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9)] 고난과 시련에 지지 않는 힘 

 

‘팔자가 사납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계속해서 매 순간이 도전이고, 또 원하는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들을 뜻하는 문장이다. 어떤 이에게는 행운이 항상 함께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다가오는 불행을 피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맞닥뜨리며 살아가기도 한다.

▎칼로,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 1931
미술치료 과정에 ‘인생그래프’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오래된 기억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를 하나의 선으로 놓고, 연대기 순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건들을 체크해나가는 것이다. 그때의 감정이 플러스 감정이었다면 위쪽에, 마이너스 감정이었다면 아래에 체크하여 인생의 굴곡을 쭉 연결해보는 프로그램이다. 현재까지 자신에게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들을 되짚어보고, 그것이 왜 자신에게 중요한 사건인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되짚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 굴곡도 확인해 볼 수 있다.

멕시코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는 인생의 마이너스와 플러스에서 크나큰 굴곡을 보인 작가이다. 어떤 사람들이었다면 인생의 끈을 놓아버릴 수 있는 정도의 고난과 시련들에 지지 않고 자신을 믿고 생애 마지막까지 달렸던 그녀를 소개한다.

첫 번째 시련, 교통사고


▎칼로, [헨리포드 병원], 1932
1925년, 멕시코의 명문 국립예비학교에 다니던 18세 소녀 프리다 칼로는 남자친구와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도중 버스가 전차와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쇄골, 갈비뼈, 척추가 부러졌고, 골반은 세 조각이 났다. 철근이 골반을 뚫고 질을 관통했고, 오른쪽 다리는 11조각이 나고 발은 으스러졌다. 의사는 ‘다시 걸을 수 있냐’는 부모의 질문에 살 수 있을지가 걱정이라는 대답을 했다.

그녀가 의식을 회복하고 손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녀의 부모는 딸이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다. 그녀의 부모는 병실 천장에 거울을 설치해서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길 수 있게 해주었다. 그녀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또 재능도 있었다. 매일 밤낮으로 해가 뜨고 지는 것만 보고 있던 무료한 병실 생활에서, 자신이 불행한 상황이라는 것을 잊고 아픔에서 잠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 됐다.

사진작가였던 칼로의 아버지는 자신의 카메라 장비를 팔아가면서까지 그녀의 치료에 전념했고, 가족에게 짐이 되고 있지만 언젠가 ‘꿋꿋한 불구자’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그녀 역시 치료에 전념했다. 퇴원 후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며 계속 그림을 그리던 그녀는 지팡이에 의존하여 걷다가, 나중에는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됐다. 죽을 고비를 넘긴 그녀였기에 남은 삶은 그녀에게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녀가 처음 그리기 시작한 대상은 자신과 가족들이었다. 평소에는 한 사람을 열심히 관찰할 일이 없었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그녀는 세심히 관찰해야 했다. 자화상을 그리면서는 자신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자아를 만났다. 미술은 그녀에게 굉장한 힘을 주었다.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신념을 불어넣게 된 것이다.

그림은 그녀에게 삶의 희망만 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을 가지고 당대 멕시코 미술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에게 찾아가 ‘나의 그림을 평가해달라’고 요청했다. 2층에서 작업 중이던 그는 그녀에게 ‘올라오라’고 말했지만 계단을 오르기에는 다리가 불편했던 그녀는 ‘내려오라’고 외쳤다. 당돌했던 첫 만남 이후 리베라는 그에게서 그림에 대해 ‘독특하고, 훌륭하고, 빼어나다’며 재능을 인정받게 되고, 리베라는 그녀를 다양한 예술가의 사교 모임에 동행하며 인맥을 넓히게 해주었다. 그녀는 리베라의 작품 속에서 모델로 활동하기도 하고, 그와 예술적 교류를 하면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리베라는 진보주의자였고, 그녀 역시 진보적인 여성이었다.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에서는 과거에 소아마비를 앓았고, 몸이 약해 왜소한 그녀와 큰 덩치의 리베라가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는 처음에 그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20살이 넘는 나이 차, 2번의 이혼 경력, 무신론자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병원 치료비 등 여러 가지 지출이 많았던 그녀의 집에는 많은 빚이 있었고, 이미 성공한 작가였던 리베라는 그녀 집의 빚을 모두 청산해주고 결혼했다. 존경하는 선배이자 멘토와의 결혼, 그녀 앞에는 장밋빛 나날들만 펼쳐질 줄 알았다.

두 번째 시련, 디에고 리베라


▎칼로, 칼로, [헨리포드 병원], 1932 [짧은 머리의 자화상], 1940
그러나 그녀가 생각했던 행복한 시간만이 펼쳐지지는 않았다. 리베라는 그의 두 번째 부인을 자신들의 2층집에 살도록 했다. 두 번째 부인이었던 과다루페 마린(Guadlupe Marin)은 칼로에게 ‘디에고가 좋아하던 음식의 레시피를 알려주겠다’며 그녀의 주방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처음에 칼로는 자신이 마린과 가까워질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리베라와의 결혼 생활은 둘을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리베라는 “나는 나의 모델들과 늘 성관계를 해. 마치 악수와도 같은 것이니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어”라고 칼로에게 설명했다. 처음부터 나이나 사회적 지위 등 평등한 관계가 아니었기에 칼로는 사랑하는 남자가 하는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러나 기형적인 이러한 관계는 칼로에게 스트레스를 주었고, 두 번째 부인 마린과 함께 리베라를 흉보며 둘은 친해졌다. 같이 쇼핑도 가고, 칼로는 마린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리베라는 친구로서는 최고인데, 남편으로서는 최악이다.” 이 문장은 칼로와 마린이 가장 강력하게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성공한 작가였던 리베라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제안 받았다. 그녀는 그를 따라 미국에 함께 가는 선택을 했는데, 환경이 바뀌면 둘의 관계가 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은 리베라에게 열광했다.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그의 그림을 보려고 현대미술관 앞에 줄을 섰다. 리베라는 대중의 사랑을 좋아했고 미국이 주는 자극을 사랑했다. 수많은 여성이 그에게 다가갔고, 그는 거부하지 않았다. 리베라의 빛이 강한 만큼 칼로의 그늘은 짙어져만 갔다.

계속되는 고통과 상처


▎칼로, [희망의 나무, 굳세어라], 1946
둘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칼로는 임신을 시도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강렬했던 교통사고 휴유증 때문에 그녀의 몸은 임신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컸다. 그렇게 세 차례 유산을 경험한 후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큰 상실감을 가지게 된 그녀는 병원에서 그녀가 겪은 감정을 그림 [헨리 포드 병원]에 담았다. 이 그림에서는 교통사고로 다쳤던 척추에 있는 철골, 리베라와의 사랑이 변치 않기를 염원하는 보라색 난, 건강하지 못한 골반, 복잡한 자신의 몸에 대한 생각, 잃어버린 아이, 시간이 너무나도 느리게 가는 병원에서의 시간들을 붉은 실로 자신과 연결해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시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남편과 모델들의 성관계를 어렵게 받아들이며 견디던 시간 속에서 그녀는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으며 상황을 합리화하고 있었으나, 남편이 자신의 여동생 크리스티나와 깊은 관계라는 사실은 끝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더는 집에 있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칼로는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듯 짧게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녀는 리베라가 자신의 긴 머리를 사랑하는 것을 알지만 짧게 자르기로 결심했다. 리베라에게 상처받은 자신의 마음과 시간들을 잘라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 바닥에 머리카락을 흩뿌려 놓는 묘사를 했다. 더는 리베라가 사랑한 칼로는 없다는, 그녀의 상징적인 행동이었다.

리베라에게 받은 상처는 그녀의 작품[단지 몇 번 찔렀을 뿐]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당시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재판 중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칼로 찔러 죽인 사건이 있었다. 판사가 그에게 ‘왜 여자 친구를 찔러 죽였는가’라고 묻자 그는 “판사님! 그냥 몇 번 찔렀을 뿐이에요. 스무 번도 안 된다고요!”라고 답한 사건이었다. 그녀는 그 사건이 마치 자신을 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리베라는 그냥 계속해서 그녀를 아무 생각 없이 찔러댔을 뿐이었다. 그림 속 여성의 얼굴은 칼로 자신이었고, 남성의 얼굴에는 리베라의 얼굴이 묘사되어 있는데, 남성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다. 마치 “너에게 상처 줄 의도는 없었어. 왜 혼자 상처받고 그래?”라고 말하는 듯하다.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상처 줄 생각이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또 그래서 미안함도 크게 없다. 리베라는 그녀에게 큰 상처를 계속해서 주면서도 그녀에게 끊임없이 돌아오고 싶어 했다. 칼로의 동생 크리스티나와 리베라의 불륜으로 인해 두 사람은 이혼했지만, 결국 칼로는 돌아오고 싶어 하는 리베라를 받아들여 재혼을 했다. 리베라는 단 한 번도 칼로만을 위한 남자인 적은 없었지만, 그녀는 그에게 마치 신앙심과도 같은 사랑을 보여주었다.

칼로의 몸은 계속해서 악화되어갔다.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몇 차례 척추 수술을 받았지만 실패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내야 했던 칼로는 하루에 서너 시간 동안 앉아서 붓질에 매달렸다. 그것은 자신과 다른 이들의 잘못을 지우고 용서하는 붓질이었다.

그녀가 사망하기 얼마 전 그린 작품 [희망의 나무, 굳세어라]에는 그녀의 인생을 관조하는 듯 칼로 두 명이 그려져 있다. 늘 아팠고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강인하게 시련들을 극복하고 이겨냈던 자신에 대한 칭찬의 그림이었다. 그림 왼쪽에는 태양이 떠 있는데, 누워 있는 칼로는 교통사고로 인해, 리베라와의 사랑의 고통으로 인한 비극의 희생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달이 떠 있는 오른쪽 하늘 아래 있는 칼로는 자신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스스로의 보호자이자 영웅적 생존자처럼 표현했다. 그런 그녀가 들고 있는 깃발에는 ‘희망의 나무, 굳세어라’라는 말이 적혀 있다. 다리를 절단한 칼로에게 심경을 물었을 때 칼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에게는 날아다닐 날개가 있는데 왜 다리가 필요하겠어요?” 칼로는 자신이 적은 마지막 일기에 ‘나와의 외출이 즐거웠기를, 그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이라는 문구를 남겼다. 고난과 시련이 가득했던 그녀의 인생이었지만 그녀는 아직도 즐거운 외출 중이고, 돌아오지 않고 있다.

각자 자신의 인생을 되짚어보았을 때, 분명 절망적인 순간도 있을 것이고 희망에 부푼 시간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이 모든 것이 쌓여서 지금의 자신을 지탱해나가는 거룩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인생그래프를 그려보았을 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마이너스를 기록한 사건은 무엇이고, 또 가장 플러스를 기록한 사건은 무엇인지 떠올려보자. 그리고 이 과정에서 스스로가 성장하게 된 점에 주목해보아야 할 것이다. 과거를 되짚어보는 과정은 내 과거의 오점과 실패를 직면하고 ‘나는 이런 오류가 많은 인생을 살았구나’ 하고 생각하기 위함이 아니다. 과거의 사건을 통해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더욱 생산적이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전략을 개발하고, 어려웠던 시간을 극복한 과거의 자신을 통해 스스로를 믿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앞으로 직면하게 될 새로운 고난과 시련을 마주했을 때 스스로를 믿는 힘은 이 시간을 다시 헤쳐나갈 수 있게 만드는 거름이 될 것이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가천대학교 조소과 객원교수이자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이다. 현재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로,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011호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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