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미술과 심리(2) 

불안한 세상에서 내가 보아야 할 태양은 

코로나19 때문에 대한민국 전체가 불안하다. 갑자기 퍼져나간 바이러스에 대응할 치료약은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고 감염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많은 사람이 바이러스의 불안에 떨고 있는 상황이다. ‘이 세상이 갑자기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나도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사람들의 일상까지 크게 침범할 정도다.

▎에드바르 뭉크 [절규], 1893
정신의학에서는 불안을 ‘정신적 무질서’로, 국어사전에서는 ‘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마조마함’이라고 정의한다. 심리학에서는 불안을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과잉 각성 상태’라고 설명한다. 불안을 일으키는 요인은 환경적인 요소, 대인관계 요소, 트라우마적 사건, 건강 상태나 스스로의 자존감 등 특정할 수 없이 다양하고 개인에 따라 모두 다르다. 그리고 자신의 불안 감정을 다루는 방식도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침묵을 선택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표현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 표현 수단으로 그림을 선택했던 대표적 인물이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다. 뭉크는 자신의 요동치는 감정들을 명확하게 그림으로 표현한 작가로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 뭉크의 대표작 하면 [절규]가 떠오를 만큼 사람들은 뭉크를 불안감에 휩싸인 그림만 그린 작가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의 인생과 작품의 변화하는 양상을 찾아보면 그는 불안에 잠식된 작가가 아니라 불안을 극복하고 이를 긍정적인 정신적 에너지로 환원한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 세상이, 특히 우리나라의 많은 국민이 고통스럽고 불안할 따름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불안이 우리를 잠식하고 휘두르지 않도록 불안을 잘 받아들이고 다독여서 삶이 흔들리지 않는 방향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뭉크는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불안의 감정을 작품에 담았다. 대표작 [절규]는 그가 공황발작이 일어나던 순간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으로, 불타오르는 하늘이 검은 강물을 삼키며 혼란스럽게 요동치는 모습을 표현했다. 해 질 녘 다리를 건너고 있던 뭉크는 까닭 없이 느껴지는 우울감과 피로감으로 난간에 기대어 섰고, 갑자기 대자연에 압도당하는 듯한 극심한 불안을 느꼈다. 서른 살의 뭉크가 이렇듯 [절규]를 통해 강렬하게 표현했던 불안이라는 감정의 원인은 그의 기억 속에 고통스럽게 자리한 사랑했던 가족들의 순차적인 죽음이었다.


▎뭉크 [문 밖에서], 1893


상실감에서 비롯된 불안


▎뭉크 [병실에서의 죽음], 1895
2020년에는 폐렴 그 자체가 생명을 크게 위협하는 질병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뭉크가 살던 시대에는 폐렴만으로도 사람들이 사망하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이 병으로 인해 뭉크는 어린 시절 가족 두 명을 잃었다. 뭉크는 5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13살이 되던 해에 누나를 폐렴으로 보내야 했고 언젠가 자신도 병으로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갔다. 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후 종교에 집착하여 광신도가 되었다가 그가 26살이 되던 해 사망했고, 하나뿐인 여동생은 정신병에 걸렸다. 그의 형제 중 유일하게 결혼한 남동생 안드레아는 결혼 6개월 만에 32살 나이에 사망했다. 뭉크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의 병간호를 해야 했고, 병상에 누운 가족이 죽어가는 것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아야 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뭉크 자신도 신경쇠약, 우울증, 공황장애 등 심리적 장애들과 싸워나가야만 했다.

뭉크가 처음 겪은 가족의 죽음은 어머니였다. 아직 죽음과 삶이라는 단어의 뜻도 잘 모르던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다. 어렸을 때는 실감하지 못했던 어머니와의 이별. 그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25년이 지나고서야 [문 밖에서]라는 그림을 남겼다. 그림 속에는 어린 뭉크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외출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어리고 작기만 했던 아들은 갑자기 사라진 어머니가 보고 싶었고 어머니의 품이 한없이 그리웠을 것이다.

뭉크는 작품에서 가족의 죽음을 자주 다루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언제 죽을까’라는 불안은 죽음을 통한 이별로 종식되지는 못한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라는 절망적 상황이 그의 위태로운 감정을 극대화했던 것이다. 그 역시 죽음과 맞닿아 있고 어느 순간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죽음은 전염성이 있다. 그리고 죽음의 방식 중 하나인 자살은 더욱 강한 전염성을 가진다. 가족의 자살은 가족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유명인의 자살은 대중에게 전염되기도 한다. 이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사회심리 용어가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다. 1974년 미국 사회학자 데이브 필립스(Dave Philips)가 이름 붙인 단어로, 1774년 처음 출판된 괴테의 자전적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 베르테르의 권총 자살 이후 권총을 통한 자살이 급증한 것을 바탕으로 한다. 이런 이유로 책의 판매가 중지되기도 했다. 이렇게 강한 죽음의 전염으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을 심리치료 현장에서는 ‘자살 생존자(suicide survivor)’라고 부른다. 자살하지 않고 애써 살아남았다는 뜻이다. 뭉크는 평생에 걸쳐서 가족들의 죽음을 경험하며 그와 유사한 환경에 끊임없이 노출됐다.

[병실에서의 죽음]은 뭉크의 누나 소피에가 죽은 지 약 20년 후에 그린 작품이다. 그는 이 그림에 시공간을 혼재함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명확히 했다. 누나는 1877년에 죽었지만,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1895년 현재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한 가족구성원의 죽음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남은 가족에게 계속 고통을 주며, 뭉크 가족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을 그는 분명히 이야기했다.


▎뭉크 [붉은 담쟁이], 1898
뭉크는 26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를, 32살이 되던 해에는 남동생을 잃었다. 가족 네 명을 잃은 상실감은 뭉크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가족 이외의 사람을 통해 사별의 상실감을 경험하는 사건이 터지고 만다. 뭉크가 사랑했던 여성 다그니 유을(Dagny Juel)이 불에 타 집에서 사망한 것이다. 그는 [붉은 담쟁이]라는 작품으로 불에 타 죽은 유을을 애도했다. 죽음은 그의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았고, 뭉크의 삶에서 불안의 그림자는 떠날 줄을 몰랐다.

뭉크는 후에 상류층 여성인 툴라 라르센(Tulla Larsen)를 만나게 된다. 라르센과 뭉크는 상당히 깊은 관계로 발전했고 뭉크의 그림은 날이 갈수록 깊이를 더했다. 이 시기는 뭉크 작품 세계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때이며 세계적으로 알려진 [절규]도 이때 그렸다. 라르센은 뭉크에게 끈질기게 결혼을 요구했지만 뭉크는 불안했던 가정의 트라우마로 결혼을 회피했다. 결혼을 해주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권총 자살로 협박하던 그녀는 제지하던 뭉크에게 총을 쏘았고 뭉크는 왼쪽 가운뎃손가락을 잃었다. ‘사랑마저 죽음을 가져올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사건이었다. [살인녀]는 라르센이 총을 쏘았던 날의 기억을 재구성해 그린 작품이다.

뭉크가 이러한 절망의 시간들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느 정도 지나가자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바라보려 노력했다.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기도 하고, 그림으로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도 했으며, 자신의 삶에 족쇄라고만 느껴왔던 가족의 죽음이 자신의 그림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결국 뭉크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기를 선택했고 1913년 오슬로대학에서 벽화를 그려달라는 의뢰가 들어왔을 때, 그는 회복의 희망을 담은 작품 [태양]을 그려냈다.

[태양]에서는 오색찬란한 밝은 태양빛이 그림 구석구석까지 빛을 전달하고 있다. 우울한 감정과 상처받은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여 많은 대중에게 공감을 얻었던 작가인 만큼, [태양]이 보여주는 긍정적인 희망의 빛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뭉크는 자신의 삶을 불안감 속에 던져둔 채 웅크리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걸어 나와 태양을 만나는 것을 선택했다. 뭉크의 [태양]이 대중에게 전하는 희망의 힘은 강력했다. 현재 노르웨이 화폐 1000크로네 지폐 앞면에는 뭉크의 얼굴이, 뒷면에는 그의 그림 [태양]이 실려 있다.

불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뭉크 [살인녀], 1906
뭉크는 [태양]을 기점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꿨다. 이미 벌어진 지난 일들에 대한 우울감, 현재의 신경쇠약에 대한 불만, 언젠가는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몰두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건강한 불안함을 가진 사람은 미래를 예측하고 좋지 않은 미래가 예상될 때 그것을 긍정적으로 수정해나가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불안 사고에 빠진 사람들은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서 불필요한 불안 덩어리를 키워나간다.

불안감을 증폭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감정은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꺼내 쓸 수 있다’는 전제 사고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히 틀렸다. 모든 인간에게 24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듯, 감정적 에너지도 매일 할당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라는 것이 비축되기도 하고 조금 더 낭비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감정적 에너지는 정해진 만큼만 사용할 수 있고 남은 에너지는 다음 날로 이월되지 않는다. 이것을 ‘감정적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고 한다. 이런 한정된 감정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과거 한탄하기, 현재 불평하기, 미래 걱정하기다. 이 중 ‘미래 걱정하기’는 오지 않은 미래의 사건들에 ‘만약에~’로 시작하는 문장을 머릿속으로 만들어가며 불안을 느끼는 방식이다. ‘내일 비가 오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들 때 우산을 미리 챙겨놓는 것은 건강한 방식이다. 그러나 아침에 떠오른 ‘내일 만약에 비가 많이 와서 운전하다가 미끄러져 죽으면 어쩌지?’와 같은 과도한 사고들이 하루 종일 정신을 지배하고 밤잠도 거의 자지 못한다면 이것은 과잉 불안이다. 뭉크가 어렸을 때부터 죽음을 접함으로써 ‘나도 갑자기 죽으면 어쩌지?’라는 불안 속에 살았던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증폭된 불안은 뭉크가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그의 삶에 침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뭉크는 [태양]을 기점으로 삶의 다른 부분을 보기 시작했다.

불안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성격 및 사회심리학지(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발표된 한 논문은 불안한 경향이 높은 청소년의 경우 그렇지 않은 청소년 또래보다 사고로 사망할 비율이 현저하게 낮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이 연구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청소년과 초기 성인기의 생존 비율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자해를 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높은 환자들의 실제 자살률은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낮다는 연구 결과 역시, 불안이 최악의 상황을 막아줄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불안의 예방 효과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상이 걸렸지만 불안한 감정은 더 많은 감염자와 확산을 막기 위한 적극적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민이 안일한 태도로 코로나를 대했다면 결과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지금의 시간이 그저 절망적이거나 암울한 시간으로만 인식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물론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사용하고 자가격리 대상자는 지침을 철저히 따르는 등 개인 건강관리에 유의해야 하고, 그 과정은 지루하고 불편할 수 있지만 이 과정을 통해 과잉 불안 상태가 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불안이 응집되면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불안해지고, 사회의 불안은 다시 개인의 불안을 강화하게 된다. 개인과 사회의 불안은 서로의 불안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뭉크 [태양], 1913
결론적으로 불안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부분도 분명 있다. 인류는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예측함으로써 불안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끼게 되었고, 불안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고 위험을 예방하며 지금까지 생존해왔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현재 자신의 불안 수준이 높다고 판단된다면, 불안의 긍정적 측면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생각을 바꿔볼 수도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비롯하여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자존감의 문제 등 다양한 원인이 불안감을 줄 때 그 자리에 웅크리기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분명 각자 자신만의 태양을 발견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 사랑, 가족, 대인관계, 돈 등 세상에 불안을 일으키는 대상은 너무 많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도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이 분명 존재한다. 뭉크가 불안 속에서 희망을 찾았듯이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 시간 속에서 절망만 바라보지 말고 힘든 시간들을 버텨나가야 할 것이다. 그 불안이 최종적으로 성장의 발판이 될지, 자기 파괴적 요소가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가천대학교 조소과 객원교수이자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이다. 현재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로,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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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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