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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곡(編曲)은 경제용어다 

 

노성호 뿌브아르 대표
최근 현대적 의미의 파생 비즈니스는 음악에서 시작됐음을 알게 됐다.

정년이 지난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뭔 일(사업)을 하는 게 좋겠냐’는 질문이 많아졌다. 가볍게 생각하면 ‘아이템’을 정하면 되는 일이지만 깊게 들어가보면 ‘의·식·주’라는 카테고리에서 어떤 영역이 자신에게 맞을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일자리는 의식주에서 파생된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상이 복잡해지고 인류의 인식도 많이 바뀌면서 분류가 복잡해졌지만 애초에 인류가 만든 경제 시스템은 의식주가 기본이었고 이후 그 3가지를 연결하는 유통과 금융(은행)정도가 탄생했다.

그런데 최근 현대적 의미의 파생 비즈니스는 음악에서 시작됐음을 알게 됐다. 베토벤 이후 음악, 정확하게는 현재 클래식으로 불리는 음악은 당시 인류의 귀중한 문화적 자산이면서 ‘악보’라는 상품으로 유통되는 고급 경제상품이었다. 따라서 작곡가와 출판업자들은 큰돈을 벌었다. 물론 당시에도 창작보다는 변형에 좀 더 특화된 작곡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예전의 명곡을 변형해 다른 악기로 연주하게 하거나 좀 더 세련된 분위기로 바꾸면 훌륭한 상품인 ‘악보’를 만들 수 있는 구실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잘된 편곡은 바로 페르초 부소니(1866~1924)가 바흐의 바이올린 파르티타2번을 피아노 솔로곡으로 바꾼 ‘샤콘느’다. 미켈란젤리를 비롯해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이 곡을 연주했고 지금도 연주한다.

최고의 편곡자는 피아니스트이면서 작곡가인 리스트(1811~1886)였다. 어린 시절 베토벤에게서 신동 소리를 들은 리스트는 40대에 들어서면서 수많은 명곡을 편곡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베토벤의 9개 교향곡을 피아노 솔로곡으로 편곡한 것으로 현재 클래식 마니아들은 감탄사를 연발한다. 리스트는 베토벤 곡뿐 아니라 슈베르트의 연가곡, 오페라 아리아까지 편곡했다. 그의 작품 중 현재 주로 연주되는 건 피아노협주곡과 ‘사랑의 꿈’, ‘순례의 해’ 정도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형식인 ‘교향시(Symphonic Poem)’를 개척하는 등 작곡자로서 재능도 뛰어났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자본시장 초기, 유럽에서 한창 유행했던 편곡은 원곡의 ‘파생상품’이었다. 베토벤의 명성을 이용했건, 바흐의 성스러움을 이용했건 당시 편곡은 음악시장에서 잘 팔리는 파생상품으로 각광을 받았고 시장도 아주 컸다. ‘메기효과’나 ‘나비효과’란 단어는 과학적 탐구영역에서 시작됐지만 현재는 경제용어로 자리 잡았다. 편곡은 ‘파생상품’의 원류에 가까운 단어이니 경제용어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201907호 (201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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