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모펀드 전문가 김병주(56) MBK파트너스 회장은 지난해 11월 새 펀드를 설립할 때만 해도 세계가 곧 팬데믹에 빠지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이 봉쇄 중이던 지난 5월 김 회장은 불과 6개월 만에 65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MBK의 다섯 번째이자 최대 규모인 펀드 조성을 마쳤다. 글로벌 경제가 완전히 뒤흔들린 상황에서도 조성에 성공한 이 펀드는 올해 현재까지 조성된 펀드 가운데 최대 규모다.이 성취를 바탕으로 김 회장은 아시아 기반 사모펀드 업체에 자금조달을 하며 역발상 투자에 나섰다. 맥킨지에 따르면 2년 연속 하락세인 부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팬데믹은 김 회장이 자신의 본래 목적 일부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 투자자들은 팬데믹과 관련된 경제위기가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리라는 김 회장의 이론을 믿었다. 김 회장은 뉴욕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자신의 콘도에서 진행한 동영상 인터뷰에서 “우리는 시장이 막 호기를 맞이한 현재 (아시아 기반 바이아웃펀드에) 동원할 수 있는 막대한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서울에 있는 MBK파트너스는 최근 펀드의 성공에 힘입어 총 220억 달러 자산을 중국, 일본, 한국 등에서 관리하며 바이아웃에 주력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자산 기준)의 사모펀드 업체로 발돋움했다. 김 회장에게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성공 경험이 있다. MBK파트너스는 2005년 설립된 이래 투자자로부터 받은 돈을 평균 두 배 이상 불렸으며 4개 펀드에서 연 환산 18%에 달하는 내부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성공 덕분에 개인 자산도 대폭 증가했다. 새 펀드에 힘입어 김 회장은 현재 추정 순자산 19억 달러로 한국 부자 순위에서 11계단 상승한 12위에 안착했다.MBK는 중국에서 차량 대수 기준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차량 대여 업체 e하이,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 재팬, 한국의 할인 유통 체인 홈플러스 등 동북아시아의 소비자 중심 기업에 주력한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기본적으로 소비자가 접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현금흐름이 강하거나, 잘 알려진 브랜드가 있거나, 시장 입지가 탄탄하거나, 부동산 자산을 보유한 기업을 찾는다. 44개 기업으로 이루어진 MBK의 현재 포트폴리오는 총 440억 달러 매출을 자랑하며 동북아시아 전역에 37만 명이 넘는 직원을 두고 있다. 2019년 MBK는 아시아 최대 엑시트 5건 가운데 3건을 따내며 35억 달러를 긁어모았다.2020년은 글로벌 경제에 악몽 같은 한 해지만 사명을 자신의 영어 이름인 마이클 병주 김(Michael ByungJu Kim)에서 따온 김 회장에게는 삶의 전환점이 될 듯하다. 전체 자산의 3분의 1에 달하는 65억 달러를 막 손에 쥔 김 회장의 회사는 올해 설립 15주년을 맞이했다. 또 김 회장은 쓰는 데 25년이 걸렸다고 하는 자신의 첫 책도 출간했다. 현재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불황은 자신이 가장 성공적인 거래 몇 건을 가까스로 성사했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고 김 회장은 말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와 1997~1999년의 아시아 금융위기 때를 말하는 것이다. 김 회장은 5년 만에 응한 긴 인터뷰에서 “이번 위기는 특정 사건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라며 “사건이 해결되거나 통제되기만 해도 훨씬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김 회장은 지난 5월 자신의 소설 데뷔작 『매물(Offerings)』 출간을 기념해 뉴욕에 다녀왔다. 김 회장은 “이 책은 픽션이지만 내 삶을 바탕으로 가공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부유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다. 학자에서 보험회사 임원이 된 김 회장의 아버지는 김 회장이 12살 때 미국으로 보냈다. “그때 나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 했다”며 “아버지는 내가 개방된 사회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를 원했다. 1970년대 한국은 그럴 환경이 아니었다”고 돌이 켰다. 한때 기자가 될까 생각했던 김 회장은 펜실베이니아 해버퍼드대에서 영어영문학 학위를 취득했다. 김 회장은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다가 여자와 스포츠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아버지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1990년에 더욱 실용적인 학위를 취득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MBA였다.김 회장은 골드만삭스의 인수합병 부서에서 첫 일자리를 얻었다. 처음에는 뉴욕에서 일하다가 홍콩으로 자리를 옮겼다. 31세에 한국으로 돌아간 김 회장은 살로몬 스미스 바니 아시아의 최고운영책임자가 되어 1998년 40억 달러 규모 국채 발행을 주도했다. 이는 1998년 한국이 국가적 파산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됐다. 1999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는 사모펀드 업체 칼라일 그룹의 아시아 지부장으로 이직했다. 작고한 김 회장의 장인인 박태준 포스코그룹 회장이 고문으로 있었던 회사였다.당시 37세였던 김 회장은 위기에서 재빨리 새로운 기회를 거머쥐었다. 한국에서 자산 기준 6번째 규모 대출 기관인 한미은행을 잠재적인 악성 부채 수십억 달러와 함께 인수한 것이다. 이를 위해 여러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비은행권 외국인 투자자가 ‘건강한’ 은행(한미은행은 그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생 가능한 은행으로 분류되어 있었다)의 지분 4% 이상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한 규칙도 그중 하나였다. 13개월에 걸친 복잡하고 치열한 협상 끝에 김 회장은 JP모간의 사모펀드 자회사인 코세어 등이 포함된 투자자 그룹과 함께 지분 37%를 사들이는 데 성공했다. 4년 뒤 한미은행은 시티그룹에 27억 달러에 매각됐다. 그룹이 지불한 금액의 두 배가 넘는 액수였다. 그 사이 김 회장은 2002년 포브스아시아의 전신인 포브스글로벌의 표지에 오르며 인지도를 높였다.
여러 차례 위기를 통해 성장칼라일에서 6년 동안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낸 김 회장은 자신의 사모펀드 회사를 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전 동료 직원 다섯 명을 데리고 MBK파트너스의 첫 펀드를 설립해 싱가포르 국부 펀드 테마섹, 캐나다 공공연금투자위원회 등 블루칩 투자자들로부터 16억 달러를 유치했다.“연금 펀드의 95%는 처음 설립된 펀드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당시 캐나다 연금 펀드의 총괄 이사였던 짐 피트먼이 말했다. 피트먼에 따르면 당시 MBK가 두 투자자를 유치한 것은 거래 전문가로서 김 회장이 보유했던 탄탄한 평판을 보여주었다. 김 회장은 MBK를 글로벌 투자자와 아시아의 기회를 연결하는 다리라고 즐겨 묘사하며 거래 성사에 필요한 자신의 현지 지식을 강조했다. 김 회장은 서구식 바이아웃 전략을 복잡한 아시아 기업에 적용한다는 발상을 바탕으로 회사를 세웠다. 이 접근법으로 자신의 기관투자자 인맥이 거액의 수표를 쓰고 다음 펀드에 또 참여하게 만든 것이다. 적대적 인수를 피하고 경영진과 파트너십을 구축하며 현지 CEO를 채용했다. 김 회장은 “우리는 뉴욕에 다시 보고해야 하는 그 어떤 업체보다도 빠르게 성장했다”고 말했다.김 회장이 MBK의 성공 신화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MBK는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김 회장은 이제 스마트한 투자를 하는 동시에 팬데믹으로 피해를 입은 포트폴리오 기업의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 김 회장은 최근 펀드의 40%를 한국에, 중국과 일본에 각각 30%를 투입하고 싶어 하지만 코로나19의 제2차 유행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글로벌 조사 업체 프레킨의 이파이캄 상무는 “두 번째, 세 번째 유행이 벌어진다면 지갑을 닫고 꼭 필요한 데만 돈을 써야 할 것”이라며 “하지만 피해를 겪은 파이프라인이 성장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김 회장은 여러 차례 위기를 겪고 성장했다. 한미은행 거래뿐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 직후에 설립된 2차 펀드도 투자 금액의 3배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였다. 2009년 골드만삭스와 함께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을 14억 달러에 인수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투자자들은 방문자 수가 저조했던 이 놀이공원에 해리포터 테마의 뮤지컬쇼를 들여와 사람이 대거 몰리게 만들었다. 미국 미디어 대기업 컴캐스트가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을 2015년과 2017년 두 번에 걸쳐 부채 포함 총 38억 달러를 주고 인수했다. 결과적으로 MBK 측 투자자들은 14억 달러 수익을 올렸다.MBK는 2013년 한국 ING생명을 16억 달러에 인수하며 입지를 굳혔다. MBK가 보험 사업을 운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됐지만, 4년 뒤 ING생명이 상장될 때 기업가치는 24억 달러였다. 사모펀드가 전부 소유한 기업이 한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것은 처음이었다. 2015년 김 회장은 한국의 최대 바이아웃 거래를 성사했다. 경쟁 입찰사 KKR과 칼라일을 물리치고 테스코의 한국 자회사 홈플러스를 61억 달러에 인수한 것이다.이처럼 큰 성공을 거두고도 김 회장은 늘 자만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김 회장은 “항상 생각한다. 내가 성공을 거둔 요인에는 재능도, 노력도 있었지만, 운도 있었다”며 “이를 인지해야 현실감각을 잃지 않고 겸손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