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보틱스는 3D 라이다를 활용한 인공지능 기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전 세계 120여 개에 달하는 라이다 제조사들이 설립 3년 차인 이 스타트업에 제품 샘플을 보내 기술 검증을 거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3D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스타트업이 한국에 있다. 바로 서울로보틱스다. 기업가치를 미리 알아본 엔지니어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연봉을 낮춰 자리를 옮기는 가운데 BMW, 볼보 등이 이들의 기술력을 인정하고 손잡기 시작했다. 내년부터 양산되는 자율주행 레벨3 차량에 라이다 도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대당 2000만~3000만원을 호가하던 라이다는 자율주행, 로봇, 각종 도시 인프라 재정비 등에 적용되면서 40만~50만원 선까지 가격이 하락해 본격적인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올해 서른 살인 이한빈 대표는 “(서울로 보틱스가) 몇십조원대 기업으로 성잘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면서 “내년부터 향후 10년간 급격히 성장할 라이다 시장을 지켜봐달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세계가 주목한 라이다 유망주
▎서울 서초구 교대곱창거리에 있는 서울로보틱스에서 만난 이한빈 대표. 사무실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엔지니어들이 분주하게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화상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 사진:김경빈 기자 |
|
서울로보틱스를 간단히 소개해달라라이다 센서가 수집한 데이터를 프로세싱 하는 소프트웨어 전문 회사다. 전 세계에 라이다 관련 기업이 120여 곳 정도 되는데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만 다루는 곳은 우리밖에 없다.
서울로보틱스의 경쟁력은 무엇인가.우리가 만드는 소프트웨어가 전 세계 120여 개 라이다 회사의 센서와 대부분 호환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고객이 어떤 라이다를 채택하든 우리 소프트웨어를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자 경쟁력이다.
전 세계에 라이다 센서 제조사가 120곳이나 되는데 소프트웨어를 취급하는 곳은 왜 서울로보틱스밖에 없는가.라이다가 등장한 지 아직 5년도 안 됐다. 라이다 제조사들이 2016년과 2017년에 앞다투어 생기면서 그때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우리는 하드웨어가 나오기 전에 소프트웨어부터 준비한 것이다.
소프트웨어 기술 노하우의 깊이가 남다를 것 같다.지금은 중국, 이스라엘 등 신생 라이다 회사들이 테스트해달라고 자사 제품 샘플을 우리 회사로 보낸다. 이제는 우리 측에 검증을 받으러 오기 때문에 국내에 한 대밖에 없는 라이다가 많다. 웨이모가 만든 라이다도 국내에 두 대밖에 없는데 한 대를 우리가 갖고 있다. 우리 소프트웨어로 빨리 테스트해보고 상용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앞으로 라이다 소프트웨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 계속 생겨날 텐데.라이다 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에 직접 나선 곳도 있고, 최근에 우리 사업 모델을 모방한 회사도 2곳 더 생겼다. 우리처럼 소프트웨어만 해도 사업이 되겠구나 판단한 것이다. 우리가 가장 일찍 시작한 편이라 아직 경쟁 상대라 부를 만한 곳은 없다. 하드웨어는 하드웨어 회사고, 소프트웨어는 소프트웨어 회사다. 컴퓨터는 IBM이 만들어도 소프트웨어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를 쓰듯이 자율주행 시장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테슬라도 자체적으로 라이다 소프트웨어를 만들지 않나.테슬라는 애플처럼 자체 에코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5G까지 다 한다. 중요한 건 엔지니어들의 역량인데 그런 인재들은 웨이모 같은 자율주행차 기업에 있다. 웨이모, 테슬라 등에서 일하던 엔지니어들이 우리의 가능성을 보고 넘어와 같이 일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할 당시, 미국에서 열린 자율주행기술 부문 코딩 경진대회에 참가해 2000팀 중 10위를 차지한 것을 계기로 창업을 결심했다고 들었다. 대회 참가 후에 얻은 인사이트가 있다면. 우리의 핵심 기술은 3D 컴퓨터 비전이다. 경진대회에 참가해 알게 된 것은 ‘3D 데이터 영상을 처리할 수 있는 회사가 전 세계에 하나도 없구나. 그럼 우리가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기술을 갖고 있는 자율주행차 제조사 몇 곳이 있었지만, 대회를 치르면서 ‘우리가 더 잘할 수 있겠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카메라 기반 이미지 프로세싱 시장이 커진 것처럼, 3D 기반 이미징 프로세싱도 갈수록 커질 것이고, 그중에서 제일 필요한 니즈는 자율주행, 로봇에서 나올 것이라는 마켓 인사이트를 그때 얻었다.
기계공학을 전공했는데 이 특정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우연이었다. 나를 포함한 공동창업자 4명이 기계공학과, 수학과 출신인데 모두 학교나 직장에서 3D 데이터를 처리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자율주행 경진대회 전에 인공지능(AI)을 배우게 됐고, 경진대회 결과를 보니 그 어느 팀보다도 우리가 3D와 AI를 가장 잘 접목한 결과물을 만들었다.
공동창업자들과의 만남은.대학 재학 중에 페이스북에서 AI와 자율주행을 공부하는 커뮤니티를 운영했다. 2016년부터 2017년 즈음 온라인상에서 AI와 관련된 오픈소스가 많이 풀리기 시작했다. 당시 전 세계 다양한 사람이 커뮤니티에 모였고, 자율주행 경진대회에 참가하는 데 10명 정도가 지원했다. 그중에 정작 일한 사람은 우리 넷이었다. 그래서 4명이 공동창업자가 됐다.
왜 한국에서 창업했나.실리콘밸리가 인재풀이 넓은 건 사실이지만 정작 뛰어난 인재들은 대기업이 월급을 10배씩 부르면서 데려간다. 실리콘밸리에서 B급, C급 엔지니어를 고용할 바엔 한국에서 A급 엔지니어를 확보하는 게 더 경쟁력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서울로보틱스를 창업한 2017년은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이 활발해질 때다.맞다. 당시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이 활발해졌고, 미국에 오래 살면서 점차 아시아와 중국이 뜨는 해가 되는 걸 느꼈다. 굳이 실리콘밸리에 있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액셀러레이터도 많고, 자금과 인재 확보 면에서 서울이 실리콘밸리보다 못할 게 없겠다고 판단했다.
최초의 시드머니는 어떻게 마련했나.홍콩에 있는 AI 액셀러레이터가 먼저 관심을 갖고 적극 나서주셨다. 이후 지난 4월 65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KB인베스트먼트를 중심으로 산업은행, 퓨처플레이, 액세스벤처스, 아르테시안 벤처파트너스 등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2017년 8월에 창업하고 2018년 8월에 첫 투자를 받았는데.전역하고 1년 동안 파트타임으로 온라인 코딩 강사로 일하면서 투자자들을 찾아 서울로보틱스의 비즈니스 모델을 피칭하고 다녔다. 첫 투자를 받아 각국에 흩어져 있던 공동창업자 4명을 서울에 모으는 데까지 딱 1년이 걸렸다.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는 아직 2년밖에 안 됐다.
사무실을 교대 곱창거리에 마련한 이유는.지난 4월에 여기로 옮겼다. 인원이 15명에서 30여 명으로 늘어서 사무실을 알아보던 차에 천장이 높은 곳을 찾다가 마침 이곳을 알게 됐다. 들어와보니 내가 아는 어떤 실리콘밸리 회사보다 더 실리콘밸리 사무실 느낌이 나서 좋았다. 이 안에만 있으면 교대인지 실리콘밸리인지 모를 분위기다.(웃음)
내년부터 라이다의 시대 열린다
▎서울로보틱스가 지난해 12월 테스트한 자율주행차량 데모 시연 영상. 차량 왼쪽 윗부분과 아랫 부분에 라이다가 1개씩 탑재됐다. / 사진:서울로보틱스 유튜브 채널 |
|
내년부터 자율주행 레벨 3 차량 양산이 시작된다. 레벨 2에서 레벨 3로 넘어가면서 라이다 센서 수요가 대폭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데 시장 성장 규모는 어느 정도로 예상하나.이 속도라면 라이다도 카메라만큼 보편화될 것 같다. 레이더가 거의 모든 차량에 탑재된 것처럼, 라이다도 5년 뒤에는 지금 레이더만큼 상용화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10년 뒤에는 엄청 저렴해져서 모든 차량에 쓰일 것이다. 현재 전 세계 모든 라이다티어 1 회사와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
카메라와 레이더가 탑재된 레벨 2 자율주행 차량이 도로 한가운데에 멈춰 있는 물체를 인식하지 못해 충돌사고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았다. 레벨 3 차량부터 라이다가 탑재되면 이런 사고는 없어지나.레이더는 동적인 물체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센서다. 1900년대에 움직이는 배나 비행기를 잡으려고 만든 센서라서 움직이는 물체만 인식한다. 라이다는 레이저를 쏴서 거리를 측정하는데, 형태가 바로 반사되어 장애물을 인식할 수 있다. 테슬라 차량이 갓길에 서 있는 경찰차를 인식하지 못해서 충돌하는 사고가 많았는데, 라이다가 적용되면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다.
레벨 2에서 레벨 3로 넘어가면 운전자들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운전자가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더 많아진다. 현재 레벨 2가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레벨 3는 출퇴근 시 자율주행 모드로 해놓고 주차는 운전자가 직접 하는 정도까지 발전할 것이다. 레벨 4, 5는 주차까지 자율주행으로 가능해진다. 사람이 대리운전해주는 것처럼 차량이 똑같이 한다고 보면 된다.
완전 자율주행 차량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레벨 4부터인가.그렇다. 레벨 4부터 완전 자율주행이라고 보면 된다. 테슬라가 애매하게 레벨 3를 모방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레벨 2라고 봐야 한다. 중요한 건 주행의 몇 퍼센트를 자동화할 수 있냐는 점이다. 레벨 2가 주행의 50~60% 수준이라면 레벨 3는 거의 90% 정도 자율주행이 가능해진다. 레벨 4는 99.9%, 레벨 5는 100%, 즉 무조건 사람이 운전하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완성차 업체들과 최종 계약 성사까지 어떤 단계를 거치나.여러 차례 PoC(Proof of Concept, 기술 검증)를 거쳐 최종 안전 점검까지 마치는데 2~3년 정도 소요된다. 우리는 벤츠와 PoC 작업을 시작했고, 나머지 자동차 업체와는 2차 소프트웨어 테스트로 넘어가는 중이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차량이 양산되기까지는 빠르면 3년, 늦으면 5년 정도 걸린다.
자율주행 이외에 라이다가 적용되는 산업은 무엇인가.우리 포트폴리오는 모빌리티(자율주행), 스마트시티(아웃도어용), 스마트 인프라스트럭처(인도어용)가 3:3:3 정도 된다. 향후 5년간 자율주행 시장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스마트시티와 스마트 인프라스트럭처 분야에서 매출의 70~80%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스마트시티와 스마트 인프라스트럭처는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인가.현재 고속도로에 달려 있는 카메라와 레이더가 잡지 못하는 것들을 라이다로 감지할 수 있다. 이미 미국 주정부에 공급하고 있고, 앞으로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이다. 우리는 3D 데이터를 컴퓨터로 프로세싱 하는 작업을 전문으로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고객의 수요는 전 세계적으로 너무 많은데 수요를 감당할 만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은.코로나19 확산 이후 10배 정도 바빠졌다.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이동 인구가 줄어든 지금 미국, 영국, 독일 등 각국 정부가 사회기반시설들을 재정비해 업데이트하고 있다. 아직 엔지니어가 너무 부족해서 프로젝트를 최소한으로만 진행하고 있는데, 시장 수요는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투자 계획은.아직 충분한 규모로 투자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투자 유치에 나설 계획이다. 최근 수년 새 미국에서 한국으로 투자가 활발해지고 있어 한국에 있으면서도 충분히 투자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한국은 아직까지 투자 방식이 보수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성장 가능성을 제대로 평가해 줄 해외 투자자를 찾아 나설 예정이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회사 수익이 날 것으로 보이는데.내년부터 라이다 상용화 러시가 시작되면 매출 단위가 한 자릿수에서 세 자릿수까지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유럽 지사도 세웠고, 내년부터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나에게 영감을 주는 외부 자극이 있다면.대부분은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인 것 같다. 센서의 역사, 기업의 역사, 국가의 역사, 게임의 역사 등 다양한 측면에서 흥망성쇠 사이클을 훑어보면서 우리 회사가 전체 역사의 흐름 안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계속 찾으려고 노력해왔다. 그 고민의 결과, 개인적으로는 정말 우리 기술이 문제없이 개발되고 자금이 적기에 유입되면 최소 몇 십조원대 회사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시장에 빠르게 진입했고 이미 포지셔닝이 잘되어 있고,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있기 때문에 이제 회사의 성장 여부는 다 내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라이다 업계에서 BMW, 볼보, 벤츠를 레퍼런스로 가진 곳은 우리밖에 없다. 즉, 모든 카드가 준비된 상황이다. 라이다 역사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어떤 흥망성쇠의 그림을 그릴지는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닮고 싶은 기업이 있다면.회사 운영 면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확실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아이템으로 누구보다 빨리 시장에 뛰어들어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브랜딩의 귀재였다. 한국 회사가 가장 못하는 게 브랜딩과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닮고 싶다. 어떤 회사든 기술력과 브랜딩, 스토리텔링이 잘 어우러지면 성공할 수 있다.
서울로보틱스만의 스토리는 무엇인가.우리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모든 라이다와 호환되는 소프트웨어. 이 짧고 강력한 한마디가 BMW와 볼보뿐 아니라 실리콘밸리 인재들도 공감하게 된 메시지였다. 라이다 제품 하나를 만드는 것보단 다양한 라이다에 호환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싶다는 게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서울로 보틱스에 합류한 이유다. 이 메시지 덕분에 라이다 업계에서 서울로보틱스를 들어보지 못한 회사가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어떤 기업이 되고 싶나.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롤 모델이 되고 싶다. 전 세계 어느 시장에서나 통하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기업에 목매지 않는 경쟁력을 갖춘 회사가 되려 한다. 한국의 근로자 90% 이상이 중소기업에서 일하는데 우리 같은 기업이 많이 나와야 한국이 좀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김민수 기자 kim.minsu2@joins.com·사진 김경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