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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 딜리셔스 대표 

‘신상마켓’ 앱으로 동대문을 사로잡다 

최근 투자업계가 동대문에 주목하고 있다. 많은 창업가도 한국 패션의 심장 ‘동대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뛰어들고 있다. 일찌감치 동대문 패션 생태계가 지닌 잠재력을 알아보고 ‘신상마켓’ 앱으로 도소매상을 사로잡은 김준호 대표를 만났다.

▎김준호 딜리셔스 대표는 2007년 대학교 4학년 재학 시절부터 창업 세계에 발을 들였다. 2013년 신상마켓이란 서비스를 출시하기까지 IT업계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 개발자다. 서비스 출시 당시 자금 사정이 빠듯해 직접 밤낮없이 개발에 매달렸다. / 사진:딜리셔스
“패션 클러스터라 불리는 동대문 시장은 매우 압축적인 시장입니다. 5~10㎞ 안에서 디자인(기획), 생산, 유통 전 과정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곳이죠. 전 세계적으로 이런 시장이 드물어요. 여기에 도소매업자, 일반 소비자, 해외 바이어까지 한데 뒤엉키는 곳이죠. 그래서 이 시장을 아우르는 패션 B2B 플랫폼으로 거래 과정을 디지털화하면 포텐(잠재력)이 터질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7월 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사무실에서 만난 김준호(36) 딜리셔스 대표가 설명했다. 딜리셔스는 동대문 패션 도매시장과 국내 및 해외 소매 사업자를 연결하는 B2B 패션 플랫폼 ‘신상마켓’을 서비스하는 회사다. 2013년 출시한 이 서비스는 의류 도소매 사업자 대상의 전용 중개 플랫폼으로, 동대문에 집중된 의류 도매업자들과 전국의 인터넷쇼핑몰, 로드숍 등 소매업자를 이어준다.

서비스는 대략 이런 식이다. 도매업자가 신상마켓에서 전국의 소매업자에게 신제품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으로 소개하고, 소매 바이어는 모바일 접속만으로 도매시장 제품을 빠르게 살펴보고 주문할 수 있다. 도매업자 입장에선 대량 거래를 더 원활하게 진행하면서 재고 부담을 줄이고, 소매업자는 더 빠르게 신상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딜리셔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올해 4월 16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마쳤다. 지난해 20억원 규모의 1차 투자 유치 때보다 8배 가까이 늘었다. 이번 투자는 스톤브릿지벤처스,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디티앤인베스트먼트, 아주IB투자, DSC인베스트먼트, 베이스인베스트먼트 등 국내 주요 투자사가 줄지어 참여했다. 김 대표는 “처음 투자 받은 20억원을 제대로 쓰지도 않았다”며 “시리즈B 투자 유치도 100억원 수준으로 마무리하려고 했으나 투자 요청이 쇄도했다”고 말했다.

신상마켓은 어떻게 탄생했나?

2012년 말쯤이었다. 그때까진 많은 이용자를 모으고, 이들의 피드백에 취해서 뭔가 만든 것 같다는 만족감에 젖어 살았다. 영유아 가정과 교육기관을 잇는 ‘키즈 스토리북’를 준비하던 때였는데, 그때 시장 조사란 걸 처음 했다. 하지만 이미 시장에 관련 제품이 있어 고민 끝에 접었다. 난감했다. 딜리셔스라는 법인을 만들었는데 매출도 없고, 생활비는 벌어야겠고. 돈 벌 방법을 궁리하던 끝에 갑자기 ‘동대문’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 모두가 동대문과 연관된 일을 하거나 한 적이 있었다. 아내 집안은 오래전부터 동대문에서 의류업을 했고, 같이 일하는 조현동 이사 이모님도 이미 동대문 쇼핑몰에서 의류업에 종사하고 계셨다. 등잔 밑이 어두웠던 셈이다. 나조차도 여성 패션 온라인몰을 하면서 동대문 문턱이 닳도록 돌아다녔었는데 말이다.

기존 여성패션 온라인몰을 확장한 건가?

그 사업과는 전혀 별개다. 당시 여성패션 온라인몰은 수백여 개였고, 경쟁은 10년 전보다 훨씬 심해졌다. 단순히 의류를 떼어다 파는 중개업 자체는 생각도 안 했다. 소셜커머스의 출발점이 기존 오프라인 유통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한 것이었으니 우리도 같은 문제에 집중했다. 당시 조 이사의 지인에게서 중국인 도매상이 원하는 옷을 찾아 동대문 시장 곳곳을 다니며 메신저로 사진을 보내 계약을 성사시켰다는 얘기도 들은 터였다.

우여곡절이 많았겠다.

왜 없었겠나. 운영비를 벌려고 각종 개발 외주 일에 나서야 했고, 사무실 공간이 없어 전셋집 2층 작은 공간을 사업자등록지로 하는 등 별짓을 다 해봤다. 돈이 없으니 개발자를 따로 둘 수도 없었다. 다행히(?) 내가 개발자니까 개발만큼은 매진할 수 있었다. 2013년 4월 시작해서 3개월 만인 7월 25일 신상마켓 서비스를 오픈했다. 동대문 시장을 이 잡듯 돌아다니며 신상마켓 서비스를 알리는 전단을 돌렸다. IT 스타트업이라고 편하게 사무실에만 앉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초기 버전은 지금도 부끄러울 정도로 초라했다. 일단 홍보 플랫폼임을 표방하고, 도매상이 물건을 올리고 소매상이 주문할 수 있는 거래 플랫폼임을 알리기 시작했다.

도소매상 불편함 모두 반영


▎김 대표는 패션 클러스터라 불리는 동대문 시장에서 모든 거래 과정이 디지털화되면 잠재력이 폭발할 것이라 확신했다. / 사진:이원근 객원기자
이용자를 끌어들이기가 만만치 않았겠다.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많은 도소매상들도 주문 과정에서 물건 사진, 주문량 등을 각종 메신저로 주고받을 만큼 IT 서비스에 밝았다. 그간 보수적인 거래방식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그래도 초기엔 몇몇 도매업자만 상품을 올렸을 뿐 이렇다 할 거래가 일어나지 않았다. 꾸준하게 도소매업자들이 늘면서 입소문을 탔고, 희한하게(?) 개선점 같은 피드백을 꼭 주셨다.

피드백이 도움이 많이 됐겠다.

주옥 같아 모두 수용했다. 솔직히 당장 돈은 안 되니까 힘들었는데 이용하는 도매상이 늘어나고, 각종 피드백이 쏟아지니 ‘앞으로 더 이용하고 싶다는 의지’로 들려 신이 났다. 당시를 돌이켜보니 서비스 출시 후 1년간 안드로이드 앱을 180번이나 업그레이드했다. 스마트폰 갤러리 접근성을 원활하게 바꿨던 게 기억이 난다. 신상품을 찍어서 갤러리에 저장하고 바로 주요 거래처에 뿌리고 있었기에 우리 앱에 얼마나 빠르고 쉽게 상품 이미지를 올릴 수 있게 만드느냐가 관건이었다. 그전에는 갤러리에 접근하면 스마트폰이 버벅거리거나 다운되기 일쑤였다.


▎딜리셔스 직원이 동대문 시장 도소매상을 대상으로 신상마켓 서비스를 교육하고 있다. / 사진:딜리셔스
이용자가 큰 폭으로 늘어난 계기는?

2013년 7월 서비스를 론칭한 후 속된 말로 두세 달은 파리만 날렸다. 하지만 추석 이후 이용자가 급증했다. 동대문 도소매업 특성상 가족단위 사업자가 많은데, 신상마켓이 추석 때 입소문을 탔는지 명절 이후 사용자가 급증했다. 여기에 카카오톡과 연계한 기능을 탑재한 게 주효했다. 동대문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한 업자가 영수증을 다른 업자에게 넘기며 카카오톡 아이디 스티커를 붙이는 걸 봤다. 당시 카카오톡과 카카오스토리에 공유하기 기능이 막 생길 때였다. 눈에 쏙 들어왔다. 그런 기능도 앱에서 활용하기 더 쉽게 만들었다.

현재 신상마켓 거래 규모는 얼마나 되나?

월 350억원 정도다. 도매상이 신상마켓에 올리는 상품이 하루 3만5000여 개, 한 달이면 120만 개가 넘는다. 이용 도매 매장은 1만7000여 개, 누적 등록상품 수는 3000만 건에 육박한다. 누적 거래액도 7000억원이 넘는다. 최근엔 주문·결제·사입·배송을 한 번에 해결하는 ‘신상배송’ 서비스와도·소매상이 상품을 좀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도록 촬영하거나 자료를 대신 만들어주는 ‘신상초이스’ 서비스를 하고 있다.

사입이 뭔가?

동대문 패션 생태계에서 도매와 소매를 연결하는 구매 대행업자다. 유통의 핵심 축이라 할 수 있다. 소매업체가 도매상에게 주문한 옷을 챙겨 배송하는 역할까지 도맡는다. 새벽 도매시장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이들은 소매업자가 아니라 일명 ‘사입삼촌’이라고 보면 된다. 소매상이 매일 새벽 동대문 시장을 오가는 대신 사입삼촌한테 옷 종류와 수량을 알려주면 사다 주는 식이다. 신상마켓은 사입삼촌을 배제하려는 앱이 아니다. 그들도 신상마켓을 쓴다.

신상마켓, 비즈니스 모델은 구축했나?

앱을 이용하는 자체로 돈을 벌진 않는다. 도매상을 위한 광고 배너와 신상배송과 신상초이스 서비스로 수익을 낸다. 사입삼촌을 쓰지 않는 도소매상이라면 신상마켓 하나로 충분하고, 쓰고 있다면 앱 주문 데이터를 기초로 의뢰하면 그만이다. 이렇게만 해도 거래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어 이익이 난다. 투자금에 의존하지 않고도 매출 기반 성장이 가능한 이유다.

중국 사드 보복 여파에 동대문 시장도 매출이 줄었다고 들었다.

맞다. 예전에는 중국 바이어들이 동대문 도매시장에 올 때 현찰을 다발로 몇십억씩 들고 다니면서 한 매장에서 10억원 이상 주문했다. 이들의 발걸음이 끊기고, 동대문 샘플 가지고 중국 공장에서 찍어내면서 시장 규모는 분명 쪼그라들었다. 대신 로컬 시장에 좀 더 집중하려는 도매상이 늘었고, 신상마켓에도 이용자가 붐비기 시작했다. 반대로 중국 생산 제품을 동대문 도매상이 수입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시장 종사자를 중심으로 동대문에서 소화할 일부 생산량도 중국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품질 경쟁력을 중국에 따라잡힐 수 있다는 우려가 꽤 있다.

신상마켓도 우려하는 점이 아닌가?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세 가지 목표를 뒀다. 먼저 유통을 데이터 플랫폼화하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국내 시장만큼은 신상마켓을 활용해 품절, 재고 문제까지 완전히 해결하고자 한다. 다음은 해외 쪽 판로를 개척하는 거다. 동대문 제품을 원하는 해외 바이어를 신상마켓에 끌어들이면 그간 줄어든 도소매상 매출도 늘어날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저작권 문제다. 사업자 인증을 까다롭게 하고, 필요하다면 오프라인 심사도 한다. 저작권 분쟁이 생겨도 작업지시서 등 확인할 수 있는 건 다 따져본다. 장기적으로 동대문만의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계획은 뭔가?

글로벌로 진출해도 문제없을 정도로 회사 전체를 시스템화하고 있다. 무조건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기보다는 기존 서비스를 점검하고, 고도화하는 데도 신경 쓰고 있다. 해외 바이어들을 끌어모으는 것도 타진해볼 생각이다. 동대문 패션 클러스터는 이미 경쟁력이 있다. 글로벌급 인재가 포진해 있고, 젊은 창업가도 속속 모여들면서 동대문엔 또 다른 활기가 넘치고 있다. 글로벌에서 승부를 걸어도 될 정도로 개성 넘치는 인재가 많고 생산, 유통 등 패션 산업에 필요한 모든 인프라를 거의 갖췄다. 신상마켓은 이들의 저력이 좀 더 빛나도록 기여하고자 한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1908호 (201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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