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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대한민국 50대 부자] 영향력 줄어든 오너家의 희비 

 

ICT로 무장한 신흥 슈퍼리치들이 새롭게 부자 자리를 꿰차는 사이, 전통적인 오너 일가 중 상당수는 지난해에 비해 재산 규모와 순위가 뒤로 밀렸다.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온 오너 일가의 영향력이 조금씩 줄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 1월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 행사 모습. 이날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대한상공회의소가 추천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대기업 대표 22명이 참석했다.
‘2019 한국 50대 부자’ 중 오너가가 지배하는 대기업은 모두 27곳이다. 지난해 조사에서 오너 CEO 28명이 순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데 비해 소폭 감소했다. 이 같은 변화는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어서 통계상 유의미한 양상으로 해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한국 50대 부자 조사를 처음 시작한 2005년과 비교해 보면 재계의 판도 변화가 극적으로 드러난다. 오너가의 영향력 축소와 자수성가형 신흥부자들의 약진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기 때문이다.

일제 수탈에 이어 6·25 전쟁의 폐허 이후 한국의 산업은 철저히 관(官)이 주도하는 계획경제를 바탕으로 덩치를 키웠다. 낮은 금리를 통한 자금 조달, 유치산업 보호를 위한 시장진입 규제와 보호관세, 보조금 지급, 독점적 시장구조 용인 등은 오늘날 한국의 산업구조를 제조업과 수출을 중심으로 하는 대기업 체제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포브스코리아가 한국 50대 부자를 처음 조사한 14년 전만 해도 리스트에 오른 50명 중 전체의 78%에 해당하는 39명이 전통적인 오너가 인물이었다. 오너 중심의 대기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히 보여준다. 반면 2019년 조사에선 오너가 비중이 54%로 감소했다. 14년 동안 순위권 밖으로 사라진 오너 일가의 비중은 31%포인트에 달한다. 대신 맨손으로 부를 일궈낸 자수성가형 부자는 2005년 11명에서 올해 23명으로 크게 늘었다.

기업의 명운에 따라 위세를 잃은 그룹도, 부자 리스트에서 사라진 사람도 많다. 2005년 조사 당시 한국의 슈퍼리치로 분류됐던 사람들 중 2019년 조사에서 순위에 들지 못한 사람이 28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세상을 떠난 3명을 제외하면 25명이 한국의 대표 부자 타이틀에서 멀어졌다. 특히 이들 가운데 오너 일가의 수만 22명에 달한다. 2005년 당시 국내 재계를 대표했던 대기업 오너 일가의 희비가 엇갈리는 대목이다.

그렇다 해도 재계를 대표하는 5대 그룹은 여전히 우리 경제를 받쳐주는 버팀목 역할을 충실히 맡고 있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 기준 국내 100대 기업 중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5대 그룹 계열사가 35개에 달했다. SK그룹이 9개사로 가장 많았고,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각각 8개사, LG그룹이 7개사, 롯데그룹이 5개사를 차지했다. 다만 지난해 100대 기업에 포함됐던 삼성중공업과 서브원(LG그룹)은 올 들어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미세한 차이지만 5대 그룹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줄어드는 추세를 반영한 결과다.


오너가 개인별 비중을 살펴보면 재계의 변화상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2005년 50대 부자 리스트에 10명이 포진했던 범삼성가는 올해 조사에서 7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범LG가도 8명에서 4명으로, 범롯데가도 4명에서 2명으로 쪼그라들었다.

특히 범현대가의 위상은 과거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2005년 50대 부자 중 범현대가 인물은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8명이 포진해 전체의 16%를 차지했다. 당시 범현대가는 범삼성가(20%)에 이어 당당히 한 축을 맡으며 우리 재계를 이끌었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현재 범현대가 인물은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수석부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등 3명뿐이다. 올해 조사에서 범현대가가 차지하는 비중도 6%로 감소했다.

주가 등락에 울고 웃은 오너 일가


오너 일가의 재산 규모도 지난해에 비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중 무역 분쟁, 일본의 수출규제, 기업 실적 하락 등 대내외 악재가 주가에 영향을 주며 이들의 지분가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그룹의 대표 격인 삼성전자 주가는 액면분할 첫날인 2018년 5월 4일 5만1900원에서 올해 7월 16일 종가 기준 4만6850원으로 10% 가까이 떨어진 상태다. 지난해 22조원대에 달했던 이건희 회장의 재산도 올해 조사에선 19조원대로 줄었다. 같은 기간 이재용 부회장도 8조원대에서 7조원대로,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도 각각 2조원 대에서 1조원대로 재산 규모가 감소했다.

대기업 오너가의 재산이 전반적으로 줄어든 가운데, 이 같은 추세를 비껴 간 사례도 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2조8904억원이었던 정 수석부회장의 재산은 올해 조사에선 3조1442억원으로 뛰어올랐다. 이런 배경에는 현대글로비스의 주가 상승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주식 23.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지난해 말 12만9000원으로 장을 마친 현대글로비스 주가는 올 7월 16일 종가 기준 15만4500원으로 20% 가까이 급등했다.

현대글로비스의 주가 상승 추이는 현대차그룹의 경영승계 시나리오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시급히 정리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그룹의 지주사 격인 현대모비스를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한 뒤,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사업부문을 합병하는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 중이다. 현대글로비스가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으로 꼽히는 이유다. 특히 향후 합병 과정에서 정 수석부회장의 지분이 큰 현대글로비스의 주식 가치가 높아질수록 그룹의 지배력을 장악하기 쉽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현대글로비스의 주가 상승은 이 같은 투자자들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한편 한국 50대 부자에 이름을 올린 대기업 오너가 여성은 5명에 그쳤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 등 범삼성가가 가장 많았고,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과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이 뒤를 이었다. 이들의 재산 규모도 지난해에 비해 모두 감소했다. 2018년 2조4086억원으로 15위에 올랐던 이명희 회장은 올해 1조3416억원으로 16계단이나 떨어진 31위에 그쳤다. 2018년 25위였던 최기원 회장도 1년 사이 33위로, 이화경 부회장도 30위에서 43위로 미끄러졌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201908호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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