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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바이오 히든 챔피언] 임유봉 플라즈맵 대표 

60개국 의료진이 쓰는 플라스마 멸균기 

코로나19 사태로 병원에서 멸균은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최근 카이스트 물리학 박사가 개발한 의료용 플라스마 멸균기도 세계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고압 증기로 한 시간 이상 걸렸던 수술 도구 멸균 시간도 7분 내외로 줄였다.

전 세계 의료용 멸균기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한국 스타트업 플라즈맵이 개발한, 플라스마(고온·고압에 의해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기체)를 응용한 의료기기 멸균기 ‘스터링크’가 그 주인공이다.

“고압 증기를 이용한 멸균기의 전 세계 시장점유율은 90%에 육박합니다. 미국 기업이 25년 전에 개발해 몇 번 개량을 거친 제품이죠. 대당 가격도 1억원을 호가하고, 공간 한쪽을 전부 차지할 정도로 부피도 큽니다. 의료기기가 점점 소형화되고 정밀해지면서 고압 증기를 견디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임유봉(39) 플라즈맵 대표가 한 말이다. 지난 5월 1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플라즈맵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스터링크는 세계 최초로 멸균 파우치 ‘스터팩’ 속 과산화수소를 플라스마 상태로 만들어 의료기기에 직분사해 멸균한다”며 “고무나 플라스틱, 정밀한 의료장비도 7분 만에 멸균·포장까지 할 수 있고, 가격도 10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고 덧붙였다. 임 대표가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에서 물리학 박사과정 주제였던 ‘플라스마’를 놓치지 않고 끌고 온 성과다. 세계 최초의 직분사 파우치 기술은 국내에서 43개, 미국·중국·유럽 등에선 5개 특허를 받았다.

시장 반응도 좋다. 2017년 7월에 출시한 멸균기 ‘스터링크’는 북미와 남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6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개발 초기부터 수출을 염두에 둔 임 대표의 전략이 한몫했다. 거의 모든 지역에서 요구하는 인증을 받았다.

임 대표는 “통상 의료기기 인증은 품질 시스템에 대한 QMS(Quality management system) 인증과 판매 제품을 인증하는 것으로 구분된다”며 “QMS의 경우 한국 GMP, 유럽 ISO 13485, 북미·일본의 MDSAP를 획득했고, 제품 인증의 경우 국내 식약처, 호주 TGA, 캐나다 Health Canada, 브라질의 ANVISA, 사우디의 SFDA, 대만 FDA 인증까지 받았다. 올해 하반기 미국 FDA 인증까지 받으면 전 세계 의료기기 인증은 다 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도 플라즈맵을 일찍이 알아봤다. 삼성벤처 투자, 바이오 쪽에 강한 엘비인베스트먼트 등 벤처캐피털 두 곳이 각각 50억원 정도 투자했고, 지난해 시리즈C 투자엔 KTB, 미래에셋벤처투자 등이 합류했다. 덕분에 지금까지 투자받은 금액만 260억원에 달한다. 임 대표에게 그간의 얘기를 더 들어봤다.


▎카이스트 물리학 박사인 임유봉 대표는 연구 주제였던 플라스마 기술로 멸균기 시장에 이어 2차 전지, 임플란트 시장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창업하게 된 계기는 뭔가.

박사과정 연구주제가 플라스마 살균기술이었다. 공부하던 중 음식물 플라스마 살균기술을 연구하던 서울대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한 적이 있다. 플라스마로 음식물을 살균해 저장·유통기한을 획기적으로 늘리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맛이 살짝 변했다. 그렇게 연구가 지지부진했는데, 멸균 시장을 공부하던 중 의료기기 분야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카이스트엔 다양한 창업 프로그램이 있었고, 카이스트 물리학과 실험실로부터 플라스마 기술도 공식적으로 이전받았다. 학교 선배 중엔 이미 창업해 성공한 분이 많아 사업을 시작하면 조언을 받을 수 있겠단 생각에 문부터 열었다.

정확히 멸균기는 어디에 쓰이나.

병원이 우선이다. 예전에 모 대학병원에서 세균 감염으로 신생아들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멸균은 병원에서 생명과 직결되는 ‘습관’적인 과정이다. 문제는 기존 제품은 너무 고가에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나날이 발전하는 의료기기가 쉽게 손상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멸균기 ‘스터링크’와 멸균 파우치 ‘스터팩’을 개발했다.

‘스터링크’와 ‘스터팩’의 원리는 뭔가.

소독할 의료기기가 담긴 멸균 파우치를 멸균기에 넣어 밀봉한다. 대략 과정은 이렇다. 스터링크에 과산화수소 캡슐이 탑재된 파우치를 넣는다. 그럼 스터링크가 파우치 바코드를 읽어 파우치 상태를 점검하고, 멸균·밀봉에 들어간다. 이 과정이 7분 정도다.

기존엔 일반 비닐 파우치에 촘촘한 구멍을 내고 여기로 멸균제를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는데 1시간 정도 걸렸다. 물론 2000년에 나온 제품은 13분 내로 줄이긴 했으나 섭씨 134도를 유지해야 한다. 결국 고온이다. 스터링크는 고속(7분), 저온(55도) 상태에서 멸균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물론 시간이 더 걸릴 뿐이지 일반 파우치도 쓸 수 있다.

플라스마 기술은 어떻게 활용되나.

플라스마가 뭔지 잠깐 설명하겠다. 모든 물체는 고체, 액체, 기체로 존재한다. 기체에 에너지를 가하면 만들어지는 플라스마 상태가 존재한다. 전자와 이온 분리돼 이온화 상태를 이루는 사전적 의미가 다소 어렵다면, 번개·오로나·네온사인·형광등 등을 생각하면 된다. 사실 의학계에선 플라스마를 활용한 의료기기의 살균과 수술용으로 사용되는 플라스마 나이프가 있다. 물리·화학적 반응이 동시에 일어나는 플라스마는 세포막을 효과적으로 파괴해 살균 효과를 보인다. 우린 과산화수소 자체를 플라스마 상태로 만들어 빨리 멸균·밀봉 상태로 만들었다.

이런 원리라면 단순히 멸균기에만 쓰이는 건 아니겠다.

맞다. 의료용뿐만 아니라 상업용, 농식품용 플라스마 처리 시스템도 개발했고, 관련된 원천기술도 보유 중이다. 특히 독점 개발한 소형 대기압 플라스마 발생 장비 ‘LJPS’는 2차 전지를 비롯해 일반 산업용 플라스마 처리 공정에 쓰인다. 대기압 상태에서 고밀도 플라스마를 발생시키는 LJPS는 정밀 표면 처리를 해야 하는 접착, 코팅, 세정 공정에 유용한 장비다. 반도체·2차 전지·디스플레이 생산 공정에 효과적이다.

치과 쪽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그렇다. 치과 분야에 빠르게 멸균해야 하는 장비가 꽤 많았다. 특히 중소 병원에서 사용하는 핸드피스, 교정용 플라이어, 버, 신경치료 파일, 임플란트 키트, 3D 프린팅 출력물 등 다양한 치과용 기구는 멸균 사이클이 짧아야 한다. 새로운 환자를 더 안전하고 빠르게 치료하기 위한 일환이다.

수출 외에 주목할 만한 해외 성과가 있나.

미국과 일본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올해 초부터 미국 3대 동물병원 체인인 패터슨컴퍼니와 거래를 시작했다. 미국 올랜도에서 열린 국제 수의학 콘퍼런스인 VMX에 참여해 인연을 맺게 됐다. 더불어 미국 내 치과, 안과 클리닉 등 수술 도구를 빠르게 멸균하고자 하는 곳들이 관심을 표하고 있다. 글로벌 치과 회사인 일본 GC코퍼레이션과도 200만 달러 규모 ODM(제조업자개발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1921년 설립된 이 회사는 일본 치과계를 꽉 잡고,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 기업이다. 올해부터 GC가 스터링크를 일본 치과의원에 공급한다. 더불어 임플란트 분야 진출도 계획 중이다.

임플란트 진출 얘기는 뭔가.

치과용 멸균기 수요가 꽤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플라스마 기술이 임플란트 골유착도를 높이는 데 쓰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사실 세계 1위 임플란트 기업 스트라우만이 임플란트 나사가 뼈와 잘 융합하도록 나사 표면을 까끌까끌하게 갈고 산화 처리해 표면적을 넓혔다고 들었다. 플라스마는 임플란트 나사를 진공 포장하는 동시에 표면 친수성(親水性·물 분자와 쉽게 결합하는 성질)을 높이는 표면 처리에도 활용할 수 있다. 기존엔 UV 광촉매 자외선을 조사해 친수성을 높이기도 했는데 플라스마 기술을 쓰면 잇몸뼈와 더 빨리 결합한다. 실제 제품 개발은 완료됐고, 출시를 준비 중이다.

힘든 점은 없었나.

많았다. 처음엔 기술만 보고 시작했다. 2015년엔 식품에서 의료분야로 영역을 넓히며 30억원을 투자받았지만, 법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기술이 물거품 되기도 했다. 더군다나 의료기기 제조업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인증마다 따라붙는 비용은 덤이다. 개발은 시작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기술 제조업에선 양산, 이관과정, 품질관리, 영업, 인증(변경 포함), 사후 관리 등 고려해야 할 과정이 많다.

스터링크는 그래도 괜찮지 않았나.

쉽지 않았다. 2017년 첫 모델을 50대 정도 팔았다. 정말 뭐라도 된 줄 알았다. 하지만 클레임이 쏟아졌다. 직원들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A/S를 하러 다녔고, 문제를 몰라 분해·조립을 반복하기 일쑤였다. 한번은 강원도 치과병원에 납품했는데 겨울이 되자 작동하지 않았다. 펌프가 얼어버렸기 때문이다. 드라이기로 녹이고 별짓 다 했다. 호주에 4대를 처음 수출했다가 두 번이나 반품을 받았는데 포장 불량으로 박살 난 경우였다. 물론 이후 신제품을 낼 때 예열과정을 추가했고, 포장은 더 꼼꼼하게 했다.

전 세계 멸균기 시장 규모(2017년 기준)는 약 56억 달러(약 7조원). 플라즈맵은 올해 매출 100억원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전체 시장 규모에 비해선 큰 액수는 아니지만, 보수적인 의료기기 시장에서 나름대로 선방하고 있다. 지난 3년간 플라즈맵은 연평균 약 200% 성장햇고, 수출은 2018년보다 약 150% 늘었다. 거래처는 첫 수출을 시작했던 2018년 10개국에서 현재는 60개국 이상으로 늘었다. 임유봉 플라즈맵 대표는 이렇게 평가했다.

“액수, 규모만 따진다면 글로벌 기업에 비해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하지만 정부와 학교 지원으로 탄생한 한국 스타트업이 세계 최초로 플라스마 멸균 시스템을 상용화해 해외에서 인정받았다는 게 의미 있다고 봅니다. 어떤 제조업도 완전하고 무결한 제품을 단번에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린 기술과 사용자, 더 나아가 시장과 동화되는 과정에서 체력을 길렀다고 생각합니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

202006호 (202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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