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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생각 여행(4) 노자 ‘상선약수’ 음미한 함곡관의 독백 

 


▎중원과 관중을 가르는 관문인 함곡관 전경.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지난 30년간 이 소중한 물을 이송하는 펌프 시스템 사업에 종사하면서 물과 관련된 많은 정보와 자료를 모았고 또 학습해오고 있다. 인체의 약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듯이 물이 없으면 이 세상의 어떤 동식물도 존재할 수 없다. 반도체도 자동차도 어떠한 공산품도 생산할 수 없다. 더욱이 반도체 제조 과정에선 초순수를 공급해야 한다. 쌀 1톤을 생산하는 데 물 500톤이 소요된다. 철강이나 종이 1톤을 만들어내려면 물이 200톤가량 있어야 한다. 이렇듯 물은 생명의 근원이고 산업에서는 인체의 혈액과 같다.

산업의 혈액이자 생명의 근원인 물


▎노자를 소개한 『사기-노자한비열전』. 함곡관으로 가는 길목 담에 전시되어 있다.
지난해 혜명원 학우들은 지도교수인 최진석 교수와 함께 노자(老子)가 『도덕경(道德經)』을 집필했다는 중국 허난성 서부 고원 지역에 세워진 함곡관(函谷關)을 방문했다. 몇 년 전 최 교수로부터 『도덕경』 완독 강의를 들었던 터라 지도교수와 함께 경전이 집필된 현장을 찾은 것 자체로 행복한 학습의 의미를 더했다. 함곡관은 중국의 험준한 요새인데, 산시성의 성도이자 옛날 당나라의 수도였던 시안(西安)에서 버스로 약 3~4시간 정도 이동해서 도착했다. 한쪽으로 황허강, 다른 쪽으로는 친링산맥을 바라보며 도착한 함곡관 입구에는 거대한 황금색 노자 입상이 서 있었다. 그 주변에는 돌벽을 세워 약 5000자의 『도덕경』을 새겨 놓았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도덕경』 8장에 기록된 상선약수(上善若水)에 관해 한문과 영어로 새겨놓은 머릿돌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물에 관한 노자의 철학을 음미하며 인생과 경영, 시민정신에 관한 물의 교훈을 생각해보았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수선이만물이부쟁(水善利萬物而不爭) 처중인지소오(處衆人之所惡) 고기어도(故幾於道)”

“The best of man is like water. Which benefits all things, and does not contend with them, Which flows in places that others disdain, Where it is in harmony with the Way.”

“가장 훌륭한 덕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만 하지 다투지는 않고, 주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최진석 지음, 소나무, 2001.

생명의 근원이자 산업의 혈액인 물은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 간다. 세상 사람들이 더 높은 곳으로만 향하려 할 때 겸손하게 아래로 쉼 없이 내려간다. 그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낮은 곳을 향하면서 바위에 부딪치고 나무뿌리에도 닿는다. 하지만 물은 다투지 않고 순응하며 아래로 그리고 더 넓은 곳을 향하며 만물에 이로움을 준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더러운 물도 포용하고 깨끗한 물도 함께하며 넓은 곳으로 내려가 가장 큰 바다로 향한다.

이처럼 물은 만물에 생명을 주고 도움이 된다. 인간으로 태어나 주위에 도움은 못 줄망정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맴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영을 하면서 겸손과 부쟁(不爭)과 포용력을 갖춘 도(道)에 가까운 자세를 과연 갖출 수 있을까?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How to live? And how to manage?)라고 자문하며 상선약수의 의미를 다시 마음에 담아본다.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가 물과 같이 네 편, 내 편 가르지 말고 다투지 않으면서 단합하길 소망한다. 물이 저 드넓은 바다로 향하듯 우리나라도 저 큰 미래를 향해 선진대국으로 전진해야 하지 않을까? 나라를 경영하는 리더들은 결국 시민정신의 높이만큼 자질을 갖춘다. 그리고 시민의 문화적·정신적 품격의 정도가 그 나라가 선진국이냐 후진국이냐를 결정한다. 또 전문성과 글로벌한 경륜을 가진 리더를 선출하여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느냐 없느냐도 결국 시민의 몫이고 그 결실의 성패 역시 시민에게로 귀결된다.

물의 포용력 닮은 정신문화 깨워야


▎1. 근접 촬영한 함곡관 망루. / 2. 황금색 노자 입상. 아래 죽간에는 『도덕경』 8장 상선약수가 기록되어 있다. / 3. 함곡관 망루 성벽길. / 4. 옛 함곡관 상상도.
70년 전에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선진국 문턱에서 전진할 것이냐 후퇴할 것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현재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전 세계 어디를 가보아도 우리나라만큼 깨끗하고 안전한 나라가 드물다. 전 국토에 걸쳐 교통 인프라가 완성되어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망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휴게소는 편리하고 화장실은 세계에서 제일 깨끗한 데다 무료다. 공항의 편리성과 효율성은 지속적으로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하에서도 터널에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심지어 산속에서도 휴대전화로 통화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K-팝, 특히 BTS의 인기는 글로벌 최정상이고 이들이 유엔 연단에 서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은 순수한 우리 영화 [기생충]으로 작품상을 포함한 4개 부문에서 오스카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여자 프로 골프는 어떤가. 여러 해 동안 지속적으로 세계 정상을 차지하는 등 우리의 자부심과 자존감을 느낄 수 있는 사례가 수없이 많다.

한국은 이제 물질적인 부분에선 선진국 반열에 다다랐다. 이제부터는 품격 있는 정신문화를 고양해나가야 할 시점이다. 우리 조상들이 지녔던 선비정신을 되살려 상대를 배려하고 자신이 소속된 사회와 국가를 위해 조그만 부분이라도 이로움을 주는 시민정신을 부흥해야 한다. 집단 이기심을 척결하고 물처럼 주변에 이로움을 주고 자기 본분을 다하며 상대방을 포용하는 시민정신을 함양해야 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이 몸을 던져 일하는 헌신적인 자세와 질서 정연한 시민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았다.

올림픽 금메달 시상식장에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면 가슴이 뛰게 마련이다. 이런 감동의 전율을 느꼈던 마음으로 응당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극복해내는 성숙한 시민정신으로 후손들이 선진국의 풍요를 누리는 미래를 만들어가자.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문화를 포괄하는 물과 같은 자존감과 포용의 힘을 발휘하자. 함곡관에서 노자의 상선약수가 일러주는 물의 철학을 마음에 다시금 되새겨본다.

※ 이강호 회장은…PMG, 프런티어 코리아 회장. 덴마크에서 창립한 세계 최대 펌프제조기업 그런포스의 한국법인 CEO 등 37년간 글로벌 기업의 CEO로 활동해왔다. 2014년 PI 인성경영 및 HR 컨설팅 회사인 PMG를 창립했다. 연세대학교와 동국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다수 기업체, 2세 경영자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영과 리더십 코칭을 하고 있다. 은탑산업훈장과 덴마크왕실훈장을 수훈했다.

202004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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