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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진실(4) 

자율주행 로봇, 배달은 아직 이르다 

이기준 객원기자
자율주행차 업계가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는 가운데 모빌리티 분야의 다음 화두로 배달 로봇이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자율주행차 열기가 불과 수년 사이에 허망하게 사그라든 것처럼, 아직 기술력이 한참 부족한 배달 로봇 역시 과도한 기대는 실망만 불러올 수 있다.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배송용 드론. / 사진:AMAZON
1년 만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자율주행차 얘기다. 지난해 초만 해도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다. 우버, 테슬라, 웨이모 등 세계 굴지의 IT업체들이 1년 안에 완전 자율주행차를 내놓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러나 기대가 우려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불과 몇 달새 우버와 테슬라의 자율주행차가 시범운행 도중 사망 사고를 내면서 이 업체들의 자율주행차 개발이 크게 지연됐다.

그나마 큰 사고 없이 연구개발을 계속했던 웨이모가 지난해 12월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던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내놓았다. 하지만 웨이모의 택시 서비스는 자율주행차를 향한 모든 이의 기대를 한 방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사전에 등록해서 18개월간 시범승차를 거친 승객 400명만 이 택시를 이용할 수 있었으며, 주행 구간도 크게 한정됐다. 게다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인간 운전사가 운전석에 앉아 있어야 했다. 웨이모가 연초에 약속했던 자율주행 택시에는 한참 못 미치는 성과였다.

자율주행차는 실패, 다음은 배달 로봇?

심지어 웨이모의 존 크래프식 CEO는 지난해 11월 “자율주행차엔 늘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운전자 없이 어디든 스스로 운행하는 완전 자율주행차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피력하기까지 했다. 현재 지구상에서 자율주행 기술로는 최고 선두주자라고 인정받는 웨이모가 이 정도다. 지난 1년간 계속된 자율주행차의 참혹한 실패 이후 업계는 좀 더 구현이 쉬운 다른 모빌리티 기술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 운전자의 주행을 돕는 주행보조 시스템, 자전거와 스쿠터 등 마이크로 모빌리티(micromobility), 자율주행 기술을 이용한 배달 로봇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배달 로봇이다. 기존 기술을 개선하는 정도인 주행보조 시스템, 쓰는 사람이나 쓴다는 인식을 받는 자전거 등과 달리 배달 로봇은 우리 삶을 혁신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라는 기대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1월 8일부터 11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소비자가전 전시회(CES)의 주요 화두 중 하나도 배달 로봇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올해 삶을 바꿀 IT기술 중 하나로 배달 로봇을 꼽기도 했다. 일부 국내 언론들도 ‘이르면 수개월 내에 자율주행 로봇이 치킨을 배달할 것’이라는 식의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배달 로봇을 향한 대중의 기대는 지난해 초 자율주행차 업계를 떠올리게 한다. 두 서비스 모두 기본적으로 딥러닝 인공지능이라는 같은 기술을 모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현 수준의 딥러닝은 차량이든 로봇이든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에서 인간의 제어 없이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만들기가 매우 어려운 기술이기 때문이다.

배달 로봇을 이야기할 때 배달 드론을 빼놓을 수 없다. 자율주행 로봇보다 먼저 시도됐던 것이 드론을 이용한 배송 서비스였기 때문이다. 아마존이 드론으로 상품을 배송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2013년이다. 당시 베조스는 4~5년 내에 드론 배송이 실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후 지금까지 아마존을 비롯해 UPS, DHL 등 세계 유수의 운송업체들이 드론 배송을 실험해왔다. 지난 해엔 자율주행차에서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한 우버가 2021년까지 드론 배송을 상용화하겠다고 도전장을 냈다. 참고로 우버는 지난해 1월 “18개월 내에 실제 여객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율주행차를 내놓을 것”이라고 도전장을 냈다.

이처럼 수많은 기업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드론 배송은 시골이나 교외, 오지 등 틈새시장에 머물러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드론 배송이 여러 한계 때문에 한동안 틈새시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첫째는 기술적인 한계다. 짧은 거리라면 드론을 목적지까지 날려보내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중은 지상에 비해 아직까지는 훨씬 덜 혼잡하고, 공중에선 길을 찾거나 장애물을 피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문제는 배터리다. 현재 드론이 한 번 충전으로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보통 10분 안팎이며 길어야 30분을 넘지 못한다. 배터리를 충전하는 데는 최소 1시간 이상 걸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배송업계에선 아직 드론을 유용한 도구로 여기지 않는다. DHL의 모기업인 도이치포스트AG의 프랑크 아펠 CEO는 지난해 12월 AP통신 인터뷰에서 “향후 수년 동안은 드론 배송이 틈새시장에 머물 것”이라며 가장 큰 난관으로 짧은 배터리 수명을 들었다. 매 시간 배터리를 충전해야 한다면 수많은 드론을 구비해서 돌려가면서 써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드론 배송의 두 번째 한계는 규제다. 정부는 본래 새로운 기술에 늘 민감하고 이를 규제하려는 존재지만, 드론의 경우 그 정도가 조금 더 심한 편이다. 드론은 시민의 안전, 나아가 국가안보와도 직결될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민간 드론에 상공 121m 이상 비행 금지, 연방 시설 위로 비행 금지, 공항 8km 이내 접근 금지, 야간비행 금지 등 갖가지 규제를 걸어놓았다.

6년 전 아마존이 불 지핀 배송 드론, 아직 요원해

그중에서도 드론 배송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인간 조종사가 항상 드론을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는 규제다. 즉 조종사의 시야에서 벗어난 곳으로 드론을 날려 보내면 안 된다. 이 규제가 있는 한 드론 배송은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드론 전문 연구업체 스카이로직의 콜린 스노 CEO는 이 규제가 사라지기까지 최소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드론 배송이 성공한 사례도 없진 않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아이슬란드다. 아이슬란드의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하는 이스라엘 드론 업체 플라이트렉스와 손잡고 2017년 8월부터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드론 배송을 하고 있다. 식료품부터 전자기기까지 다양한 물품이 드론으로 배송되며 전 국민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2만3000명이 드론 배송이 가능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이처럼 누구나 쉽게 드론 배송을 이용할 수 있는 사례는 아이슬란드가 거의 유일하다. 현재 플라이트렉스의 드론은 착륙하지 않고 와이어를 이용해 상품을 고객의 집 뒤뜰에 내려놓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아이슬란드처럼 면적이 좁고 혼잡하지 않은 지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이슬란드 인구는 33만여 명에 불과하며,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19층이다. 이 건물을 시카고 같은 대도시에 가져다 놓는다면 높은 건물 상위 100위권 안에도 못 든다. 배송용 드론이 충돌 걱정 없이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드론 배송이 가장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지역은 시카고처럼 교통량이 많고 고층빌딩이 즐비하며 혼잡한 대도시라는 점이다.

이처럼 배송 드론의 한계가 점차 뚜렷해져가는 가운데 최근 몇 년간 발전한 자율주행 기술을 이용해 배달 로봇을 만드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다. 자율주행 배달 로봇은 사람을 태우지 않고 속도도 자동차에 비해 훨씬 느리기 때문에 인명 피해의 가능성이 적다. 인명 피해의 가능성이 적다는 말은 곧 그만큼 규제에서도 자유롭다는 의미다. 게다가 드론에 비해 배터리의 한계에서 자유롭고 한 번에 배송 가능한 물품의 중량도 훨씬 크다.

지난해부터 자율주행 배달 로봇 상용 서비스를 판매 중인 영국 스타십 테크놀로지는 로봇 약 150대를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 운영 중이다. 마치 사람처럼 인도로 다니는 스타십의 배달 로봇은 카메라 9개, 레이더 4개, 초음파 센서 8개로 주변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AI로 분석해 판단을 내린다. 바퀴는 6개, 시속 6㎞ 속도로 움직이며 최대 10㎏까지 물건을 실을 수 있다. 로봇이 목적지에 도착하면 소비자는 앱을 이용해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로봇의 뚜껑을 열어서 물건을 꺼낸다.

인도를 배달 로봇에 내줄 것인가


▎배달 로봇 제조업체 스타십 테크놀로지의 배달 로봇. 딥러닝 인공지능으로 사물을 식별한다. 왼쪽은 사람이 본 모습, 오른쪽은 AI로봇이 본 모습이다. / 사진:STARTSHIP TECHNOLOGIES
앨런 마틴슨 스타십 COO는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우리 로봇은 전구 하나만큼의 전력만으로도 작동한다. 드론에 비해 훨씬 적은 전력”이라며 “하늘에선 작은 물건이 떨어져도 큰 피해를 일으킬 수 있지만 우리 로봇은 혼자 굴러다니는 여행가방과 비슷해서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드론보다 정부 규제가 훨씬 적다는 것도 강력한 장점이다.

그러나 배달 로봇이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마틴슨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아무리 속도가 느리다고는 해도 로봇은 무거운 쇳덩어리다. 건강한 일반 사람이야 로봇과 부딪힐 일이 별로 없겠지만 노약자, 시각장애인 등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안 그래도 행상인, 노숙자, 가로수, 각종 공공시설 등으로 채워져 있기 마련인 좁은 인도에 배달 로봇 수십 대가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통행량이 많은 번화가라면 말이다. 지난해엔 시범 운행 중이던 한 업체의 배달 로봇이 배터리 문제로 불길에 휩싸이는 사고도 있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 일부 지역은 보행자의 통행권을 보장하기 위해 배달 로봇의 보도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통행권을 중시하는 각종 시민단체들도 배달 로봇의 무분별한 인도 침입에 반대하고 나섰다. 향후 배달 로봇의 수가 늘기 시작한다면 모든 지역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될 갈등이다. 레니아 에렌포이크트 뉴멕시코대 교수는 영국 가디언지 인터뷰에서 “배달 로봇 수백 대가 보도로 나오게 된다면 보도는 더는 제 기능을 못 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기술적인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혼잡한 보도 위에선 배달 로봇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목적지에 도달하기가 만만찮다. 자율주행차와 마찬가지로 자율주행 배달 로봇도 정교하지 않다. MIT테크놀로지리뷰에 따르면 스타십의 배달 로봇이 인간의 도움 없이 횡단보도를 성공적으로 건널 확률은 50% 정도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 로봇들은 사전에 충분히 학습한 반경 5km 이내 지역에서만 활동이 가능했다. 스타십을 비롯한 배달 로봇 업체들은 로봇을 목적지까지 제대로 이동시키기 위해 인간 관제사를 두고 로봇을 제어하게 한다. 완전 자동은 아니라는 것이다. 완전 자율주행차가 불가능하듯, 완전한 자율주행 로봇 역시 실현이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 이기준 객원기자

201902호 (201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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