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반찬이 있는 한국 사회 

 

노익상 국리서치 회장
서양에서 스테이크를 반으로 잘라 앞사람에게 권하면 그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우리나라 밥상에는 3첩 상, 5첩 상, 7첩 상 등이 있다. 밥, 국, 김치와 장은 기본이고, 거기에 반찬이 세 가지면 3첩, 다섯 가지면 5첩이다. 첩에는 찌개가 반드시 들어간다. 부자 양반이 먹던 7첩 상에는 구이와 전류가, 12첩 반상에는 생선회와 편육이 올라온다. 조선조에는 집안 어른뿐만 아니라 손님과 일꾼에게도 밥상은 외상(독상)이 원칙이었다. 하여튼 반찬은 우리나라 가정 음식의 특징이다. 이 반찬이 음식점 문화로도 이어져, 한식을 파는 곳이면 어디든 밥과 국보다 반찬이 먼저 나온다. 그것도 5첩, 7첩이 아니라 9첩, 15첩 반상이다. 산해진미가 다 있다. 이것이 진수성찬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서 술꾼에게는 한식이 최고다. 반찬이 안주고 그 안주가 공짜니 얼마나 좋은가? 더욱이 더 달라고 하면 더 준다. 농부가 밭을 일구어 기르고, 아주머니들이 투박한 손으로 껍질을 벗기고 삶고 말려서 다시 물에 불린 후, 갖은양념을 넣고 버무린 나물. 그 나물을 그냥 더 준다. 김치는 더하다. 칼국수집 주인은 국수 더 달라고 하는 손님은 밉지 않다고 한다. 천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김치 더 달라고 하는 사람은 밉단다. 김치 값이 더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돈을 받을 수도 없다. 이렇게 수고한 음식을 공짜로 더 갖다주는 식당은 세상에 어느 나라에도 없다. 이것이 우리의 반찬 문화다.

그동안 우리 조상들이 너무 궁핍하게 살아서일까? 밥상에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형님 먼저, 동생 먼저’라며 권한다. 음식을 권하는 것이 우리의 미덕이었다. 서양에서 스테이크를 반으로 잘라 앞사람에게 권하면 그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게 먹던 걸 줘! 내가 거지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가족끼리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반찬 문화 속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일까? ‘오복이 달아난다’며 구운 생선을 뒤집어 먹지 말라고 한다. 일반 가정에서 구운 생선은 귀한 반찬이었다. 당시 우리네는 윗사람이 먼저 밥을 먹으면, 그 상을 받아서 아랫사람이 먹었다. 아랫사람들에게 생선의 반을 먹어보게 하려는 배려심이었다. 식품사 연구가 이어지고 있지 않다. 1974년(45년 전) 중앙대학교 윤서석 박사의 저서 『한국식품사연구』의 머리말이다. “여러 민족이 각기 다른 환경에서 이룩한 식생활 문화는 인류가 자연과 사회환경 아래 장구한 생활사에서 개발하고 축적한 문화유산의 하나이다.” 식품사는 민중사다. 민중식품 연구, 밥상 문화와 마음의 연구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 노익상 국리서치 회장, 대한산악구조협회 회장

201903호 (201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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