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프레디 머큐리, 니체, 슈트라우스, 바그너, 히틀러의 접점 

김진호 안동대 교수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의 아버지가 늘 강조했던 가르침이다. 이것이 부담스러웠을까. 프레디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산다. [퀸]은 그가 이끌었던 영국의 록밴드로, 1970~80년대 젊은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란에 있는 조로아스터교 사원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은 프레디의 아버지가 믿었던 조로아스터교의 대표적 가르침이다. 조로아스터교는 기원전 6세기경 건설된 최초의 세계 제국 페르시아에 널리 퍼졌던 종교다. 페르시아는 1935년 팔레비 왕정에 의해 국호가 이란으로 바뀔 때까지 이란 지역에서 흥망성쇠 했던 나라들을 통칭한다. 페르시아의 통치 이념이기도 했던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는 페르시아어로 ‘자라투스트라’였는데, 이것을 기원전 5세기경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리스어로 바꿔 부른 것이 조로아스터다. 불을 숭배한다고 해서 배화교(拜火敎)로도 알려진 조로아스터교는 가장 오래된 일신교이기도 하다. 이 종교가 창시된 시점을 기원전 18세기까지 앞당겨 보는 학자들도 있다. 기독교적 선악 개념 및 종말론적 세계관의 뿌리를 조로아스터교로 보는 이들도 있다. 조로아스터는 세계를 창조한 아후라 마즈다의 예언자를 자처하며 진리를 전파했는데, 그 과정에서 세인들에게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가 하면 권력에 의해 투옥되기도 했다.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여러 고대 종교와 달리 조로아스터교는 여전히 신도가 많다.

기원후 7세기경 이슬람교도들이 페르시아를 침공해 조로아스터 교도들을 탄압했다. 탄압을 피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떠난 이들이 지금껏 종교적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이들 공동체 중 유명한 것이 파르시(Parsi, Parsee)다. 파르시는 페르시아 사람들 혹은 그들이 쓰는 언어, 즉 페르시안(Persian)을 의미한다. 프레디 머큐리의 아버지는 영국 총독부 공무원으로 영국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잔지바르에서 근무했고 프레디는 그곳에서 태어났다. 프레디의 아버지와 가족이 바로 파르시 공동체 사람들이었다. 잔지바르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인해 프레디는 인도로 보내졌다가 이후 영국으로 이주한다. 프레디가 조로아스터 교도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2014년 그의 누이는 한 인터뷰에서 조로아스터교의 신념이 프레디 삶의 여러 분야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페르시아의 통치 이념이었던 조로아스터교

한 세기 전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기독교를 비판하며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라는 유명한 철학책을 썼다. 1883년에 출판된 이 책에는 영원회귀, 초인, 힘을 향한 의지 같은 니체의 주요 사상들이 제시되어 있다. 니체는 이 책에서 자신이 비판했던 신약성서의 내용을 패러디하며 신랄하게 조롱하는가 하면, 정작 조로아스터교의 내용마저도 조롱했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라는 구절로 피안이 아닌 현세의 아름다움을 역설하는가 하면, “모든 사람이 서서히 자살하며 바로 그것을 삶이라고 부르는 곳, 그곳을 나는 국가라고 부른다”라는 문장으로 당시 유럽 여러 나라의 국가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니체를 오독하고 왜곡한 히틀러가 현대적 전체주의의 화신이었던 점은 아이러니다.

1890년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전집이 출판되고 6년 후인 1896년,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같은 이름의 교향시를 작곡한다. 낭만주의 시대의 교향시(symphonic poem)는 고전주의 시대에 각광받은 교향곡을 19세기 중반의 시대적 배경에 맞게 내용과 형식을 바꾼 결과물이다. 주로 당대의 유명한 문학작품이나 회화, 역사적 사건이나 자연현상 등 낭만주의적 정서를 불러오기 적당한 것들에 대한 작곡가의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후기 낭만주의자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과 파격적인 화성 진행, 특히 대담하고 단순한 (시작 부분의) 팡파르로 유명하다. 미국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슈트라우스가 ‘일출’(sunrise)이라고 악보에 적은) 이 팡파르를 썼다. 이름하여 ‘인류의 여명’ 부분에서 큐브릭은 원인(猿人)이 처음 도구를 사용하는 장면을 담았다. 슈트라우스의 팡파르가 이 부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팡파르(fanfare) 혹은 팡파레는 단순한 화음에 기초한 씩씩한 느낌의 선율을 트럼펫 같은 금관악기와 북과 같은 타악기를 사용해 축하나 환영 용도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큐브릭은 도구 사용을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진화의 순간이라고 생각해 축하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오늘날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가끔 사용되는 이 팡파르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는 독일 작곡가로, 다수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파르시팔]은 1882년에 작곡된 바그너의 마지막 오페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담은 성배와 그를 찌를 때 사용되었다는 성창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배 기사단이 모여 살며 수도하는 스페인의 몬살바트 사원이 무대인 이 오페라에서 주인공 파르시팔은 공감과 연민의 마음을 가짐으로써 치명적 상처로 고통받는 사원의 왕 암포르타스를 구원한다. 연주 시간이 4시간 30분에 육박하는 이 오페라는 외관상 기독교적 내용을 담고 있다.

니체는 이 작품의 기독교적 색채가 싫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서서히 바그너로부터 멀어져갔던 그였다. 마음이 떠난 상황에서 거장의 숨은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던 걸까. [파르시팔]에는 불교적이거나 조로아스터교적인 내용이 교묘히 숨겨져 있다. 이를테면 2막 2장에서, 묘령의 여인 쿤드리는 사람들에게 파르시팔의 이름에 대해 설명한다. 그녀에 따르면 ‘Parsifal’은 두 음절 ‘Fal Parsi’가 순서가 바뀌어 결합된 것이다. ‘Fal Parsi’는 ‘순수한 바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이름은 아라비아 땅에서 통용된다.” 상술했던, 페르시아에서 인도로 피난한 (프레디 머큐리의 조상인) 파르시를 바그너는 알고 있었다. (페르시아와 아라비아의 차이는 몰랐던 것 같다. 아라비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오만 등이 있는 아라비아반도를 가리키며 페르시아는 이 반도에서 좀 떨어진 오른쪽에 있다.) 바그너는 성배와 성창을 되찾고 기독교도들의 왕이 되는 파르시팔을 아라비아 출신, 그것도 조로아스터교도로 의심받을 인물로 묘사한 것이다! 파르시팔 이야기는 중세시대 이래 전해오고 있었는데, 원래의 파르시팔 전설에서 파르치발은 순수 유럽인이자 기독교도였다. 바그너가 파르치발을 파르시족 사람으로 그린 것은 (비유컨대) 심청이나 춘향을 외국인으로 (그것도 우리가 혐오하는 나라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전통에 대한 파격적 해석인데, 그런 도전을 한 이유가 뭘까. 바그너는 뼛속 깊이 반골이었다. 유럽을 뒤흔들었던 1848년 혁명에 참여하는 바람에 궁정 극장의 지휘자로 일했던 드레스덴 왕국의 왕으로부터 수배자가 되어 스위스로 망명해야 했다. 또 다른 오페라 [탄호이저]에서는 교황을 무자비한 인물로 그려내는 등 기독교에 반감을 드러낸 적이 있었으며, 불교에 관심을 가졌던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에 경도된 바 있었다. 순진한 니체는 이렇게 불순한(?) 인생을 살았지만 당대 귀족들과 왕들에게 아부하며 먹고살아야 했던 노회한 바그너의 속내와 그에 따라 [파르시팔]에 숨겨진 파격을 온전히 포착하지 못했다.

니체와 바그너를 곡해한 히틀러


▎[퀸]의 리더 프레디 머큐리, 히틀러가 백인이라고 생각했던 아리안족의 일원인 프레디는 황갈색 피부를 가졌던, 아시아적 인물이었다.
역사의 비극은 주로 오해에서 발생하는 것 아닐까. 니체와 바그너를 곡해했던 대표적 인물이 히틀러다. 히틀러는 12살 어린 나이에 (신부 입장 때 연주되는 [결혼행진곡]으로 유명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접한 후 민족주의적 정서와 웅장한 규모에 감동받았다. 하지만 [파르시팔] 속 생명 존중과 약자 배려, 병자들에 대한 연민 같은 감정에는 눈을 감았다. 히틀러는 독일 민족을 비롯한 정통 유럽인들이 아리아인이라고 생각했다. 아리아인은 인도 게르만어족계의 한 분파로, 원래는 언어학적 개념이었는데, 19세기 후반부터 일부 제국주의자들이 민족적/인종적 개념으로 바꿔버렸다. 앞서 1935년에 페르시아의 국호가 이란으로 바뀌었다고 했는데, ‘이란’은 ‘아리안의 땅’이라는 뜻이다. 아리안(Aryan)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과 가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기원전 2000년경부터 오늘날 이란 지역에 살았던 인간 집단을 가리킨다는 설이다. 결국 그들 중 일부가 파르시족이 되어 인도로 피신한 후 오랜 세월이 지나 프레디 머큐리 같은 황갈색 피부를 지닌 천재가 태어난 것이다. 히틀러가 믿었던 백인 아리안과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그렇게 돌고 돌며 섞여 인종의 용광로가 녹아 인류가 되고 다양한 민족의 음악이 여러 사람에게 향유될 수 있음을, 부적응자를 위한 밴드를 자처했던 [퀸] 같은 음악가들이 대성공할 수 있음을 히틀러는 알지 못했다. 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는 문화와 음악이 섞이고 스며들어 창조된 것임을 잘 알려준다. 이 노래에는 동시대 팝에는 물론 오늘날 팝에서도 찾기가 어려운 음악적 특징 하나가 있다. 조바꿈 혹은 전조(modulation). 클래식 음악에서나 찾을 수 있는 다소 어려운 개념인 조바꿈을 ‘보헤미안 랩소디’와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 ‘위 아 더 챔피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바꿈이란 (다장조, 사장조 같은) 하나의 조로 음악이 구성되다가 중간에 조가 바뀌는 현상이다. 오페라를 즐겨 들었던 실력파 음악가 프레디가 가졌던 재능의 결과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여러 이질적 요소가 잘 녹아 만들어진 인류 유산이다. 오페라를 비롯한 클래식, 영국 팝을 비롯한 영국 문화, 아프리카와 인도 문화, 파르시족 문화, 조로아스터교 등.

※ 김진호는…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1901호 (201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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