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박은주의 '세계의 컬렉터'] 토마스 올브리히트 

수집 범위에는 제한이 없다 

토마스 올브리히트는 4살 때부터 우표와 미니 장난감 자동차를 모으기 시작해 1980년대 들어 독일 전후 미술로 수집을 시작한 독일의 내과의사다. 루르 게오르크 마이스테르만의 작품 등 독일 로컬 작가들로 시작된 그의 관심은 컨템퍼러리 아트와 분데르카머 오브제들, 우표 등으로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그중 주인에게 가장 큰 애정을 받는 것은 1620년대 청동 모래시계로, 이브 생 로랑의 소장품이었다.

▎Portrait Thomas Olbricht © me Collectors Room Berlin / Olbricht Foundation, Photo Jana Ebert
30년에 이르는 컬렉션을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올브리히트 부부는 2010년, 베를린에 ‘미컬렉터스룸(me Collectors room)’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을 설립한 목적은 단지 호기심을 채우는 단계를 넘어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평생 열정과 희열을 안겨준 ‘컬렉터’라는 특별한 삶을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도 제안해보려는 데 있다. 수집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단지 미니 자동차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부부는 아이들이 소장품을 보고 지식을 쌓아가기보다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한계를 넓히고 예술을 통한 소통과 관심의 영역을 확장하길 소망한다. 그들의 소장품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전 세계 박물관의 요청에 따라 수집품들은 곳곳으로 대여되고 있다.

광범위한 수집품은 호기심을 자극


▎View into the Wunderkammer Olbricht © me Collectors Room Berlin, Photo Daisy Loewl
재단은 19세기부터 동시대에 이르는 예술작품들과 그가 모은 작은 오브제들과 우표들을 보면서 수집 범위에 제한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공간이었다. 재단의 이름 미컬렉터스룸 베를린은 그의 소장품 내용을 상징하는, 가장 잘 어울리는 명칭이었다. 토마스가 파리에서 수집가로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2년 10월 메종 루즈(La maison rouge)의 [토마스 올브리히트 컬렉션, 미래의 기억] 전시였다. 2500점이 넘는 작품을 공유하기 위해 미컬렉터스룸 재단을 설립하고 막 2년이 지난 해였다. 해마다 열리는 국제 페어, 파리 피악(FIAC) 기간에 진행된 그의 전시는 피악을 방문하기 위해 파리에 왔던 전 세계 컬렉터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전시는 대성공이었다. 그의 광범위한 수집품들은 호기심에 찬 다른 수집가들에게 작품 선정에 반영된 특별한 취향과 안목을 공개했다.

주목할 것은 16세기부터 현재까지 인류의 500년 역사를 한 독일인의 방에서 한꺼번에 발견할 수 있었던 점, 의사라는 직업 때문에 자주 겪는 죽음에 대한 주제가 담긴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다양한 장르의 테크닉과 재료가 이 무거운 주제를 더 강조했다. 어두운 실내 전시장은 마치 고고학적이면서도 연구소 암실 같은 느낌이었고 동시에 매우 경건하고 심오했다. 인류가 고민해온 주제 중 가장 필연적인 주제가 ‘죽음’이기에 더욱 강하게 방문자의 마음에 다가왔다.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닥칠 죽음의 순간들을 마치 액세서리들을 전시하듯 연속적으로 이어놓는 전시장에서 처음엔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점차 마음이 편해졌다. 컬렉터 스스로 구성한 전시는 크게는 예술사이면서 전체 컬렉션들 중 하나하나의 구성요소에 힘을 실어주었던 테마로 인한 결과였다.

알브레이트 뒤러, 마르틴 숀가우어와 프란시스코 고야의 판화, 로버트 카파와 신디 셔먼의 사진, 빅 뮤니츠, 게르하르트 리히터, 지그마르 폴케, 앨런 맥컬럼, 마를레네 뒤마의 페인팅, 르네상스 시대의 상아 조각상, 토마스 쉬테 등 동시대 작가들의 조각상, 베를린 드 브뤼케르의 밀랍 조각 등은 죽음, 허영, 신앙, 전쟁, 여성의 나약함과 아름다움 등을 보여주었다. 방문자들은 전 세계 작가들의 서로 다른 테크닉으로 제작된 작품들 속에서 길을 잃은 듯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어느새 이 모든 것이 인류의 자화상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다양한 소재의 새로운 조합은 색다른 관점 제시


▎George Condo, The Homeless Butler, 2009 © VG Bild-Kunst, Bonn 2019, George Condo / ARS (Artists Rights Society), New York, 2018, Courtesy of the artist and Sprüth Magers, Photo: Jens Ziehe
전시 타이틀은 [미래의 기억]이었다. 생명과학사전에 따르면, 기억은 ‘인상, 지각, 관념 등을 불러일으키는 정신기능의 총칭. 사람이나 동물이 경험한 것을 특정 형태로 저장했다가 나중에 재생 또는 재구성하는 현상’이다. 즉 기억이란 것은 과거의 무엇을 현재에 되새기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미래의 기억’이라는 아이러니한 전시 타이틀이 이런 혼동을 이미 상징하고 있었다.

2012년 파리 전시에서 이런 경험을 한 후 실제로 베를린에서 그의 모든 소장품이 전시된 미컬렉터스룸을 방문한 사람들은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체계적이고 섬세하게 하나하나 정성 들여 전시된 분데르카머 오브제들을 2층에서 감상했는데, 그중에는 의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해부학 연구 재료를 보는 듯 서로 다른 모양의 해골들이 있었다. 1층에서 열리는 기획 전시는 서너 달마다 새롭게 구성된다. 재단 전시실은 ‘다양한 대상을 선별하여 모든 종류의 조합을 만들 수 있으며 새롭고 예기치 않은 관점과 보는 방법을 실현할 수 있다’는 토마스의 의도가 실현된 공간이다.


▎Jake & Dinos Chapman, Sex I, 2003 © VG Bild-Kunst, Bonn 2019, Courtesy the artists & Blain|Southern
2019년 4월부터 8월까지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각자의 뛰어난 개성을 안고 있는 작품들의 소통을 이끌어냈다. 고야의 일련의 판화 작품들과 마주하고 있는 제이크와 다이노스 채프먼 형제의 설치작품 , 전시장 끝편에 소개되는 나탈리 뒤버그와 한스 베르크의 약 30분에 달하는 긴 영상 작업과 여러 점의 조지콘도 작품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중앙에는 요나스 부르게르트의 대형 인체 조각을 둘러싼 페인팅 여러 점이 벽면을 채워 작가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도왔다. 전체적으로 공공 전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창조하고 있다.

대중은 예를 들어 프랑수아 피노의 푼타 델라 도가나와 팔라초 그라치의 컨템퍼러리 아트 소장품을 감상하듯이 한 세대만의 소장품을 감상하는 전시나 한 작가의 회고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광범위한 토마스 올브리히트 소장품 전시는 익숙하지 않다. 특히 토마스가 소장한 조지 콘도의 대형 작품들 앞에서 그가 해온 다양한 장르와 여러 세대에 이르는 소장품의 기록이 그가 생존작가들의 특별한 작품들을 선택하는 데 큰 동력이 되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즉 수집의 경험은 점점 더 높은 안목을 쌓아가는 데 가장 큰 힘이었다.

4살 때부터 이어 온 컬렉션 중 초기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독일 작가 지그마르 폴케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비버 가죽으로 만든 옷 위에 그린 유제, 에멀션 페이팅이었다. 사진 중에서는 1996년 뉴욕에서 구입했던 신디 셔먼의 Untitled #322였다. 신디 셔먼은 목, 몸통, 팔, 다리를 자유롭게 빼고 다시 끼워가며 놀 수 있는 작은 인체 인형 두 개가 성행위를 하고 있는 포즈로 만든 뒤 사진을 찍었다. 고통스러워 보이는 누워 있는 인형의 머리는 이미 몸체에서 떨어져나간 상태다.

마치 연금술사의 선택처럼 보이는 그의 소장품들은 토마스가 온전히 열정과 직관으로만 작품을 선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미디어와 장르, 시대에 관한 컬렉션이 다양해지도록 특별히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히려 그 자신을 놀라움의 세계로 인도하는 작품을 놓치지 않는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을 궁금해하는 토마스는 그의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작품에 대한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2012년 토마스의 전시를 파리에서 봤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019년이다. 전시장을 나오며 토마스가 강조하는 ‘memento mori’/ Remember you must die를 다시 한번 되새긴다.




▎Margret Eicher, Boundery 1, 2019 © VG Bild-Kunst, Bonn 2019



▎me Collectors Room Berlin © Olbricht Foundation, Photo Bernd Borchardt



▎Wunderkammer Ship © Olbricht Foundation, Photo Bernd Borchardt
※ 박은주는… 박은주는 1997년부터 파리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다. 파리의 예술사 국립 에콜(GRETA)에서 예술사를, IESA(LA GRANDE ECOLE DES METIERS DE LA CULTURE ET DU MARCHE DE L’ART)에서 미술시장과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공했다. 파리 드루오경매장(Drouot)과 여러 갤러리에서 현장 경험을 쌓으며 유럽의 저명한 컨설턴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2008년부터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는 한편 유럽 예술가들의 에이전트도 겸하고 있다. 2010년부터 아트 프라이스 등 예술 잡지의 저널리스트로서 예술가와 전시 평론을 이어오고 있다. 박은주는 한국과 유럽 컬렉터들의 기호를 살펴 작품을 선별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1910호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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