직원 채용 공고를 낸 638개 회사에 이력서를 보냈다. 연구를 위해 만든 가상 인물의 동일한 이력서에 실험 조건에 따라 무작위로 남성 혹은 여성의 이름을 달았고, 자녀가 있는지를 알 수 있는 힌트를 심었다. 그 결과 아이가 있는 여성이 회사에서 연락을 받은 경우는 아이가 없는 여성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코렐은 이를 ‘마더후드 페널티(Motherhood Penalty)’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여성에게 엄마 꼬리표가 붙는 순간 역량 수준이 낮고 조직에 헌신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적 평가를 받은 것이다. 반면 아버지인 남성은 아이가 없는 남성에 비해 더 후한 대접을 받았다. 가장인 남성은 ‘파더후드 프리미엄(Fatherhood Premium)’을 누린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호의적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조직 리더의 역할 ‘엄마 꼬리표 지우기’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의 조언과 이 연구 결과는 짝짝 들어맞는다. “승진해서 자신만의 사무실을 갖게 되었나요? 당신이 남성이라면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벽에 걸어놓으세요.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할 거예요. 성실하고 믿음직한 가장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여성들은 이 조언을 따르면 안 됩니다. 아이가 있다는 힌트를 사무실 어디에도 두지 마세요.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마세요. 이 여자는 집에 가서 아이도 돌봐야 하고 살림도 해야 하니 일에 집중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답니다.” 이 충고를 성실하게 따르는 여성 임원을 본 적이 있다. 일벌레로 소문난 이 여성은 자녀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년간 단 한 번도 하지 않아서 그녀가 엄마라는 사실을 한참 후에나 알 수 있었다.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하며 엄마 지원자를 띄워주면 고용주의 생각이 바뀔까? 후속 연구에서 코렐은 ‘우리 회사의 상위 5%에 속하는 역량과 충성심이 뛰어난 인재’라고 극찬한 전 직장 상사의 추천서와 함께 엄마 지원자를 소개했다. 안타깝게도 조직에 헌신하는 똑똑한 엄마도 쉽게 직장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이유가 달랐다. 엄마 지원자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냥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왠지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차가운 사람 같아서 함께 일하기 꺼려진다는 것이다. “여자가 지나치게 자기주장을 하면 못써요. 다른 사람을 돌봐야지.” ‘린 인’ 하는 여성 리더는 이런 사회적 기대를 깨는 대가로 ‘비호감’ 딱지를 받는다.

심리학자 에이미 커디가 제안한 ‘고정관념 내용 모델(Stereotype Content Model)’에 따르면 여성이 속하는 캐릭터 유형은 두 개 중 하나다. 따뜻하지만 역량 수준이 낮은 캐릭터거나 역량 수준은 높지만 정이 안 가는 캐릭터다. 능력을 강조하면 대가 센 여자로 찍히고 따뜻함을 강조하면 리더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주도적으로 행동할 수도, 주도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수도 없는 답답한 현실이 여성이 직면한 ‘이중 구속(Double Bind)’이다.

우리나라 기업에서 여성 임원 비율은 처참한 수준이다. 수많은 연구가 여성 임원이 많을수록 기업이 장사를 잘한다는 공식을 확인해주었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원하는 기업이라면 젠더 다양성을 실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직의 리더가 해야 할 일은 ‘엄마 꼬리표 지우기’다. 철수 상무에 비해 영희 상무가 한 일에 무의식적으로 더 야박한 점수를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의식적인 보정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린 인’ 정신으로 주도성을 발휘하는 영희 부장의 행동을 철수 부장이 했다면 ‘아휴, 극성맞아’라고 생각했을지 따져봐야 한다. 우리의 딸들이 마음껏 ‘린 인’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연습이 필요하다. ‘린 인’이 개코같은 소리인 세상은 슬프다.

※ 조지선 전문연구원은…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타임워너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연세대에서 사회심리학, 인간행동과 사회적 뇌, 사회와 인간행동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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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호 (201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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