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소울의 삶과 미술심리(3) 

삶이 힘들다고 힘든 것만 보고 살 순 없잖아요 

우리는 ‘신은 공평하다’는 말을 들으며 성장해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말에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정말로 신은 공평한 걸까. 정말로 우리 모두는 평등한 삶을 살아가는 걸까.

▎르누아르 [선상파티의 오찬], 1881
신은 공평할까

사회의 계급과 경제에 대한 개념이 아직 없는 초등학생들조차 자신이 사는 아파트 이름과 평수를 이야기하며 같은 반 친구가 자신보다 낮은지, 높은지를 판단한다. 그리고 점차 부모의 재산이나 직업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도 깨닫게 된다. 결국 공평하지 않은 시점에서 각자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은 생계라는 삶의 현실적인 질을 좌우하기도 한다.

같은 직업군에 있는 동료지만, 같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가 다르고 벌어들이는 수익이 다르다. 자신은 생계형 고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자기실현형 고민을 하고 있을 경우, 혹자는 이 상대적인 차이에서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같은 요식업을 하고 있지만 투자금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고, 홍보할 수 있는 수준이 다르며, 이 다름은 수익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여기서 ‘나는 역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걸까’라는 자기비하적 사고를 가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 차이를 극복하고자 노력과 성장하기를 선택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 상황을 회피하기도 한다.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들과 달리 다른 사람이 자신의 제품을 구매해야만 그것이 수익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시작할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견뎌내야 하는 상황이 상대적으로 많다. 대표적으로 화가들이 그러하다. 캔버스를 사고, 물감을 사고, 작업실을 대여해야 하는 등 고정비용이 든다. 이것이 관객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판매하는 과정까지 이르러야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운이 좋거나 실력 있는 화가들은 투자를 해주는 후원자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알려지기까지 오랜 고통의 시간이 수반된다. 그 과정에서 혜택받은 환경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과 그렇지 못한 화가들은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가난한 화가라고 불행을 그리지 않아요


▎르누아르 [줄리 마네_고양이를 안은 소녀], 1887
대부분의 화가가 미술교육기관에서 배우거나 유명 화가의 사제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화가 동료를 형성한다. 그리고 배움의 과정이 끝난 화가들은 작업실을 공유하거나 함께 전시를 하는 과정에서 동료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19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화가들이 동료를 형성하는 새로운 접근이 시도되었다. 미술에 접근하는 방향성이 맞는 화가들이 모여 그룹 활동을 한 것이다. 그림에 대해 상의하고, 같은 곳을 방문해 같은 풍경을 그리고, 자주 술을 마시며 어울리고, 그룹의 이름으로 전시회도 함께 열었다. 이 중 대표적인 움직임이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린 인상주의(impressionism) 그룹이었다.

인상주의 그룹에는 여러 환경에 처한 화가들이 모였다.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함께했던 폴 세잔(Paul Cézanne)은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이었다. 발레리나를 그린 화가로 알려진 에드가르 드가(Edgar Degas) 역시 부유한 법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물랭루주의 유쾌함을 그린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는 귀족 집안의 자제로 태어나 그림을 그리면서 경제적 걱정을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룹 내에는 이들과 달리 가난한 화가도 많았다. 일부 화가들은 다른 화가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자격지심을 느끼기도 했고, 어떤 화가들은 화가들의 모임에 참석하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르누아르는 자신의 현재 상황에서 긍정적인 면을 보려 노력했고, 그러한 시도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화가였다. 궁핍해 먹고살기 어려웠고, 그림 재료비는커녕 끼니 걱정을 하는 일도 많았다. 그는 가난했던 동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와 함께 동료 화가 프레데리크 바지유(Frederic Bazille)의 집에 얹혀살기도 했다. 동료 모네가 “바지유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고, 고기를 먹은 지도 너무 오래됐는데 돈이 없다”며 고기를 그린 적이 있을 정도로 생활은 어려웠다. 그때 르누아르는 모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또 자네와 같은 훌륭한 동료와 그림을 그린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네. 문제는 이 130×173㎝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것뿐이지…. 물감은 참 비싸…. 이런 비싼 재료로 나는 행복한 모습을 그려서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고 싶네.”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 가난과 불행은 없었다. 그가 그린 그림 속에는 웃음과 행복, 여유가 가득하다. 그림 속에서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데 굳이 무겁고 어둡게 그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현실에는 힘든 일도 고통도 많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굳이 그림에 담지 않았다. 같은 모델과 풍경을 그리더라도 누군가는 우울하게 그릴 수 있고 누군가는 행복하게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르누아르는 잘 알고 있었다.

르누아르가 즐겨 그리던 대상이 있었다. 3B라 일컬어지는 예쁜 여자(Beauty), 아기(Baby), 동물(Beast)이 그것이었다. 굳이 추악한 사람을 그리지도 않았고,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리지도 않았다. 그림이 예쁘면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꼭 그림이라는 것이 사색에 잠겨서 고찰할 대상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판과 헐뜯기가 가득한 사회 속에서 비판 없이 그저 바라볼 수 있는 대상들이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돈이 많은 사람도, 가족이 있는 사람도,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각자의 자리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그 불편함은 우울한 감정이 되기도 하고, 불안한 감정이 되기도 하고, 무기력한 감정이 되기도 한다. 웃고 있는 예쁜 여자아이와 고양이를 보면서 마음의 포근함을 잠시 느껴보는 것, 그것이 르누아르가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힐링의 선물이었다.

고양이 그리기를 좋아했던 르누아르가 동료 화가 빈센트 반 고흐에게 고양이 그리기를 추천한 적도 있었다.

“빈센트, 모델 구할 돈이 없다고 자꾸 자화상만 그리지 말고 고양이를 그려보게. 고양이는 사랑스럽고, 예쁘고, 가장 중요한 건 모델비가 들지 않지.”

이 말을 들은 고흐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보게, 고양이는 그리는 것이 아니야. 안는 거지.”

이 그림 속에 나도 있는 것처럼


▎르누아르 [물랭 드라 갈레트의 무도회], 1876
르누아르의 작품 [선상파티의 오찬]을 보고 있으면 마치 관객들이 흥겨운 파티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즐거운 느낌이 든다. 르누아르는 파티에 참여했던 부유한 사람의 의뢰를 받고 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 속 사람들은 대낮부터 신나게 배 위에서 술을 마시며 놀고 있는데, 이러한 선상파티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었다. 낮 시간에 한껏 꾸미고 나와서 돈을 쓰며 놀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화가들은 부자들이 그림을 의뢰하면 조금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의 여유 있는 모습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르누아르는 이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기분 좋고 행복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자신도 그 사람들의 행복을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부자들이 있으니 이런 행복감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지 않나요? 감사한 일이죠.”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1483


I am being happy


▎모네 [고기 덩어리], 1864
어려움이 분명 있었지만 르누아르는 행복하기를 선택했고, 행복을 전하기로 선택했다. 모두에게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그 권리를 이행하기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그 권리를 포기하기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다.” 다소 진부한 클리셰처럼 들리겠지만 이 말이 위대한 최고(最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라파엘로의 걸작인 [아테네 학당]에는 그리스 철학자들과 현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아테나 학당]의 중앙에는 두 남자가 서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유난히 주인공처럼 크게 그려져 있는데, 왼쪽 인물이 플라톤이고, 오른쪽 인물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왼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있는데, 이 책이 그의 대표 저서인 『ETICA』다. 아레스토텔레스는『ETICA』에서 무려 10권에 걸쳐 행복에 대해 논했는데, 행복은 ‘최상의 좋음’이며 쾌락, 명예, 돈, 사랑보다 상위에 있는 가장 궁극적 삶의 목적이다. 인간이 태어난 목적인 ‘행복’인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요컨대, 행복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 하나로 안락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다. 행복이란 고대 철학부터 법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말하는 삶의 목적이자 권리인데 이러한 행복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르누아르는 행복하기를 선택한 화가였다. 궁핍했고, 그림은 잘 팔리지 않았고, 지원해주는 가족도 없었지만 우울하거나 고통받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르누아르의 행동은 현대 심리학에서 주목받는 현실치료(reality therapy)의 선택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현실치료에서는 모든 행동과 생각, 그리고 감정까지도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영어 문법에서 상태 형용사는 ing와 함께 사용할 수 없다. 그렇기에 ‘I am being happy’는 틀린 문법이고 ‘I am happy’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상담 현장에서는 이런 틀린 문법을 일부러 사용하도록 한다. ‘저는 우울해요’가 아닌 ‘저는 우울해하고 있어요’라고 말하게 하는 것이다.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부정적 감정도 결국 개인의 선택에 따라 발생하며, 행복과 즐거움이라는 긍정적 감정도 개인의 선택에 따라 발생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삶이 불안할 때 사람들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더욱 스트레스에 몰두하기를 선택할 수도 있고, 자기 비관적인 생각을 강화하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감정의 강렬함을 선택하는 것도, 또 감정의 종류를 선택하는 것도 자신이다. 자기 파괴적인 생각이나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선택은 최종적으로 스스로의 몫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가장 자주 사용했던 감정은 어떤 것이며, 또 더 많이 사용하고 싶은 감정은 어떤 것인지 떠올려보자. 감정을 적극적으로 선택해나가기 위해서는 ‘어떤 감정을 어떤 강도로 느끼기를 선택했는지’를 명료화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반복되는 감정을 확인하면 이제부터 느낄 감정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I am being depressed’가 자신의 선택으로 ‘I am being happy’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다.

※ 김소울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제임상미술치료학회 회장이며 가천대학교 조소과 객원교수이자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이다. 현재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로, 『치유미술관』 외 12권의 저역서가 있다.

202005호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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