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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무역이 바꾼 세계사(11) 칭기즈칸은 잔인한 야만인인가? 

 

칭기즈칸의 실제 모습을 그린 초상화는 한 점도 존재하지 않는다. 칭기즈칸은 다른 역사적인 인물들과 달리 자신의 모습을 그리거나 조각하거나 동전에 새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죽고 50년이 지나서야 유라시아 여기저기서 칭기즈칸의 남겨진 이미지를 바탕으로 상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13세기 초 몽골제국은 이미 통합된 유라시아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알렉산더, 시저, 나폴레옹 같은 정복자들은 죽은 후 수백 년이 흐르면 공과가 서로 비교된다. 이 중 칭기즈칸은 유독 야만인, 피에 굶주린 미개인, 파괴를 즐기는 무자비한 정복자의 전형이 됐다. 같은 편 카안울루스(원나라)와 칸국들에서 그려진 수많은 칭기즈칸 초상화는 후대 그의 위대함을 기리기 위한 상상화들이다. 중국에서는 강인한 몽골 장군보다는 비탄에 사로잡힌 중국의 현자 모습으로 그렸고 페르시아에서는 칭기즈칸을 투르크족 술탄처럼 그려놓았다. 유럽인은 칭기즈칸을 사납고 잔인하고 추한 야만인으로 묘사했다. 유럽이 세계의 패권을 쥐고 유럽인 중심의 세계사가 기록되면서 칭기즈칸은 역사상 가장 저평가되고 왜곡되게 평가된 인물이 됐다. 서양인들은 칭기즈칸이 죽은 지 80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칭기즈칸 하면 잔인하고 교활하고 무자비한 독재자를 떠올리는 것 같다. 인터넷에서 칭기즈칸을 검색해서 나온 미국, 유럽의 영화와 음악은 대부분 칭기즈칸을 무자비하고 잔인한 야만인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몽골비사』,『집사』와 같은 역사책에 기록된 칭기즈칸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할 줄 알고, 합의를 통해 조직을 통합하고, 법치로 몽골제국의 시스템을 만들고, 최첨단 정보시스템을 기반으로 뛰어난 전략을 세우는 불세출의 리더이자 전략가였다.

정복 속도 빨라 두려움의 대상이 된 칭기즈칸


▎칭기즈칸을 형상화한 동상.
세계의 중심이 된 유럽 문명은 동쪽 문명의 대표 주자인 칭기즈칸의 업적을 지워버리고 야만성만 부각했던 것이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볼테르는 희곡『중국의 고아』에서 칭기즈칸을 “오만하게… 왕들의 목을 짓밟은… 파괴적인 압제자”로 묘사했다. 19세기 유럽의 의사들은 우월한 백인종 어머니가 지진아를 낳는 이유를 설명할 때, 지진아의 얼굴 특징을 보면 아이의 조상 가운데 누군가가 몽골 전사에게 강간을 당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240년간 킵차크 칸국의 지배를 받은 러시아는 몽골족에게 지배당해 러시아의 발전이 지체되었고 서유럽에 비해 후진국가가 되었다는 문제의식을 ‘타타르의 멍에’라고 불렀다. ‘타타르의 멍에’를 치욕으로 생각하는 러시아는 칭기즈칸을 지옥에서 기어 나온 대마왕으로 묘사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폄하하고 흔적을 지웠다. 러시아가 서구의 과학기술이나 일본의 군사력을 따라가지 못한 것은 칭기즈칸이 그들에게 씌운 끔찍한 타타르의 멍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페르시아는 이웃 나라들보다 뒤처진 것은 몽골제국이 관개 체계를 파괴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중동에 비해 경제적, 문화적, 기술적으로 열세였던 유럽이 중동을 추월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몽골제국의 공격으로 인해 중동지방이 받은 타격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중국이 일본과 유럽보다 뒤처진 것은 몽골과 만주의 군주들에게 착취와 억압을 당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 정책에 저항하지 못한 것은 무굴 체제의 탐욕 때문이라고 했다. 20세기 아랍 정치인들은 몽골제국이 아랍의 훌륭한 도서관을 태우고 도시를 짓밟지만 않았더라면 무슬림이 미국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발명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칭기즈칸 시대에 몽골 군대의 행동은 다른 문명의 군대와 비교해서 특별히 잔인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이 공포를 자아낸 것은 특별히 잔혹해서가 아니라, 정복 속도가 매우 빠르고 능률적이었으며 부자나 권력자의 목숨을 경멸했기 때문이다. 구소련 시절까지만 해도 몽골에서는 칭기즈칸을 찬사하지 못했다. 몽골이 민주화되면서 비로소 칭기즈칸이 몽골의 국부가 된 것이다. 몽골 사람들의 칭기즈칸 사랑은 각별하다. 칭기즈칸이라는 이름을 아무 데나 쓰지 못한다. 칭기즈칸 공항, 칭기즈칸 호텔, 칭기즈칸 보드카 등 ‘최고’일 때만 칭기즈칸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몽골제국이 시작한 지구촌 시대와 유럽의 르네상스


▎몽골 국립박물관 2층 올라가는 계단에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칭기즈칸 초상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티무르 왕 무덤의 비석 뒤에 보이는 검은 옥(세계 최대의 흑옥이라는 설이 있음)이 티무르의 묘비석이며 앞에 보이는 훨씬 더 큰 묘비석은 티무르의 스승의 것이다. 학문을 숭상하는 이슬람문화를 느낄 수 있다. 티무르의 관에는 “누구라도 이 관을 연 자에게는 전쟁의 재앙이 닥치게 될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1941년 6월 20일 소련군이 티무르의 관을 열었다. 그리고 이틀 뒤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고 소련은 전대미문의 대재앙을 겪었다.

티무르도 서구에서는 ‘절름발이 티무르’로 불리면서 살육자나 문명 파괴자로 여겨진다. 하지만 티무르 제국은 몽골제국에 이어 중앙아시아 전역을 통일한 대제국이며, 인류 문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티무르 제국은 정치적으로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을 계승하고 종족적으로 투르크인, 문화적으로는 페르시아, 종교적으로는 이슬람을 표방한 진정한 다문화 공존 국가였다. 능력 위주의 인재 발탁으로 제국이 운영됐으며, 학문 숭상 정책을 펼쳐 학자가 최고 대우를 받았다. 조선의 세종시대 급성장한 천문역법과 과학기기가 티무르 제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사료에서도 확인된다. 티무르 제국은 동쪽의 명나라, 서쪽의 비잔틴제국, 오스만투르크제국의 문명을 받아들여 15세기 세계 최고 수준의 문명과 과학기술을 이루고 이를 세계 각지에 전파했다.

5세기부터 10세기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던 소그드 상인들은 돌궐과 군사·경제 동맹체를 만들어 이집트에서 한반도까지 유라시아 구석구석에서 장사를 하면서 느슨한 유라시아 통합을 이루었다. 아프리카 이집트에서 동아시아의 끝 한반도까지 전근대적인 세계 체제의 초기 단계를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의 교환 체제로 통합된 유라시아 네트워크를 만든 것은 13세기 초의 몽골제국이었다. 유럽을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의 경제 중심지는 몽골제국의 상업 네트워크에 들어갔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16세기 유럽 근대 체제가 최초의 세계 체제라는 기존의 시각이 철저히 유럽 중심적 사관이 만들어 낸 오류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 13세기에 한반도-중국-중동-유럽을 잇는 몽골제국의 세계 체제가 작동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유럽의 근대 체제가 손쉽게 재구성될 수 있었다. 또 역사적으로도 16세기까지 세계무역의 중심지는 여전히 아시아였다. 아시아에서 생산되는 도자기, 비단, 향료 없이는 세계무역의 교환 체제가 작동할 수 없었다.

변방이었던 유럽을 부흥으로 이끈 르네상스가 아랍 세계가 잘 간직해두었던 그리스·로마 문명을 부활했다는 서구의 해석에도 근본적인 의심을 해야 한다. 문명이란 것은 보릿자루 옮기듯이 필요하면 가져다 쓸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다. 서구 문명의 원천으로 여기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성과들이 아랍에 잘 보존된 것은 사실이다. 로마제국의 붕괴 이후 문명의 빛이 스러져갈 때 플라톤이나 갈레노스 등의 고전 저작들이 이슬람권에 들어가 그곳에서 보존되었다가 후대에 재발견되어 유럽으로 역수입됐다. 흔히 유럽의 르네상스를 언급하며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그러한 설명은 마치 고대 그리스·로마의 지식이 이슬람권에서 원래 상태 그대로 보존됐다가 유럽이 되찾아 온 것처럼 들린다.

오히려 큰 틀에서는 르네상스가 이슬람 문명을 배워서 자기화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르네상스 때 유럽 사람들이 아랍에서 가져간 것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고전 그대로가 아니라 당시 세계 최고의 이슬람 문명에서 전 지구적 교류를 통해 발전한 철학, 과학, 예술 등 모든 지적 결과물이었다. 이슬람문화 전문가인 이희수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서유럽 부흥 이끈 몽골제국

“중세를 1000년의 암흑 시기라고 하는데, 이후 갑자기 르네상스가 등장합니다. 16세기 갈릴레이가 지구는 둥글다고 얘기해 파문당했어요. 배를 타고 수평선 쪽으로 가다 보면 폭포로 떨어져서 지옥의 심연으로 간다고 믿었던 유럽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가 등장하고, 지금 봐도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인체, 의학, 측량 기술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거든요. 이건 문화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유럽의 르네상스를 가능케 했던 지적인 빙산의 하부 구조가 분명히 있었다는 얘기예요. 그 상당 역할을 이슬람 과학이 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보다 앞선 13세기 초 몽골제국은 유럽의 귀족 기사들을 학살하고 유럽의 군사력을 무력화했지만, 유럽은 중국이나 무슬림 국가들과 비교할 때 빈곤한 것에 실망해서 굳이 도시를 정복하려 하지도, 나라를 약탈하거나 제국에 편입하려 하지도 않고 말머리를 돌려 떠났다. 몽골군이 유럽을 털었을 때 가장 값진 약탈물은 헝가리 왕의 천막에 불과했다. 결국 유럽은 몽골이 세계를 정복할 때 고통은 제일 적게 겪었으면서도, 무역, 기술이전 등 모든 혜택을 입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폴로 가문이나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같은 상인들은 몽골 칸과 유럽의 교황이나 왕 사이에 교환한 사절을 통한 접촉과 무역의 이익을 모두 누릴 수 있었다. 몽골제국의 칸국(원나라), 훌레구 울루스와 우호관계였던 제노바와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상인과 비잔틴 상인이 참여하면서 몽골제국의 공급망이 지중해까지 확대됐다. 중동권에 비해 문화적, 기술적, 경제적으로 명백히 열세였던 서유럽권이 중동을 따라잡고, 추월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몽골제국의 공격으로 인해 중동 지방이 받은 타격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 김정웅 대표는…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약 30년간 40여 개국 수백만 마일을 날아다니며 지구촌 구석구석에 수십억 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 2000년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의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 수상, 2018년 9월 Forbes Asia 200대 유망 기업에 서플러스글로벌이 선정됐다. 2015년부터 매년 실크로드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지난 5000여 년간 실크로드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흥망성쇠와 인류 무역사를 공부하며, 인류 역사의 추동력을 위대한 영웅과 황제, 선지자들보다는 장사꾼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다.

202011호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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