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손맛 때문에 낚시질을 하지만, 그런 짐승이 있는가? 인간을 과연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칭송할 수 있을까?
인간 역사에서 전쟁의 참혹함. 인간이 인간을 고통스럽게 죽이려고 저지른 수단은 차마 말이나 글로 옮길 수가 없다. 살갗을 태우고, 팔다리를 찢고, 손톱을 한 개씩 뽑고…. 그들은 왜 전쟁을 일으키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것도 왜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는가? 짐승들은 먹이를 두고 다툴 때 진 쪽에서 물러나면 승자는 더는 쫓아가지 않는다. 암컷을 차지하고자 혈투를 벌일 때도 패자가 물러나면 그것으로 평화가 회복된다. 그런데 인간은 끝까지 따라가서 죽이고야 만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증오, 질투, 복수. 누구를 무지막지하게 미워하고 죽이고 나서야 풀릴 수 있는 인간의 마음이다. 권력. 나 혼자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힘이고 모든 타인이 오직 나에게만 복종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욕구다. 환희.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드디어 성취했을 때의 마음이다. 인간은 그런 증오심과 복수심 때문에, 그런 권력욕과 환희의 욕망 때문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인간일수록 아주 이성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가장 효율적인, 가장 확실한 수단을 찾아서 실행하는데, 그때 사용하는 것이 그의 냉철한 이성이기 때문이다. 복수심 하나 때문에 엄청난 일생을 기록한 몬테 크리스토 백작, 셰익스피어의 소설에 나오는 모든 주인공의 삶, 영화 올드보이의 복수자. 전 세계의 반을 말을 타고 달려 토벌한 칭기즈칸, 세계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 그들은 모두 엄청난 감정적 욕망을 위하여 그렇게 치밀한 이성을 동원한 사례들이다. 우리 주변을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가 결국 감정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 재산과 권력과 지위를 갖고자 하는 것도 결국은 감정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을 갖기 위하여 사람들은 이성을 동원한다. 공부가 대표적인 예다. 시험에 합격해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에 가야 기분이 좋고 출세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에게는 감정적인 욕망이 궁극적인 목적이고 이성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근대의 많은 철학자가 이성이 마치 인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무엇인 양 상상했지만, 그것은 신앙과 유사한 형이상학이었을 뿐이다.
짐승에게는 그런 감정적 욕망이 거의 없다. 그래서 짐승은 인간보다 덜 폭력적이다. 인간은 손맛 때문에 낚시질을 하지만, 그런 짐승이 있는가? 인간을 과연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칭송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감정적인 이유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 거라고 우리 모두 자기 자신에게 솔직할 때 우리는 조금 더 평화롭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