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선율의 천사, 엔니오 모리코네 

7월 6일, 엔니오 모리코네가 타계했다. 영화음악의 대가인 이탈리아 작곡가는 선율의 대가였다. 서양음악사는 뛰어난 선율 장인이었던 여러 이탈리아인을 기억한다.

▎생전의 모리코네. / 사진:엔리오모리코네공식웹사이트(enniomorricone.org)
선율(melody), 화음(chord), 리듬(rhythm)이 음악의 3요소라고 음악 수업 시간에 배웠을 것이다. 음악에 이 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요소들 중 어느 하나 혹은 두 개가 없는 음악도 많다. 사물놀이에는 선율도, 화음도 없다. 리듬, 음색(timbre), 강약(dynamics)으로 음악을 끌고 나간다. 우선 다양한 리듬이 있으며, 사물(四物, 북, 장구, 꽹과리, 징)이 내는 서로 다른 음색에는 대조가 있다. 네 악기 중 어떤 악기가 소리를 크게 낼 때 다른 악기는 작게 내어 크게 내는 악기를 부각하거나, 다 같이 큰 소리를 내며 사람들의 신명을 돋우거나, 다 같이 잦아들어 흥분을 가라앉힌다. 이러한 강약의 반복이 사물놀이에서 큰 역할을 한다.

사물놀이는 서민이 즐겼던 민속음악이다. 많은 아프리카 민속음악은 사물놀이와 유사하다. 지배집단이 사용했거나 향유했던 종묘제례악, 대취타, 시조, 가사 같은 전통음악은 선율과 (밋밋한) 리듬은 있지만 화음이 없다. 서양음악에서도 이런 경우가 많다. 12세기 후반에 다성 음악(polyphony)이 등장하기 전에는 화음이 없었으며, 근대에 와서 독일과 프랑스의 몇몇 작곡가는 선율 없는 음악을 선보였다. 음악의 3요소 이론은 완전히 틀렸다. 위에서 소개한 것 모두가 음악의 요소이며, 음악에 따라, 음악이 만들어진 시대와 사회에 따라 이 요소들 중 어떤 것들은 사용되고 어떤 것들은 사용되지 않았다.

오늘날 대중음악의 몇몇 장르는 선율이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퍼트렸다. 요즘 유행인 트로트와 1970, 80, 90년대의 대표적 대중가요 장르였던 발라드에는 공통점이 있다. ‘같이 따라 부르기 적합한’ 선율이 이들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다. 이들 음악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요소들도 역할을 하지만 선율의 중요성은 거의 절대적이다. 윤심덕, 이난영, 이미자, 나훈아, 송창식, 트윈폴리오, 조용필, 주현미, 이문세, 해바라기, 신승훈, 김광석 등의 음악을 기억할 때 우리는 그 선율들을 기억한다.

트로트와 발라드의 선율 중심주의는 모차르트나 베르디, 푸치니, 그리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선율 중심주의와 맞닿아 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사용되어 유명해진 모차르트의 아리아 ‘편지의 2중창’이 있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에 나오는 이 곡은 백작부인과 그 하녀가 같이 부르는 예쁘고 우아한 선율의 음악이다.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의 합창’은 힘찬 선율의 합창이다. 베르디와 푸치니는 클래식 음악 최고의 선율 작가다. 이들보다 유명하며, 이들보다 훌륭한 선율을 만든 클래식 작곡가는 없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그는 다른 면에서 훌륭하며, 선율의 시장에서는 이 이탈리아인들에게 못 미친다. 독일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음악 중에 사람들이 기억하며 노래할 수 있는 선율이 있는가? ‘G선상의 아리아’ 같은 몇몇 곡이 있긴 하나 소수이며, 그의 걸작 대부분은 그에 맞추어 노래하기 어려운 기악적 동기(motive)가 정교하게 얽히고설킨 대위법적 다성 음악이다.

모차르트나 베르디, 푸치니, 그리고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의 선율은 다른 모든 음악적 요소를 압도하며, 듣는 이들의 청취 지각에서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일종의 위계를 구성한다. 선율이 정점에 놓여 있고, 나머지 요소는 그것을 보좌하고 치장한다. 선율을 은유적으로 설명하자면 마음을 녹이고(melting) 누그러뜨리는(melt) 부드럽고 풍부한(mellow) 달콤한 벌꿀(mel) 같은 송가(ode)다. 송가(頌歌)는 영웅의 공덕을 기리는 서정시 혹은 서정적 노래다. 영웅은 고대 그리스의 인물들이었고, 송가에서부터 발달한 선율 개념은 서양적 산물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종묘제례악 등에도 선율적 요소는 있다.

실험적 대중음악에서 선율은 중요하지 않아


▎은막의 스타 로미 슈나이더가 출연한 [라 칼리파]의 포스터. 이 영화의 음악에서도 오보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브리엘의 오보에’가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음악의 선율과 ‘가브리엘의 오보에’의 선율은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이 가사를 붙여 노래가 됐다.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넬라 판타지아’가 되었고, [라 칼리파]의 선율은 ‘라 칼리파’라는 노래로 발표됐다. [라 칼리파]는 한국에서는 개봉되지 않았었다. 다소 좌파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리라.
랩을 생각해보자. 여기에 선율이 있는가. 한국의 초기 랩, 이를테면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에는 선율 부분이 있다. ‘난 알아요’는 전반부에서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 버려야 한다는 그 사실을 그 이유를…”이라는 가사를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여기에는 선율이 없다. 하지만 강렬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고조된 후 접하게 되는 후반부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에서는 파워풀한 선율이 제시된다. 최근의 많은 실험적·공격적 랩에서는 선율적 요소를 찾기 어렵다. 대중적인 BTS는 ‘대취타’에서 온건하면서 이국적인 랩과 함께 미미한 선율의 세계를 잠깐씩 암시한다. 힙합이나 프로그레시브 등의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대중음악에도 선율은 없거나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슈베르트를 생각해보자. 음악사는 그를 ‘가곡의 왕’으로 부른다. 가곡이라면 노래이고, 노래라면 선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선율은 아마도 ‘보리수’일 것이다.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 중 다섯 번째 곡인 이 곡의 선율은 부드럽고 우아한 오스트리아의 초기 낭만주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총 24곡의 모음인 [겨울 나그네]에서 선율은 ‘보리수’와 함께 11번째 곡인 ‘봄의 꿈’에서만 부각된다. 게다가, 이 두 노래의 중간 부분에는 마치 레치타티보와 같은 격정적 외침이 있다. 레치타티보는 오페라에서 선율로 불리는 아리아, 즉 노래와 노래의 중간에 등장인물들이 대화하듯이 부르는 음악을 말한다. 레치타티보는 음악과 대화의 중간이라는 점에서 랩과 성격이 유사하다. 슈베르트는 600곡이 넘는 가곡을 작곡했으나, 선율다운 노래는 이 중 10곡이 채 안 된다. 슈베르트를 계승하는 독일 가곡의 대가들이 있다. 브람스와 휴고 볼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이 있는데, 이들의 노래들도 선율성은 약하다. 애초에 슈베르트가 가곡의 왕으로 불린 이유가 있다. 처음으로 가곡을 많이 작곡해 독립적 음악 장르로 만들었다는 공헌을 역사가들이 고려한 것이다. 슈베르트 노래의 예술성은 선율보다는 그것과 같이 협주하는 -반주가 아니다- 피아노 파트의 역동성, 복잡성, 극적·묘사적 특성에 있다. 역사가들은 이 점도 고려했다.

독자들은 한 가지 사실을 파악했을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이 선율을 잘 만들어낸다는 점. 브람스는 독일인이며, 슈베르트, 휴고 볼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오스트리아인이다. 이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선율을 잘 만들어내지 못하거나, 선율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것 같다. 모차르트? 그는 오스트리아인이지만 그의 음악, 특히 많은 오페라는 이탈리아 스타일이었다. 모차르트는 음악적으로는 -적어도 그의 작품 생활의 초기와 중기에는- 이탈리아인이었다. [피가로의 결혼] 등의 대본은 이탈리아어로 쓰였다.

선율을 만들지 않았던 대표적인 독일 작곡가는 리하르트 바그너다. 그의 오페라 중에서 높은 수준의 선율성이 있는 음악은 [로엔그린]에 나오는 ‘결혼행진곡’과 [탄호이저]에 나오는 ‘순례자의 합창’ 정도일 것이다. 프랑스인들도 비슷하다. 연주시간이 55분이나 되는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에서 이 작곡가가 쓴 선율은 하나뿐이다. 베를리오즈는 다른 작품에서도 사람들 기억에 남을 만한 선율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의 주된 음악성은 화려한 관현악법(orchestration), 즉 여러 악기의 음색을 화려하게 배열, 결합, 대조하는 묘기에 있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이탈리아 선율 장인들의 풍토에서 자라났다. 영화 [석양의 무법자], [시네마 천국], [Once upon a time in America], [La califfa](칼리파 부인)의 OST 등은 [미션]에 나오는 ‘가브리엘의 오보에’와 함께 인간이 만든 최고의, 불멸의 선율이다. [대부]의 영화음악을 맡았던 니노 로타 역시 이탈리아인이다. 이 영화의 OST 역시 잘 기억된다.

또 다른 최고의 영화음악가 한스 짐머를 생각해보자. [덩케르크], [베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의 영화음악을 쓴 이 작곡가는 독일인이다. 이 음악들은 웅장하고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특징인데, 기억에 남는 선율이 거의 없다. 음악의 나라 독일은 클래식에서든 영화음악에서든 ‘선율 왕’은 배출하지 못했다. 베토벤은 독일인 중에서는 최고의 선율 제작자였다. 그가 악성(樂聖)인 이유는 음악의 여러 측면에서 비교적 골고루 좋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전위적이며 실험적인 음악 때문에 대중에게 외면을 받았지만, 동시에 당대의 대중이 열광적으로 좋아했던, 그 시대의 대중적 음악도 많이 썼다.

※ 김진호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008호 (2020.07.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