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기술 시대의 기업가 정신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공동대표
영국 BBC의 보도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창업가들이 정작 자녀에겐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못 쓰게 한다는 얘기였다. 모순이다.

테라노스(Theranos). 한때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명했던 바이오 스타트업이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Elizabeth Holmes)는 피 몇 방울로 260여 가지 이상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메디컬 키트를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병을 진단하기 위해 필요했던 수많은 검사를 압축한, 의학계의 상식을 뒤집는 획기적인 발명이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총 7억 달러(약 8200억원)에 이르는 투자금이 테라노스에 쏟아졌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은 애초에 없었고 모두 거짓이라는 게 뒤늦게 밝혀졌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기술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거짓된 신화’가 언론에서 시작했고 사회 전반에 믿음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저명한 미디어 학자이자 문화비평가 닐 포스트맨(Neil Postman)은 저서 『테크노폴리(Technopoly)』에서 기술 중심 시대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기술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대에 모든 형태의 문화와 생활이 기술에 종속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산업의 발전과 경제적 이득을 고려하면 새로운 기술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좋은 기술은 자본을 획득하게 되고 인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술을 무기로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창업가는 이제 새로운 형태의 기업가정신을 고민해야 한다. 투자를 위한 가치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는 이들도 똑같이 숙고해야 한다.

핵심은 그 기술이 과연 기술을 위한 기술인지, 아니면 인간과 사회 전체를 위해 만들어진 기술인지 살피는 것이다. VR(가상현실) 기술을 예로 들 수 있다. 과거에 VR 기술이 실패했던 이유는 기술의 강점을 그저 사람들에게 사실적인 그래픽으로 보여주려는 데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VR 기술은 의미 있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 이유는 가상현실이 사람들에게 현존감(presence)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술이 인간의 삶에 들어오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기술중심주의 시대에 핵심 전략은 분명하다.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와 동반 성장해야 한다는 철학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철학을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찾은 이유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최첨단 기술을 대표하는 곳인 실리콘밸리의 부모들이 자식들을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없는 발도르프 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하는 이유다. 혁신적인 기술은 기술 자체에 그칠 게 아니라 인간, 사회와 공감해야 한다. 모두가 첨단기술과 스타트업에 열광하고 있는 지금이 다시 한번 기업가정신을 생각해봐야 할 때다.

201907호 (2019.06.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