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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의 계약 

 

에릭 베이커는 자신이 공동 창업한 티켓 재판매 플랫폼 스텁허브에서 해고됐다. 이후 복수를 위해 40억 달러를 조달한 그는 스텁허브를 다시 인수했다. 그러나 몇 주 후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회사는 초토화됐다.
2019년 추수감사절 전날, 에릭 베이커(Eric Baker, 47)는 이미 축하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 그는 “라이브 이벤트를 즐기기에 이보다 좋은 때도 없다”고 말했다.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자신에게 수익이 돌아올 걸 아는 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이틀 전 베이커는 일생 최대의 계약을 체결했다. 그가 보유한 온라인 티켓 마켓플레이스 비아고고(Viagogo)가 이베이에 40억5000만 달러를 주고 몸집이 더 큰 경쟁사 스텁허브(StubHub)를인수한 것이다. 베이커 입장에서는 승리를 얻고 복수를 완성한 이야기였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시절 스텁허브를 공동 창업한 그는 회사에서 파트너에게 쫓겨난 이후, 해외에서 은밀히 비아고고를 론칭했다.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스텁허브 인수 발표는 그에게 수모를 되갚는 기회였다. 그는 “내 두 작품을 하나로 합치는 건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계약은 3개월 후 2월 13일에 완전히 마무리됐다. 지난해 이벤트 티켓 수백만 장을 팔아 치운 베이커의 회사는 40억 달러 중 20억 달러는 차입금, 나머지 20억 달러는 현금으로 지불하면서 연 매출 총 15억 달러를 올리는 글로벌 거대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새로운 회사의 지분 23%를 거머쥔 베이커는 억만장자가 되기 직전이었다.

코로나19로 매출 90% 급락

그런데 팬데믹이 시작됐다.

아시아에서 퍼져가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유럽으로 옮겨 갔고, 이후 북미 지역으로도 번지면서 스포츠 경기장이 문을 닫았다. 아티스트들은 투어를 취소했다. 브로드웨이 공연장들도 휴업에 들어갔다. 애널리스트 추산에 따르면, 스텁허브와 비아고고 매출은 90% 넘게 날아갔다. 결국 스텁허브는 3월 말 미국 직원 3분의 2 정도를 일시 해고했다. 무디스는 스텁허브와 비아고고의 기업 전망을 ‘안정’에서 ‘부정적’ 등급으로 강등했다.

“업계 전체가 문을 닫기 4주 전 40억 달러를 쏟아붓는 계약을 하다니, 대단한 불운이 아닐 수 없다”고 티켓 구매 시장을 조사하는 컨설턴트 에릭 풀러는 말했다. 물론, 업계 특성상 관리 재고가 전혀 없어서 간접비 지출이 제한되긴 하지만, 구제금융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스텁허브는 곧 파산 신청을 할 수도 있다고 풀러는 생각한다. (이에 대해 스텁허브는 대답을 거절했다. 대변인은 4월 스포츠비즈니스저널 인터뷰에서 “파산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상황은 악화일로다. 영국 정부가 스텁허브 인수에 대해 반독점 조사를 시작했고, 이 때문에 비아고고와 스텁허브는 적어도 6월까지 분리 영업을 해야 한다. 비아고고는 일상적 조사에 지나지 않는다며 전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인수 후 사업 구조를 재편하려던 베이커는 반독점 조사로 인해 자기가 소유한 회사 스텁허브 경영진과 코로나 위기 극복을 의논할 수조차 없는 신세가 됐다.

성공하려면 어느 정도의 운과 타이밍이 따라야 하는데 베이커의 경우 다 안 좋지 않았다. (그는 거듭되는 후속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인수 성공 여부를 수개월 만에 판단할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이 건만큼은 이미 절대적 판결이 내려졌다. 베이커의 스텁허브 인수는 역대 최악의 계약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티켓 재판매 사업을 코너로 몰아붙여 포획하고 즐거워했는데, 며칠 후 팬데믹으로 업계 자체가 붕괴됐다. 정말 기막힌 타이밍 아닌가.

하버드, 스탠퍼드, 맥킨지, 베인… 베이커의 이력서를 보면 ‘부자 되는 법’의 정통 궤도를 보는 것만 같다. 화려한 궤적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의 성장 배경에 힘입은 바 크다. 그의 외조부는 부동산 사업가였고, 친조부는 장갑차 운영 보안업체 베이커 인더스트리를 경영했다. 이 회사를 이어받은 그의 아버지 말콤은 1977년 1억1800만 달러(현재 화폐가치 기준 5억 달러)에 회사를 매각했다.

베이커는 “무언가 새로운 걸 만들고, 주도적으로 이끌고,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면서 느끼는 흥분감이 제동력입니다”라며 “그 동력을 따라 인생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하버드에 입학해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다들 가는 성공 가도를 따라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맥킨지로 갔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지루해졌다. “저와 잘 안 맞았습니다.” 2012년 USC 면접에서 그가 했던 말이다. “IQ가 엄청나게 높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생각만큼 돈을 버는 감각이 뛰어나진 않았어요.”

그는 맥킨지에서 2년을 보내고 1997년 사모투자사 베인캐피털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베인캐피털을 이끌던 사람은 미트 롬니였다. 베이커는 “조직에서 저는 분명 밑단에 있었죠”라고 말했지만, “베인캐피털에서 보낸 2년 동안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걸 배웠습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온라인 티켓을 사고파는 마켓플레이스도 이때 생각해냈다. 여자친구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라이언킹]을 보고 싶어 했는데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서 그는 티켓을 가진 사람한테 돈을 주고 사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런 사람을 어디서 찾지? 길모퉁이에서 있는 사람한테 물어봐야 하나?’ 막막했죠. 결국 온라인 암표상을 찾아서 웃돈을 많이 주고 표를 구했는데, 별로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잠시 뒷주머니에 넣어둔 사업 아이디어를 다시 꺼내든 때는 이듬해 가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해서다. 그곳에서 그는 제프 플러(Jeff Fluhr)를 만났다. 턱이 다부져 보이는 플러는 사모 투자자 집안에서 태어나 투자 감각을 이어받은 1학년 학생이었다. 둘은 매년 열리는 스탠퍼드 비즈니스 기획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베이커의 아이디어를 콘셉트로 사업계획을 세웠다. 수십 개 기획서가 제출됐지만, 최종 라운드에는 6개 팀만 진출했다. 둘의 아이디어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결선 당일, 그들은 대회장에 가지 않았다. 플러는 “잠재 경쟁자들에게 사업계획을 노출하지 않고 조용히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스텁허브 이후에 플러는 벤처투자사 크래프트 벤처스도 공동 창업했다. 크래프트 벤처스가 투자한 회사 중에는 하우즈, 트윌리오, 와비 파커스 등이 있다.

사업을 함께 시작한 둘은 운영에 참여할지를 결정할 때 다른 길을 선택했다. 플러는 학교를 중퇴하고 소규모 팀(팀원 중 한 명인 제프 로슨은 이후 트윌리오를 창업해 억만장자가 됐다)을 만들어 둘이 기획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리스크는 높았다. 닷컴 버블이 막 터졌기 때문이다. 플러는 “물결을 거슬러 헤엄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베이커는 스탠퍼드에 남았다. 그러나 지분은 계속 보유하면서 옆에서 의견을 제시했다. “처음에 그는 회사 경영에 전적으로 임하려 하지 않았다”고 스텁허브 초창기 직원들은 말했다. 스텁허브 사이트는 2000년 10월 베이커 없이 론칭했다.

베이커가 다시 회사에 합류한 때는 2001년 6월이다. 당시 최대주주이자 CEO였던 플러가 사업계획을 상당 부분 다듬은 후다. 중개인이나 정기 티켓 판매자들이 보유 티켓을 사이트에 올려서 거래가 이루어지면, 스텁 허브가 구매자와 판매자 양측으로부터 금액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받는 모델이었다. 현재 평균 수수료율은 23%다.

2004년이 되자 사업은 궤도에 올라 부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창업자 간 대립은 심해졌다. 이후 포춘 기사에 따르면, 베이커는 메이저 스포츠 리그와의 제휴에 집중하자는 입장이었던 반면, 플러는 제휴 없이 스텁허브를 독립된 기업으로 성장시키려 했다. 지난 11월, 베이커는 “파트너끼리 대립해서 갈라서는 일이 처음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그냥 회사 구조상 제프의 지분이 나보다 좀 더 많았습니다”라고 말했다. 플러와 이사회는 베이커에게 떠나달라고 요청했다. “그냥 가라고 하더군요. ‘해고됐으니 떠나라’고요.”

스텝허브 vs 비아고고

베이커는 1년간 세계 여행이라도 해볼까 하다가 더 좋은 생각이 났다. 스텁허브를 떠날 때 회사에서 경업금지약정(noncompete agreement)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대 주주가 설마 경쟁 기업을 만들겠어’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베이커는 당시를 떠올렸다. 단단히 틀린 생각이었다. 세계 여행의 첫 구간인 런던 여행을 계획하던 베이커는 회사를 떠난 지 1년도 안 되어 스텁허브가 유럽에 진출하려면 아직 몇 년은 남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선수를 치기로 결심했다.

베이커는 2006년 8월 유럽에서 서비스를 오픈했다. 오픈 행사에는 언제나처럼 연한 블루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지 않은 차림으로 나타났다. 1년간 남몰래 사업을 기획한 그는 티켓팅 서비스 비아고고(Viagogo)를 개시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의 양옆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 풋볼 클럽 중역들이 파트너로서 자리를 함께했다. “(스텁허브는) 저희가 기자회견을 할 때까지도 제가 무슨 일을 벌이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베이커가 포브스 인터뷰에서 말했다. “충격을 받은 것 같았죠.”

그러나 복수의 짜릿함을 즐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듬해 이베이가 스텁허브를 3억1000만 달러에 인수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를 보면, 베이커는 플러가 회사를 너무 일찍 매각해서 나간다며 인수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사회에서는 찬성 표가 더 많이 나왔다. 베이커는 지분만큼 돈을 받고 유럽 시장에 집중해야 했다.

스텁허브와 유사한 사업 모델을 채택한 비아고고는 슈테피 그라프, 앤드리 애거시, LVMH 억만장자 설립자 베르나르 아르노처럼 기라성 같은 유명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확보해 화려한 투자자 명단을 완성했다. 또다시 회사에서 쫓겨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베이커는 자신이 온전한 통제권을 가질 수 있도록 복수 의결권 주를 확보했다. 그는 2012년 인터뷰에서 “푸틴과 러시아 정치국 모델을 참고했다”고 장난스레 말했다. 방만한 경영으로 물의를 일으킨 위워크 창업자 애덤 뉴먼과 우버 창업자 트래비스 칼라닉 때문에 독재 경영과 관련된 농담이 재미없어지기 전의 일이다. 베이커는 비아고고가 스텁허브 초기보다 빠르게 성장했다고 주장한다. 2011년 비아고고 플랫폼에서는 연간 수억 달러에 이르는 거래금이 처리됐고, 2019년에는 그 금액이 수십억 달러로 늘어나서 수익이 커졌다. 포브스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비아고고의 총수익률은 25%다. 티켓마스터, 비비드시트(VividSeats), 이벤트브라이트(Eventbrite) 시트긱(SeatGeek), 그리고 스텁허브와 좁은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달성한 수익률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스텁허브의 수익률은 이보다 조금 낮다.

백신 개발 후에야 정상 회복

그러나 화려함 뒤에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언론은 비난 보도를 쏟아냈다. 아티스트들은 티켓값이 너무 비싸게 설정됐다며 탐탁지 않아 했고, 고객들은 공지 없이 부과되는 수수료와 위조 티켓에 관해 불만을 쏟아냈다. 급기야 2018년에는 마고 제임스 당시 디지털창조산업 장관이 BBC 라디오에 출연해 폭탄선언을 했다. “비아고고에서 사지 마세요. 그쪽은 최악입니다.”

“논란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베이커가 11월 포브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시장을 뒤엎으려면 우리가 가진 새로움에 대해 소통하고 교육해야 합니다. … 그 부문에서 우리에겐 개선의 여지가 있었죠. 그래서 교육에 집중했습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보자. 스텁허브의 모회사가 된 이베이는 나름의 문제로 부담이 심했다. 근 1년간 전투적 억만장자 폴 싱어와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이베이에 붙어서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라고 다그쳤기 때문이다. 스텁허브도 비핵심 자산 중 하나였다. 엘리엇은 싸움에서 진 적이 거의 없다. 싱어는 채권 지급을 두고 아르헨티나 정부와 15년간 싸움을 벌인 끝에 2016년 24억 달러를 받아낸 기록도 있다. 어쨌든 이제 와 생각해보면 싱어에게 닦달을 당한 건 이베이에게 큰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반면에 베이커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계약 완료 2주 전인 6월 30일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에 팬데믹을 선언할 때조차도 그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었다. 복수의 기회는 그냥 지나치기 너무 달콤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과거 스탠퍼드에서 중퇴하지 않고 스텁허브 경영에 임하는 어정쩡한 포지션을 취하다가 지분을 적게 받아 회사에서 쫓겨난 쓰디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망설이지 않고 베팅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결국 계약을 밀어붙였다. 필요한 돈은 대출을 받거나 회사에 가장 많이 투자한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벤처투자사)와 매드론 캐피털 파트너스(월마트 월튼 가문이 출자한 사모투자사)로부터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해 충당했다. (두 회사 모두 기사 내용에 대한 인터뷰 요청에 답을 하지 않았다.) 인수가 끝난 후 베이커는 CNBC에 나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바이러스가) 아시아 쪽에서만 전파되고 있습니다.”

세상이 하루아침에 뒤집어진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베이커의 자신감은 무모하기까지 하다. 마돈나 콘서트, 마치 매드니스, 나스카 자동차 경주,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음악 축제, 브로드웨이 공연, 뮌헨 옥토버페스트, 윔블던 같은 이벤트들이 쓰나미에 밀려가듯 줄줄이 취소됐다.

환불 요구도 함께 밀려들었다. 미국에 있는 스텁허브는 법적으로 반드시 해줘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환불을 하지 않고, 대신 원래 티켓 가격의 120%에 상당하는 상품권 교환을 제안했다. 보통의 환불 규정과 정반대로 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환불해줄 돈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년간 스텁허브는 계약을 처리할 때 이벤트까지 몇 개월이 남았더라도 판매자에게 매출의 일정 부분을 미리 지불하는 ‘플로트(float)’ 시스템으로 운영됐다. 코로나바이러스 강타 후 판매자 수천 명에게 미리 지불했던 돈을 동시에 회수해 구매자에게 돌려주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추가 투자금 없이는 환불을 해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라이브 행사 컨설턴트 에릭 풀러가 말했다. 결국 SNS에서 불만이 쏟아졌고 이는 향후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4월에는 위스콘신에 사는 한 남성이 스텁허브를 상대로 배상금 500만 달러를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회사는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한 달 벌어 한 달 살거나 3개월 버틸 자금밖에 없는 업체 상당수는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1982년부터 1997년까지 티켓마스터를 경영했던 프레드 로젠이 말했다. 그러나 “라이브 행사가 다시 시작되는 순간, 제2의 스텁허브가 만들어질 겁니다. 티켓 재판매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사업 모델이거든요. 비바람이 몰아칠 때 얼마나 견딜 수 있느냐가 관건이죠.”

아직까지 베이커의 회사들은 상환 능력이 있다. 3월에 무디스는 이들 회사의 보유 현금이 4억 달러가 넘는다고 보고했다. 적어도 몇 개월은 버틸 수 있는 금액이다. 베이커가 확보한 투자자들도 자금력이 좋다. 이들이 미래가 불확실한 회사에 돈을 쏟아붓는 위험을 감수해주기만 한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스텁허브와 비아고고는 가장 나중에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백신이 개발된 후에야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라이브 행사와 수요 과잉일 때만 거래가 발생하는 티켓 재판매 산업에 매출을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복되려면 수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뒤집어졌는지 생각하면 놀랍기만 하다. “우리 회사는 아주 바람직한 흐름 두 개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습니다.” 베이커가 인수를 진행하기 전에 했던 말이다. “하나는 세상이 작아지면서 이루어지는 ‘세계화’이고, 나머지 하나는 ‘라이브 행사’입니다.” 그 후 베이커를 뒤에서 밀어주던 순풍은 곧바로 역풍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그는 자기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단지 그가 원하던 결말이 아닐 뿐이다.

- NOAH KIRSCH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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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호 (2020.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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